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의 소설『내 친구가 유신에 눈을 떠 발터로 제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제 1권. 극히 평범한 중학교 교사 김재규가 어느 날 갑자기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었다.
전통과 격식 있는 이 부서 인원들은 모두 명문가의 영애들뿐.
더구나 바깥세상에 나가본 적이 없으며 같은 세대 ‘국민’들은 본 적조차 없는 온실 속의 화초들.
이성과 바깥세상에 대한 면역을 기르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경호실장’으로 선택된 김재규!
어느 날 갑자기 재력자들에게 인기 만발 라이프 스타트!
대국적 정부 러브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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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출저: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160285

 

 

 

 

 

철이는 벌써 며칠째 유신이 옆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회의 냉혹한 운영으로 교내에서의 평판이 바닥을 기는 유신이였는데 철이는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듯 하다.

"자,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 얼마전 발생한 부마클럽의 학생회 비방 포스터 게시건에 대해서인데, 뭔가 안건 있는 사람..?"

부마클럽, 즉 여왕의 남편인 부마를 연구하는 괴악한 내용의 클럽이다. 신학기 들어 훨씬 깐깐해진 예산집행 과정에서 첫번째로 소외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철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장! 그런 이상한 클럽은 있어봐야 학교 이미지에 마이너스만 될 뿐입니다! 그냥 이참에 전차동호회를 불러서 싹 밀어버리시죠!"

"흠, 부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나? 선도부장은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이 시점에서 고민에 빠졌다.
철이의 제안은 위험하다. 선도부가 물밑에서 추진하고 있는 유신회장 영구집권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교무실과 교장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철이의 주장은 적어도 표면상으론 학생간의 대화와 상생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교사진에선 달갑지 않은, 아니 오히려 비대해진 현 학생회를 실각시키고 교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

"갓카, 아니 회장. 부회장의 주장은 좋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계속해서 연장되는 학생회장 임기로 교사진의 심기가..."

"야! 너 이새끼 그렇게 부랄이 작아서 선도부장 하겠어?"

철이가 내 말을 탁 끊더니 의자를 유신이 옆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회장, 불평불만은 초기에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사진에게 인정받더라도 학생 여론 자체가 들불처럼 번질 위협이 있습니다."

"흠, 부회장의 의견은 타당한것 같군. 선도부장은 더 할 말이 없나?"

틀렸다. 가뜩이나 공부와는 다소 거리가 먼 육상부 출신 유신이의 머릿속에선 더 이상 논리가 진전되지 않는 모양이다.
유신이 옆에 잔뜩 달라붙어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내는 철이를 보고 있자니 뱃속이 꿈틀거린다.

"각하, 아니 회장. 염려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다만 지금 이미 학생 여론은 끓어 오를대로 끓어 오른 상황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김을 빼줘야 할 상황이란 말입니다. 만일 여기서 더 압력을 가하는 날엔... 외람된 말씀이지만 현 학생회 체제 자체가 침몰하게 될지도..."

"회장, 선도부장은 지금 쓸대없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터져봐야 문예부나 예능계 녀석들입니다. 여차하면 비상 체육회로 더욱 눌러놓으면 될 일입니다. 체육계는 전부 회장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시죠."

자리에서 휴대폰이나 만지작 거리던 체육계 부장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유신이는 여전히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한채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야! 자지철이 너....!"

"선도부장!"

놀랐다. 유치원부터 십여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유신이가 소리를 지른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나가서 세수나 하고 오지. 이번 안건은 내일 처리하기로 하고."

나는 성난 숨을 고르며 조용히 학생회를 나왔다.
다소 쌀쌀해진 복도의 공기가 달아오른 얼굴에 닿는것이 느껴졌다.
오늘따라 묘하게 철이를 감싸는 듯한 회장이, 아니 유신이의 행동을 다시 떠올리니 다시 한 번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때였다, 선도부실에 감춰두었던 담배곽이 떠오른것은. 담배곽이, 그것도 네 개피 정도 남아 형편없이 찌그러진, 사용감 잔뜩 묻은 담배곽이 부회장의 가방에서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재빨리 선도부실에서 담배곽을 챙긴 후 선도부 몇 명을 모았다.

"...예, 회장."

