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개' (上)



"쾅!!!!"

뭔가에 부딪혔다. 아니 내가 뭔가를 들이받았다.

운전대에 얼굴을 묻은 자세를 유지한 채 나는 길게 몇 번의 심호흡을 했다.

내 술냄새를 내가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과음을 했다.

"아... ..."

이마에 따끈따끈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아마도 머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에어백이 터졌음에도 밸트를 매지 않아 창에 머리를 받은 모양이었다.

조수석을 돌아보니 오늘 나이트클럽에서 꼬셨던 여자애가 없었다.

"씨X년... 날 두고 도망쳐?"

나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나왔다.

주변에 안개가 엷게 끼어있음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차의 보닛 부분에서 불이 난 것처럼 증기가 올라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가로등을 끼고 있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것이다.

어른거리는 와중에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새벽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나는 가드레일을 등지고 자리에 앉아 몸을 쉬었다.

음주로 경찰에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지금은 쉬고 싶었다.

사고 후 3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거슴츠레 뜬 눈으로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였다.

멀리서 경광등을 반짝이며 달려오는 차량이 보였다.

"짭새 새끼들... 졸라 빨리오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들이 나를 데려가기만을 바랬다.

내 옆에 차량이 멈춰서고, 차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괜찮아요?"

"... ..."

나의 불규칙한 숨소리와 냄새를 느꼈는지 그는 말을 이었다.

"아저씨 술마셨구만?"

나의 대답이 없자 그는 나의 어깨를 툭툭치며, 뭔가를 내 밀었다.

"아저씨 내 명함이니까, 아침에 차 찾아가쇼..."

"뭐여?"

나는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경광등을 밝힌 그 정체는 견인차였다. 경찰이 아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쪼그려 앉아 나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이마 찢어졌네... 병원에 빨리 가보슈. 그리고 곧 경찰 올텐데 빨리 이 명함 챙기쇼..."

그는 내 오른쪽 상의 호주머니에 명함을 끼워넣더니

내 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분주 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 견인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견인차가 멀어지는 소리로 서 그가 이곳을 떠났음을 알 수 있었다.

"후... 씨X놈들... 돈이 되면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거군."

나는 몸이 휘청거리는 상태에서도 정신은 제대로 박혀있었는지

그 남자의 무성의함 에 넋두리을 했다.

늦은 가을이라 그런지 반코트를 입고 있음에도 무지 쌀쌀했다.

나는 반코트를 꽉 움켜쥐고 품 속으로 더 밀어넣으며,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아저씨... 추워요..."

"나도 추워..."

나는 아무 생각없이 대답했다.

"아저씨... 추워요..."

나는 갑자기 확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아 !! 나도 춥다니까!!"

엷은 안개속에서 가드레일을 따라 10여미터 앞에 웬 낯선 여자가 나에게 다 가오는 것이다.

그 여자의 모습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올 수록 그 모습은 나를 더욱 스름끼치는 전율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원피스를 입은 온 몸이 물에 젖어있고 청백색의 피부에

소름끼칠 정도로 검은 눈과 긴 생머리.... 짙는 눈썹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그 여자가 나를 향해 두 발을 질질 끌듯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추워요..."

"헉!!!!! 당신 뭐야?"

나는 갑자기 순식간에 체내의 알코올 모두 분해된 것처럼 정신이 확 깼다.

"아저씨... 여기... 너무... 추워요..."

점점 더 다가올 때마다 선명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피부가 심하게 뜯겨있었고, 피부밖으로 노출된 뼈가 여기저기 보였다.

특히 왼쪽 뺨은 피부가 거의 다 벗겨져, 속의 어금니까지 보였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고, 등골이 송두리 채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나는 등 뒤의 가드레일을 지지대로 삼아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뭐야...!!! 가... 가까이 오지마..."

나의 요구에도 그녀는 두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내 앞 2미터까지 다가왔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오한을 느끼는지 그녀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터진 왼쪽 뺨 사이로 새어 나왔다.

"아~악!!!!!! 오... 오지마!!!"

나는 내 몸을 제대로 주체할 수 없는 와중에서도

춤을 추 듯 그녀를 향해 발길질을 하였다.

바로 그 때

"이봐요, 아저씨!!!!!!!"

낯선 남자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택시였다. 택시기사가 창을 열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대답도 없이 미친듯이 택시의 뒷자석에 올라탔다.

나는 타자마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사고 그에게 부탁했다.

"아저씨!! 아무 병원이나 가요. 빨리요!!"

"알았소이다."

택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터기를 누르고 잽싸게 출발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뒷창을 통해 그녀를 확인했다.

멀어지는 시야속에서 우두커니 나를 지켜보는 그녀가 보였다.

"헉...!!"

나는 재빨리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뭘 그렇게 놀라슈?"

50대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나의 안절부절하는 행동이 기이한 듯 물었다.

"아저씨, 그 여자 봤어요? 무섭게 생긴 여자.."

"무슨 여자요?"

"방금 전 내 앞에 있던 여자 말예요!!"

"아이고... 냄새야... 오늘 과음하셨구나. 이마도 다치시고..."

기사는 내 말에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룸미러를 통해 내 상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 그 여자 봤냐구요?"

"못 봤는데요."

택시기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유난스런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앞 좌석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다시 소리쳤다.

"바로 내 앞에 있었는데 왜 못봐요!!!!"

"아이고 깜짝이야!!! 못 봤다니까요...이 양반 많이 취하셨네...시트에 피묻히지 말고 앉아 있어요!!

거 참 젊은 양반이 이 새벽에 뭔 짓이래?"

택시기사의 꾸지람에 나는 앞 좌석 사이에 들이 밀었던 머리를 뒷좌석에 던지듯 이 눕혔다.

나는 길게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조금 전의 기억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리하기 시 작했다.

"이봐!! 젊은 양반!! 일어나!!"

얼마되지 않은 사이에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기사의 부름에 나는 천근만근같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거슴츠레 뜬 두 눈에 응급실과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병원은 사고지점에서 한 참 떨어진 곳이었다.

"뭐야? 누가 여기까지 데려 오래?"

순간 미터기에 찍힌 27,000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사기꾼같으니라고..."

나는 얼른 택시 밖으로 기어나왔다.

따뜻한 곳에 있었기 때문인지 다시 견딜 수 없는 취기가 몰려왔다.

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택시기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을 건넸다.

"아무 병원이나 가자며?"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나는 비틀거리며 그의 멱살을 잡기 위해 달려 들었 다.

"씨X... 누굴 등처먹으려고..."

기사는 내 두 손을 움켜쥔 채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야 임마!! 내 택시안에 니 피 묻힌 값은 내놓아야지..."

