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의 삶은 먹먹했다. 부디 느껴지지 않길 바란 동질감에 좌절했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했던 부당한 대우를 꾹 참느라 몸과 마음에 켜켜이 자리 잡은 그녀의 병은 마치 내 잘못인 양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부당함을 말하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씁쓸함도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아, 결국 나는 같은 여성으로서도, 국회의원으로서도, 엄마이자 인생 선배로서도 결코 많은 것을 바꾸어 주지 못했구나.

판사 시절 또 다른 장면을 떠올려본다. 가사재판을 마치고 나오면 여성인 필자에게는 특이한 남성 당사자가 더 눈에 띈 반면, 옆자리의 남성 판사는 특이한 여성 당사자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결과를 떠나 재판 진행에 있어서 여성성의 시각이 녹아든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약자인 여성 당사자에게 안도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4선 이상의 여성 중진 의원이 나를 포함해 4명에 불과한 현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수많은 김지영들. 그들의 눈이 되고 입이 되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재차 다짐해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0712233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