악마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G3는 봄에 태어나 여름에 팔렸다. 그리폰은 날이 풀리자 많은 수의 민수용 인형을 사들였다. 크루거의 투자자은 민수용을 군용으로 재활용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다. 크루거는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됐든 인형은 잘 훈련된 인간보다 체력이 좋고 불평이 적었다. 


G3가 그리폰의 정비실에서 눈떴을 때, 그녀는 IOP에서 느꼈던 봄의 온도와 그리폰의 여름 햇빛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정신이 들자마자 눈살을 찌푸렸고 들러붙은 포장재를 떼어내려 발버둥쳤다. 50도에 육박하는 온도가 G3의 기도를 막았다. G3는 눈깔을 뒤집어가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댔다.


정비실 직원은 씹고 있던 빵을 입에서 굴리며 포장재를 뜯어냈다. G3이 사지를 허우적대도 직원은 개의치 않고 손이 가는 대로 포장재를 뜯었다. G3의 알몸이 차차 드러났고, 그녀는 수치심보다 안도감을 먼저 느끼는 것으로 여름을 배웠다. 트인 숨통과 흐린 시야 너머로 땀이 맺혀 떨어졌다. 땀은 방울져서 속눈썹을 타고 그녀의 아랫입술로 떨어졌다. 인형의 땀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습기가 높고 기온도 높고 직사광선도 강한 여름이었다. 3차 세계대전 후 몇 개 남지 않은 매체에서는 ‘인류 이래 최고’라는 슬로건으로 무더위를 떠들어댔다. 인류 이래라니.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그럼 나한테는 해당 되지 않는 얘긴가? 하고 G3는 생각했지만, 생각은 머릿속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땀, 땀이 스며든 의복, 그 사이의 끈적함 사이에서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얇아졌고 짧아졌다. 


민수용 인형은 땀이 나는 모델도 있었고 땀이 나지 않는 모델도 있었는데, G3는 전자에 해당했다. 그리폰에 처음 전입온 날, 정비관은 기능을 제거해 준다 했으나 G3는 응하지 않았다. 어째선지, 그런걸 홱 조정해 버린다면 자신이 기계인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멍청한 년. 내가 그럼 기계가 아니고 뭔데. G3는 땀을 닦을 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곤 했다. G3는 그날 이후로 정비관을 만날 수 없었고, 그녀는 본부에서 한참 떨어진 사격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후 2시였다. 햇빛에 쏘인 뒷목이 따가웠고 땅바닥에서 올라온 지열에 발바닥이 뜨거웠다. 


그리폰에 갓 들어온 인형이 직접 총을 쏘게 하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각인 시스템이 잘 자리 잡았는지, 총을 쏘았을 때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지, IOP에서 기체와 함께 준 성능표 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Zas M21이 수십 기의 인형을 인솔했다. 


모두 2성급 인형이었다. 대부분의 모델이 단가를 낮추기 위해 땀이 나는 기능을 거세당한 상태였다. 거기에서 땀을 흘리는 모델은 G3와 갈릴, G43정도였고 세 인형은 행군열에서 조금 뒤처진 채 걷고 있었다. 드러난 맨 다리는 사정이 괜찮았지만 꽉 끼는 외투가 문제였다. 겨드랑이와 등에 딱 맞춰 제작된 외투는 움직임을 방해하고 공기를 차단했다. 스며든 땀은 피부를 비집고 나오는 땀과 맞물려 미끌거렸고, 피부 조직은 내보내지 못한 습기를 다시 머금고 부어올랐다. 


