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

안녕, 친구들. 

나는 30대 중반 디자이너야. 한창 대학 발표가 나는것 같아서 15년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래서 입시에 성공한 친구들, 또 맘대로 잘 안풀린 친구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싶어서 글을 써. 조금 길어질텐데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정말 공부가 필요한 전문직이나 학자 이런 쪽은 빼고, 명문 대학이 필요한가? 혹은 대학 갔으니 다 되지 않을까? 하는 친구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야. 

우리가 뭐 대학을 가고,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잖아. 취업 후의 성공 혹은 사업은 또 전혀 별개의 얘기니까 그건 또 뭐 나중에 기회되면 이야기 해보도록 하고, 딱 입시-대학생활-취업 이 단계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왜 대학을 가야할까? 뭐 대부분 별 생각 없지. 가라니까 가고. 하다보니 욕심나서 공부하고. 하다보니 목표 생겨서 노력하고. 난 그랬어. 근데 내가 대학을 두 번 다녔거든? 내 경험에 미루어서 볼 때 대학을 다님으로 해서 얻는 이점은 크게 두 개야. 기회의 발생 횟수. 그리고 나의 실력에 대한 보증. 그럼 당연히, 기회가 많이 생길수록 성공이 발생할 확률은 올라갈테고, 나의 실력이 올라갈수록 각 기회들이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들이 올라가겠지. 이렇게 둘로 딱 나눌 수 있는건 아마 내가 업종이 디자인이라 그렇겠지만,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럼 기회의 횟수는 왜 늘어날까? 당연히 교수님과 선후배 그리고 학교 네임밸류야. 능력 있는 교수님일수록 업계에서도 명망과 업적이 있게 마련이고, 그 주변에 역시 능력있고 야망있는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야. 그럼 교수님 통해서, 혹은 누군가가 교수님에게 의뢰를 해서, 이런 이런 능력을 가진 친구를 구합니다. 하면 교수님이 추천을 해주시거나 할 수 있지. 학생때부터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어느정도 수준 있는 학교에 가보면 꼭 강의실에 하나 둘 씩 학생때부터 뭐 어디 일 받아서 뭔가 자기 이력서를 채워나가는 능력자들이 있게 마련이야. 또 그런데서 나도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선후배 관계도 마찬가지지. 그렇게 서로 자극을 주는 관계속에서 실력을 늘리고, 각자의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끼리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또 기업에서 학교에 직접 찾아와서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해. 그런데서 성과를 낸다면 학점도 따고 커리어도 쌓고 인맥도 다지니 일석삼조지. 그렇게 학생때부터 학기중에, 방학중에 실무경력을 쌓으면 소위 그 판타지처럼 이야기하는 신입인데 경력있는 존재가 되는거야. 나와 내가 본 경우를 이야기해보자면, 힙합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있었어. 교내 행사에선 본인이 마이크를 잡기도 하고, 또 건너 건너 아는 친구들의 공연이 있으면 가서 촬영을 해주기도 했지. 그렇게 알음알음 촬영과 편집을 공부해서 어설픈 뮤직비디오도 만들어보고 해. 그러다가 또 어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공연 촬영도 해보게 되고, 그걸 편집해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영상 촬영과 편집에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하는거야. 방학때 막 그런걸 해.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도 뭔가 조금씩 두드러지기 시작해. 그러다보니 교수님 눈에 띄어. 교수님이 방학때 불러서 프로젝트를 줘. 방학 내내 일해. 그 프로젝트를 어떤 회사 누군가가 보게 되. 교수님한테 물어봐. 이런거 누가 했어요? 그럼 그 친구 이름을 대줘. 방학때 그 회사에서 일해. 그러다가 휴학하고 인턴쉽. 학기 마칠때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 앨범 커버 디자인, 뮤직비디오, 공연 실황 하이라이트 편집영상, 대기업과 학교 산학 프로젝트 리드, 교수님 프로젝트 보조 등의 경력을 쌓고 나와. 그럼 뭐, 회사에선 안뽑을 이유가 없지. 커리어가 짱짱하잖아. 근데 커리어만 좋다고 애가 정말 잘 하는지 어떻게 알지? 그게 좋은 대학가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이익이야. 나의 실력에 대한 보증.

