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는 ㅈ망겜 ㅈ망겜 하면서도, 몇 번을 히오스를 지워도 다시 깔며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걸 생각하며 이런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걸 보면 그만큼 미운 만큼 애정이 들었다는 방증인 것 같다.

 

물론 플레이어 레벨로만 따지자면 그렇게 깊이 있게 즐긴 사람은 아니다. 영웅 리그 배치를 봐도 골드에서 만족하며 그냥 틈날 때마다 빠른 대전을 플레이하고, 난투로 상자를 받고, 트위치로 히오스 관련 대회와 선수들의 플레이를 감상하며 대리만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처음, 이 게임에 한눈에 반한 것은 바로 아바투르가 아니었나 싶다. 대체 어떤 누가 어떤 약을 빨고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AOS라는 고정된 틀을 가지고도 게다가 이미 존재하는 스타크래프트의 세계관의 캐릭터를 골라와서 우리 팀에 공생체를 붙어 서포팅을 해주는 캐릭터를 만들까. 기지 안에서 잠옷 침낭 안에서 잠을 자도 공격과 공성, 수성, 경험치 획득하는 모든 플레이가 가능하다.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라는 것은 가로쉬의 겉이 촉촉하고 안은 바삭하다는 말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플레이하면서 느끼고 또 레벨을 업하고 특성을 바꿔가면서 더 새롭게 배워간다.

 

 

그랬던 게임이 오늘 낯설어져서 또다시 삭제 버튼을 눌렀다. 언제고 다시 깔아서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심정이 그렇다. 블리자드가 디아블로 임모탈을 내놓고 모두 냉소적인 시선을 내보일 때, 그래 돈 벌려는 기업이니까 돈 벌려는 선택에 "그럴 수 있지"라고 반응했던 것도 잠시, 돈 벌려고 돈 안 되는 히오스 대회를 없애버린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나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에 회의감과 함께 디아블로 팬들에 대한 애석함을 비로써 제대로 몸소 느껴버렸다.

 

 

히오스 대회를 폐지한다는 큰 비보 아래 히오스 개발팀의 일부 축소 개편된 안내는 이 게임에 대한 미래가 투명하지 않다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 초년생을 데려다 놔도 능히 분석해낼 수 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스노우 볼은 아주 천천히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정해지지 않은 게임 디렉터, 느려지는 업데이트와 버그 수정, 사람 없는 영웅 리그 심지어 디아블로 임모탈 또한 복선 중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대회는 없애서는 안 됐다. 만에 하나 없애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회와 게임에 시간과 열정을 들여 노력해온 선수들을 위해서도 하루아침에 달랑 메일로 대회가 사라졌다고 통보하는 방식은 정말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만약 정말로 시간을 들여 사과하고 충분한 설명을 한다면 기분은 나쁘기야 하겠지만 납득이 안될 것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구태여 시간 들여 쓰지 않고도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사실 이 말의 의미는 차례로 게임까지 없애버리겠다는 것을 은연중에 의미한다. 많은 히어로즈 플레이어들이 히오스 게임에서는 재미를 못 느껴도 대회 보는 맛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트위치 시청자 수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시청자가 늘어가고 있었고 엘클라시공이나 결승전쯤 되는 경기는 거의 만 명 가까이 시청하곤 한다.

 

게임 플레이어와 대회의 규모를 고려해봤을 때 상당히 고무적인 숫자라고 개인적으로 느껴지지만, 블리자드는 그게 아닌가 보다.

 

수많은 슈퍼 플레이가 대회 중 여럿 등장했었고, 재밌는 해설의 입담으로 비워진 시간을 채워 넣었다. 선수들과 해설진들의 노력은 일단 부차적인 내용이니 당연하다고 치고.

 

손익을 계산하기에 앞서 대회에서 보여주는 결과들을 봐야 한다. 대회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들과 밴픽, 전략들은 게임의 방향성을 나타내고 앞으로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플레이하라는 일종의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한다.

