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중의 명작 슬램덩크가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그 우수한 번역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백호, 서태웅 등 이름의 현지화는 물론 그 명대사들의 매끄러운 해석 등을 보면 슬램덩크는 만화계의 명작만이 아닌 한국 번역계의 명작으로 불리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생각합니다. 다만, 단 하나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단 슬램덩크만이 아닌 한국의 거의 모든 번역물은 일본 문화의 독특한 뉘앙스 중 하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공통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등장인물들간의 "호칭"과 그 호칭이 의미하는 인간관계입니다. 


일본에서는 서로에 대한 호칭에서 그 인물들의 친밀도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매우 조악하게 설명하자면 (즉 수많은 예외가 존재하고, 실상 이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 친밀도 최대: [이름]으로 부른다 (일명 요비스테) 
ex)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에서 타츠야와 미나미는 서로를 "타츠야" "미나미"라고 부릅니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이름만을 써서 호칭한다는 것은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의미하며, 제삼자가 보기에는 연인관계냐고 오해할 소지마저 존재합니다. 

* 친밀도 크다: [이름에 애칭]을 붙여서 부른다. 혹은 이름을 이용한 별명으로 부른다.  
ex) "요츠바랑"에서의 아야세 자매는 이웃집 귀염둥이 요츠바를 "요츠바쨩"이라고 부르지요 (번역판에서야 그냥 "요츠바"로 통일하지만요). "에반게리온"에서 신지는 미사토를 "미사토 씨"라고 부릅니다. (반면 첫 대면에서는 "카츠라기 씨"라고 부르는데, 미사토가 "미사토라고 불러"라고 대답합니다) "다이아몬드 에이스"에서 후배 부원들이 주장 유우키 테츠야를 일종의 별명으로 "테츠 씨"라고 부르는 것도 상당한 친밀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번역판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들의 별명을 모조리 ~형, ~누나 등으로 통일해버리는 바람에 그 뉘앙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친밀도 보통 // 일반적인 동료관계 // 윗사람->아랫사람 // 그냥 무례함: [성]만 부른다
ex) "데스노트"의 라이토는 L을 "류자키"라고 성만 부릅니다. 좋게 말하면 격의가 없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데면데면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성만 부른다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로 치면 "어이 김씨"라고 부르는 정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 친밀도 낮음 혹은 공적인 관계: [성에 경칭]을 덧붙인다
ex) ~상, ~군, ~선배 하는 것이 대개 이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데스노트"에서 라이토가 아버지 휘하의 형사들에게 "마츠다 씨" "아이자와 씨"하는 것이 이 경우입니다.

이런 호칭을 염두에 두고 슬램덩크를 원문으로 읽어보면, 등장인물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재미난 실마리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낙제군단의 우정: 강백호, 송태섭, 정대만




서로 주먹다짐까지 벌이던 세 사람이지만 (아, 대만이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던 역할이었군요. 샌드백 불꽃남자ㅠㅠ) 정대만의 농구부 재가입 후의 상호 호칭을 보면 의외로 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판에서야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나오지만, 일본 원판에서는:

강백호->송태섭: ["료찡"] (이름+애칭) : 송태섭의 본명인 "미야기 료타"를 애칭화시켰군요.
강백호->정대만: ["밋치"] (이름+애칭) : 정대만의 본명인 "미츠이 히사시"를 애칭화했습니다.
송태섭->강백호: ["하나미치"] (이름) : 캬 송태섭.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의 이름을 그냥 부릅니다.

한나를 둘러싼 연적관계(?)를 청산하고 의기투합한 강백호와 송태섭은 거의 의형제 수준이네요. 정대만이야 송태섭이든 강백호든 성으로만 부르지만, 두살이나 어린 강백호가 애칭에 반말까지 쓰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을 보면 서로 꽤 가깝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 강백호가 이정환의 파울에 나가떨어지자, 제일 먼저 달려와주는 것도 정대만입니다 >



2. 언제나 붕 뜬 서태웅




반면 언제나 고고한 서태웅은 이런 친교관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서태웅(루카와 카에데)을 부를 때는 무조건 ["루카와"]로 성만 사용하고, 서태웅이 남들을 부를 때도 항상 격식체를 사용합니다. 윤대협이나 정우성에겐 그냥 반말이지만요. 무례한 놈.......