"이런... 씨X..."

그 순간 택시기사는 들것을 밀고 병원 직원이 나오는 것을 보자 나를 밀치고 운전석 으로 돌아갔다.

"야 임마!! 이따가 정신차리면 돈 받으러 올테니까 치료나 잘 받고 있어."

열린 창문 틈으로 이렇게 한 마디 내뱉더니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차를 몰고 달아났다.

내게 다가 온 직원이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물었다.

"싸워서 다친겁니까?"

직원의 친절한 물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말은 여전히 거칠었다.

"몰라... 새끼들아!!!"

이 말을 들은 직원들은 나를 제압하고 들것 위에 눕혔다.

나는 누워서 실려가는 와중에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 기사새끼 씨X... 죽여버리겠어..."

응급실 내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나는 내 두 손과 두 발이

골절환자의 부목처럼 들 것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야... 니들 뭐하는거야?"

직원들은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없이 수술실로 나를 이동시켰다.

"야... 이 씨X놈들아!! 나를 왜 묶어? 내가 정신병자야?"

나의 괴성에 그제서야 들것을 밀던 직원 한 명이 내려다보며 답을 했다.

"이봐요, 수술하다가 움직이면 당신 얼굴 찢어지는 수가 있어."

수술실로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담당 의사에게 나를 맡긴건지 그들은 모두 수술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야!! 이것 좀 풀어줘!!!"

나는 소리를 지르며, 바둥거렸지만 도저히 내 힘으로는

벨트의 장력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야!! 이 씨X놈들아!!"

나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안개... 뭐야? 병원에 웬 안개?'

잠시 후, 내가 잠시 잠잠해지자 한 사람이 조용히 들어와

내 옆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사람 배경에 비치는 조명등 때문에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실루엣으로 보 아 여자 간호사임이 분명했다.

"뭘 쳐다봐?"

나는 아직도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구?"

내 말에 그 검은 실루엣은 아무 말없이 주사기에 약을 채워 바늘을 통해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헤이... 이 봐... 지금 뭐하는거야?"

그녀는 아무런 응답도 없이 주사기 안의 공기를 다 밀어내었는지

조용히 머리를 숙여 나에게 다가왔다.

그 검은 실루엣의 얼굴이 나에게 충분히 가까워지자

나는 비로소 그 실루엣 속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만일 놀라서 죽는다면 이렇게 죽을 것이다.

그녀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피가 새하얀 얼굴에 수많은 세로선을 긋고 있었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속으로 하얀 치아가 드러나 보였고,

그 하얀 치아 틈 사이로 흘러내린 핏물이 채워지고 있었다.

"후..."

숨소리같은 나의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근육세포들이 멈 춰버렸다.

그리고 난 의식을 잃었다.

"이 놈아... 정신 차렸냐?"

흐려진 초점이 윤곽을 잡아가자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다.

"개놈의 자식... 나이 처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네."

아버지의 푸념에는 이제 이골이 났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놈이 술처먹고 쌈질이나 하고 다니니... 이거 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오른쪽 이마가 욱신거려 손을 가져다 대었다.

두툼한 반창고가 만져지는 것으로 보아,

어제 다쳐서 꿰맨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싸움 한거 아니거든요..."

"이런 미X놈. 그럼 어디 전봇대라도 들이받았냐?"

"에이... 좀 그만하세요."

그 때 침대 커튼을 열어 젖히고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간호사였다.

"으헉!!!"

나의 비명소리에 간호사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잠시 긴 한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자분 나가실 때 싸인하시고, 원무과에 치료비 납부하시면 됩니다."

간호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넨 후 뒤돌아 걸었다.

"아버지... 나가기 전에 여기에 만날 사람이 있어요."

"뭐? 누구?"

"간호사요. 꼭 봐야 될 간호사가 있어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버지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한 대답을 날리셨다.

"이런 미X놈아. 너같은 양아치 새끼가 간호사를 어떻게 알어?

어디 또 하나 후려서 어떻게 해보려고?"

"아버지 그게 아니고..."

"그만 닥치고 나갈 준비나 해."

난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가 없다.

잘 생긴 외모와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나에겐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많이 따른만큼 내 생활은 난잡해져 갔다.

여자를 건드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임신 중절만도 몇 번은 되는 것 같았다.

상습 음주운전으로 몇 개월 실형을 살아본 적도 있고,

조폭 여자를 건드려 살해 위 협을 받아본 적도 있다.

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가 엄청난 돈을 썼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금액만도 1억 5천이 넘었다.

그런 엄청난 빽이 되어 준 아버지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 철창 속 어두운 골방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외투를 걸치고 아버지를 뒤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 때 우리 앞에 경찰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성태씨?"

"네?"

경찰의 물음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역시나 옆에 있던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었다.

"이런 미X놈... 너 또 사고쳤냐?"

나이가 있어 보이는 한 명이 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ㅇㅇ경찰서 교통계 최정수 경장입니다."

"어제 새벽 ㅇㅇ동, ㅇㅇ대로에서 차로 가로등을 들이받고 도주를 하셨더군요."

"뭐요? 제가요? 전 차를 몰지 않았는데요?"

이럴 수가... 분명히 견인차가 내 차를 끌고 갔는데...

혹시 그 견인차 운전자가 불어버린 건가?

아니면 어제 나이트에서 꼬셨던 그 년이 불어버린 것인가?

"그럼 이마에 난 그 상처는 뭡니까?"

"이... 이거요? 술 먹다가 옆 테이블 애들하고 싸움이 붙어서..."

"조사하면 나올테니까 일단 서로 같이 갑시다."

"아니... 내가 운전을 안 했다는데 무슨 증거로 가자는 겁니까?"

내 말에 그 경장은 허탈한 웃음을 한 번 짓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 장난하는거요? 당신 차의 앞유리하고

에어백에 난 핏자국 당신 거 아니면 뭐요?

국과수에 넘겨 볼까요?"

"에이... 씨X"

나는 머리를 털 듯이 긁적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옆에 서 있던 아버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한 마디를 내뱉고 병실을 나섰다.

"난 싸인하고 간다."

경찰차에 실려서 경찰서로 향하는 동안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서른도 안된 젊은 양반이 경력이 화려하대."

뒷자석의 금속봉에 채워진 수갑이

어제 나를 묶었던 들것의 밸트보다 더 단단히 나를 잡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때 나는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아저씨... 뭐 하나 물어봅시다."

"뭐요?"

"내가 사고난 것 누가 불었소?"

"누가 불다니?"

"아니... 견인된 차 어디서 찾았냐구요?"

