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연쇄납치 강간 살인사건'



얼마전에 작성했었던 게시물,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수원 연쇄 납치살인사건의 전말]

의 범행이 이 사건을 모방한 범죄인것 같아서 정리해봅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4년 어느 늦은밤


1994년 8월 16일 새벽 1시경.


한 남자가 자신이 불과 얼마전까지 일하던 택시 회사를 포함하여


서울 시내의 택시 회사들을 다 기웃거리며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기회를 엿보던 찰나,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K운수 차고가 경비원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열려있는 걸 보게 됩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죠. 이 택시 회사는 영업 부진 등으로


2월에 폐업 신고를 하고 운영을 중단한 상태였거든요.


이 남자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주 손쉽게 스텔라 택시를 훔치고는


트렁크에 칼, 삽, 낫, 노끈, 포장용 테이프 등 물건들을 가득 싣습니다.


이 남자는 무슨 일을 하려고 이런 도구들을 실었을까요? 차는 왜 훔쳤을까요?


아무튼 이 남자는 아무도 차를 훔친지 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천만 시민이 살아가는 서울 시내를 향해 차를 몰고 갑니다.








8월 28일 아침 7시경.


인적이 드문 서울 강동구 암사동 길가에서 출근하기 위해 택시를 잡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택시는 곧 출발했고, 얼마쯤 가는가 싶더니 차가 멈춰섭니다.


기사는 갑자기 흉기를 꺼내 위협하며 여성 승객의 주민등록증과 학생증을 빼앗고


반항하지 말라고 협박합니다.


다시 택시 기사는 영동고속도로의 이천 부근까지 가서 또 갓길에 세웁니다.


야산으로 여성을 끌고 가기 위해서죠.


협박하던 기사가 차에서 내리기 위해 안전벨트를 푸는 순간,


여성은 차문을 열고 마구 달아나면서 양손을 흔들어대며 소릴 질렀고,


택시기사는 그 순간, 지금이 출근 시간이라 차가 많다는 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여성을 포기하고 시동을 다시 켜서 달아납니다.


이 기사놈은 혹시 모를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와 지방도로를 거쳤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아까 그 지지배가 번호판을 봤으면 어...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망치와 페인트 등을 이용해 번호판 숫자를 변조합니다.







(온보현 37)



지금부터 소개하게 될 이 택시 기사의 이름은 온보현.



9월 1일.


이전의 실패 때문에 온보현은 3일 동안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살피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뭔가 무섭습니다.


궁리 끝에 다른 택시 번호판과 자신이 훔친 택시의 번호판을 바꾸기로 합니다.


무작정 돌아다니던 온보현은 곤지암 주차장에서


에스페로 택시를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번호판을 갈아치우죠.




새벽 1시 무렵 송파구 잠실동.


어디만만한 처자 없나 두리번거리며 택시를 몰던 온보현의 눈에 한 여성이 보입니다.


이 여성은 잠실에서 노래방 영업을 하던 40대 초반의 여성이었고


집에 귀가하려던 길에 택시를 잡은 겁니다.


온보현은 40대 여성을 태우고 가다가 인적이 없는 곳에 차를 세우고


택시 안에서 이 여성을 겁탈한 다음,


소리치거나 반항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자신의 고향인 전북 김제의 선산(집안의 윗대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가문의 산)으로 납치합니다.


온보현 첫 범행에서 이미 피해자가 달아나는 일을 한 차례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이 여성에게 안전벨트를 채우고


포장용 테이프로 하체를 묶어 달아나지 못하게 조치한 뒤 운전합니다.


온보현 자신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 옆에서 이 여성을 다시 한번 강간하고


손발을 노끈으로 묶고, 입에는 포장용 테이프를 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1미터 깊이의 구덩이로 밀어넣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을 생매장하기 위해 삽 등의 도구를 챙기러 산 밑에 세워둔 택시로 걸어갔고,


차 안 뒷자리에 남겨진 여인의 손가방을 뒤져 현금과 수표 등 약 1200만원을 찾아냅니다.