3. 무례함의 화신 강백호



< 여기서는 존대지만 원판에서는 감독에게조차 반말입니다. >

하지만 무례함으로는 강백호에겐 상대도 안 됩니다. 한국판에서는 강백호가 윗사람들에게 존대를 쓰는 것으로 번역해두었지만, 원판의 강백호는 [그 누구에게도 존대를 하지 않습니다.] 한국판에서 강백호는 권준호를 "안경 선배"라고 존칭을 사용하지만, 원판에서는 "[안경군](메가네군)"입니다. 더군다나 말투조차 반말이니 옆에서 보면 강백호가 권준호의 선배인 줄 알겠습니다.

강백호는 채치수나 권준호같은 학교 선배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그냥 다 반말입니다.  심지어 안선생님에게도 !!!!!!!  

안선생님에게 수차례 가하는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황태산은 감독 눈 찔렀다고 활동정지까지 받았는데 강백호는 할아버지 감독의 턱을 때려도 무사하단 말인가?!?! 북산고의 교권은 무너졌습니다.......



4. 채치수와 권준호는 그렇게까지 친한 것은 아니다 - 폭군 채치수의 그림자?



< 이 장면에서야 의형제처럼 친해보이지만.....실제로도 그럴까? >

번역판에서의 채치수와 권준호는 서로를 "치수야" "준호야"하면서 매우 살갑게 호칭합니다. 무척 친해보이죠? 그런데 원판을 보면 서로 그냥 성을 부릅니다. ["아카기(채치수의 성)"] ["코구레(권준호의 성)"] 하면서요. 농구부를 지켜온 동지관계지만 사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친밀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중학교에 고등학교까지 6년을 동기로 지내고, 그 6년 내내 서클활동까지 함께했는데 그쯤 되면 서로 애칭 하나쯤 생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의문을 가져보게 되는데......하긴 권준호야 그렇다쳐도 채치수는 그 독불장군식 성격을 생각하면 친구가 많을 것 같지는 않네요.

여기서 북산 농구부는 왜 3학년이 고작 2명밖에 남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무리 약한 농구부라고 해도 일본 특유의 활성화된 서클활동을 생각하면 방과후에 체육관을 독점 사용할 정도의 지원을 받는 서클의 한 학년이 단지 2명이라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거든요. 

이건 제 상상의 영역이지만, 그것은 채치수의 폭압적인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채치수의 인화력은 적어도 2학년 시절까지는 빵점 수준입니다. 북산고 농구부는 해남이나 상양같은 명문과 달리 일반 서클활동에 가깝습니다. 가입하는 학생들도 어디까지 동네 근처의 평범한 아이들입니다. 즉 전국제패니 뭐니 하는 목표보다는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조직에서 승리지상주의자 채치수가 나타나 뜬금없이 전국제패를 외치며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 벌이듯 부원들을 몰아칩니다. 뭐 위를 노리면서 노력하는 것이야 좋은 일인데, 그 과정에서 채치수는 동료들을 설득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충수업때문에 연습을 빠지는 부원을 교실 벽에 집어던지는 폭력행위나 일삼을 뿐이지요. 