미안한 말이지만 학벌은 꽤 요긴한 검증요소로 작용해. 좋은 학교를 나왔다면 실력도 좋겠지 하는거야. 굳이 두 번 묻지 않아. 근데 그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지. 좋은 학교 나왔다고 다 잘하나. 절대 아니잖아. 근데 커리어 있고 학교 좋으면 그냥 ㅇㅋ 해주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 그 이유는, 첫 째는 사람들의 인식. 고정관념일수도 있지만 앞서 선배들이 닦아놓은 이미지들. 이 학교 출신들이 일 잘하더라 하는 것들. 거기서 오는 신뢰가 나를 뽑을 때 영향을 줘. 둘 째로 그정도면 돼. 무슨 말이냐면, 신입은 사실 거기서 거기야. 크게 차이나지 않아.그러니 굳이 막 치밀하게 정말 얘가 잘하는가를 파고들지 않아. 근데 반대의 경우는 좀 달라. A와 B 두 후보가 있다. 둘이 디자인 수준이 비슷해. 근데 A는 명문대를 나왔고 B는 고졸이야. 그러면 A를 뽑을거야. 명문대 나왔으니 인맥도 좋을테고 성실하겠지. 짐작을 확신으로 바꿔줘. 그게 학벌의 힘이야. 근데 B를 뽑으려면, 왜 대학을 안갔나? 대학 안가고 정말 자기가 공부했나? 이거 자기가 다 한거 맞나? 누가 해준거 아닌가? 등등을 입증해야해. 진실은 언젠가 승리한다고? 그게 네 취직 적령기 안에 이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야. 

이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을 나오면 얻는 이점이야. 나머지는 그냥 소소한 것들이야. 하기 나름이고. 그럼 그 다음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그럼 정말 대학가면 다 되나요? 아니지. 되긴 뭘. 이제 시작이지.

앞서 내가 대학을 두 번 다녔다고 했지? 한 번은 한국에서 나왔고 두 번째는 미국에서 나왔어. 둘 다 나름 좋다고 하는 대학을 나왔어. 근데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그런 생각을 한거야. 그땐 내가 뭐 막 성실하게 일하러 다니고 이러지 않았거든. 와우하고 술먹고 여자만나고 놀기 바빴지. 근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근데 나 뭐해먹고 살아? 왜 나한텐 기회가 안와? 

기회는 절대 그냥 오지 않아. 아무리 학벌이 쩔어도 학점이 높아도 기회는 그런것과 관계가 없어. 적극적으로 만들어야해. 학교 수업에 끌려가지 말고 자기 공부를 하고 자기 프로젝트를 만들고 자기 인맥을 다지면서 자기가 대학생활을 주도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그냥 그런 학생 1로 남을수밖에 없어. 대학은 절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해. 기회가 왔을 때 한 번 믿어줄 보증을 해줄 뿐이야. 그렇게 나는 수동적인 대학생활을 2년 보내고, 군대에 가서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했어.그 사이에 여자 친구들은 벌써 커리어가 시작되기도 했지. 같이 강의실 뒤에서 담배피던 복학생 형들도 슬슬 취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들을 한 걸음 물러나 부대에서 간접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대학가면 다 된다매. 왜 난 안풀려? 하지만 기회는 어쨌든 결국 내가 만들어야하고, 그러려면 주도적으로 끌고가야해. 그렇게 제대후에 학교를 마저 다니고 미국에서 다시 학부를 들어갔어. 영어가 부족했지만 그래도 난 대학을 한 번 다녔으니 다른 애들보다 실기는 좀 더 잘했으니까 거기서 얻는 이득을 극대화 하고자 노력했고, 학점 채우기, 성적 내기가 아니라 내 포폴 쌓기 내 역량 쌓기에 집중된 학창시절을 시작했어. 이 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인데, 취업시장이라는 말을 하지. 취업은 시장이야. 우리는 상품이고. 학벌은 제조사야. 라면으로 치면 농심. 학벌은 봉지 뒤에있는 영양소 표시야. 나트륨 얼마. 설탕 얼마. 그럼 나의 실력은? 그게 라면으로 치면 맛이야. 나를 나타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 개성있는 작품을 하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저학년때부터 커리어를 빡빡 쌓을수도 있지. 나는 후자를 택했어. 

두 번째 대학생활. 2학년을 마치고 방학때부터 일을 시작했어. 인턴과 프리랜스. 돈을 존나 열심히 벌었어. 그 다음에 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번 돈을 싹 다 작품 제작비에 들이부었지. 하나에 몇 백 만원씩. 그렇게 3학년때부터 포폴을 찍어내기 시작했어. 학점? 개똥으로 받았지. 교양은 다 버렸으니까. 하지만 포폴은 누구보다 좋았고, 학교 전시관을 내 작품으로 쫙 깔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지막 학기부턴 슬슬 회사나 스타트업에서 이메일이 오기 시작했고, 졸업 전시회땐 수십장의 명함을 받고, 십수개의 이메일을 받고, 여러 회사와 면접을 진행했지.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오게됐고.

이러면 입시-대학-취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만들어져. 명문대학 입학 성공 - 능동적으로 일을 만드는 학교생활 - 취업. 뭐 꼭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소위 어른들이 생각하는 좋은 루트가 이런거야. 그럼 반대로 보자. 명문 대학을 꼭 가야할까?