그 사이.


이 여성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움직여 구덩이를 빠져나와


발을 묶은 노끈이 조금 헐거워진 틈을 타 결박을 풀어냅니다.


온보현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온몸이 덜덜 떨렸지만,


일단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살아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양손이 묶이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여진 채로 온보현이 내려간 쪽 반대방향으로 무조건 냅다 뜁니다.


뛰던 도중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뜁니다. 무조건 뛰고 구릅니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새 산길을 벗어난 이 여인의 눈에


덤프트럭 몇 대와 그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사람이.


그것도 낯 모르는 공사장 인부들이 그렇게 반가웠던건


이 여성의 인생에 있어서 단연코 처음일겁니다.


한편 1200만원을 들고 기뻐하던 온보현


니 돈 내가 훔쳤다고 자랑해줘야지!! 하면서 룰루랄라 삽과 돈을 다 챙겨들고 구덩이로 돌아왔지만...


온보현을 반긴것은 조상님들의 휑한 무덤뿐..


조상님들이 손짓하고 있지만 찌질남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그러다 근처 덤불에 몸을 숨깁니다.


그 후 날이 밝아오며 경찰이 출동하고 견인차가 와서


택시를 견인해 가는 것까지 몰래 지켜본 후 자리를 뜹니다.


김제경찰서는 수거한 택시를 정밀 감식합니다. 


일단 표면적으론 사람을 해치지 못했지만,


그럴 의도가 충분히 보이니 급하게 지문을 찾아 경찰청에 보냅니다.


그런데, 자동 지문 인식 시스템을 통한 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온보현은 모습을 드러내줍니다.


모 은행 서울 청량리 지점에서


피해자 여성이 갈취당한 100만원권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면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남겼고


은행 CCTV에 얼굴이 찍힙니다.


수표에 남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지문 조회 결과와 일치합니다.


무려 전과 13범 온보현.


대담한 건지, 단순 무식한건지...


정체를 대놓고 드러낸 납치 강도 강간범을 체포하는 건 그냥 시간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방심하긴 이릅니다. 이 놈의 주소지에는 엉뚱한 사람이 살고 있었고,


가족이나 친지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고 진술해줍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택시는 도난 당한 것이라


택시 회사나 기사들을 상대로 수사해봐야 성과가 있을리도 없죠.


(아까 말씀 드렸듯 택시 자체는 폐업한 회사 소유 택시죠)


김제경찰서
 온보현 소재파악에 열흘이나 허비합니다....


무려 열흘이나 허비하고서야


사건은 9월 1일날 일어났는데, 9월 15일에서야 급히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공개수배를 하는 등


희대의 쓰레기같은 짓을 하고 맙니다.


훗날 뒤늦은 공개 수사 결정으로 인해 추가 범행을 불렀다는 비난과 함께


이에 따른 감찰 조사 및 징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해당 경찰서로선 불행이 닥칩니다.




잠실동 강간사건이 일어난 후

일주일이 지난 9월 9일 오후 5시 경.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 경기장 부근 식당 주차장에서 범행을 계속하기 위해


택시를 찾아 헤매던 온보현의 눈에 열쇠가 꽂힌 채 주차되어 있는 택시가 들어옵니다.


온보현이 놓칠리가 없습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훔쳐 달아납니다.


서울로 돌아온 온보현은 또 망치와 페인트를 이용해 번호판을 위조한 뒤 다시 거리로 나섭니다.



9월 11일 저녁 7시 반. 서울 구로구 독산동 길가에서


혼자 택시를 기다리던 21세 엄모양을 태웁니다.


인적이 없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흉기로 위협한 다음,


예상하셨듯 또 강간합니다.(확 잘라버릴라 마 진짜)


그리고 엄양의 소지품을 뒤져 현금 31만원을 갈취한 뒤


안전벨트와 포장용 테이프로 좌석에 엄양을 묶어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강원도 횡성의 한 야산 입구에 차를 세웁니다.


