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어머니가 1997년 12월31일에 돌아가시면 자녀가 100만원 넘게 받고, 1998년 1월1일에 돌아가시면 11만4000원 밖에 못 받는다. 하루 늦게 돌아가신 게 죄인가?"

 6·25전쟁일인 25일 낮 12시 6·25 전몰군경 유자녀 약 350명(주최측 추산)이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모였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이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오열했다. 김화룡 6·25 전몰군경 신규승계 유자녀 비상대책위원장은 삭발을 감행했다.



집회에서 만난 유자녀 정회금(67)씨는 "어머니가 1998년 1월1일보다 하루 차이라로 늦게 돌아가시면 남들이 받는 수당의 10분의 1 밖에 못 받는다"고 호소했다.


  정씨에 따르면 정씨의 부친은 6·25 전쟁에 군인으로서 참전해 전사했다. 결혼한 지 3년밖에 안 됐던 정씨의 모친은 홀로 남아 정씨를 기르게 됐다.

 모친은 전쟁이 끝난 폐허 속에서 어린 정씨를 데리고 뗄감을 모아 팔고 장사도 하면서 생계를 간신히 이어갔다. 정씨의 모친은 결국 지난 2011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해준 것은 '장례비용'뿐이었다.

 정씨는 지난해 7월부터서야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보상금은 월 약 12만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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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대한민국 6·25 전몰군경 미수당 유자녀 비대위 김화룡 위원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유자녀 수당 차별 규탄 대회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2018.06.25. yesphoto@newsis.com



또 다른 유자녀 심화섭(60)씨의 부친은 전쟁 발발 직전 충청도 일대 무장공비 진압 작전 중 사망한 경찰이다. 심씨의 모친과 결혼한 지 불과 1년만이었다. 심씨의 모친 역시 25살 때부터 심씨를 홀로 길러오다 2015년에 사망했다.

 심씨는 "어머니가 오래사신 게 죄도 아닌데 1998년 이후에 돌아가셨다고 작년부터 12만4000원이 나오는 게 전부"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보훈 비용 아깝지 않다, 지원을 많이 하겠다고 했는데 공무원들이 그 말씀을 안 따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6·25 전몰군경 신규승계 유자녀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소속 유자녀들의 부친은 대부분 6·25 전쟁 기간에 전사했고 모친(미망인)은 1998년 1월1일 이후에 사망했다.

 이들은 종전까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전혀 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7월부터 월 11만4000원을 받게 됐다. 수당이 현재는 12만4000원으로 상승했지만 이는 1998년 1월1일 이전에 사망한 미망인의 자녀가 월 100여만원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다.

 정씨는 "똑같이 나라를 구하려다 돌아가신 분들인데 우리(미수당 유자녀)는 땡전 한 푼 못받다가 이제서야 받게 됐고 그 액수도 너무 차별적"이라며 "대부분 60~80대이고 돌아가신 분이 많은 상황에서 20년째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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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대한민국 6·25 전몰군경 미수당 유자녀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유자녀 수당 차별 규탄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6.25. yesphoto@newsis.com



현행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따르면, 전몰군경의 배우자가 1998년 1월 1일 이전에 사망하면 그 유자녀는 100여만원의 보훈수당을 지급받게 돼있다. 하지만 이후 사망한 유자녀는 10분의 1에 불과한 약 12만원을 받는다.

 당초 정부는 보훈 보상 원칙에 따라 생존한 배우자 혹은 미성년 자녀에게만 보훈 급여를 지급해왔다. 유가족에게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지난 1998년부터 미성년이 아닌 유자녀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몰군경 자녀수당 규정을 처음 시행한 1998년엔 보상금 지급 대상을 '제적유자녀'와 '승계유자녀'로 한정했다. 제적유자녀는 미성년자로서 연금을 받다가 성년이 된 유자녀, 승계유자녀는 모친이 연금을 받다가 1998년 1월1일 이전에 사망해 연금을 승계받는 유자녀다.

 이 때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미수당 유자녀'는 한 푼도 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7월에서야 법률이 개정되면서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지만, 국가보훈처 시행령에 따라 일괄적으로 12만4000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들은 매년 집회를 열고 지원금 관련 법안 개정 및 정부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민인수위원회 광화문 1번가'에도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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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당 유자녀들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와 국무총리실 등에 제도 개선 민원을 넣었지만 "예산이 부족해서 당장 개정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해 7월과 11월 국회에서 이 같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아직 본회의 상정도 되지 못하고 정무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