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라 문빠" "좌표 찍고 달려드는 개떼"

진보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이 시민 혹은 독자에게 던진 말들이다.

호기롭게 맞서봤지만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고

결국 본인도, 그들이 속한 언론사도 사과를 했다.

그러나 문재인 지지자들의 진보언론에 대한 분노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일부는 사과의 진정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문재인 지지자,

아니 시민들이 진보언론에 분노한 이유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진보언론 전부가 긴장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한경오 프레임이라는 말 자체가 

마치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가 조중동처럼 보도한다는 선입견을 준다"면서 

"그 말 자체가 부적절하다. 앞으로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언론개혁은 내 편만 들어주는 언론을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또한 현재 한경오에 분노하는 시민들에 대해서 상당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시민, 아니 문빠 누구도 문재인 편을 들어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애초에 문빠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까지 가세한 편파 왜곡 보도에 있다고 한다. 

더 파고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숱했던 명백한 왜곡 보도에 대해서도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그도 하지 않았다. 워낙 대선국면 속에 이슈가 쏟아져 그냥 지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로 인해 누적된 부정적 인상은 치명적이었다.

이런 편파와 왜곡이 누적되면서 시민들은 진보언론들이 조중동과 무엇이 다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자탄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오래 작동했던 진보의 보호막, '그래도 내 편, 내 진영'이라는 프레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민심의 변화를 진보언론이 보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빠 운운하며 빈정거리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없는 문재인 패권을 몇 년간 우려먹은 것처럼 그렇게 하면 

알아서 물러설 거라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문빠라고 부르는 그들은 문재인 지지자이기 전에 촛불시민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겨레 신문이나 경향신문을 사서 일부러 사람 많은 곳에 슬그머니 

놓고 왔던 사람들이기도 하며, 없는 돈 털어서 한겨레 국민주에 쏟아 부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을 촛불시민들과 분리시킨다면, 그 모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진보언론의 위기는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바른정당에서는 문빠, 문팬클럽에게 자진해산하라는 주장을 했다.

이 역시 헛다리짚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어지간한 커뮤니티 어디든 문빠가 있지만, 반대로 어디에도 문빠 커뮤니티는 없다.

문빠는 과거 노사모처럼 조직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 노사모를 보는 시각으로 문빠를 본다면 아무 것도 찾아낼 수가 없다.

조직된 바 없는, 형체는 없는데 대단한 위력을 보이는 것.

그것을 달리 말하면 민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의 현상이 오마이뉴스의 김정숙 여사 호칭 문제, 한겨레21의 표지 문제로 인한

기자의 도발 등등으로 우연히 발생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불거질 일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문빠, 아니 시민들은 이 싸움을 문재인 정부의 향후 5년 동안

잠시도 멈추지도, 방심하지 않을 것도 말이다.


21세기 뉴스 소비자들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정보를 수집, 분석, 공유를 해내고 있다.

그것을 달리 집단지성이라 부른다.

그런 시민들의 실체를 보지 않고 끝까지 문빠라는 프레임 속에서 사태를 조정하려 든다면 

진보언론은 분명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이들이 진보언론에 일단 요구하는 것은 진정한 고백이며 반성이다.

또한 공정한 역할 수행의 다짐이다.

너무 단순해서 아닐 것 같지만 

그것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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