흉기로 막 위협하며 엄양을 산으로 끌고 들어간 찌질남은 나무에 엄양의 손과 발을 묶고


또 다른 범행 대상을 찾아 산을 내려옵니다.


훗날 온보현이 얘기하길, 너무 쉽게 잡혀서 반항도 하지 않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것은


너무 싱겁고 재미도 없어서 하고 싶지 않았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엄양은 홀로 어두운 산 속에서 짐승 소리와 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분명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엄양.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


혼신의 힘을 다해 손과 발을 움직였고, 살갗이 다 까져 피가 흥건히 흐른 몇시간 뒤


드디어 손을 묶은 끈을 느슨하게 만들고, 발도 풀어낼 수 있게 됩니다.


바람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온보현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지만


무조건 뛰고, 또 뜁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드디어 도로와 만나게 되고,


다행히 지나던 차가 엄양을 발견하고 횡성경찰서로 데려다 줍니다.


횡성경찰서 형사계에선 엄양을 병원으로 옮기고, 자세한 내용도 듣게 됩니다.


하.지.만.


횡성경찰서 역시 뼈 아픈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9월 12일 오전, 엄양의 진술에 따라 현장을 답사해서 조사를 마친 뒤


범인이 이미 도주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섣부른 판단을 해버린 겁니다.


온보현의 시점에서, 납치한 엄양을 야산에 묶어두고선 어서 다른 처자를 데리고 돌아가


번갈아가며 성폭행하면서 마음대로 유린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다음날인 12일 밤 9시 반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한 여성을 발견합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모 회사 사장 비서로 근무하는 26살의 허양


퇴근 후 회사 옆의 문화센터에서 연극 강의를 들은 뒤 귀가하던 중이었습니다.


불우 어린이 돕기 자원 봉사자였던 그녀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기쁨을 주기 위해서 연극 교실에 참가했던 겁니다.


하지만 온보현에게 있어 이런 삶의 내용따위 중요하지 않죠.


그저 또 다른 범행 대상일뿐.


온보현 허양 역시 흉기로 위협하고 횡성 야산으로 달려갑니다.


엄양이 날 기다리고 있을거야!! 하면서요.


야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허양을 끌고 들어가


전날 엄양을 묶어둔 나무를 찾았으나 이미 엄양은 도주한 뒤죠.


온보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벌써 피해자가 도주한게 세번째거든요.


도주한 엄양에게서 치밀어 오른 화를 애꿎은 허양에게 터뜨립니다.


거칠게 폭력을 휘두르며 허양을 강간한 뒤, 다시 끌고 내려와


전에 눈여겨 보았던 용인군 구성면 경찰대학 인근 야산으로 갑니다.




새벽 5시 반 경.


산 속 으슥한 장소에 이르자 허양의 신용카드 비밀 번호를 알아낸 뒤,


마치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이 양민을 학살하듯 허양의 손발을 묶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워


삽으로 여러차례 내리쳐서 살해합니다.


의기양양하게 산을 내려온 찌질이는 모 은행 서울 풍납동 지점으로 가서


허양의 신용카드로 61만원을 인출하는데 당연히 CCTV에 찍히구요.


전날 택시를 타고 귀가하겠단 전화 이후 허양이 연락도 없이 귀가하지 않자


걱정된 부모님이 13일 경찰에게 신고하고,


신용카드에서 돈이 인출된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은행에서 CCTV화면을 제출 받습니다.


그러나.... 역시 비공개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했기에


그 얼굴이 김제경찰서에서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CCTV화면 속의 인물인


온보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갑니다.




허양을 살해한지 14시간이 지난 9월 13일 밤 8시.


찌질남은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강동구 천호동 길가에서 또 다른 여성을 발견합니다.


귀가하던 19세 노양이었는데요,


같은 방법으로 좌석에 묶은 후 경북 김천까지 가서는


한 모텔로 노양을 끌고 갑니다.(???)