"뭔 소리야? 당신 차... 사고 현장에 그대로 있었구만."

"뭐요?"

나는 순간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가 않았다.

"아이... 씨X 뭐가 어떻게 된거야?"

그 때 문득 나는 머리 깊은 곳에 묻혀져 있는 작은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 명함!!"

견인차 운전사가 주고 간 명함...

나는 이곳저곳 내 호주머니를 다 뒤졌다.

이윽고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명함 대신 작은 쪽지가 손에 걸렸다.

-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

"뭐야 이거..."

쪽지에 적힌 엉뚱한 메세지는

그 내용만으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적힌 글씨체는 내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쳐들고 푸념섞인 말을 내뱉았다.

"헐... 미치겠네."

이 말에 앞 좌석의 두 경찰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이봐 친구, 왜 그래?"

교통계 조사를 받는 내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경찰들이 내 말을 믿어줄 것인가 만 생각했다.

"야... 그러니까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레커차가 니 차를 끌고 간 다음?

너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고."

"그리고 치료를 받고 아침에 일어났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서 왜 차 두고 도망쳤냐고 하더라 이거야?"

"아이씨... 진짜 미치겠네..."

"너, 술 어지간히도 취했나 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는 가중처벌을 받을 게 뻔했다.

상습 운전으로 실형을 살았는데 이번엔 좀 세게 맞을 수도 있다.

"야 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효과만빵의 정상참작이 뭔지 알아?"

"..."

"초범이라는 거야. 대한민국 그 어느 판사도 초범에 대해서는 관대해."

"그런데 너 같은 놈은 일말의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어."

나는 교통계 경찰을 응시한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나는 그의 불친절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억지로 평안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한 번만 봐 줘요... 제가 누굴 친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운전을 했다는 증 거도 없잖아요."

"피 묻은 것도 다른 사람이 운전해서 다친 거라고 하면 되잖아요.

저 이번에 들어가면 인생 종칠지도 몰라요."

그러자 경찰은 몸을 뒤로 눕혀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답을 했다.

"거참... 내가 할 말이 없다."

눈을 뜨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순간 그와 겹쳐서 뒷배경에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저씨..."

"뭐?"

"아저씨... 머리 좀 치워봐요!"

"뭐 새꺄?"

"빨리 머리 좀 치워봐요!!!"

내 눈동자의 초점이 자신의 등 뒤로 향해 있음을 안 그는

몸을 돌려 나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얼굴만 확대되어 덩그렇게 붙어있는 벽보.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xxx

나이 :....

벽보 속의 여자.

어디선가 본 낯익은 얼굴... 긴 생머리... 짙은 눈썹...

"으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작은 철제 의자와 함께 튕기 듯 뒤로 나동그라졌다.

"야 임먀!! 왜 그래?"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나는 손가락으로 벽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 여자 어제... 봐... 봤어요!!!"

"뭐?"

내 말 한마디에 나는 교통계에서 형사계로 넘어갔다.

형사계로 넘어가자 조금 전의 교통계 조사가

얼마나 친절한 대우였는지를 바로 알 게 되었다.

강력계 형사들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너, 이 여자 본 곳 어디야?"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한 형사가

벽보에 붙어있던 같은 전단지를 내 앞에 밀어 보이며 물었다.

무섭게 치켜 뜬 눈과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이 그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어제... 제가 사고 난데서요..."

내 목소리는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

"지금 거기로 안내해."

말 한마디에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듯 싶었다.

20여명의 의경들과 강력계 형사팀이 사고현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형사들과 같이 차를 탄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너, 그 여자 어떻게 봤어?"

앞좌석에 탄 중저음의 그 형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다.

"그게... 저...."

"확실히 그 여자 맞지?"

"예. 맞아요.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뭐가?"

"물에 빠져 한 참 뒤에 발견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에 여기저기 살이 뜯겨 있구요..."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 여자가 머리에 떠오르자 소름이 밀려왔다.

나의 머뭇거림에 형사가 말을 재촉했다.

"계속 말해봐."

"물에 젖은 원피스 차림으로 저한테 춥다면서 발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거예요."

"그래서?"

"그래서라뇨? 전 너무 무서워서 택시타고 도망쳤죠."

내 말이 끝나자 그 형사는 한 숨을 길게 내쉬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때 운전을 하고 있던 다른 형사가 그에게 물었다.

"마두, 그 자식이 한 말과 똑같네요."

'마두?'

생소한 이름에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

"너 귀신 볼 줄 알아?"

중저음의 그 형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예?"

"사람같지가 않았다면서?"

"그렇긴 한데..."

그러고 보니 어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내 부족한 아이큐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에 불은 시체같은 여자.

병원에서 봤던 등골이 얼어붙는 듯한 끔찍한 형상의 그 간호사.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그리고 내 차가 왜 거기 그대로 있는거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그냥 가위에 눌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

그런데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고, 현실적이었다.

그들이 다 죽은 여자라면...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그리고 앞 좌석에 앉아 있는 형사들은 뭔가?

나의 허무맹랑한 꿈같은 얘기에 뭔 개소리냐며 호통 한 번 치지 않는가?

그리고 귀신 볼 줄 아냐는 질문은 또 뭔가?

거대한 음모가 서려있는 무서운 사건에 떠밀려지는 듯한 이 기분은 또 뭔가?

당분간 술을 끊어야겠다.


사고현장에 도착한 형사들과 의경들은 주변을 이 잡듯이 다 수색했다.

특히 도로와 인접한 개천의 풀숲은 경찰들의 주 수색 대상이었다.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깁니다!!!!!"

한 의경의 외침에 모두들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 떼처럼

풀숲 사이에 긴 선을 그으 며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가드레일에서 지켜보던 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풀숲으로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하천 정화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발견한 의경이 시뻘겋게 녹슨 정화조의 뚜껑을 열어놓은 채 코를 움켜쥐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거기에 있는 모든 이가 본 것은 부패되어 썩어가는 한 여자의 시체 였다.

더욱 나를 경악케 만든 것은 지금 내 눈앞의 썩어가는 이 시체가

어제 나에게 살아서 걸어왔던 그 여자라는 것이다.

갑자기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졌다.

시각적인 자극은 견딜 수 있었지만,

후각적인 자극이 내 위장을 파도치게 만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있는 의경 다섯 명 정도가 고개를 돌리고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

경찰서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건현장에서 쏟아낸 토사물 때문인지

시큼하고 역겨운 냄새가 아직 코 주변을 맴 돌고 있었다.

"너 음주운전한 거 없던 걸로 할테니까,

집에 돌아가면 항상 핸드폰 켜 놓고 기다리고 있어."

