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후
엄청나게 매스컴들의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일단 이렇게 많은 네티즌들이 모인 보배드림에 이렇게 글을 쓸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고 슬프기만 합니다
제 딸아이를 두번 죽이게 되는것 같아 저도 무척이나 괴롭고
죽고싶은 마음 뿐입니다,

일단 제 소개를 해야할듯 합니다
전 지난 2월17일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숨진
윤체리의 아빠입니다
어차피 모든 매스컴에 제 딸아이와저의 실명이 기사화 되었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실명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기사가 나간후에 모든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건
이혼의 귀책사유가 누구한테 있는거냐 하는거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모의 귀책이 있기에 아빠가 아이를 맡아서 키운거라
생각들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제 딸이 7살 되던해에 생모의 행동이 이상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갑자기 전화요금이 부쩍 늘어났고 밤늦은 귀가에
술이 쩔어 들어오는 날도 있구요
그러다가 생모가 바람이 났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실을 알고 난후 생모는 가출을 하였지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목포에 다른 남자랑 숨어 사는걸 찾아내서
집으로 데려오곤 하였지요
찾아서 데려오면 도망 가고 데려오면 도망가고
생모가 그렇게 도망 가는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임신이 된 것이지요
저는 체리태어난후에 정관 수술을 하였기에 아이를 가질수없었는데
생모라는 여자는 오랬동안 피임 없이 생활을 해서 그런지
본인이 가임 기간인줄 도 모르고 그 남자랑 바람을 피운게 바로 임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뱃속의 아이를 나 몰래 지운다고해도 제가 모를수는 없겠지요,,이 여자는 그게 두려웠던 겁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한 여자가
바람피워서 임신한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생모한테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애들을 위해
다 잊고 열심히 살자고 하였지만,,이 생모라는 사람은 또 다시 가출을 하더군요,,저의 인내심이 바닥이 나서 목포를 이잡듯이 뒤져서 생모와 그남자 가 사는 집을 경찰과 함께 현장을 덮쳐서 두사람을 간통으로 고소하게 되었답니다,,,,그리고 바로 하루뒤
다시 영암경찰서로 달려갔지요 그래도 애들 엄마인데 이다음에 세월이
흘러서 애들이 다 성장 했을때 그래도 엄마인데 구속 시키는건 너무한거 아니냐는 아이들의 원망을 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생모가 앞으로는 당신하고 애들만 바라보고 정말 열심히 살께 제발 용서해줘 하고 울면서 말하길래 그 말을 믿고
고소취하를 하고
경찰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생모라는 여자가 경찰서 밖에 나오자마자 하는소리는 당신먼저 가 난 여기서 할일이 있어 이러는게 아닙니까
정말 죽여버려야 겠다는 살인의 충동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꾹 참고 집으로 데리고 왔지요




