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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청첩
2014-12-22 19:28
조회: 15,938
추천: 20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미군 위안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10&aid=000003716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311710 <뉴스 원문> 기지촌위안부 국가배상소송공동변호인단, 새움터,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4개 단체 회원들은 "122명 원고들의 증언과 국가의 문서와 자료에 기록된 시실만으로도 미군'위안부' 제도가 국가에 의해 형성되고 관리되고 운영돼 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석한 정부측 변호인은 국가 배상이 성립되려면 할머니 122명 개개인이 개별공무원 담당자의 구체 행위 등을 입증해야 한다며, 경찰의 묵인 방조, 지역보건소 직원들의 강제 검사와 강금 등에 대해 위법행위 입증이 안됐다고 말했다. 피해자측 변호인은 이에 "정부측이 개인의 구체적인 불법행위로 환원하려고 하지만 이는 분명히 정부가 관리하고 조직적으로 한 행위로 그 불법성을 묻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추가 내용> “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 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미군 기지촌에는 인신매매되어 오게 된 미성년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하지만 국가는 이런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군에게 접대 잘해달라’는 교육만 진행했다. 교육에 나선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 치켜세웠다.
이들은 정부가 미군을 위한 위안시설과 여성들을 관리했다고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군 기지촌의 불편한 비밀들. 김정자씨의 증언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957년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위안부’는 1969년의 개정 법률에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77년 개정 시 삭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시·군 공무원들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39쪽)
1950년대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고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 꾐에 열여섯에 집을 나와 찾아간 그곳에서 지옥은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도 성매매는 불법, 미군 기지촌만 합법이었어요. 공무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미군한테 서비스 잘하라’며 애국자라 치켜세워줬어요” 스무살로 위장시키는 포주… (포주가) 파스 갖다 붙여주고 세코날(진정제)을 줬어요. 기분 좋게 해주는 거라면서 줬어요. 하나 먹으면 (중독되어서) 두개 먹어야 하고, 세개 먹으면 네개 먹게 돼요. 손님 데리고 오라고 내보내면 제가 무서워서 말을 못 붙였어요. 맨정신으로는 창피해서 손님 못 끌어요. 저는 그 약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먹었어요.”
김씨는 나중에 이것이 마약인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약을 먹어야만 히파리(호객행위)를 하러 나갈 수 있었다. 김씨가 미군을 데리고 올 때까지 집(숙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두달 일하면 빚을 갚을 줄 알고 김씨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기지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빚은 계속 늘었어요. 방값이랑 화장품·미장원비랑 세코날비랑 내야 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못 갚는 거예요. 이자는 계속 붙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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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 122명은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건물 4층에서 열린 소송 기자회견 모습.
# 왜 그토록 미군과 결혼하려고 했는가?
“산에 가서 미군을 받아야 할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부대에서 훈련을 나가면 저희도 따라가야 했어요. 밤에 컴컴해지면 담요 하나 들고 아줌마 따라서 가요. 아줌마가 보초 서는 미군이랑 솰라솰라 말해요. 그럼 훈련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총 들고 서 있던 놈들이 막사에 가서 여자들하고 잘 사람 나오라고 말해요. 이식스, 세븐(E-6는 하사, E-7은 중사)들도 다 했어요. 장교들은 특별히 막사 안에서 해요. 일반 병사들은 훈련장 안에 나무 있는 데에 담요 깔아놓고 하거나 구덩이를 파놓고 해요. 미군들이 파놓은 구덩이지요.”
포주들은 낙태 수술로 상한 몸을 보살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약과 찬물 한컵 정도 들이켜고 다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루 그냥 쉬면 빚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었다.
도망가려 해도 경찰 누구도 안 도와주고. 우리에겐 국가가 없었어요.”
하단의 서류는 박정희 대통령의 기지촌 위안부 친필 결제 서류 P.s 이런일이 몇 년전도 아닌 바로 엊그저깨 발생한 일입니다. 그러고보니 일본위안부도 조선에서 모집된 인원중 많은 수가 조선인 포주들이 조선인 처녀들을 재봉이나 쉬운일 알선해준다며 속여서 대려와 일본군에게 넘긴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778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