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렸을 적에 프랑스에서 농민들이 배가 고파서 빵을 달라며 시위를 벌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잖아?' 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있으실겁니다. 그럼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을까요?



 실상은 조금 복잡합니다. 애초에 농민들이 시위를 한 것도 단순히배가 고파서, 빵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거든요. 일단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잖아?' 라고 말 했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해당 발언은 당시에 벌어졌던 시위의 진상을온전히 알아야만이 그 맥락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빵의 역사는 음식으로 표현된 계층 간의 오랜 투쟁사다.

The Bread of Dreams, 피에로 캄포레시

 

 

 고대 로마 시절부터 유럽에는 두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가축의먹이 정도로 여겨지는 거무스름한 갈색 빵을 먹고 살았던 농민들과 그리고 진정한사람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하얀 빵을 먹고 살았던 상류층들 사람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누군가 감히 갈색 빵을 가져다주면 자신의 신분을 모욕한 것으로 여기며 폭력조차도서슴치 않았으며, 음식을 대접할 때 거무스름한 빵을 접대하는 사람에게 감옥형에 처하도록 하는 황제령이내려지기도 했습니다.






1755, 프랑스

 

 상류층이 아닌 프랑스의 국민들은 거친 호밀이나 보리로 만들어진 '거무스름한빵' 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당국에서도 이를 아주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농민이란 돼지보다 아주 조금 더 진화한 존재에 불과하며, 거무스름한 빵을 먹어도 이를 소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도리어나태해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여기기 까지 했습니다. 반면에 귀족들은 너무 진화된 존재인 나머지 아무 섬세한소화체계를 지니고 있어서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듯 하며 버터를 듬뿍 발라 구운 하얀 빵이 아니면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싶겠지만 실제로 사료에 기록된 내용이 이렇습니다.

 

 

 물론 귀족들만 이런 빵을 먹었던 건 아닙니다. 특별 대우를 받는파리 사람들과 군인들은 귀천을 막론하고 하얀 빵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파리 사람들의 경우에는 비천한거지조차도 새하얀 빵을 먹을 수 있었으며, 군인들도 하얀 빵을 먹었습니다. 군인의 경우에는 호밀로 된 빵을 배급하려고 하니 '아니 이게 무슨삼시세끼 명순튀만 주겠다는 소리요' 하면서 폭동이 일어날 뻔하자 급하게 하얀 빵을 배급하게 된 것에가까웠지만 말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나폴레옹도 길거리에 나앉은 거지조차 하얀 빵을 먹는 파리 사람들과 아무리열심히 노동하더라도 호밀로 된 거친 빵을 먹어야 하는 비-파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 모순에 충격을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순이 지속되자 프랑스의 농민 계급들은 점점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보몽쉬르우아즈라는 을의 한제빵사가 호밀빵의 가격을 하얀 빵 가격으로 받으려던 사건이 일어납니다. 농민 계급은 하얀 빵을 먹을수 없다는 것을 약용하여, 애초에 사지 못하는 하얀 빵과 어쩔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호밀 빵의 가격을똑같이 하고자 했던 것이죠. 이에 분노한 주부들은 제빵사의 손발을 묶어다가 연못에 던져 죽여버렸습니다. 먹는걸로 장난치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죠(아님)

 

 

 주부들은 보뭉쉬르우아즈에 있는 모든 바게트 빵을 모아다가 옆 마을인 메루로 가서 무료로 나누어 주고, 빵의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주변의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열열히 환영하였고, 불과 10일도되지 않은 시간동안 300여 건 정도의 폭동이 일어납니다. 시장들은습격을 당했고 제빵사들은 이러한 시위자들의 시위ㅣ에 휩쓸려 빵을 시장 가격의 1/10만 받고 팔게 되었으며밀가루는 죄다 약탈당했습니다. 이러한 시위, 혹은 폭동은점차 파리로 가까워져가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경찰국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프랑스 국민들을 체포해야할 지경' 이었다고 합니다.