그때부터 이혼해 달라고 아주 당당히 요구 하더군요
이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내 앞에서 버젓이 간통했던 남자하고 전화질을 해댑니다 고소취하하면 같은건으로 고소가 안된다는걸 이 여자는 알고 이렇게 행동 하는거겠지요?
이혼 안해준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더군요
그 꼴 보기 싫어서 이혼해주엇습니다
그래서 협의이혼이 성립된것이고 딸 아이 둘 (그당시 체리가8살 체리언니가 13살) 을 내가 키우게 된것입니다
이혼 해주면서 생모한테 한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갈때 가더라도 체리 초등학교 입학식만큼은 엄마손잡고 학교 가서
엄마랑 입학식만 보고 가라고 그래야 체리가슴에 상처가 덜 생기고
생모 본인 한테도 조금이나마 양심을 지킬수 있는거라고,,,
하지만 나의 바램은 산산조각나고 이혼후 바로 바람 피웠던 남자를 집으로 불러 들여서
자기 짐보따리는 양말 한조각 팬티 한쪼가리 안남기고 싸그리 차에 싣고 도망 가고
없더군요,,큰딸아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집에 도둑든거 같아
빨리와봐 무서워 죽겠어 엄마는 어디갔니?
몰라 나혼자야,,ㅠ,ㅠ
이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더니 이미 도둑이 온 집안을 벌집쑤셔놓은것처럼 해 놓고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일상생활은 처참해지기 시작했지요
아이들 밥 해서 먹이는거부터해서 빨래 그리고 아이들 청결문제까지
다 내몫으로 남더군요 사내들이엿다면 그냥 아무렇게 뒹굴어도
되겠지만 딸아이 둘이다보니 이만저만 신경쓰인는게 아니더군요
그렇게 아내는 다른남자와 도망가 버리고 혼자서 딸 둘을 키우는데
동네분들의 눈초리에 더 이상 아이들 상처 받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사를 결심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나 저나 집으로 갈때 골목길앞에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다가
[저런 쯧쯧 애들엄마 없이 불쌍하구만]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기에
아이들이나 저를 위해서 이사를 하게 된것입니다
체리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없는 표시 안나게 하기위해 엄청나게 신경쓰며 키웠지요 체리가 생일이 다가오니깐 얼굴표정이 안좋아집니다
제가 왜그래 체리야 라고 물으니 자기 친구들은 생일때 집으로 초대해서 생일파티 해주는데 자기 생일이 다가오는데 난 어떻게하냐면서 울더군요
체리야 걱정 하지 말고 친구들 다 불러와 아빠가 멋지게 다 해줄께
이랬더니 정말로 체리가 친구들 다 불러오더군요
전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게 하려고 통닭과 피자 햄버거등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한보따리 준비해주고 3시간동안
밖에서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렸지요 파티후에 집에온 아이들 전부다 집으로 차태워서 보내주엇답니다 다음날 당연히 체리가 인기짱 이 되엇지요
이렇게 온 신경을 다 쓰면서 키운 체리 입니다
체리가 4학년때 지금의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체리는 친엄마,친딸 이상으로 서로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잘 지내왔지요
작년에 지금 집사람이 목디스크로 수술을 받았는데
체리가 엄마 아픈거 내가 고쳐주려했는데 약속 못지켜 미안하다며
수술비 보태라고 새엄마 한테 50만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딸이 대학 생활을 시작도 하기전에 하늘나라로
보내는 이 아비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데 생모라는 여자는
돈에 눈이 뒤집혀 영결식끝나자마자 보상금 받을수 잇는지 알아보는
파렴치한 짓을 햇더군요,,,ㅜ,ㅜ




이걸보고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그래도 설마 변호사까지 선임이야 하겠냐 라고 스스로 위안은 삼기도 했
었습니다,,하지만 그건 저의 바램이였을뿐
바로 코오롱 보상팀에서 문자가 오더군요
바로 생모측 변호사가 생모동의 없이 보상금 지급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낸거였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막힐 노릇이지요
저는 딸아이 죽음뒤에 뒷 수습 하느라 정신 없는데
아직 사망 신고도 안하고 슬퍼하는데 엄마라는 여자는 변호사 선임해서
그런 공문을 보낼 생각을 하다니 내가 어떻게 저런 여자랑 살았을까
소름이 끼치더군요

