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는 20세기에 나타난 현대판 흑사병으로 불렸다. 14세기에는 흑사병, 16세기 매독, 17∼18세기 천연두, 19세기 결핵에 이어 20세기에 인류를 역병의 공포에 떨게 한 주범이다. 다행히 다른 질병처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21세기인 현재는 관리만 잘하면 사망하지 않는 만성질환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환자 수도 줄어들고 있다. 2013년부터는 신규 에이즈 환자가 매년 1000명가량만 발생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국만은 상황이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에이즈 신규 환자는 35% 감소했는데 유독 한국은 추세와 달리 4.7배로 늘어났다. 전 세계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지카 바이러스 등 21세기형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는 아직도 20세기 감염병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에이즈 환자가 우리나라에서만 급증하는 걸까.

◇젊은 남성에게서 급증 = 먼저 에이즈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감염돼 면역세포가 파괴되는 질병이다. 학계에서는 HIV 감염경로가 △성적인 접촉 △수혈이나 혈액 제제를 통한 전파 △병원 관련 종사자에게서 바늘에 찔리는 등의 사고로 전파되는 경우 △모체에서 신생아에게로 전파되는 경우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맞춰 국내 에이즈 환자의 발생 유형을 보면 급증 원인을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10명 중 9명이 성접촉으로 감염된다. 2006년 이후 수혈 감염은 나타나지 않았다. 특징적인 것은 감염인 중 남자가 92%로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대별로는 20∼40대가 전체의 76% 정도를 차지했다. 이를 토대로 학계에서는 에이즈의 가장 큰 감염원을 MSM(Men who have Sex with Men, 남성동성애)으로 꼽고 있다.

배종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제주도 감염관리본부장)는 2일 “지난 30년간 대부분 환자는 남성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비가 안정되지 않고 남성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한국인에서 가장 중요한 HIV·AIDS 감염원은 MSM이라는 해석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만약 이성애가 주된 것이라면 남녀 모두 위험에 노출될 것이며, 남성 비율 또한 증가추세를 보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도 감염사례와 감염인 상담 사업을 하는 감염내과 교수들의 진료를 분석한 결과, HIV 감염이 남성동성애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렸다. 다만, MSM이 에이즈 위험성을 높인다는 사실보다 남성 간의 항문성교가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항문 안의 피부가 민감한 만큼 상처가 나기 쉽고 그 상처를 통해 감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항문성교가 이성애자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남성동성애자들에게 HIV 감염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에이즈 위험 제기 논란 = 이처럼 MSM이 에이즈 증가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위험성을 제기하는 자체를 두고서는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장 제2조 3항의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 중에는 ‘성적(性的) 지향’을 포함시킨 뒤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고용, 재화·용역·교통수단 이용, 교육·훈련 등에서 차별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3항의 ‘라’에서는 성희롱과 관련,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명시하고 이런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성(性)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며, 특히 공중 보건에 있어서 동성애적 성행위가 에이즈와 관련 있음을 암시하거나 조장하는 일체의 정보를 금지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 동성애자 및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법적 근거로 제시되는 조항이다. 이에 따라 동성애적 성행위 가운데 하나인 남성동성애도 에이즈와 바로 연관 짓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다.

배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인권보호를 위한 차별금지가 확산되면서 MSM에 대한 보건학적 위험성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이러한 성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강조하는 논거들은 HIV·AIDS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보건사업의 활성화 노력과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는 성 소수자와 MSM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성 소수자에는 여성동성애자도 있고, 성전환자도 있기 때문에 성 소수자와 MSM은 같은 것이 아니다”며 “또 (선천적인 성 소수자와 달리) MSM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호기심 등으로 시작해 마약과 같이 중독되는 등 후천적인 결정이 주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MSM으로 인해 HIV 감염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리는 공중보건학적 노력은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고, 비흡연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연구역을 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 간의 성행위가 HIV 감염 위험을 높이는 만큼, 그 위험성을 일반인에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의 에이즈 대책이 사후약방문식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HIV 감염이 확인되면 약값을 국가에서 모두 부담하는 등 감염인과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은 과도할 정도로 완벽하다”며 “다만 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 정책은 인권문제와 관련돼 있어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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