< 이것이 채치수 리더십:  네놈들은 노오오오력!!!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하다고!!!!! >


조직 구성원들의 목표의식도 성격에도 무신경한채로 전국제패 전국제패만 외치며 몰아붙이는 채치수에게 농구부원들이 얼마나 학을 떼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갑니다. "강요하지마! 전국제패 따위. 너와 농구하는 것은 숨이 막혀!!!"라는 동기 부원의 외침은 그야말로 진실이었겠지요. 작중에서는 채치수의 태도에 불만을 표하며 퇴부하는 부원들이 속출하는데, 평범 이하의 선수였던 권준호조차 3년간의 연습을 거쳐 북산에게 공헌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 그 부원들을 남겨둘 수 있었다면 북산은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북산고 약체화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채치수 본인에게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온화한 권준호조차도 함께 가입한 동료 부원들이 와르르 쓸려나가는 와중에 그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채치수에게는 무의식적으로 거리감을 두게 된 것인지도요. 

채치수가 후배들에게도 딱히 살가웠던 것은 아닙니다. 채치수의 기념비적인 첫 등장은 청소가 허술했다며 후배 부원들에게 농구공을 집어던지는 장면입니다. 첫 등장부터 폭력행위입니다!!! 서태웅, 강백호의 가입과 정대만, 송태섭의 복귀 등으로 농구부 전체가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채치수의 폭압통치가 계속되었다면 채치수의 졸업무렵에 후배 부원들조차 몇 명이나 남았을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농구부가 공중분해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남 vs 북산전에서, 박하진 기자는 해남과 북산을 평하며 "양팀 모두 이정환과 채치수라는 흔들림없는 리더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지만, 3학년 시절의 채치수가 북산의 확고부동한 리더로 자리매김한 것은 자신과 동등한 목표의식을 가진 부원들(농구에 영혼을 판 서태웅, 그냥 생각이 없는 강백호, 원래 전국제패를 노렸던 정대만, 자신감에 넘치는 송태섭)이 가입한 덕분이지 채치수 본인이 딱히 뭘 잘했는지는......  

......그렇다면 북산고 농구부의 진정한 리더는 누구일까요?




5. 북산고 농구부의 진정한 리더 이한나



< 이한나가 이미 농구부를 장악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

폭군 채치수가 군림하는 와중에 농구부 인간관계의 윤활유로 기능하는 사람은 바로 미인 매니저 이한나가 아닐까 합니다. 재밌는 점이라면 일본 원판에서 이한나는 성이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아야코"]라는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이죠. 즉 작중에서 다른 사람들은 이한나를 성으로 부른 적이 없습니다. 다들 이름으로 부릅니다!! (심지어 안선생님도 한나를 ["아야코 양"]이라고 부르지요)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점이, 무례함의 화신 강백호조차도 한나에게는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말은 반말일지언정 ["아야코 씨"]라고 존칭을 붙이거든요. 이것은 채치수를 "고릴라", 권준호를 "안경군("안경선배"는 번역판의 표현입니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존경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강백호 월드에서의 위계서열은 이한나 >> 채치수, 권준호입니다.

인간관계 제로에 가까운 서태웅도 이한나에게는 나름의 유대감을 표시하고 (중학교 선후배사이라죠) 이한나 일편단심의 송태섭이야  이미 장악 완료. 즉 이한나야말로 북산고 농구부의 진정한 중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채치수가 마구 몰아붙이고 권준호가 옆에서 난처해할 때 항상 활기넘치는 이한나가 풀어주는 것이 북산고 농구부의 지휘체제 아니었을까요.




(척 봐도 한나 씨가 더 리더같지 않습니까?)




6. 백호군단과 정대만 패거리의 결속



< 슬램덩크 전투력 최강집단: 강백호, 양호열, 기타등등 >


슬램덩크의 2대 불량아 집단이라면 강백호, 양호열, 기타등등의 "백호군단", 그리고 정대만, 영걸이, 철이 등의 폭력배 패거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정작 전투력은 백호군단 쪽이 단연 우세) 그런데 이들은 불량아라는 동질감으로 뭉쳤기 때문인지 뭔지, 호칭으로만 보면 슬램덩크 내에서도 최고의 결속력을 자랑합니다. 

