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엘룬이 달의 여신이자 달 그 자체를 부르는 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면 엘룬은 형제위성인 푸른 아이(Blue Child)와 함께 아제로스의 중력에 속박된 위성 '따위'에 불과하게 됩니다. 헌데 요즘 꼬락서니를 보면 아무래도 블리자드는 엘룬이 나루의 창조자이자 아마 블리자드 세계관에서 최고로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블리자드의 최근 움직임에 합당한 근거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모두 아제로스의 해와 달이 서쪽에서 뜨고 천정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전을 하다 멈추고 다시 반대쪽으로 자전하는 비상식적이자 아제로스 지표가 초토화될 것같은 움직임입니다. 그러니 일단 이것은 무시하고, 그냥 정상적인 자전운동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단서 중 하나는 엘룬에게 위상 변화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드루는 유물스킬로 초승달 반달을 쓰긴 하지만 실제 엘룬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월식도 일식도 없고요. 아제로스의 공전궤도면에서 엘룬이 크게 벗어나 있다고 해도, 두 궤도면이 만나는 어느 순간만큼은 일월식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니 엘룬을 그저 위성으로 보기엔 이상합니다. 정상적인 달의 크기를 고전적인 기하학적 방법만으로 추산해보려면 최소한 자기가 사는 행성의 크기는 알아야 되니까 아제로스의 크기를 모르는 우리가 적용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단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엘룬이 투명하다는 점입니다. 그림을 확대해 보시면 엘룬 뒤에 가려져 성식(星蝕)이 일어나야 할 별이 엘룬에게 가려지지 않고 그대로 투영되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위성 정도 되는 천체가 투명할 수는 없습니다. 순수한 수소덩어리인 항성도 투명하지 않습니다. 핵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져 광구에서 발산되기까지는 수십만 년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엘룬은 저 별들보다 멀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룬의 크기 범위를 상정해 봅시다. 편의상 와우의 FOV를 90도로 놓겠습니다. 와우 시야각이 실제로 60도든 120도든 1.5배 차이일 뿐이므로, 가정이 틀리더라도 오류가 심각하게 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로 1920픽셀(~90도) 중 엘룬의 지름이 200픽셀 가량을 차지하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엘룬의 시직경(apparent diameter)은 9.375˚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룬까지의 거리는? 안타깝지만 우리는 아제로스인이 아니므로 지구의 기준을 적용합시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 중 가장 가까운 알파 센타우리(더 가까운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육안으로 볼 수 없음)는 4.37광년입니다. 육안관찰의 한계를 6등성으로 잡았을 경우, 가장 먼 별은 세페우스자리 뮤성으로 6천 광년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삼각측량으로 엘룬의 지름을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4.37광년 기준 엘룬의 반지름은 계산기의 도움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습니다: 약 0.358광년.
6천 광년 기준 엘룬의 반지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 492광년.

저것이 엘룬이 별의 뒷배경이라고 생각했을 때의 최소 크기 범위입니다. 엘룬은 아무리 작아도 0.7광년 이상의 지름을 지닌 거대우주구조체라는 것입니다. 최소한 저것보다 작진 않습니다. 저것보다 더 멀리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니 저것보다 얼마든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저 거리에서 맨눈으로 저렇게 밝게 보이려면 밝기도 어마어마해야 합니다. 가령 안드로메다 은하의 시직경은 해와 달보다 큽니다만,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곁눈질로 봐야 간신히 뿌연 안개처럼 보이고 아마추어용 망원경으로 노출시켜도 그 멋들어진 은하스러운 사진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엘룬은 실로 막대한 빛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엘룬이 왜 나루의 창조자이자 티탄보다 높은 존재라고 불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