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시작에 앞서, 짤막한 서문 겸 사과를 쓰겠습니다.


우선, 포스팅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하고 도망간 데에 대해 사죄합니다. 뭐 크게 신경쓰지는 않으셨겠지만, 제가 급작스레 포스팅을 중지한데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고 쓰고 변명이라고 읽는 나가리지만, 말해본다 하면 시간 부족, 지식 습득 등이라고 할까요. 변명이네요.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저의 나태함과 의지박약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그 의지박약의 쐐기를 박아준 것은 3번에 걸쳐서 쓴 글이 날아간 비참함과 인벤의 끔찍한 현실인 사진 수 5개 제한 법칙 때문이긴 하지만요.


그렇지만 아무리 글이 3번이 날아갔다 하더라도 제 의지가 확고했다면 쓸 수는 있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의 방향성은, 궁금해하지 않으시겠지만, 시간나고 꼴릴 때마다 써보기입니다. 규칙적으로는 올릴 시간도, 여유도 안 됩니다. 더 말하자면, 전쟁에 관한 글을 써서 올려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하자면, 일단 친근함보다는 객관적이면서도 흥미있고 심도있는 지식 전달을 우선하겠습니다.


------------------------------------------------------------------------------------------------------------



"전쟁, 아 끔찍한 전쟁이여!" - 베르길리우스



전쟁은 끔찍합니다.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발산입니다. 인간 파괴본능의 폭발적인 발현입니다. 증오, 약탈, 파괴, 살인, 방화, 강간, 폭행, 학살, 차별... 인간 본성에 뿌리박힌 온갖 악이 다 구현되며, 그 결과로는 거대한 황무지와 불타는 도시, 널려있는 시체와 우는 아이만을 남기는 재앙입니다. 지진, 해일, 화산 폭발, 산사태, 산불, 폭풍, 토네이도... 그 어떠한 재앙도 전쟁보다 많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그 어떤 전염병도 전쟁보다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적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파괴' 입니다. 인류라는 종이 수많은 세월동안 노력하여 쌓아올려온 금자탑을 한순간에 붕괴시켜버립니다. 생산력은 폭락하고 경제는 마비되며, 체제는 몰락하고 문명은 소멸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전쟁사를 공부할까요?


인류 문명의 업적과 진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엎어버리는 대파괴를요?


답은 아이러니합니다.


우선 전쟁은 인류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이지만, 동시에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가 가장 빨리 굴러가는 때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파괴가 자행되고 문명의 위업은 무너져내리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진보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예를 들자면, 십자군 전쟁은 유럽에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절대적인 신의 발 아래서 그저 기도만을 하고 추기경 뒷주머니에 돈이나 쑤셔넣던 암흑의 시대를 타파하고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 사상과 결합한 새로운 탄생을 몰고 왔습니다. 또, 중세 유럽의 고질병이자 문명 정체의 근원이던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중앙 집권제를 선사함으로써 오늘날 세계의 정상에 서있는 유럽이라는 대륙을 창조해냈습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십자군 전쟁에 끼어들기도, 그렇다고 동방 무역을 포기하기도 그런 애매하고도 애매한 상황 타개를 위한 발버둥으로 대항해시대를 개막했습니다. 


신의 이름에 떠밀려 자행된 사상 최대의 명분 없는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체인 교황과 교회의 압도적인 권력을 격파하고 신에 대한 믿음과 복종이라는 암흑으로 도배되어 있던 유럽 대륙의 장막을 걷어냈습니다. 이렇듯 전쟁은 굉장한 모순의 과정입니다. 파괴와 진보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말도 안되는 역사죠. 


역설적이게도 진실인 이 일련의 사실들은, 역사의 전환점이자 발전의 기점인 전쟁이라는 요소를 탐구하는 것에 매력과 필요성을 더해줍니다.


(1096년 - 1270년, 가톨릭권 - 이슬람권 간의 십자군 전쟁)


두번째로, 전쟁은 인류가 가진 모든 이해관계와 기질들의 총체적인 충돌입니다. 모두가 잘 아시겠지만, 전쟁은 단순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아돌프 히틀러라고 하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아 전쟁하고 싶다. X바"


하고 총동원령내리지는 않는겁니다. 전쟁은 한 두명이 아닌 수많은 인간들이 필요로 해서 발생합니다. 농촌의 필부부터 제국의 절대권력자까지,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일으키는 대폭발이 바로 전쟁입니다. 그 명분은 거창하고, 정의롭고, 위엄넘치지만, 실상은 굉장히 초라하고 일반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전쟁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일반성입니다. 그 누구나, 심지어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보는 당신까지. 그 어떠한 사람이던지간에 전쟁에 연관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에는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념과 사상들이 모두 연계됩니다. 


작게는 


"밥 먹을때 후추 뿌려먹으니깐 너무 맛있더라!♥"


부터 크게는


"전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은하제국을 무너뜨리는 제다이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까지. 정말 많고도 많은 이유들이 전쟁을 일으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해를 다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또 전쟁에 큰 흥미가 없었던 이들이라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참전합니다. 