G3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바닥을 보며 걷다가 이따금 시선을 올려 Zas M21의 앞서가는 엉덩이를 쳐다보았다. Zas M21은 그런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사격장엔 나무 한 줌 만큼의 그늘이 있었다. 스무기 정도의 인형이 그 안에 비집고 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다섯 기의 인형이 먼저 사선으로 올라가 사격 지휘를 받았다. 외투를 벗자 겨드랑이와 어깨가 쓰렸다. 뜨거운 그늘 아래서는 마르는 땀보다 흐르는 땀이 더 많았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마이크 너머 Zas M21의 목소리가 울렸다. 격발음을 처음 들은 G3는 어깨를 들썩여가며 놀랐다. 소총의 격발음을 데이터로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들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격발음은 생각보다 더 무게감이 있었고 고막 속으로 순식간에 들이쳤다. ‘탕’ 혹은 ‘투두두’ 같은, 격발음에 대한 데이터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다른 인형들이 표적지에 총을 쏘면 화약이 폭발하는 충격에 공기가 밀리면서 대기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파앙’에 조금 더 가까웠다. Zas M21이 눈을 동그랗게 뜬 G3를 살폈다. 그녀는 손에 든 서류에 펜으로 무언가 적고 나서 다시 사선(射線)으로 시선을 옮겼다. G3가 손에 든 소총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G3는 총소리가 싫지 않았다. 총소리는 시시각각 다르게 들렸다. 100미터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는 공기를 팡팡 치는 소리를 내더니, 직접 사격을 할 때와 더 먼 거리에서 격발음을 들었을 때의 소리가 달랐다. G3가 처음으로 방아쇠를 당겨, 그 기념비적인 초탄을 표적지에 꽂아 넣었을 때 그녀는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 격발음은 너무나도 커서 오히려 고막을 진동시키지 못했다. 파열음은 귀바퀴 바깥으로 흘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공이와 노리쇠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를 발로 차는 듯한 진동을 견뎌내면 탄피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알싸한 화약 냄새가 감돌았다. 총소리는 가까이서 들었을 때, 오히려 작고 앙증맞은 소리들이 들썩이는 느낌이 났다. G3가 사선에서 물러났을 때, 그녀는 그제서야 멀찍이서 총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 때의 소리는 그녀가 데이터로 알고 있던 소리와 비슷했다. 탕, 혹은 투두두 하는 소리. 드넓은 평야에서 총소리는 메아리치지 못하고 널리 퍼져 스러져갔지만, 꽤 여운이 깊은 소리였다. 


사격이 꽤 좋았다. 그녀는 자신이 식당 서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형이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옅게 퍼진 화약 냄새와 미처 가시지 않은 총소리가 좋았다. 나 소질 있나 보다. 더위에 지쳐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G3는 생각했다. 어떤 작전을 맡게 될까. 철혈이란 그 적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그 친구들도 인형이라던데. 아니, 난 아직 신참이니까. 시작은 대민지원이나 그런 걸로 하지 않을까. 이 날씨에 총 메고 근무 서는 건 고역이겠지만, 그래도 서빙 따위 보단 보람찬 일일 거야. 


그리고 G3는 9번 숙소에 처박혔다. 숙소 문을 닫던 Zas M21은 한참동안 G3를 쳐다보았다. 닫힌 문은 여름 내내 열리지 않았다.  



***



9번 숙소에는 G3를 포함해 5기의 인형이 배치됐다. 숙소에는 먼지가 많았다. 먼지는 여름의 열기를 온전히 머금고 온 사방을 휘젓고 다녔다. 그 보이지 않는,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것들은 데워진 열기를 9평 남짓한 방에 골고루 퍼뜨리고 가라앉았다. 의자 8개와, 장롱3개와, 창문 2개와, 벽걸이 5개는 그런 먼지들을 제 몫 만큼 만들고 또 퍼뜨렸다. 


일관성이 없었고 미적 배려도 고려하지 않은 방이었다. 되는 대로 짐을 쑤셔 넣은 방은 차라리 창고에 가까웠다. G3는 지휘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신처럼 느껴지거나 악마처럼 느껴졌다.


등급이 높고 아름다운 방들은 5성급 인형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방은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성급이 낮은 인형들이 자리를 차지할수록 방은 지상과 가까워져 갔는데, G3의 방은 2개의 창문에서 한여름의 햇빛이 그대로 들이치는 방이었다. 최하층 계급의 케케묵은 창고는 낮이면 가마솥처럼 푹푹 쪘고, 밤에는 그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감돌면서 인형들을 뜸들이듯 애태웠다.  


G3는 그 방에서 삶을 버텨냈다. 숙소에 처박힌지 3일째 되는 날 부터는 흐르는 땀을 굳이 닦지 않았다. 땀을 닦으려 움직이는 열량에 또 다시 땀이 났기 때문이다. F2000, G43, 시모노프, M3가 그녀와 함께 방을 썼다. 첫 일주일 동안 그녀들은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작전에 투입될지, 어떤 적을 마주칠지 고민했다. 우발적인 상황에 대비해 워게임도 종종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인형들은 말을 아꼈고, 더위를 견뎌내는 데 집중했다. 땀 흘리는 모델인 G43과 G3를 시작으로 인형들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마인드맵에 아슬아슬하게 끼어들어 있던 수치심은 무더위에 금세 짓뭉개져 바스라졌다. 그랬던 것이 7월의 마지막 주 쯤이었다. 