그 중저음의 형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저 보내주시는 건가요?"

"그래. 그런데 필요하면 다시 부를거야."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몇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런데 아저씨. 그 시체 뭐예요? 살해당한 거예요?"

"아직 몰라. 김나연이라는 여자인데 실종 신고 후 3개월 만에 찾은거야."

"딱 봐도 이건 살인사건이잖아요."

"국과수 조사가 끝나봐야 돼."

갑자기 소름끼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아저씨... 그럼 제가 귀신을 본 거예요?"

"... ..."

"아저씨... 말 좀 해봐요."

"귀신이든 아니든 이번 사건 해결에

니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야. 그건 고맙게 생각한다."

형사의 대답에서 그가 뭔가를 감추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가 않았고,

물어본다 하여도 그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한동안 나는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한 동안 이어지던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나의 궁금증이었다.

"아저씨 그런 시체 많이 봐요?"

뒷좌석에 앉아있는 나의 질문에 형사가 고개를 잠시 돌려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런 걸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아까같은 시체보면 꿈에 안 나타나요?"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 그런데 그건 그나마 양호한거야."

형사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려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목 매달아서 목이 1.5배나 늘어난 상태로

혓바닥을 턱 까지 길게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시체 한 번 봐봐."

"그건 진짜 꿈에 나타난다."

"에이...겨우 그 정도예요?"

나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을 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순경 시절에 집에 누가 침입했다는 여자의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었지.

조그만 벽돌식 단독주택이었는데....현장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고, 문이 잠겨 있는거 야.

원래 수색영장없이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데 그 날은 느낌이 안 좋더라구.

나는 방범창을 부수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시도했어.

그런데 큰 장롱 하나가 창문을 반 쯤 막고 있는거야.

난 그것을 간신히 밀어내고 창문 안으로 발을 간신히 내딛었는데,

순간 윤활유같은 무언가에 미끄러져 방안으로 굴러떨어지듯 넘어졌지.

나동그라져서 뒤로 누운 상태가 된 나는 옆에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렸는 데 난 그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처참하게 살해되어 누워있는 피범벅이 된 여자 시체와 눈이 마주친거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마치 그 때 그 형사가 된 기분처럼 소름이 끼쳤다.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죽었는데, 마지막 숨이 새어나오는건지

입에서 피거품이 부 글거리는 소리가 나더라구."

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닫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1년 가까이 꿈 속에 그 여자가 그 얼굴, 그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괴롭혔지."

나는 으스스한 기운에 입을 열지 못했다.

"너 좀비 영화 봤냐?"

"네..."

"고통이 극도로 심해지거나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엄청난 양의 엔돌핀이 뇌에서 분비되지.

엔돌핀 때문에 고통을 못 느끼는거야.

전쟁 영화보면 폭탄 맞아서 자기 팔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남은 한 손으로 총 들고 진격하고 있잖아.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야.

트럭에 치어서 하반신이 짓이겨져서 떨어져 나갔는데도,

그것도 모른 채 숨이 멎을 때까지 도로 위를 두 팔로 기어다니는 사람도 있어.

좀비처럼 말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워, 워, 워... 형사도 할 짓 못 되네요."

나의 장난끼 어린 말투가 내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아 챘음에도,

그는 더 잔인하게 나를 압박했다.

"그나마 형사는 좀 낫지. 현장 정리가 어느 정도 된 다음에 출동하니까.

신고 받고 처음으로 출동하는 순경들은 뭘 보겠냐?

투신해서 머리가 으깨진 시체,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피부가 벗겨져 나가 속살 을 드러낸 시체...

나도 그런 끔찍한 광경은 대부분 순경 시절에 본거지."

몇 마디의 대화가 끝나자 경찰서에 가까워지는 듯 했다.

경찰서에 정문에 도착하자 그 형사는 나에게 조금 전의 약속을 재확인한 후

나 에게 항상 대기하고 있기를 부탁했다.

나는 안부인사를 한 후 차문을 열고 내렸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는 중요한 질문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아저씨. 제 차 어디서 찾아가야 되요? 그거 비싼건데..."

"기다려 임마. 조사가 끝나면 교통계에서 연락이 갈거야. 다음에 다시 보자."


경찰 지프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

나는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오른손의 중지를 치켜올렸다.


"조까... 내가 다시 오나 보자."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진짜로 내 차 어디 있는거야?"

내 차량의 소재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순간 나를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 이 아니었다.

지금 웃옷 주머니 속에서 매만져지는 작은 쪽지의 내용이었다.

-사일런트 엔젤 010-9453-xxxx -

"그런데 , 도대체 이게 뭐지?"

몇 초동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이내 휴대폰을 꺼내

쪽 지에 적인 숫자대로 버튼을 눌렀다.

'뚜루루루....뚜루루루루....뚜루루루루.....'

발신음이 반복되면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보세요."

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거기가 어디죠?"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너 누구야?"

"그냥 사일런트 엔젤을 찾고 있어요."

갑자기 내 고막을 찢는 듯한 그의 폭언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야!!!"

"헐..."

나는 얼른 휴대폰의 폴더를 닫아버렸다.

"헐... 씨X놈. 졸라 까칠하네."

그런데 나의 독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울려댔다.

조금 전 그 번호였다.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런데 왠지 모르게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여... 여보세요?"

"너 이 번호 누구한테 얻은거야?"

그 까칠한 남자였다.

"아니 그냥 제 호주머니에 매모 쪽지가 있어서... 뭔가하고 연락한건데요?"

"사일런트 엔젤은 어떻게 알아?"

"그냥 누가 알려주고 간 거예요. 저도 잘 몰라요."

"... ..."

휴대폰 송화기를 손으로 막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지,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건지 그는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 여보세요?"

나는 그를 불렀다.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저녁 6시에 ㅇㅇ역 3번 출구로 나와 있어."

"제가 거길 왜 가요?"

"죽고 싶지 않으면 나와 있어."

"뭐... 뭐라구요?"

내 대답을 무시한 채 통화는 종료되어 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잔잔한 연못에 조금만 파문이 일 듯

소리없이 두려움이 몰려왔다.

작은 실밥을 잡아당겼더니

걷잡을 수 없이 옷감이 풀어 헤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한 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키던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씨X놈들... 내가 겁 먹을 줄 알고?"

내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거리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택시 요금이 없어서 나는 버스를 타고 갔다.

얼마만에 타는 버스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를 졸라 자가용을 샀다.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버스를 탄 기억이 없다.