일단 백호군단을 볼까요.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 양호열(미토 요헤이), 김대남(오오쿠스 유우지), 노구식(노마 츄이치로), 이용팔 (타카
미야 노조미) 등등 모두 서로 이름으로 부릅니다. [하나미치][요헤이]하면서요. 이들이야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이었다니 충분히 그럴만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정대만네 패거리입니다! 3학년 동기인 채치수, 권준호, 정대만이 서로를 죄다 성으로 부르는 와중에 정대만 패거리는 서로를 전부 이름이나 애칭으로 부릅니다. 영걸이(홋타 노리오)가 정대만(미츠이 히사시)을 부를 때는 애칭인 ["밋쨩"]이고, 정대만이 영걸이를 부를 때는 한술 더 뜹니다. 애칭도 아니고 그냥 ["노리오"]입니다. 그 순수 양아치 철이(테츠오)를 부를 때조차 ["테츠오"]라고 이름만 부릅니다!!!! 한마디로 정대만은 농구부 동료인 채치수나 권준호보다 자신과 어울리던 양아치들과 더 친근했던 셈입니다. 아아 정대만의 어둠의 과거여.....




< 그들은 절친했다 >


이렇게 구성원 전체가 서로를 이름 혹은 애칭으로만 부르는 집단은 슬램덩크 내에서도 이 둘뿐입니다. 산왕전에서 채치수가 "우리들이 서로 각별하게 친한 것도 아니다"라고 토로하던 것이 떠오르네요. 이 두 불량아 집단은 적어도 농구부에 비하면 훨씬 친한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인 셈입니다.  



< 헛된 시절만은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을 얻었다...... >




7. 여자에게 약한 강백호



감독들에게조차 반말을 사용하는 안하무인의 강백호조차도 존칭을 사용하는 상대가 딱 둘입니다. 둘의 공통점? 여자입니다.
바로 채소연(아카기 하루코)과 이한나(아야코)지요. 

강백호 -> 채소연: [하루코 씨]
강백호 -> 이한나: [아야코 씨]

즉 강백호에겐 채치수보다 채치수네 여동생이 서열이 높은 셈입니다. 채치수 캐굴욕........

반면 이 두 아가씨가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를 부를때는 ["사쿠라기 군"] ["사쿠라기"]로 그냥 데면데면합니다. 선배인 한나가 부르는거야 그렇다쳐도 채소연은 동년배 남자들에게는 무조건 "~군"이니 딱히 강백호를 특별취급하는 것은 없다고 해야겠네요. 강백호의 연애전선은 먹구름입니다.




8. 송태섭의 청춘에는 희망이 있다



반면 송태섭의 청춘사업에는 (호칭으로만 보면) 약간의 희망이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한나는 송태섭(미야기 료타)을 ["료타"]라고 이름으로 불러주거든요. 아무리 서클 동기라고 해도 만난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동년배 남자에게 이름만 부른다는 것을 보면, 이한나가 송태섭을 나쁘게만은 보지 않는다고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힘내라 송태섭......

여기까지는 북산고 이야기. 그러면 다른 학교들 얘기도 해볼까요.




9. 의외로 친했던 미완의 대기들: 황태산과 신준섭



< 뜻밖의 재회....라기보다는 너희는 경기 전에 상대팀 선수 명단도 안 보냐? >

설정에 의하면 황태산과 신준섭은 중학교 동기동창입니다. 능남 vs 해남 시합 직전에 서로를 알아보면서 "태산아..." "신준섭..."이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오지요. 한국판을 보면 그냥 서로 아는 사이 정도였다고 유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원판을 보면, 둘이 의외로 친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준섭이 황태산에게는 ["후키,"] 황태산이 신준섭을 떠올릴 때는 ["진진"]이라고 애칭을 사용하거든요. (황태산의 본명은 "후쿠다 킷쵸", 신준섭의 본명은 "진 소이치로"입니다.) 서로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혼잣말하는 와중에도 애칭을 사용할 정도라면, 둘의 관계는 꽤나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재밌는 점이라면, 이 두 명은 중학교 단계에서는 저어어언혀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신준섭은 키만 컸지 그 여리여리한 체격 때문에 몸싸움에서 맨날 나가떨어지는 센터 실격자였고, 능남 유명호 감독의 회상에 의하면 황태산은 (능남에서조차) 신입생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두 명 모두 어설픈 와중에도 엄청난 투지와 향상심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2학년이 되어 둘 모두 도내 굴지의 플레이어로 성장합니다. 조용한 신준섭과 열혈의 황태산, 겉으로만 보면 거의 정반대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지만 서로의 그 투지에 공감했기에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10. 황태산의 진정한 동지들