아무리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되고 사람같아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체리를 위해 생모하고 접촉을 시도해봤지요
그 당시 저도 충격받아서 심신이 허약해진 상태라 병원에서 링거맞고
누워 있었는데 우리 직원과 제 동생한테 앞뒤 사정 잘 이야기 하고
오천만원에 나대신 합의좀 해오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내가 대리인 내보냈다고 자기도 변호사랑 같이 나온다고 하데요
우리 직원분이 그럼 두분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해보시라고 하니
한참뒤에 다시 전화 와서는 나를 만나드라도 변호사하고 같이 만나든지
자기한테 할말 있으면 변호사한테 하면 된다고 하더니 전화 끊었다고 하는군요,,참 세상 좋아졌습니다 딸아이 죽음뒤에 한건 하나도 없으면서
지 만나려면 변호사 통해서 만나야한다니,,,
마지막으로 내가 체리를 위해서 생모한테 배려해줄수 있는건
큰딸 아이를 통해서 만남의 자리를 갖는거였습니다
그래서 큰딸한테 부탁을 하였지요 친엄마하고 전화 한통 해보라고
큰 딸이 정색을 하더군요 엄마 같지도 않는 사람한테 전화하란다고
싫다고,,,사정 사정 해서 겨우 전화시도를 했습니다
근데 큰딸한테도 한다는 소리가
그돈받아서 큰딸 주려고 한다는 거였습니다,,ㅋㅋㅋ
제가 갖고있으면 큰일난다면서요
그러면서 큰딸한테도 아빠랑 살기힘들면 집 나오라고 권유 하더군요
그래서 큰딸아이가 그랬답니다
엄마는 체리가 무슨음식 좋아하는지 아냐고 어떤 옷을 즐겨입는지
아느냐고 왜 동생죽어서 다 슬퍼하는데 엄마만 돈지랄 하냐고
엄마 바람나서 도망 간거 다 아는데 왜 내가 그런 엄마한테 전화해야하냐고
절규를 했더군요
거짓은 진실을 덮을수가 없습니다
생모가 주장하는 일년에 한번이라도 애들보게 해달라는걸 내가 막았다고 주장을 했다는데,,,
여러분 같으면 이런 여자가 애들 만나려고 하면 안막을 사람 있나요?
내가 아무리 막는다고 한들 본인이 애들 생각하면 나 몰래 얼마든지 만날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바람피면서 남자 만날땐 나몰래 만나고 다니고선 왜 자기 배아파 낳은 딸 자식 만날떄에는 내 허락이 필요한걸까요?
여러분은 이런 내용이 이해가 가시나요?
그래도 저는 애들 엄마하고는 그렇게 안좋게 헤어졌지만 애들 외가 식구들
즉 생모의 친정 식구들한테 간간히 소식 전해주고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아무리 속상하고 열받아도 애들 이모들이고 외할머니 니깐요
작년에 차 살때에도 애들 큰이모 즉 예전 처형한테 차를 사고 애들 소식 전해주었고 애들 외할머니가 신길동에 사는데 명절때 가끔씩 데려다주곤
했었습니다,,근데 동서라는 인간이 절 못오게해서 그 다음부터 안갔던 것이구요 전,처가 바람나서 도망 갔어도 전 제 할도리는 다 하고 살았다고 자부합니다,어찌보면 미친짓이였지요
생모가 변호사 선임해서 보상금 문제로 법정다툼 할거라는 소식을 듣고
생모의 친정 식구들한테 제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당신 동생 당신 딸좀 말려달라 라고 말했더니 자기들은 모르니 두사람이 알아서 하랍니다,,
게다가 장모라는분은 나한테 말하는 첫마디가
자네 애를 왜 그따위로 키웠는가? 라고 화를 내더군요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막힙니다 내가 체리를 어떻게 키웟는데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말 하는지 애엄마없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가며 직접 모든걸 대 해주며 키운 딸인데 그따위로 키웠냐는 핀잔을 듣다니 정말 어이없더군요
생모는 지금 목포 어디에선가 그 남자랑 살면서 자기앞으로 돌아오게될,딸자식 목숨값으로 희희낙낙 거리겠죠?
생모의 언니라는 사람은 분당의 어느지점에서 k자동차의 영업사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었지요
더 웃긴건 생모의 동생이 있는데요 그 동생의 아들이
바로 죽은 우리 딸 이 다녔던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라는겁니다

마지막으로 그 생모라는 여자는 변호사 선임 하러 목포에서 서울까지
왔었으면서도 우리 체리가 안치된 곳에는 한번도 찾아오질 않더군요








이게 우리 체리하고 마지막 카톡 내용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우리 착한딸 체리는 이렇게 더러운 세상에서 험한꼴 보지 말라고
하나님이 일찍 데려가셨나봐요,,,,
체리야 너무너무 보고싶고 미안 하구나
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널 더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지금 널 낳아준 엄마랑 힘든싸움을 해야하는데
착한 우리 체리는 못본척하고 하늘나라에서 편히쉬길 바래,
사랑한다 체리야,,,,ㅜ,ㅜ

Ps. 출처 보배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