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DIA 2급 비밀문서 일부. 5.18 당시 공수부대의 가혹한 진압은 전두환 등 군부 수뇌부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팀 셔록 기자)

DIA 2급 비밀문서 전문
2급 비밀 
1980년 6월 11일 03:04Z
한국인에게 공개 금지

요약: 본 보고서는 최근 한국군 및 계엄령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OOO의 의견을 담고 있음. 

(2급비밀/외국공개금지) OOO(검정칠 처리)는 2명이 모두 "광주 폭동에 대한 한국군의 동떨어지고 잔인한 처리"라고 지칭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음. 두 명 모두 군의 "잘못된 과잉대응"에 대해 놀라움과 괴로움을 표하면서 이는 현 군부의 실세인 전두환, 노태우, 장호영(정호용의 오기로 추정)이 한국전쟁이 아니라 베트남 전쟁에서 실전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음. 또한, 위 3명이 광주에 대해 취한 태도는 50년대 초반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선배 장교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며, 60년대 초반의 유사한 사건에 비해 현재의 대응이 훨씬 가혹한 것도 이들이 베트남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하였음. OOO는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지칭하였고, OOO는 한국군이 "점령군"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광주 시민을 외국인처럼 다뤘다고 말하였음. 총리마저 당시 담화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한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하였다는 것임. OOO는 이 담화는 당시 전라남도를 별개의 집단으로 간주하던 계엄사령부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였음. OOO는 전라도의 전통과 문화의 차이가 한 요인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만약 시민들이 다시 서울 등 여타 대도시의 길거리로 나왔을 때 공수부대를 필두로 한 군부의 진압이 광주에서처럼 가혹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음. 

본 보고서에 언급된 내용은 한국군의 가혹한 계엄통치에 대해 현재 한국인 일부에서 증가하고 있는 반감을 반영한 것임. OOO는 전라남도 대중들이 길거리로 나온 것은 군대의 초기 진압이 잔인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음. 

(다음 페이지) OOO 직접 증언에 따르면 군대가 배치된 후 학생 시위의 규모는 300명 정도로 아주 작았고 군대를 만나자 도망치려 했지만 한 학생 지도자가 포위된 채 대검에 찔렸다고 함. 도망쳤던 다른 학생들도 군인들이 추적하여 집에까지 들어가 끌고 나온 뒤 구타하고 체포하였음. 한 식당 주인은 학생들을 숨겨주다가 총에 맞았고 식당은 불에 탔음. 이러한 사건이 빈발하자 그전까지 집에 있던 광주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음. OOO는 한국정부에 대한 전통적인 적대감이 한국군의 행동으로 인해 증오가 되었다고 하였음. OOO는 때에 따라 한국 정부에 저항하였지만 이전까지 그의 반대활동은 박정희 정권에 집중되어 있었고 극히 드문 경우에만 한국군을 향하였음. OOO는 5월 17일까지는 한국정부를 철저히 지지해 왔음. 광주 사건 이전까지 그는 일관되게 한국군을 칭찬해 왔음. 그의 발언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으로 볼 때 이는 그가 지지자에서 극도의 경멸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것임...(메시지 중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