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1850년 10월 26일 - 1927년 3월 29일)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조선일보(방씨 인수 이전 조선일보는 대표적인 항일일간지) 사장, 신간회 회장 역임.

 

3.1운동 관련으로 투옥 경력.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서훈.

 

 

겉보기에는 꼬장꼬장하고 보수적인 분으로 보일수 있으나 (평생 한복과 두루마기만 입으셨다고 함.)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에서 시구하시는 월남 이상재 선생님,1920.11월 촬영 추정>

 

 

이런 행사에도 스스럼없이 나서시고, 한참 어린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농담도 주고받으시고 같이 놀기까지 하셨다고함.

 

당시 시대상으로써는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셨던 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엄청난 말재주를 가졌던 촌철살인의 대가.

 

1. 조정에서 일하실 때 고종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아첨꾼들의 서류와 뇌물이 있었고 이걸 본 월남 선생님은...

 

"상감 계신 방이 왜 이렇게 추운거냐!"

 

호통을 치고 그것들을 모조리 난로에 쳐 넣어 버리셨다...

 

(물론 바로 고종에게 대죄를 청했고 고종도 바로 용서하였다)

 

 

2. 통감부가 있던 시절 어느 행사에 참석하였는데 그 행사에 매국노들이 득시글거렸다.

 

이들은 월남 선생님을 보고 아는 체를 하였고...

 

"대감님들은 얼른 이사를 준비하셔야 겠습니다."

 

"별안간 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감님들은 나라 망하게 하는데 천재시니 일본으로 이사가면 일본도 망할 것 아닙니까?"

 

이말을 들은 매국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한다.

 

 

3. 평소 청년들과 허물없이 지내고 농담따먹기에 같이 놀기까지 하는 월남 선생님에게 지인이

 

연세도 있으시니 체면을 생각하시는게 어떻겠냐고 말하였는데...

 

"내가 청년이 되어야지, 젊은이들에게 노인이 되라고 할 수는 없잖나?

 

내가 청년이 되어야 청년이 더더욱 청년 노릇을 하는 것일세."

 

(이상재 선생님은 강연시 소갯말을 "청년 이상재입니다." 로 시작했다.)

 

 

4. 일본인이 자기네 병장기를 구경시켜주고 감상을 물었는데...

 

"과연 일본이 막강한 나라인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으니 그것이 걱정입니다."

 

 

5.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 재봉틀을 도둑맞았고 그걸 본 며느리가 울고 있자...

 

 "아가, 너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울지를 않더니만 고작 재봉틀을 도둑맞은 걸로 우는게냐?"

 

 

 

6. 어느 날 강연을 하러 가보니 강연회장에 순사들이 득시글 거리는것을 보시고는...

 

"초봄이 지난 지 한참 뒤인데 여기에 개나리가 만발하였구나!!"

 

(개xx + 순사들이 거들먹거리면서 감시하는 꼴을 억지로 높여서 나리, 즉 돌려까기)

 

 

7. 3.1운동 배후로 체포되어 검사의 심문을 받게 되는데 뜬금없이 검사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여기에 당신 손바닥을 붙여주시오." 검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붙여주자마자 냉큼 떼시며 일갈.

 

"보시오. 억지로 붙인 건 떨어지는 게 세상이치요, 조선하고 일본도 마찬가지야."

 

 

이밖에도 수많은 촌철살인 일화 및 미담이 존재 하셨던 분.

 

 

1927년 영면하실때 장례가 사회장으로 치뤄졌는데 몇만명의 인파가 운집할만큼 대단한 규모였었고

 

남긴 유산은 쌀 27가마의 빚...

 

월남 선생님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나 지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서슴없이 가진 것을 다 내어주실 정도였고

 

한겨울에 땔감이 없어 얼음장에서 지내는 것을 보다못한 지인이 땔감 값이라도 하라고 준 돈을

 

바로 도움을 요청하며 찾아온 가난한 학생에게 다 털어준 일화까지 있을 정도.

 

 

당시 사회의 큰어르신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