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현재 35세. 남성입니다.

20세부터 지금까지 가져본 알바와 직업의 수는 약 17개정도(단순 일당 알바 제외)
(22세 - 24세 기간은 군대)

그 와중에 만나보았던 수많은 갑 역할에 있던 한국의 기성세대들의 추악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한국의 여러 늙은 기성세대들.

알면 알수록 조금도 친해지고 싶지가 않은 추하디 추한 어른들이 너무나도 많다.

잘못했으면 잘못을 인정해야만 다음 걸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데. 그래야지 새로운 자신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데.

그 잘못을 포장 하기에 급급들이다.

해본 일만 17개가 넘으니 수많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많으니 그중 [몇가지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대기업 하청 업체에서 있던 일.

한때 현대 x비스의 하청 업체에서 일했던 관계로 모비스 대기업 관계자들이 많이 와서 회식을 많이 가진다. 그중 문 과장이라는 인간은 집에 자식새끼가 둘 있고 아내도 버젓이 있는 와중에 하청 업체 직원인 우리에게

"야! 3차 어디로 갈까? xx야. 안마방?" 라면서 우리쪽 팀장 형에게 눈치를 준다. - 이런 일은 직장생활에 아주 흔함.

당연히 난 빠지고 나서 엄청 욕먹음.

또 2차로 노래방 들어가면서

"야. 도우미 아줌마 불러." - 도우미 없으면 노래를 못하냐. x새끼야.

당연히 또 빠지고 욕 먹음.

중국 출장 갔더니 일하는 시간 5시간 밤에 술먹고 노가리까는데 5시간
(미생에서 안영이가 했던 '하루에게 미안한 하루'란 말이 떠오르는 그런 하루)

중국제 안마방 내 손 잡고 끌고 갈려길래 뿌리치고 돌아옴.

돌아와서도 계속 지들 밤 문화에 안끼니까 보복차원으로 6개월을 아무 할 일 없는 곳으로 출장을 보내버림.

그냥 내가 관뒀음. 이게 소위 우리나라를 이끄는 대기업의 접대 방법임.

이 드럽고 추악한 x새끼들.



2. 이젠 망해버린 우동집.

군대 가기 전에 1년 가까이 일했던 우동집이 있었는데.

원래 배달이라는 걸 해도 걸어서 갈수 있을 거리의 배달지만 배달했었음.

그러다가 사장이 도중에 장사 한번 안해본 50대 아저씨로 바뀌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를 사오더니(진짜 뜬금없이)

"야. 누구 오토바이 탈줄 아는 애 없냐?" 라면서 배달지를 더 넓혀버림.(그 와중에 추가 고용조차 없음)

결국 아무도 오토바이를 몰지 못했고 나랑 같이 일하던 동갑 하나 진저리 치며 나가고

일하던 주방 아줌마 세명 중 두명이 나가고

난 끝까지 버텨서 도와주다가 넓어진 배달지 걸어서 배달하느라 3개월 사이 살이 16kg가 빠지고 병으로 아파서 그만둠.
내가 나갈때 사장이 하던 말이 잊혀지질 않음.

"야. 너까지 이럴 수 있냐? 너만은 믿었는데." -나 죽고나서 말해보시지요.

나 우동집 그만두고 면역력 약화로 합병증 걸려서 3개월을 집에서 누워만 있었음.

우리 어머니 그동안 나 추어탕 사 먹이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3. 군대 제대하고 나서 시장 앞에 있던 물건 대주는 작은 상회.

동네 슈퍼에 물건 대주는 배달기사 일을 하던 중.

주일 만은 쉬게 해주겠다던 사장이 한달에 두세번씩 주일에 불러내서 언짢아하던 나에게 하던 말.

"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일'처럼 생각하면서 해야 발전이 있는거야 사람이."

-그래. 쉴 시간도 없고 먹을 시간도 없는 일 하면서 참 '내 일'같다는 기분이 들겠다.
쉬는 날은 건드리지 말고 챙겨주라고.



4. 어느 한국 음식가게 사장.

이 인간은 월급을 줄 때가 되면 절대 먼저 주지 않는다.

다른 곳은 아침 일찍 주거나 일하는 도중에 주거나 하는데

이 인간은 꼭 마감시간 다 되가는데도

꼭 '아쉬운 놈이 먼저 말해야지? 말해봐 제발 월급달라고' 라는 자세를 가진 꼰대처럼 군다.

그래서 내가 한번이라도 말해봤냐고? 당연히 아니지.

내가 나가는 날 그가 한 말이 잊히지를 않는다.

"너도 나처럼 살아보면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돈이 얼마나 귀한지 알거다."

-귀한지 알지요. 그렇다고 당신처럼 그걸로 다른 사람 괴롭히지는 않아요. 이 돈의 노예같은 인간아.




잠이 오네요.

더 재미난 망할 인간들의 이야기들이 아주아주 넘쳐나요.

나중에 더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