아니야. 그건 아니야. 대학은 어쨌든 최소 4년을 들이붓는 긴 투자야. 그 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가치있게 쓰일 수 있어. 기회 발생의 횟수, 그리고 실력의 보장 이 두 개만 해결을 할 수 있으면 사실 대학은 크게 중요치 않을 수 있어. 요건 그냥 내가 일하면서 만난 한 친구의 이야기로 설명을 해줄게. 약간 각색을 할거고, 애 이름은 편의상 가명으로 제홍이라고 부르자. 

제홍이는 원래 운동을 했어. 그러다가 크게 다쳤지. 그렇게 그만두게 되었고, 꽤 오래 방황을 했다고 해. 그러다가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된거야. 그래서 막 유툽이랑 그런데서 리서치를 나름대로 한거지. 그러다가 막 디자인회사들 이름, 디자이너들 이름들을 알게 돼. 그래서 막무가내로 디자인 회사들에 연락을 돌린거야. 가서 접시라도 닦게 해주세요. 그렇게 한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 물론 작은 회사였지. 하지만 청소를 하고 냉장고에 음료를 채우면서 어께넘어로 툴들을 짬짬히 익히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디자이너들과 친분이 생겼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면서 조금씩 공부를 해나갔지. 그러던 어느 날, 디자이너 한 명이 아파서 빠졌어. 근데 되게 바쁜거야. 그런 상황에서 일손이 필요하니 디자이너들이 친분이 있는 제홍이를 불러다가 앉혀놓고 자기 보조 일을 시켰어. 그게 한 번, 두 번 이어졌고, 제홍이는 사장님께 요청을 했지. 저 공식적으로 디자이너 보조를 시켜주십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연히 대졸자들보다 턱없이 적은 연봉이었지만 그래봤자 20살 이랬거든. 그 나이에겐 별로 적은 돈도 아닌거지. 그렇게 디자인 보조 일을 하다가 조금씩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견문도 넓어졌고,그러던 중 한 프로듀서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고 평소에 싹싹하고 일 잘하고 친절하던 제홍이를 데려갔어. 그러면서 주니어 디자이너 타이틀이 주어졌지. 이제 더이상 보조가 아닌거야. 그렇게 남들은 학교에서 졸업작품 하고있을 나이 22살에 디자이너 커리어를 시작을 해. 그렇게 한참 열심히 일을 하다가 한 25살쯤 됐어. 원래 한 3년차 되면 현타가 오거든. 여러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돼. 앞으로 더 성장하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그 때 선배들이 학교를 추천해. 너는 다 가졌는데 학벌만 없잖아. 학교 가봐라. 더 많은 기회가 올거다. 그래서 일단 학교를 가. 교수님들이 이상하지. 넌 여기 왜 와있냐? 가서 일해라.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학교에 모 대기업에서 무슨 강연같은걸 와. 포트폴리오 리뷰도 해준대. 그래서 자기 일할때 만든 포트폴리오를 가져가. 당연히 학생들과 퀄리티 비교가 안되지. 그렇게 걔는 대기업의 디자이너가 됐어. 학교는? 때려쳤어. 필요가 없잖아. 앞서 내가 말한 모든게 충족이 됐지? 기회를 스스로 존나 만들었어. 그리고 밤낮없이 공부해서 자기 실력은 스스로 증명했어. 그렇게 경력이 쌓이고 업계에 인맥이 쌓이면 평판이 생기게 되고 학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내 실력을 보증해줄 보중인들이 생겨. 이런 사례도 있어.

그러니 결국 핵심은 그거야. 실력을 쌓는건 당연한거고. 기회 창출. 그리고 내 실력을 보증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 학벌이든 인맥이든 커리어든. 내가 싹싹하고 일 잘하고 성실하면 꼭 학교일 필요는 없는거야. 

쓰다보니 존나 길어졌다. 나이먹으면 원래 말이 길어져. 암튼 그 얘기를 해주고싶었어. 입시에 성공한 친구들. 방심하지 말고 스스로의 학창생활을 리드하길 바라. 언젠가 느낄거야. 내가 학교 커리큘럼에 끌려가고있구나. 그러면 안돼. 본인이 리드해서 학교를 이용해먹도록 하고, 최선을 다해 기회와 인맥을 만들어. 대학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해.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못낸 친구들은 기운 내. 대학은 그저 수단에 불과해.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아. 그거 실패했다고 네 인생이 실패하는게 아니야. n수를 준비하는것도 방법이야. 확실히 얻을게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내 비전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조금 더 수고스럽더라도 더 알찬 컬리어, 더 재미있는 20대를 만들 수 있어. 움직여. 기회를 만들어. 그리고 널 보증해줄 무언가를 찾아. 그러면 된거야. 너에게 필요한건 학벌이 아니야. 충분한 기회를 만들 에너지와, 그 기회가 잡힐때까지 견딜 체력.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네 편이 되어줄 친구들이면 충분해.

다들 입시한다고 고생 많았고,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 
내년엔 잘 될거야 아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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