밤 늦은 시간이라 주위의 시선도 없었지만


노양이 워낙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용기를 얻어


다른 여성들과 달리 안락한 침실에서 성폭행하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노양을 강간한 후 신분증을 꺼내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온보현 왠지..


그냥 아주 왠지 얘한테 나쁜 인상을 주기 싫다는 생각을 합니다.


독한 마음 먹고 시작한 범행이었지만, 막상 허양을 살해하고 나서


심한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터라


허양에 대한 미안함을 노양에게 대신 갚아주고 싶다는 심리도 작용했고,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노양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없던거죠.


결국 온보현


노양을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이상한 친절까지 베풉니다.




9월 14일 저녁 9시경.


송파구 가락동 길가에서 또 홀로 택시를 기다리는 젊은 여성을 발견합니다.


또 으슥한 곳으로 차를 몰죠.


피해자는 고아들을 보육하고 가르치던 아동복지학교 교사 박양이었습니다.


택시기사가 행선지도 묻지 않고 무작정 달려 으슥한 곳에 차를 세우자


박양은 아주 강하게 항의했고, 온보현은 흉기로 위협합니다.


헌데 박양은 흉기를 들이대는 범인에게 주눅 들지 않고 계속해서 거세게 저항합니다.


정말 온보현이 당황할 정도로요.


온보현은 박양을 마구 찔러대다가 자신도 손에 큰 상처를 입고 맙니다.


하지만 발정난 온보현 자신이 온몸을 찔러


피를 철철 흘리고 탈진한 박양을 아랑곳 않고 강간하죠.


강간이 끝난 후 자신의 손을 다치게 했다는 분풀이로 다시 박양을 마구 찔러 살해하고 맙니다.


그리곤 박양의 지갑에서 현금 14만원을 꺼낸 다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북 금능군 부근 지하 통로 입구에 사체를 유기합니다.




마지막 피해자인 박양에 대해 쓴 표창원 교수님의 견해인데요.


글이 조금 길어지긴 하겠지만 인상적인 부분이고 여러분도 꼭 읽으셔야 할 것 같아요.


'허망한 가정이긴 하지만, 승연씨(박양/가명)가


노양처럼 고분고분했다면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연씨의 용감한 저항은 다른 많은 여성들을 구하는 숭고한 희생이었다.


승연씨와의 격투 중에 손가락을 심하게 다친 온보현이


손가락 치료를 하느라 추가 범행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승연씨의 저항에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껴


섣불리 범행을 재개할 엄두를 못 낸채 보름 가까이 조용히 지냈던 것이다.


온보현이 8월 28일 첫 범행을 한 뒤 가장 길었던 공백 기간이 일주일이었고,


특히 9월 11일 이후에는 매일 범행한 점을 감안하면


승연씨의 저항은 온보현의 범행 능력과 범행 의지를 꺾어 연쇄 범행을 사실상 끝내 버렸고, 


그 결과 수많은 잠재적 피해 여성들을 구한 것이었다.


특히 9월 19일부터는 지존파의 연쇄살인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언론을 장식해 


온보현에게도 범행을 계속하고픈 자극을 강하게 주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승연씨의 희생은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대단히 숭고하고 값지다.


우리 사회가 승연씨에게 큰 빚을 졌으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고귀한 희생이다.'




사실 온보현은 처음에 범행을 시작할때


자기 나이만큼 여성을 살해하겠다는 계획으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온보현 무엇이든 계획을 세워 끝까지 실행해본 역사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는 머저리였죠.


아무튼 두번째 살인을 하다가 큰 부상을 입자,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됩니다.


열흘 남짓 손가락을 치료하며 쉬자니


그 동안 감당하기 힘든 범행을 저지르며


극도의 흥분 상태에 있던 심리 상태도 서서히 안정되어 갔고,


지존파 사건(지존파 일당이 검거된게 그때쯤이었습니다.) 을 접하며


다시 범행 의지를 불태우려 애써보았지만


한번 꺾인 자신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스스로 작성한 '살인일기장' 을 읽으며 회의감을 느낍니다.