사실 학창시절에도 버스를 탄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가 늘 학교까지 자신의 차로 바래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는 커다란 운송수단에 몸을 맡긴 채,

여러 사람들이 무 표정한 얼굴로 앉아 각자의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광경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른쪽 이마에 두툼한 반창고를 붙인 채 서 있는 내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 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띵동!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버스 소리에 섞여 휴대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오빠^^; 경찰서 가면 나 아빠한테 죽거든. 도망쳐서 미안^^ 연락줘 ^^-

"씨X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에 주변 사람들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집 근처에 도착한 나는 절친한 친구인 준호를 실내 포장마차로 불러냈다.

그 놈도 나처럼 변변한 직업없이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놀고 먹는 녀석이었다.

"야! 왠일로 포장마차냐? 돈 떨어졌냐?"

준호는 인사 대신 나를 비야냥거리며 원형의 간의의자에 앉았다.

"이마는 왜 그래?"

"에효... 말도 마라. 새벽부터 지금까지 온갖 쇼를 다하고 다녔다."

"뭔 일이야?"

"우선 술 좀 시키고 진정 좀 하자."

"아니 뭔 술이야?"

"아이 씨... 닥치고 그냥 조금만 마시자. 맨 정신에 있을 수가 없어."

몇 시간전의 술을 끊어야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준호와 함께 소주를 들이키며 무용담처럼 내 얘기를 늘어놓았다.

준호는 기이한 미스테리라도 듣는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말 을 듣고 있었다.

얼마가 지난 후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자 나는 시계를 들여다 봤다.

7시가 조금 넘었다.

갑자기 술이 깨는 듯 했다.

"헐... 7시가 넘었네."

"너... 아까 니가 말한 새끼가 약속한 시간이 6시 아니었어?"

나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밀려오는 두려움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길고 어두운 좁은 도로변 길이었다.

"준호야. 우리 집까지 차 좀 태워주라."

" 씨X놈. 이젠 나까지 음주운전 시키네. 알았어 임마."

나와 준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내 포장마차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따르는 몇 개의 검은 그림자를 미처 살피지 못했다.

우리의 차량이 어두운 도로변 길에 진입하자

갑자가 낯선 차량 한대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았다.

미처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서너명의 건장한 놈들이 준호의 차로 달려들었다.

갑자기 앞유리의 파열음이 들렸고,

파편처럼 유리조각이 내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하자

눈 앞에 솥뚜껑만한 손이 순식간에 다가와 내 얼굴을 강타했다.

"쿨럭... 쿨럭"

간신히 기도를 열어젖히는 힘겨운 기침 소리와 함께 나는 의식이 돌아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눈의 초점이 서서히 맞추어지자 주변의 광경이 눈 앞에 들어왔다.

화사한 테라스처럼 고급스럽게 꾸며진 약간 어두운 실내 공간이었다.

누군가가 내 정면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주변에 건장한 서너명이 무게를 잡고 서 있었다.

나 또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두 팔이 위자 뒤로 포박당한 채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주변만 할로겐등처럼 강렬하게 아래로 내리비치는 빛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은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담배 하나를 물고 있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최대한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 누구야?"

전화 속의 그 놈 목소리였다.

"쿨럭...제 친구는요?"

"죽지 않았으니까 걱정마."

"저 한테 왜 이러시는거예요?"

간신히 입을 열 때마다 상처난 오른쪽 이마와 손으로 가격당한 왼쪽 광대뼈가 아려왔다.

"난 니가 내 번호와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할 뿐이다."

"전 정말 몰라요..쿨럭.... 누가 알려준 거예요."

"그게 누구야?"

"몰라요...메모 쪽지가 그냥 제 호주머니에 있었어요..."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그 놈이 누구야?"

말이 통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가 계속되자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 섞인 짜증이 밀려왔다.

"몰라!!!! 모른다는데 왜 자꾸 지랄이야!!!!"

나의 괴성에 주변에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남자의 손짓이 있자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막장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두려움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쿨럭..쿨럭...차라리 죽여라.. 씨X놈들아..."

그 건장한 청년은 나에게 주먹질 대신에

내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 알 수없는 주사액을 밀어넣었다.

"뭐...뭐하는 짓이야?"

나의 물음에 두목으로 보이는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잠시 후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조까고 있네...십새끼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의 말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조명등 너머의 그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사약의 효과를 기다리는 듯 했다.

잠시 후 주사액 때문인지 눈 앞의 초점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편안함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는 웃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동굴 속의 울림처럼 그 두목같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누구야?"

"히히히...김..성..태..."

"너 뭐하는 놈이야?"

"놀고 먹는 백수지 뭐야...히히히.."

"너 사일런트 엔젤을 어떻게 알아?"

"음...뭐더라....."

"........?"

"그..그 놈이 주고 갔어.....내 차 가져 간 놈...."

"누..누구?"

갑자기 주변에 엷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히히히....안개다...안개...안개가 낀다.'

기분이 들뜨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나는 삭신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가 밀려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뇌의 99%가 약물에 정복당했음에도,

나머지 1%의 정상적인 부분이 나를 일 깨우려 애쓰는 것 같았다.

머리를 똑바로 들어올리려 했지만

목의 근육이 다 풀려버린 것처럼 내 머리는 이리저리 내팽개쳐졌다.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말 해... 그 놈이 누구야?"

그의 질문에 나는 오직 진실만을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 말이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니 앞에 서 있는 놈이지..."


"이건 뭔 개소리야?"

그 두목같은 녀석은 내 말을 부정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 앞에 그 놈이 나를 등지고 서 있다.

뒷 모습만 봐도 분명히 그 놈이 맞다. 내 차를 견인해 간 놈.

그 놈은 나를 등진 채 두목 녀석을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희뿌연 연막처럼 그가 반투명하게 보였다.

그 놈이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목 녀석의 형상이 투시되어 보였다.

사람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하지?

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냥 이 안개가 아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게 뽕맞은 기분인가?

"우히히히히히..."

나도 모르게 요사스러운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 놈을 몰아 붙였다.

"니가 경찰에 신고했지? 씨X놈아...

내 차 니가 찾아와... 씨X놈아... 죽일 놈... 히히 히"

나의 횡설수설에 그 두목 녀석이 입을 열었다.

"저 새끼 진짜 왜 저래? 약을 너무 탄 것 아냐?

완전히 미친 새끼군.

"야!! 더 이상 볼 것 없어. 처리 해!!"

그는 불호령을 내리며 들고 있던 담배를 너무나도 깔끔해 보이는 바닥에 그냥 집어 던져버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거친 욕설과 간교한 웃음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야~~~ 이 씨X아!! 내 차 내놔...야!!...히히히..."