한 마디로 전쟁은 인류가 쌓아놓은 모든 것들의 총집산입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 사상, 관념, 문화, 종교, 재물, 권력, 성욕, 기술, 학문... 모든 것들이 일정한 목적에 부합하고자 할 때에 전부 모여 폭발하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인류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작게는 친구와 어제 한 언쟁부터, 크게는 아프간 전쟁까지 모두 같은 프레임과 맥락 속에서 일어납니다. 인류가 하고자 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발산하는 무대입니다. 단지 그 규모가 거대하고 참가하는 인원이 많을 뿐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모두 같습니다. 옆집 아저씨네 개 짖는 문제로 말싸움하다가 쌍방 주먹 찜질까지 간 사건이나, 제국과 제국이 서로 전면전을 선포하고 총동원령을 내려 맞붙는 것이나 그 근본은 같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참가하는 주체도 인간이기에,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원전 264년 - 기원전 241년, 로마 - 카르타고 간의 포에니 전쟁)


전쟁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앞서 말한 사소한 일들과 같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정치도 외교도 모두 관계의 문제입니다. 단지 그 범위가 개인 대 개인이나, 집단 대 집단의 소규모에서 국가 대 국가와 연합 대 연합의 범주로 거대화될 뿐인 것이죠. 그렇기에 또한 전쟁은 인간이 최우선으로 탐구해야할 사례입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해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 뿐 아니라 관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최고로 훌륭하고, 질좋고, 양많은 표본입니다. 더욱이 전례를 통해 미래의 향방을 제시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왜 중요하느냐? 라는 질문에는 사람들이 쉽게 대답을 합니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아야 그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맞습니다. 역사는 돌아보고 탐구해서 더욱 개선된 미래를 만드는 지침서입니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모든 행동에 대해서 일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그래왔고 또 그렇다면, 미래라고 다를 리는 없습니다. 갑자기 인간의 보편적 인식이 통째로 바뀌는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를 가지고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와 역사 중 가장 풍부한 자료와 사례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한 마디로 전쟁은 옛 사람들이 삶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침을 적은 책들을 기점마다 뭉텅이로 던져주는 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뭉텅이를 탐구하고 더 나은 내일을 구상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있어 가장 좋고 또 필요한 방법이기에 우리는 전쟁을 탐구해야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전쟁이라는 재앙을 막기 위함입니다. 앞서 말한 것들이 전쟁의 가치를 부각시켰을지라도, 그것은 '역사에 기록된 과거의 전쟁' 이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전쟁은 혐오스럽고도 무시무시한,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대파괴의 연속입니다. 친한 친구의 팔다리가 날아가고, 부모를 잃고, 집을 잃고, 신체에 상해를 입고 종국에는 같은 사람에 의해 죽임까지 당하는 비극입니다. 그렇지만, 이렇듯 광포한 전쟁이라는 괴물을, 단지 외면만 하고 있는다고 해서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던지간에, 남이 겪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는 동정하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겪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는 애통해하고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전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비생산적인 불만토로와 순간적인 연민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1467년 - 1573년, 다이묘들간의 세력 다툼 센고쿠 시대)


물론 공감하는 것은 좋습니다. 인간 윤리의 기본인 인류애와 보편적 가치의 침해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것입니다. 나쁜 놈 보면 욕하고 착한 놈 보면 칭찬하는 것은 참 좋습니다. 도덕적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던간에, 그러한 행위들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전쟁이라는 괴물이 잡아먹은 아이에게 애도를 표하고 그 괴물을 미워하고 욕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시하는 가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것도, 그 괴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나치 정권을 비판했고 유대인 학살에 대해 동정을 보냈지만 결국 600만의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것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이들과 같습니다. 


"그럼 어쩌라고?"


해결책을 곧바로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전 세계의 평화는 일찍이 구축됬겠지요. 그러나 연구해볼 수는 있습니다. 왜 일어나야만 했는지. 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해내는 소소한 가치들로 해결책의 조각을 맞출 수 있습니다. 


일례로 UN이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참극이 지나간 자리에 꽃핀 기구이죠. 세계 평화를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그 중 많은 노력은 효과를 거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들 또한 전쟁을 연구했습니다. 왜 인류는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수천만의 인명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로 UN을 만들었습니다. 굉장히 미약하나마, 분명히 앞으로 한 발짝 전진한 위치로 인류를 이끌었습니다. 그 성취 또한 과거를 통한 성찰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만큼 역사, 특히 전쟁사는 중요합니다.


(1939년 - 1945년, 추축국과 연합국간의 제 2차 세계 대전)


인류의 역사는 퇴보성을 띄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진보성을 띄고 있고, 또 띄어야만 합니다. 더 나은 미래, 우리보단 나은 세상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인류의 영속적인 발전의지입니다. 과거의 인류 또한 그들보다는 나은 세상을 피와 살로 일구어내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우리가 그 유산을 상속받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또다시 우리 후손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줄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공부해야만 합니다.



서문, 너무 길었다.



제가 봐도 잠이 쏟아질만한, 교훈적인 글이었네요. 마치 방학 시작하기 전, 10분만 끈다고 말씀하시고 연단에 올라가는 교장선생님과 같이.


서문이 길다보니 본문으로 준비했었던 페르시아 전쟁사는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이 다음 글은 언제가 될 지 모릅니다. 내일일지 다음주일지 다음달일지.


하지만 조속한 시일 내에 찾아뵙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아마 내일 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구요. 


그냥 오늘은 제 뻘소리를 보시고 조금 더 생각해볼 시간이 되셨거나, 역사에 대해 흥미가 마구마구 솟아나신다면 만족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할 일 졸라게 없다. 인생에서 2시간 정도야 날려도 된다. (come in) -> http://blog.naver.com/kimcs4675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