라디오에서 간간히 자신의 공개 수배 내용이 흘러나올 때는 짜릿한 전율과 함께


모든 사람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뭐 그래서 체포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함께 느낍니다.


..변태였던 건 진작에 알아봤지만 심각한 변태였네요..




9월 27일.


온보현 드디어 자살을 결심합니다.


자기가 작성한 살인 일기와 피해자들에게서 빼앗은 물건들을 가지고


고향인 전북 김제를 향해 갑니다.


저녁 7시경, 자신의 공개 수배 내용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고는 차를 멈춥니다.


그리고 살인일기에


'지존파와 같은 대접을 받기 위해 지존파를 검거한 서초경찰서에 자수하러 간다'


라고 기록합니다.

자신을 수배했던 전북 김제경찰서나 용산경찰서는


양에 안 차고, 자신의 범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지존파를 검거한 것으로 유명해진 서초경찰서라야


자신의 범행을 세상에 널리 알릴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어린애처럼 유치한 영웅 심리를 가진 덜 떨어진 범인 온보현에게


무방비 상태로 농락당한 한국 사회와 경찰이 더욱 초라해 보이는 순간이었답니다.

온보현은 37살의 나이에 이미 전과 13범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가지게 됐죠?


네. 그냥 미친놈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북 김제에서 5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음주벽과 외도가 심한 아버지 밑에서


음주 폭력을 견디며 성장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반복되는 아버지의 음주, 폭언, 폭력과 외도.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 가정 불화를 겪으며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중학교 중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방 끈은 비록 짧았지만서도, 이런저런 일거리를 찾아


용돈벌이하며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을 날마다 견디며 살아가던 어머니가


음독 자살하는 치명적인 상황을 맞습니다.


많은 범죄 프로파일러들이 얘기하는,


온보현에게 있어 살인 촉매제라고 할수 있는 일이 벌어진 거죠.


여차저차 24살의 온보현은 어머니의 자살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늙어서 힘이 빠진 아버지에게 심한 폭력을 휘두른 후 가출해버리고 맙니다.


이후에 조금만 화가나도 참지 못하게 되고,


폭력을 무려 13번이나 휘둘러 형사처벌을 받는 바람에 전과 13범이 됩니다.


온보현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믿었던 여자친구마저 자신을 떠나자


삶의 희망과 의욕을 상실하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 자살을 못하기도 하고, 그냥 죽기엔 또 너무 아쉽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나이 38세....내 나이만큼 여성을 살해하고 내 존재를 알린 다음에


자살 하겠다 라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1994년 8월 13일.


그러니까 첫번째 강간사건이 발생하기 3일 전이자


13년전 어머니가 음독 자살한 날이기도 한 그 날,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며 생물학적 뿌리인 온씨 집성촌을 찾아 숙부에게 인사한 다음


조상묘에 벌초를 하고 그 옆에 자신이 누울 구덩이를 팝니다.


목표로 하는 38명의 여성을 다 살해하고 나면


이 구덩이에 스스로 기어들어가서 죽겠다고 다짐하는 의식이었답니다.


온보현은 기어이 서초경찰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입구에서 의경에게 자수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조사받던 와중에


"지존파와 나를 비교해보고 싶다. 지존파와 같은 감방에 넣어달라"


라고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뭐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의도를 갖고 자수를 했으니 선처가 될리가 없겠죠 여러분?








온보현이 바랐던 것처럼 지존파 못지않게 매스컴에 대서특필됩니다.












1994년 11월 14일.


서울형사지법은 온보현에게 강도살인 및 시체유기죄 등을 적용하였고, 사형을 선고합니다.


1995년 2월 24일 2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구요.




그리고 1995년 11월 2일.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지존파와 사이좋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