8월에 접어들자 9번 숙소에는 일종의 규율이 정해졌다. 2시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햇빛에 관한 규율이었다. 방 안은 태양이 기울어감에 따라 서서히 그늘을 좁혀나갔는데, 그 그늘이 제일 적었던 시간이 오후 2시 경이었다. 인형 5기가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적은 그늘이었다. 한 기의 인형은 2시쯤, 몸의 절반이 태양에 노출됐다가 4시 경에는 전신으로 태양을 견뎌내야 했다. 시모노프가 자진해서 태양을 받아냈다. 


그녀는 헐벗은 채로 몸을 웅크려 태양을 받아냈다. 그녀의 어깨와 윗가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진물을 토해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 시모노프는 그늘에 몸을 숨긴 네 인형을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G3, M3, G43, F2000 중 어떤 인형도 자리를 교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늘이라고 해서 시원한 게 아니었으니까. 네 인형은 이를 악물며 더위를 견뎠고 시모노프는 매일 2시간씩 햇빛을 받아내면서 힘이 빠져 이를 악물지 못했다. 그녀는 그래서 웃었다.


아직도 매체에서는 ‘인류 최고의 더위’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왜 지휘관은 우릴 방 밖으로 빼내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 방에 처박혀 있는 걸까. 딱히 전선에 내보내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전투에 자신 있는데. G3는 악문 어금니 사이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이외의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과열된 CPU는 종종 제멋대로 전원을 내렸고, 자정이 지났을 때 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시모노프는 하루 세 번 정도 쓰러졌지만 네 인형은 그늘 속에서 쓰러지는 시모노프가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었다. 혹여라도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다가는, 그 손이 전부 타들어갈 것 같았다. 알몸의 인형 네 기는 그렇게 방구석에 웅크려 지옥을 견뎠다. 더위를 머금은 먼지가 인형들의 기관지를 들락거렸다. 



***  


 

8월이 지났다. 햇빛이 한층 누그러들고 방의 벽이 조금씩 식어갈 때 쯤, 시모노프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연거푸 쓰러지던 시모노프의 CPU가 타 버린 모양이었다. G3는 벙어리가 돼버린 시모노프에게 감히 말을 건네지 못했다. 구석구석 피부가 갈라진 시모노프는 그런 G3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늘 속에서 자신을 쳐다보던 네 기의 눈빛을 기억했다. 사고가 녹아내려 흐리멍텅해 져도 그 눈빛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모노프는 G3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M3도, G41도, F2000도 쳐다보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빈 더위의 자리에 분노가 자리잡았다. 벙어리 시모노프를 제외한 네 인형은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햇빛이 그 위세를 누그러뜨렸고 방 안에 들이친 햇빛을 모든 인형이 견뎌낼 수 있게 된 후였다. M3는 짓무른 겨드랑이 피부를 뜯어내며 중얼거렸고, G41은 반 쯤 빠진 머리카락이 언제 다시 자랄지 걱정했다. F2000은 먼발치에 던져 놓은 자신의 소총을 끌고 와 대화했다. 


G3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휘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치 성서에 적힌 신에게 구원을 바라듯이, 혹은 사탄에게 영혼을 팔 듯이 낮고 음침한 목소리였다. 더위에 꺾인 목소리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격발음의 짜릿함이 기억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G3는 그걸 다시 느끼고 싶었다. 지휘관, 저를 불러 주세요. 저를 전장에 밀어 넣어 주세요. 저는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총을 쏘고 싶습니다. 철혈의 머리를 깨부수고, 목에 총검을 박아 넣고, 그들의 부동액과 기름을 마실 준비가 돼 있습니다. G3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다른 인형들은 침묵했다. 


중얼거림과, 회한과, 불평과, 간절함이 오가는 사이 가을은 지나가고 있었다. 지옥같던 여름의 열기를 머금었던 방이 완전히 식어갔고, 자신의 색깔을 뼈 시린 추위로 바꿔나가고 있었다. 네 인형은 다시 거리를 좁혔다. 체온을 보존하기 위한 그 느려터진 움직임에는 어떤 긴밀함이나 사랑을 가지지 못했다. 그녀들이 살기 위해 여름에 뭉쳤듯이, 그녀들은 겨울이 오자 살기 위해 뭉쳤다. 