나를 등지고 있는 그 놈을 인지하지 못한 채, 조금 전에 나에게 약을 주사했던

건장한 청년이 옆의 탁자에서 뭔가를 집어들더니

발걸음을 나에게로 옮겼다.

끈 이었다.

빳빳한 가죽 끈 같은 것을 몇 번 양쪽으로 소리내어 잡아채더니,

이내 그것을 내 목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그 동작 후에 정작 그가 힘을 주어 조른 것의 자신의 목이었다.

"우에엑!! 켁!! 켁!!"

그 놈은 자신의 목을 조른 채 눈깔을 뒤집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녀석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목을 조르는 가죽끈을 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차를 견인해 간 그 자식이 청년의 뒤에서 힘을 주어 목을 비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저 자식!! 혼자 뭐하는거야!!!"

주변의 사내들이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 죽어가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연신 몇 번을 켁켁대던 그가 갑자기 가죽끈을 목에서 풀더니

아무렇지도 않 은 듯 고개를 몇 번 좌우로 꺽었다.

달려들던 사내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의 기이한 행동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수차례 목을 꺽던 청년이 갑자기 검은 양복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조명등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그것은 족히

30센티는 돼 보이는 시퍼렇게 날이 선 회칼이었다.

그리고 곧 피의 축제가 벌어졌다.

망나니의 칼춤처럼 몸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그는 자신에게

바라보던 건장한 사내들 의 몸에 연신 칼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와 고성이 난무하면서 사방에 핏물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칼침을 수 차례나 맞은 듯한 한 놈이 내 무릎 위에 떨어졌다.

그의 마지막으로 남은 몇 번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빨갛게 그어진 멱살에서 피 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물총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처럼 따끈한 핏줄기가 내 얼굴에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즐겼다.

"오 예!!!... 히히히히... 푸우!!"

그것이 입으로 들어가면 나는 분무기처럼 그것을 공중에 뿌려댔다.

몇 명의 사내들이 뒤엉킨 채 피의 제전은 계속 되었다.

여기 저기서 날아드는 여러 개의 회칼이 마치 무당들의 칼춤처럼 화려함을 더했다.

두목 녀석의 정수리에 회칼이 꽂히는 것을 마지막으로 피의 제전이 끝났다.

광기어린 축제가 끝났음에도 회칼을 든 사내는

한 동안 피바다 속에서 홀로 망나니 춤을 계속 이어갔다.

그 붉은 바다에 물을 채우 듯 그의 몸 서너군데에서 물줄기가 용솟음쳤다.

그리고 또 한 놈이 망나니 춤을 추고 있었다.

칼을 든 사내와 겹쳐진 형상으로

똑같이 춤을 추고 있는 놈은 내 차를 견인해 간 그 이었다.

한참동안 망나니 춤을 선보이던 그 놈이 갑자기 춤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칼을 든 사내는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옆 모습을 나에게 보인 채 잠시 서 있던 그 녀석이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안개도 사라졌다...


서서히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적막감이 밀려왔다.

오로지 들리는 것이라고는 누구의 몸에서 떨어지는 지 모르는 액체 방울의 낙하소리 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 액체 방울의 낙하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젠 즐겁지가 않다.

약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즐거움도 같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처참한 도륙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악!!"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뿌려진 미지근하고 끈적한 액체의 촉감이 내 뺨에 느껴졌다.

그리고 그 형사의 경험담처럼 바닥에 엎어져 죽어있는 한 사내의 부릅 뜬 눈과 마주쳤다..

그 형사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후... ..."

긴 한숨과 함께 조금 전에 미처 뿜어내지 못한

끈적한 액체가 입 속에서 새어 나왔다.

아... 졸립다.

오늘은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다. 집에 가고 싶다.

나는 실신하 듯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성태야... 성태야..."

어떤 익숙한 목소리의 부름에 나는 눈을 떴다.

아버지였다.

"이제 정신이 드냐?"

아버지가 왠 일로 이렇게 친절하시지?

"김성태... 괜찮아?"

사건현장에 동행했던 그 형사가 아버지 뒤에 서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죠?"

"병원이다. 이 놈아... 아예 여기서 살림 차릴래?"

늘 같은 아버지의 비아냥거림 속에 전에는 느끼지 못한 울먹임이 느껴졌다.

"아버님... 잠깐 나가 계시죠."

형사의 부탁에 아버지는 걱정스런 눈빛을 지우지 못한 채 병실을 나섰다.

아버지가 병실을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자 형사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못한 것 같네.

나 ㅇㅇ경찰서 강력계 1팀장 박정우 경사다."

나는 그의 시선을 뿌리치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너 어떻게 거길 간거냐?"


"... ..."


"니 의지로 간거냐? 아니면 납치 된거냐?"


갑자기 두려움과 서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흑... ..."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콧등을 넘어 침대속으로 젖어들었다.


"김성태..."


나의 흐느낌에 박형사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지막히 내 이름을 불렀다.


"무서워... 이제 그만 내버려둬... 흑흑"


쥐어짜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는 뜨거운 눈물을 연신 쏟아냈다.


나의 흐느낌이 멈출 때까지 박형사는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10여분이 지났을 쯤,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박형사는 입을 열었다.


"듣기 싫어도 들어라. 너 거기 니가 알고 간 것 아니지?"


"... ..."


"이 거 누가 적어준거지?"


박형사는 그 쪽지를 나에게 들어보였다.


"누가 적어준 게 아니지? 이 거 니 글씨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일런트 엔젤이 뭐야?"

"몰라요..."


나의 성의없는 대답에 박형사는 무언가를 고백하듯 긴 얘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너만 알고 있는 걸로 해.


몇 개월 전에 우리 수사팀은 대규모의 신종 마약이 유통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어.


그 때 수사망에 포착된 조직이 하나 있었는데, 어제 너와 같이 있었던 놈들이야.


그 조직은 몇 개의 나이트클럽과 고급 스탠드바를 운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조직들이 주요 근거지로 삼는 스탠드바가 하나 있었는데,


주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출입을 하는 곳이었지.


철저한 회원제와 신분 보장으로 누가 드나드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어.


거기엔 얼굴 마담격의 여자가 있었는데, 미모가 얼마나 출중하고 요염했는지


그 여자 때문에 매상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더군.


그 여자가 바로 니가 찾아 낸 김나연이라는 여자야."


박형사의 놀라운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수사에 착수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조직의 중간보스급으로 보이는 한 놈으로부터 전화가 온 거야.


누구냐고 물으니까 자신을 '마두'라고 소개하더군.


물론 그 쪽 세계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아니었겠지.


그 녀석은 자신과 김나연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주겠다고 했어.


무슨 장부를 하나 넘기겠다고 했는데 약속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았지.


