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겨레 창간독자이고 가끔 문을 두드리는 다른 신문사 판촉직원이

무슨 자전거에 현금을 갖다 안긴들 다른 신문을 볼 마음이 없습니다.

어느 면이 좀 처지고 정보가 부족하고 어쩌고 하는 걸 모르는 게 아니지만

다른 신문은 다른 곳에 가서 보면 될 일이고 내 집 현관에는 한겨레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애면글면 돈 모으고 해직 기자들의 발품 글품을 모으고

정권의 탄압을 딛고 역사를 일궈 온 한겨레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결국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겨레는 ‘있어서 좋은’ 언론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될’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음에 안들 때도 많습니다. 뭐 이런 글을 싣는지,

대체 이 기사를 오케이한 편집장은 제정신인지 묻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때의 비판 또는 외마디 욕설의 대상일 수는 있었으되 작별을 고할 이유는 되지 못했습니다.

역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마저

에잇 하고 한겨레를 던져 버린다면 한겨레신문은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암담함을 상상하면 내 눈이 멀 것 같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애독자들도 아마 이 심경 이해하실 겁니다. )

 

내 마음에 안든다고 절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있으면 좋은’ 것과 ‘없어서는 안될’ 것들의 차이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 위치한 신문이나 잡지들 보면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경쟁은 치열한데 고객은 까다롭고 실탄은 부족한데

요구는 태산이며 까딱 하나 잘못 말했다가는 치도곤은 기본 사양으로 하고

여차하면 절교장이 무더기로 날아드는 형편에 그 가슴이 새가슴이 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시사인의 메갈 관련 기사로 절독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면적으로 그 분노를 이해합니다. 왜 화를 내는지는 알겠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그 분노에 찬성하지 못합니다.

맞든 틀리든 내 생각과 전혀 다르거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짚어 주는 언론이란 소중한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시사인 같은 잡지는 역시 ‘있어서 좋은’ 쪽보다는 ‘없으면 안 되는’ 쪽이라고 여기기에 그렇습니다.








독자들 협박하는 중



출처 : 미디어오늘, 개드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