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2월27일 저녁 전북대병원 로비에서 입원환자인 송수아양(당시 15세)이 살해당했다. 대학병원에서 여중생인 환자가 살해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범인은 박 아무개씨(당시 32세)였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가난한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수아의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아버지는 1997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하던 사업이 실패했다. 이로 인해 아내와 이혼했고, 외동딸인 수아를 홀로 키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수아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나섰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박씨를 만나게 된다. 박씨는 노래방에 도우미를 제공하는 일명 ‘보도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 송씨에 따르면 박씨는 전과 40범에 이른다고 했다. 박씨의 실체를 알아챈 수아는 그를 멀리하려고 피했다.

박씨는 수아에게 호감을 갖고 덤벼들었다. 만남을 거부하자 공갈, 협박, 폭행에다 성폭행까지 했다. 박씨의 협박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수아는 동거를 하게 된다. 미성년자인 수아와 무려 17살 차이인 박씨와의 동거가 정상적인 관계라고 볼 수 없다. 강압에 의한 감금상태나 다름없었다.
 
약 2주간 박씨와 동거하던 수아는 의견 차이로 다툰 후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그때부터 박씨의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된다. 그는 수아에게 “다시 만나 달라”고 했지만, 수아가 거절하자 협박을 일삼았다. 수아에 대한 집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세졌다.
 
2월26일 새벽 0시40분쯤에는 봉동에 있는 아파트 아래까지 찾아왔다. 박씨는 수아에게 “빨리 내려오라”며 행패를 부렸고, 여기에 위협을 느낀 송씨 부녀는 경찰의 도움을 받고자 112에 신고했다. 부녀는 경찰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의 태도가 이상했다. 송씨는 “신고를 받고 지구대 경찰관 2명이 찾아왔고, 신고내용을 진술하던 중에 박00이 집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며 “한밤중, 그것도 위협을 느껴 신고를 당한 가해자가 경찰관이 출동해 있는데도 피해자 집 안으로 무단 침입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에는 주거의 평온·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돼 있다. 박씨의 경우 ‘주거침입죄(319조)’에 해당하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경찰은 당연히 박씨를 제지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송씨는 “(박00이) 한밤중에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 집에 들어와 ‘나도 할 얘기가 있으니 들어 달라’고 소란을 피웠으나 경찰은 신원 확인도, 신병 확보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내 보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의 신원을 확인한 후 현행범으로 체포하거나 임의 동행하는 형식으로 신병을 확보했어야 하는데도, 그런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송씨의 주장이었다. 

경찰은 송씨 부녀의 진술을 들은 뒤 전북대병원에 있는 ‘원스톱지원센터’로 데려갔다. 이 센터는 성범죄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경찰은 이곳에서 수아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고, 조서를 작성한 후 당일 오전 5시30분 정도가 돼서야 끝이 났다.
 
수아는 조사 받는 내내 힘들어 했고, “무서워요. 신변을 보호해 주세요”라고 요청했으나, 경찰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아버지 송씨는 “경찰관 왈 ‘지금은 함부로 사람 못 잡아요”라며 신변 보호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픈 몸으로 장시간 조사를 받은 수아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조사가 끝난 후 경찰은 112 순찰차로 송씨 부녀를 집에 데려다주려 했으나 수아는 망설였다. 박씨가 집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집에 가는 것이 무섭다”며 친구 집에 가서 자겠다고 했고, 경찰관에게 “친구 집이 가까우니 가는 길에 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럴 수 없어요. 택시비 없어요?”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수아는 택시비가 있다며 택시를 타고 친구 집으로 먼저 출발했다.

송씨는 순찰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수아가 친구 집에 잘 도착했는지 전화로 확인했다. 아침에 출근한 후 일을 마치고 오던 길에 수아를 데려오려고 전화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 집에 있어야 할 수아는 선배 언니를 만나기 위해 전북대 옛 정문으로 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수아를 호시탐탐 노리던 박씨는 수아의 동선을 파악한 후 그곳에서 납치했다. 박씨는 수아를 아중저수지로 끌고가 각목으로 폭행했고, 그가 차량에서 잠든 틈을 타 수아는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수아는 납치 건으로 2월26일 경찰서에 나가 다시 진술서를 작성했고, 밤 9시경이 돼서야 귀가했다. 다음날인 27일은 수아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날이다. 수아는 이날 오후 2시경부터 세 번째 조사를 마치고 조서에 지장(도장)을 찍고는 당시 앓고 있던 골반염으로 전북대병원에 입원했다. 때마침 수아 친구가 병문안을 왔고, 송씨는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오기 위해 봉동의 아파트로 갔다.
 
얼마 뒤 송씨에게 다급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는 “아빠, 어떡해요, 어떡해요, 수아가…”라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울먹이며 전화했고, 송씨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곧바로 전북대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수아는 생명이 위독했던지 전기충격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믿기지 않은 상황에 맞닥트린 송씨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박씨는 수아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것을 알고는 이를 취하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수아가 전북대병원에 입원한 것은 SNS에 올려진 병실 사진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박씨는 수아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흉기를 소지하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병원 로비에서 친구와 함께 있는 수아를 발견하고 흉기를 꺼내들었다. 미리 준비한 식칼로 목과 배를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박씨는 병원을 빠져나와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고,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인근 아파트 19층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사망한 상태.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됐다. 송씨는 억울했다. “경찰이 신변보호 요청만 들어줬다면 딸을 비명에 잃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5차례 이상 ‘무서워 죽겠다. 박00이 조직폭력배이니 신변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보호해 주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입원 직전 3차 진술 때도 강력팀 형사에게 부탁 했는데 그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와요. 걱정마세요’라며 성의 없는 답변만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주 덕진경찰서 측은 “납치와 감금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피해자를 모두 보호하는 것은 아니고, 사건의 긴급여부를 확인한다. 송양의 가족이 정식으로 신변보호 요청을 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수차례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는 송씨와 정식 요청은 없었다는 경찰 측의 의견이 엇갈린다. 

송씨 가족은 수아가 살해당하면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손녀의 죽음을 맞닥뜨린 할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얼마 후 사망했고, 송씨는 공포와 외로움, 슬픔과 분노로 심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것으로 인해 문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고, 오직 죽고만 싶었다고 한다.
 
1년 반을 이렇게 보낸 송씨는 사랑스런 딸의 원한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결국 인터넷을 통한 여론화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수아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정부12개 부처에 민원도 제기했다.

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분들께 전파돼 공유할 수 있도록 부탁 드립니다”며 적극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외동딸을 잃으 아버지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지금 15살 여중생의 비통한 죽음은 이렇게 과거 속의 사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