장부를 손에 넣기가 힘들었는지, 아니면 조직의 철저한 내부 단속 때문이었지 모르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어.


그런데 보름 만에 마두한테 전화가 온 거야.


피곤함이 역력한 목소리였는데 뜻 밖의 얘기를 하더라구.


김나연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는거야. 그런데...."


박형사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요?"


나는 이미 박형사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마두가 횡설수설을 하는거야. 나연이가 매일 밤 자신을 찾아 온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온 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창백한 얼굴을 하고


매일 밤 마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다는 거야.


수면 중에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면 어둠 속에서


그 여자가 자신의 옆에 누운 상태로 노려보며 있기도 하고,


어느 날 밤은 깨어보면 나연이가 그 소름끼치는 차림으로


화장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다는 거야.


깨어보면 꿈이고, 깨어보면 꿈이고...매일 밤마다 악몽같은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거야.


그럴 때마다 실내에서도사방이 안개로 뒤덮인다고 하더군."


나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다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간신히 내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나는 박형사에게 물었다.


"마두라는 사람 어떻게 되었어요?"


"... ..."


나의 물음에 박형사가 답을 거부했다.


분위기를 눈치 챈 나는 간략하게 다시 물었다.


"주... 죽었죠?"


"그래."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나는 박형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죽었어요?"


"새벽에 살고 있던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어.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두의 얼굴을 본 거야.


초면치고는 너무 처참하게 만난거지. 현장에 가니까 머리가 깨져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팔다리는 모두 부러져 제멋 대로 꺾인 기이한 자세를 만들고 있는 시체가 있더라구.


처음엔 그 얼굴의 주인공이 마두인지조차 몰랐지. 전에 본 적이 없으니 말야.


사건을 조사하면서 우리 서와 내 번호가 찍힌 그 놈의 휴대폰 통화 내역을 보고 알게 된거지.


휴대폰 통화내역은 정말 중요한 정보였어.


수없이 많은 번호들을 우리는 일일이 다 조회를 했지.


그런데 몇 개의 떨거지 놈들의 번호를 빼 놓고는 모두 엉뚱한 주인을 가진 대포폰이 었어.


마두의 것도 마찬가지였고... 아무리 불법을 일삼는 조폭이래도 거의 모두가


대포폰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야.


뭔가 철저히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거지.


어찌 되었든 우리에게 정보를 넘기겠다는 사람이 죽었으니


우리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철저히 수사를 했지.


족적, 지문, 머리카락, 아파트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의 CCTV...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분석하고 조사했지.


마두의 죽음으로 우리는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사건을 계기로 수사팀은 그 조직의 근거지를 얼마 동안 출입할 수 있었거든.


모두들 입을 열기를 꺼려하고, 많은 부분에서 제한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지.


그런데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조직과의 연관성은 커녕 타살의 흔적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어.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CCTV는 그 어떤 침입의 흔적도 보여주지 못했어.


족적이나 지문은 모두 마두의 것이었고.... 타살 흔적 하나 잡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자살로 종결되었지."


박형사는 긴 한숨을 한 번 내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형사의 직감이라는게 있어. 물증은 없었지만 타살이라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었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날에 마두가 한 말이 있었어.


그 자식이 나를 죽일거라는 거야. 무엇을 감추는지'그자식'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거야.


게다가 처음 새벽에 그를 발견한 경비원 목격담도 우리의 심증을 뒷받침 해줬지."


나는 박형사를 등지고 옆으로 누운 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새벽 순찰 중에 싸우는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달려갔는데,


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는거야.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비명을 안 질러. 마두는 분명히 누군가에게 떠밀린거야.


싸우는 듯한 고함소리는 또 뭐야? 분명히 뭔 가 있다고 확신이 섰어.


그런데 이상한 건목소리의 종류는 한 가지 뿐이었다고경비원이 말한 부분이야.


뭐 귀신 놀이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


"누가 죽였는지 알아요."


갑작스런 나의 나즈막한 목소리에


박형사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냐?"


"마두라는 사람 누가 죽였는지 알고 있다구요."


박형사는 나의 팔뚝을 잡아당겨 돌아 누운 나를 바로잡았다.


"너 지금 그 말 사실이야?"


흥분한 듯한 박형사의 눈빛이 느껴졌다.


"누구야?"


"어제 그 놈들을 죽인 놈이예요."


"그럼 어제 그 놈들이 지들끼리 치고 받은 게 아니었어?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던데...


족적이나 지문도 그 놈들 것 밖에 없었고..."


"누군지 모르는데, 사람이 아니었어요."


"뭐?"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 긴 얘기를 꺼냈다.


"어제 형사님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던 중 그 쪽지의 번호로 전화를 했어요..."


나는 어제 오후부터 지금 이 병원에서 눈을 뜰 때까지


기억하고 있던 일을 박형사에게 낱낱이 얘기했다.


내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박형사는 한 번도 나의 말을 끊지 않았다.


아니 끊을 수가 없었다. 말하는 나도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리는데 박형사는 오죽하겠는가?


멍하니 넋을 놓고 들을 뿐이었다.


"...그 쪽지에 적인 글씨체가 제 것이잖아요.


저는 글씨를 쓴 기억도 없고, 그 내용이 뭔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저도 그 놈한테 당한거죠. 귀신에 홀린 거예요."


내 얘기가 끝났음에도 박형사는 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나 또한 박형사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 진짜로 귀신 볼 줄 아나보다..."


한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박형사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말을 내뱉었다.


"제 예감이 틀리길 바라지만, 왠지 이 걸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요."


박형사는 무거운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얘기하자.


조금 전에 의사가 너 다친 게 아니라 잠이 든거라고 하더라.


퇴원해도 된다는 얘기지.


원하면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게."


"괜찮아요. 그냥 버스타고 갈게요. 사람 많은 게 좋아요.


요즘은 사람하고 같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래, 알았다. 나중에 보자."


박형사가 나간 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기를 바랬지만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여러 군데 보였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즐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생각의 종류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텅빈 느낌이었다.


왜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지,


어쩌다가 이런 이유 모를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단 한가지 나의 바램은 이 악몽같은 사건의 고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낮은 고도로 떠 있는 태양 빛이 내 두 눈을 비추고 있었다.


노란빛 광원 속에 붉은빛이 간간히 섞여 아른거렸다.


서서히 졸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몸이 나른해졌다.


졸음 때문인지, 너무나 밝은 눈부심 때문인지 주변 사물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안개가 긴 것처럼... 주변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 때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손자를 데리고 탄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였다.