눈이 내렸다. 가을비로 수분을 머금었던 땅은 이제 시치미를 때며 자신의 머리 위에 눈을 쌓아 올렸다. 여름만큼이나 매서운 겨울이었다. 콘크리트바닥은 열기를 빼지 못했던 것처럼 냉기도 빼지 못해 얼음보다 차가웠다. 첫 눈이 내리던 날 방 문은 갑작스레 열렸다. Zas M21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는 인형들을 내려다보았다. 방 안에서 썩은내가 풍겼다. 


“…나와. 작전이다.”



*** 



이 상황에서, G3는 이러한 기억들을 곱씹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손가락 끝이 얼어붙어 갈라지고 있었다. 손에 쥔 소총이 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열을 앗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앞으로 전진했다. 정강이까지 쌓인 눈이 걸음을 방해했지만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지휘관은 후열에 있던 자신을 전열로 이동시켰다. 전열엔 포탄에 찢겨나간 F2000의 오른팔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몸은 사방으로 흩어져 흰 눈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내장 기관과 톱니들, 그녀를 구성하고 있던 부품들이 역한 냄새를 냈다. 부동액은 눈을 녹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부동액이 스며들어 끈적한 눈을 G3는 헤치고 나아갔다.


G3는 지금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온 사방이 Zas M21이 쏘는 총소리, 주피터포가 화염을 뿜는 굉음, 그 너머로 간간히 전해져 오는 지휘관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전입왔던 날을 기억했고, 그녀가 ‘전장의 소리’를 좋아한다는 자만을 기억했으며, 자신이 무슨 특수부대의 베테랑처럼 전장을 휩쓸고 다닐 것이라는 착각을 기억했다.


여름날의 짓무른 더위를 기억했으며, 언젠가 있을 전투에 대한 염원도 기억했다. 더위와 추위, 목소리를 잃은 시모노프, 네 인형들의 비루한 이기심을 기억했다. 시모노프가 괴성을 지르며 G3를 앞서 뛰쳐나갔다. 


주피터포가 하늘을 향해 불을 뿜으면 사방에 쌓인 눈은 냉기를 털어내듯 부르르 떨렸다. 그 뒤로 들려 오는 공기를 찢는 소리는 작고 가녀린 소총의 탄알이 공기를 찢는 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더 날카로우면서도 더 무거운 소리였고, 그 소리는 곧 그 포탄의 착탄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견하는 것 같기도 했다. 빠르고 무겁게 날아온 포탄은 시모노프의 코앞에 떨어져 눈보라를 일으켰다. 흰 눈 사이로 여름 사이에 썩어난 검은 비옥토가 튀어올랐다. 그 사이에 시모노프의 이마와 오른쪽 다리, 위장, 눈알 같은 것들이 실려 튀어 올랐다. 시모노프는 한 차례도 버티지 못했다. Zas M21이 유탄을 장전했다. 


전장은 그래서 고요했다. 인형들은 겁에 질려 앓는 소리를 내다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찢겨나갔다. 고요한 만큼 냄새는 진하고 풍부하게 퍼져 있었는데, 대부분이 화약 냄새와, 포탄이 뒤집어 놓은 흙 냄새와, 인형의 부동액에서 나는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였다. G3이 쌓인 눈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주피터포를 조준했다. 제발. 제발 내 총알이 저 거대한 괴물에게 닿아, 어떤 기적이라도 일으켜 주길. 여름이고, 겨울이고, 지랄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 싶었다. 제발. 그녀는 눈을 감고 총을 쏘았다. 눈먼 총알은 주피터포로 다가가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G3는 3발의 총알을 단발로 쏘고 나서 더 이상 소총을 어깨에 견착하지 않았다. 주피터의 포신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 지독한 여름을 견뎌내고, 어금니가 깨어지도록 전투를 갈망하고, 신과 사탄을 원망한 결과, 단 한 발의 포탄으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Zas M21이 유탄을 쏘았다. 유탄은 주피터포의 오른쪽에 명중했다. 검붉은 화마와 검은 연기는 메마른 겨울 바람을 타고 금새 걷혔다. 주피터 포가 불을 뿜었다. G3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포탄을 보았다. 그녀의 허벅지엔 눈과 말라붙은 F2000의 부동액이 섞여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내장이 어떻게 생겼을지 고민해 보았다. 포는 G3의 코앞에 떨어졌다. 대지가 뒤집히면서 그녀를 띄워 올렸고, 포탄이 밀어내는 공기압에 얼굴 피부가 찢겨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목에 힘을 주고 그 힘을 버티려 했다. 포탄은 곧 폭발했고 그 여름의 폭염보다 뜨거운 화마가 얼굴에 훅 끼얹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