< 황태산에게 농구를 돌려준 사나이들 >

황태산은 잠시간의 부활동 정지처분 때문인지 능남고 농구부 내에서도 약간 겉도는 분위기입니다. 완결편 이후의 후일담인 "10일 후"에서도 동기 안영수와도 투닥거리는 분위기고요. 그래서인지 능남고 농구부 내에서의 호칭도 무조건 ["후쿠다"]입니다. 딱 성만 부르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 황태산을 애칭으로 호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황태산의 부활동 정지기간중 길거리 농구장을 소개해 준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황태산을 ["후쿠쨩"]이라고 애칭으로 부릅니다.

그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농구부에는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던 황태산, 그의 진정한 동지들은 능남고 농구부가 아닌 그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1. 모두에게 신뢰받는 인간승리자 홍익현



< 부원들도 그를 믿고 >





< 도내 넘버원도 그를 믿는다 >


["해남대부속고 농구부의 연습은 양과 질, 모두 격이 다를 정도로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매년 봄이 되면 각 중학교 에이스급으로 알려진 선수들이 이 명문 중의 명문을 동경해서 들어오지만, 반 이상은 일주일만에 그만둔다. 한달이 지나면 나머지의 반이 또 그만두고, 1년이 지날 무렵 남아있는 사람은 2할도 채 되지 않는다. 

그는 농구 초보자였다. 그러나 그는 남았다. 그러한 그에게 부원들의 선망은 두터웠다."]



해남의 비밀병기(이자 강백호의 악몽) 홍익현을 소개하는 대사이며, 제가 슬램덩크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홍익현이 부원들에게 받는 두터운 신뢰는 동료들이 홍익현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정환은 홍익현을 애칭인 ["미야"]라고 부릅니다. 전호장도 애칭인 ["미야 씨"]라고 부르지요 (홍익현의 본명은 "미야마스 요시노리"입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강백호에 버금가는 안하무인 캐릭터인 야생원숭이 전호장조차도 홍익현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다는 것입니다. 홍익현이 등장하자마자 송태섭에게 스틸을 당했음에도 무시하기는커녕 "아앗~ 미야 씨, 긴장 풀어요!!"라고 격려하고, 홍익현이 3점슛을 성공시키자 쪼르르 달려와서 환호하지요. 이정환을 제외하면 전호장이 이렇게까지 존경심을 보이는 캐릭터는 작품 전체를 돌이켜봐도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 홍익현이 3점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입니다. 고민구의 ["과연!"]에서 홍익현이 동료들에게 얼마나 신뢰받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전호장의 성격을 생각하면 2년 선배 홍익현의 첫인상은 최악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키도 작고, 근육도 없고, 기술도 없고, 발도 느리고.....전호장이 초보자 강백호를 그토록 놀려먹는 것을 보면 전호장이 땅꼬마 홍익현을 얼마나 무시했을지 짐작이 가지요. 하지만 고작 몇달 지나자 전호장은 홍익현을 "미야 씨"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합니다. 그 농구 초보자가 에이스급 선수들 사이에서 꿋꿋이 버텨나가는 모습에 전호장 역시도 감동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써두었지만, 칭호가 꼭 인간관계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꾸벅)




출처 : http://pgr21.com/?b=8&n=60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