5살 정도로 보이는 하얀 빵모자를 쓴 그 꼬마는 너무나도 귀엽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노인의 앞에 서서,


꼬마는 연신 그의 손등을 두드리 며 장난질을 해댔다.


손자의 귀여운 장난에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꼬마가 나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 또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귀여운 손주였네요."

나의 과거형이 섞인 말에노인이 고개를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놀았던게 가장 재미있었대요."


계속 나를 응시하던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이내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항상 할아버지와 같이 다닐거래요.

놀이터도 가고, 공원도 가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나는 아이의 말을 그 노인에게 계속 전달해 주었다.


아이는 입을 열지 않고 눈 빛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들 을 수 있었다.


"만득? 만득이? 응... 그래 만득이 아저씨네 가게 가서


물고기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대요. 거기 가자는데요?"


나의 말에 갑자기 노인은 두 손을 꾹 움켜쥐고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었다.


할아버지의 울먹임에 손주 또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할아버지... 손주가 울지 말래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쥐어짜 듯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이젠 그냥 봐도 사람과 혼령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얀 빵모자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민머리는


꼬마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맙네... 젊은이..."


연신 눈물을 훔치던 노인은 조용히 웃옷 주머니에서


상표가 떨어져 나간 갈색 드링크 제 병을 꺼내 들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느즈막하게 결혼 한 아들 놈 부부가 그 핏덩이를 남기고 사고로 죽었다오...


혈육이라고는 그 핏덩이 하나 남았었는데...


몇 년 뒤 그 놈마저 몹쓸 병에 걸려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었다오.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큭큭큭...


자식 새끼 다 보내고 이 늙은이가 살아서 뭐하겠소?...큭큭"


"할아버지... 그래서 죽으려고 하신 거예요?"


나의 물음에 노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귀여운 손주가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주고 있는데... 그러시면 안되요.


할아버지... 이 손 잡으세요. 이게 할아버지 손주의 손이예요."


나는 꼬마의 손을 집어들어 할아버지의 손바닥에 다소곳이 올려 놓았다.


노인은 내 손을 몇 번 어루만지더니


무엇인가 느껴지는지 한 손에 빈 공간을 만들 어 손가락을 오무렸다.


그리고는 입에 힘을 주어 굳게 다문 채, 또 다시 진한 눈물을 몇 번 쏟아냈다.


몇 번에 걸친 나의 위로에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고맙네. 젊은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고맙네.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네..."


다른 이가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노인은 손주가 서 있을 자리를 내려 다보며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노인의 손을 잡고 있던 꼬마가 나를 뒤돌아 보고는,


또 한 번의 해맑은 웃음을 지으 며 손을 흔들었다.


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멀어져가는 그들을 계속 지켜 보았다.


"잘 지내렴..."


귀신도 종류가 있구나. 저런 귀신만 만나면 좋으련만...


이젠 나의 이런 능력을 내 스스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 때 내 휴대폰의 요란한 진동음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나 박형사야."


"예... 왜요?"


"너 나하고 이번 사건조사 한 번 할래?"


갑작스런 그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나도 이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고 싶었다.


그리고 경찰하고 같이 있는 것이 좀 더 안전한 것이 아닌가?


"제가 꼭 필요한가요?"


"사실은 니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니 능력이 필요해"


"좋아요!! 하겠어요!!"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라. 그리고 내가 내일 오전에 데리러 가겠다."


"알았어요."


나는 왠지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한 묘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며칠 동안 비워 둔 집이라 낯선 냄새까지 나는 듯 했다.


나는 취직을 핑계로 부모와 떨어져 산다.


취직이라고 해봤자 배운게 없고 얼굴로 먹고 살다보니 직업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술집 써빙, 나이트 클럽 웨이터, 호스트빠.... 그나마 내세울만한 직업은 역시 바텐더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 일을 할 만하면 여자들이 달라붙어 제대로 한 우물을 팔 수가 없었다.


모든 용돈이나 경비를 여자들이 대주니, 힘들게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것들은 자꾸 나를 나태하게 만들었고, 술과 여자에 찌들게 만들었다.


나를 잡으려고 일부러 임신한 여자들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계속 만나준다는 조건으로 중절수술을 권했고,


그 수술이 끝나면 가혹하게 차 버렸다.


사람들은 나를 쓰레기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쓰레기에 가깝다.


그런데 아직도 여자들은 겉모습이 멋진 상자에 담긴 나 같은 쓰레기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멋진 상자의 모습에 반해 다가와서는


그 속을 열어보고 쓰레기라는 것 을 알면 도망가고,


어떤 이는 담겨 있는 것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멋진 상자에 반해 그 안의 쓰레기까지 좋아한다.


내 주위에 모인 여자들이 예쁜 나비떼인지, 아니면 더러운 파리떼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사고 난 것도 알고보면 나이트에서 꼬신 년이 내 음주운전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있는 년이라면 그럴 수가 없다. 우라질 년..... 집이 너무 조용했다.


나는 리모콘을 들어 TV를 켰다. 늘 보는 스포츠 채널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고, 샤워기 옆에 있는 세면대 위의 거울을 바라보며 물이 뜨거워지기 를 기다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그러고보니 3일 만에 처음으로 보는 내 얼굴 같았다.


오른쪽 이마의 반창고는 간신히 꿰맨 자국을 감추고 있었고,


왼쪽 광대뼈는 아직 도 큼지막한 멍자국으로 덮여 있었다.


아랫입술도 살짝 찢어져 핏기가 보였고,


눈 밑의 검 푸른 다크써클은 오랜 시간동안


내가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마의 반창고를 떼어냈다.


샤워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장... 그 만신창이가 된 얼굴에 꿰맨 자국까지 드러나자,


내 얼굴은 거의 프랑켄슈타인처럼 보였다.


"헐... 당분간 여자 만나기는 글렀군."


나는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채웠다.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나는 그 곳에 얼굴을 담갔다.


숨을 참으면서 온갖 잡념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꿰맨 상처 속으로 물이 침투하는지 가끔씩 따끔거렸다. 30여초가 지났을까?


"푸우~~" 


나는 고개를 들어 폐 속에 쌓인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를 내뱉았다.


어느 새 샤워기에서 나오는 증기가 세면대 위의 거울에 안착했다.


뿌옇게 흐려진 저 거울 건너 편에 못난 내 얼굴이 있다.


차라리 이런 내 얼굴은 안 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허탈한 쓴 웃음을 짓고는 왼손을 들어 거울을 한 번 문질렀다.


닦이지 않는다. 다시 문질렀다. 그래도 닦이지 않는다.


갑자기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다.나는 미친 듯이 두 손으로 거울을 문질렀다.







'안 개'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