 

 

 시위자, 혹은 폭도들은 마침내 파리에 도착해서 재정총감 안느로베르트 튀르고(Anne-Robert Turgot)의 집무실 밖에 모여서 '우리에게 빵을 달라!' 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구호이긴 하지만, 이렇게 실상을 알고 보면 단순히 '흉년이 들어서 밀가루가 없어 빵을만들수가 없고, 그래서 배가 고프니 빵을 달라' 라는 내용이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1775년에 경신대기근 뺨치는 흉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빵이 동났을리가 없죠) 사실 이 구호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에게도말랑말랑하고 맛있는 하얀 빵을 달라. 제대로 된 가격으로 팔아달라' 라는것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시위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치 한국의 시위자들이 삭발을 감행하는 것 처럼, 경찰들을 빵으로 두들겨 패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더 정확하게말하자면 상해빠진 '녹색의' 바게트로 경찰들의 뚝배기를 깨버리겠다는것이였죠. (바게트라는 것이 오래 되어 상하게 되면 어지간한 돌덩이보다도 강해집니다. 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들이 나치 독일의 비밀 경찰들을 바게트로 때려죽였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입니다.)



 파리 시민이자 귀족으로서 거무스름한 빵이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잘 알지 못했던 튀르고는 이 모든 것이 어떤 조직의 음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폭동의 시기에 맞추어 알맞게 곰팡이가 나도록 몇 주 전에 녹색의 빵을 만들어두었다가 때가 되자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는 돈을 주면서 그 빵을 시장에서 샀다고 말하라고 시켜 폭동을 조장한 것이다.' 라면서요. 어떤 일이 터지면 정치적인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지요. 이에 튀르고는 경찰들을 풀어 하얀 빵이 아닌 바게트 빵을 만들던 모든 제빵사들을 습격했고, 수많은 제빵사들이 심문을 받았습니다. 일상적으로 갈색 빵을 만들던 제빵사들도 모조리 '배후 세력의 조종을 받은 하수인들' 이라는 명목으로 심문을 받게 되었고요.






 의외의 사실은 어쩌면 이 폭동이 정말로 어떤 집단의 계획된 음모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루이 16세가 경찰이 올린 최종 보고서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직접 불태워버렸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보고서의 내용에는 루이 16세의 친척인 콩티 공(Prince of Conti)이 모든 일의 배후에 존재한다는 암시가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튀르고는 막강한 제빵사 길드를 금지, 해산시켰고 이 여파로 결국 장관직에서 물라나게 되었습니다.



 여튼 이러한 폭동의 배후에는 결국 계급이 따라 서로 다른 빵을 먹어야만 한다는 모순이 존재했고, 이 모순이 농민들로 하여금 불만을 쌓이게 만들다가 결국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폭동은 이렇게 가라앉았지만 사실상 해결괸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폭동이 끝난 후에는 다시 갈색 빵의 가격도 올라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도 누가 어떤 빵을 먹느냐 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폭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농민들이 누가 어떤 빵을 먹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불만이라면(갈색 빵이냐, 하얀 빵이냐로 그렇게 논쟁해야 한다면), 빵이 아니라 브뤼오쉬(케이크의 일종)를 먹으면 되지 않을까?" 라고 의외로 이성적이면서도 색다른 관점을 재기했다는 것 입니다. '그런 문제로 싸울 필요가 있을까?' 를 세련되게 돌려서 말한 셈입니다.



 악의라고는 없었던 말이었지만 이 발언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결국 빵값이 최고로 치솟아, 온 프랑스가 분노하여 일어난 바로 그 날, 파리 국민들이 그녀의 머리를 찾아 죽창을 들고 베르사유의 궁전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프랑스 혁명 자체는 재정적자 + 소빙하기가 겹쳐서 일어난 것이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혁명' 의 배경에는 이러한 '불평등에 대한 인식' 이 존재했고, 그런 인식을 일깨워준 매개체가 바로 '하얀 빵과 갈색 빵'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의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얀 빵과 갈색 빵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서 프랑스 혁명 이전의 폭동들이 빈번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프랑스 혁명이 단순히 '배가 고파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앙시앵 레짐 사회 자체가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던 곳이었고 농민들이 하얀 빵을 먹지 못하게 한 것은 농민들로 하여금 혁명에 동참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평입니다.


 16세기 프랑스에서 기근이 발생하고 밀빵을 만드는 게 불가능할 정도가 되자 프랑수아 1세는 도토리로 만든 빵을 공급하라는 명을 내립니다만, 당시 사람들은 '죽어도 도토리빵 안 먹겠다!' 고 버티면서 굶어죽어갔다니 프랑스인들의 빵에 대한 고집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 합니다.

 그리고 프랑수아 1세는 그 도토리를 스페인에 팔아서 전쟁 배상금을 훨씬 웃돈을 벌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