님들 어제 xx? 제가 보여드림.”하고 겐지를 픽하거나 하는 일화들은 AOS 장르에서는 이미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런 방향성 들을 더 일러주지 않는다는 것은 교본 없이 각개전투를 하라는 것이고, 교과서 없이 시험공부를 하라는 무책임한 말이다.

당연히 중구난방인 플레이어들은 서로에게 지쳐 시공을 떠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게임은 방향성이 가장 중요한 게임이고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초기 기획은 일단 그렇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서로 간 소통이 된다는 전제하에 모든 것이 진행된다. 그래야 내가 라인을 비웠을 때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해주고, 오브젝트 대신에 라인을 밀었을 때 한타 대신에 견제를 택하게 하는 것.

하지만 대부분 플레이어는 자리를 대체하는 것 대신에 경험치를 태워 날려버리고, 그냥 한 라인만 쭉 밀면 우리 팀은 한타에서 대패하는 그림에서 많은 망연자실 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존재했던 전문가인데 그게 오히려 게임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그들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뒤늦게 전문가를 없애봤자, 공성 경험치를 줄이고 한타 오브젝트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해봤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다.

 

정말로 팀을 생각한 게임이라면 클랜 시스템은 출시와 함께 나와 클랜전 위주의 게임이 돌아가야 했고, 팀을 생각한 게임이라면 스왑추가보다 대회 폐지가 더 빨라서는 안 됐다.

이 게임은 공산주의라서 망한 것이 아니라, 게임을 받쳐주는 시스템이 미비한 시점에서 이미 망한 것이다.

그 방향성을 위한 직관성도 떨어진다. 한타와 오브젝트보다 경험치가 중요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경험치가 타들어 가면 아무런 제재나 시각적인 변화가 없다. 스타 크래프트에서 본진이 털리면 미니맵에 성우가 언더 어택!”하면서 강조해주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는데 플레이어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알고 플레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플레이어 하나하나가 개발자의 속마음까지 투시해 가면서 아! 이런 의도로 만들었군, 이런 의도로 플레이 해버리겠어! 라는 것을 바란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대회는 하나의 방향성과 같았다. 개발자의 의도를 찾아가며 이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들의 이상향과도 같았고.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작은 리그지만 열광했고 거기서 재미를 느꼈다.

원래 이 히오스에서 추구해야 할 재미라는 건 이런 것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히오스가 재미없다, 타격감이 없다, 그래픽이 호불호가 갈린다. 다 그럴 수 있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 게임을 즐기며 한 번이라도 초갈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게임을 하고, 다 같이 5명이 모여 서로 역할을 맡아 힘겹게 승리를 이겨냈을 때가 있다면 백이면 백 히오스의 의도, 그리고 방향성을 아주 조금이나마 체험했을 듯싶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방향성을 잃은 히오스 앞에 아직 나아갈 길들이 많은 데 오히려 그 길들을 차단한 것에 대해 분노감 마저 든다. 당연히 히오스 프로나 관계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하나의 일개 플레이어로서 그들에게 보태주지 못하는 무력함이 더해지니 착잡할 따름이다.

 

정말로 심사숙고한 내용이라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것이, 리그 존속이 어렵다면 타 리그처럼 리그 응원 아이템을 캐시로 팔아서 모은 수익으로 리그의 상금에 보탠다든가(트위치 비트 응원하기가 있지만, 결제방법과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수익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다시 이전처럼 방송사 리그로 돌린다든가 하는 상생할 수 있는 다른 플랜들이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다.

남 주기는 아깝지만 유지하기엔 너무 버겁다는 마인드와 언제든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질 수 있다는 태도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들에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사라진 어느 선수의 새벽에 흘린 눈물에 비할 바는 아니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치만... 이렇게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누군가에겐 단순한 게임, 돈벌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인생, 전부일 수도 있음을 또 그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