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919114&plink=SLIDE&cooper=NAVER

 


故 안병하 치안감에 대한 추가 사실들.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 (동기 김종필 전 총리,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등)


그냥 라인 잘탄 사람이 아닌 능력자였음.


한국 전쟁 당시에는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까지 수여받은 참전용사.


경찰 재직 당시에는 간첩선 소탕작전을 진두지휘하여 북한군 12명 사살 2명생포 간첩선 나포라는 전공을 세움.


능력도 출중한데 자리가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청렴함까지 겸비하였던 분.


신군부 측 편에 섰다면 차기 경찰청장 진급 1순위였음,


5.18민주화운동 당시 경찰 측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음.


그러다 1980년 5월 25일 사실상의 최후통첩이 계엄군 측으로부터 하달됨.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 : "경찰은 당장 무장하고 전남도청을 접수하라."


안병하 당시 경무관 :


“경찰은 시민군에 형제, 가족도 있을 테고 이웃도 있는데 경찰이 무기를 사용하면서까지 강제진압할수 없다”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 : "저런 사람이 전라남도 경찰 책임자라고?!"


결국 계엄군 측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27일 결국 보안사 측에 체포되어 강제로 직위해제 당하고 동빙고로 끌려가 무려 8일가까이 모진 고문을 당함.


그 와중에서도 부하 경찰들 안위를 걱정하였고 결국 "부하 경찰들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는 조건하에 사표 제출.


고문후유증+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갖가지 질병을 얻어 고생하시다 1988년 영면.


저 당시에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경찰로 찍힌지라 현충원 안장도 못하고 충주의 한 공원묘지에 묻히시게 됨.



이후 유가족들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음.


워낙 청렴한 분이었던지라 남긴 재산은 살던 집 한 채가 전부였고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았지만


그놈이 그놈인지라 소용이 없었음,


그러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안병하 경무관을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및 순직경찰로 공식적으로 인정.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안병하 경무관의 유해를 현충원으로 이장.


2006년 안병하 경무관을 국가유공자로 정식 인정.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 안병하 경무관=>치안감(지방경찰청장급) 추서 및 경찰청 최초의 경찰영웅 칭호 수여.


2018년 3월 정식으로 추서식 거행.


돌아가신지 몇십년이 지나서야 유가족들의 한이 풀리게 됨.





그리고 얼마전 유가족이 공개한 고인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쓰신 비망록 내용 일부를 보여드리고 긴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