나는 부원들에게 학생회실에서 큰 소란이 나는 즉시 돌입, 신속하게 학생회 임원들을 제압하게끔 명령을 해두었다.
가슴속의 담배곽을 만지작거리며 학생회에 들어서자, 유신이가 다소 누그러진 얼굴로 철이와 즐겁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뱃속이 꿈틀거렸지만 나는 침착하게 담배곽을 철이의 가방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선도부장도 왔고 하니 그럼 지금부턴 각자 싸온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있지."

유신이는 가방에서 에비앙 생수와 닥터 오를 꺼냈다. 유신이가 매점표 스콜이나 닭다리스낵만 먹는줄 아는 일반 학생들이 본다면 다소 배신감을 느낄만한 메뉴다.
나는 구겨진 팥빵을 주머니에서 꺼내 먹는듯 마는듯 조금 베어물었다. 시선은 철이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철이는 자랑이라도 할 샘인지 가방을 일부러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열었다.
순간, 히터의 열로 달아오른 학생회실의 공기 안에서 차갑게 굳은 녀석의 표정을 잠깐이지만 느낄수 있었다.]

"... 이거 담배냄새 아냐?"

나는 최대한 긴장한 티를 감추며 운을 띄웠다.
순간 학생회실의 공기가 가만히 정체하며 마치 이 순간이 보존된것처럼 느껴졌다.
필름이 늘어난 고전영화같은 분위기 속에서 철이는 흠칫하며 내 눈치를 보더니 서서히 가방을 책상 아래로 내려놓으려 했다.

"자지철이! 너! 가방 닫지마!"

나는 크게 소리치며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철이를 지목했다. 모두의 시선이 철이에게 모이면서 이 철저하게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분위기를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선도부장! 또 뭐야!"

우낙에 마이페이스라 공기를 못읽는건지 철이를 구원하기 위해선지 유신이가 짧게 호통을 쳤지만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철이의 손목과 가방을 움켜잡았다.

"선도부장 권한으로 임시 소지품검사가 있겠다. 움직이지 마!"

이 상황 자체에 매몰되버린 철이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유신이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옆으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으로 유신이와 철이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철이를 자리에 정자세로 착석 시킨 후,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완장을 두르고 철이의 가방을 책상 위에 뒤집어 엎었다.
깔끔한 필통과 교과서 몇 권, 두꺼운 노트와 지갑, 그리고 부스러진 담뱃가루와 구겨진 담배곽. 라이터가 없다는게 유일한 흠이었을까.

"자지철이 너 이 새끼! 선도부!"

나는 문 밖에 대기시킨 선도부원들을 불렀다.
팔에 완장을 찬 건장한 남학생 몇명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다시 한번 장내의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했다.

"재규어 너 이 새끼! 네가 꾸몄지! 네, 네가 꾸민거잖아!"

철이는 타이밍 좋게 쳐들어온 선도부원들을 보더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는지 거칠게 저항했다.
하지만 이미 장내의 분위기는 나와 선도부원들이 완벽하게 제어하는 중이었다.

"회, 회장! 이건 음모입니다!"
"선도부장, 아니 재규어! 너 정말이야?"

철이의 처절한 읍소에 유신이가 반응하며 내 팔을 덥썩 부여잡았다.
나는 유신이의 관심을 담배곽에만 집중시키기 위해 담배곽을 집어들고 유신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순간 철이가 선도부원들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퇴후의 발악이라도 하는듯 그 몸뚱이를 있는 힘껏 나에게 던졌다.

"....어?!"

순식간에 눈 앞에 육박한 것은 학생회실의 바닥도, 낡은 나무책상의 모서리도 아니었다.
새하얀 블라우스와 크고 완만한 굴곡을 그리고 있는 유신의 심장, 아니 가슴이 마치 백야의 하늘처럼 내 시야를 가득 매웠다.
마치 구름과도 같은 그 표면에 격돌하는 순간, 나의 신체는 모든 기능을 잃고 오직 유신의 심장이 맥동하는 소리와 가슴팍의 알싸한 향기를 탐미하는 기능만 남았다. 담배곽을 쥔 손이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의 석주처럼 하얀 유신이의 허벅지 위에 자리잡는것이 느껴졌다.
마치 마리아의 품 안에서 죽어가는 예수와 같은 포즈로 나는 그녀의 품 안에서 몇번이고 정신을 잃을뻔 했다.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한 어머니, 즉 여성이 죽어가는 남성을 안고 있는 장면에서 옛날 사람들은 분명 탐미적 에로시티즘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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