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거짓말만 안 하고 살면 된다고 하셨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할 이유가 없다며 공부하지 말라고 하셨다.
후에 나이가 들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울대를 다니시던 두 부모님은 1960년 4월 시국선언을 하셨고 그 죄로 인해 받은 각종 고문의 후유증에 의해 아버지가  50대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 의한 감시하에 생활했다.
그래서 어린 기억에 아버지는 맨날 집에서 노는 줄로만 알았다.
초등학교에 진학한 나도 감시에는 예외가 없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얘기를 한다던지 조금이라도 가까운 낌새가 보이면 여지없이 검은 양복 을 입은 남자에 의해 나는 강제로 외톨이가 되었다.
나는 늘 혼자였고 외로웠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도 없고 남는 건 시간뿐인데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기에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버려진 자석 낚시 장난감을 주웠고 곧 장 집으로가 깨끗하게 닦았다.
닦고 나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같이 놀 친구가 없던 나는 매일매일 그걸 가지고 놀았고 처음엔 꽤 재미있었다.
그러기를 한 달쯤 슬슬 질릴 즘에 나는 진짜를 잡고 싶어 자석 낚싯대를 들고 집 근처 저수지로 갔다.
나는 그저 진짜 물고기를 잡는다는 생각에 기대감에 부풀어있었고 파란색 플라스틱에 노란색 릴이 붙어있는 그 자석 낚싯대를 물에 담그기를 2주 정도 했었던 거 같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물고기는 당연히 잡히지 않았고 실망감이 가득   찬 나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양복을 입은 아저씨에게 집 근처 저수지에 가도 되냐고, 나  낚시해도 되냐고 묻자 아저씨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고 어떻게 하면 물고기 잡을 수 있냐고 나는 아저씨한테 물어봤지만 아저씨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너 할 거 해' 라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저수지로 갔다.

그러던 중 옆에서 낚시하시던 다른 아저씨가 그런 걸로 고기 못 잡는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저씨는 미끼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내 자석  낚싯대 끝에 달린 자석을 자르고 새 바늘과 미끼를 달아주셨다.
난 이제 진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줄 알고 기대에 가득 차 아저씨에게 낚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고 계속 물어봤다.
그래도 여전히 물고기는 잡지 못했고 내게 바늘과 미끼를 달아준 아저씨는 나에게 '붕어가 그렇게 잡고 싶으냐' 라고 물어보셨고, 어차피 이것 말고는 할 게 없던 나는 '뭔진 모르겠지만 꼭 잡고 싶어요! ' 라고 하자 아저씨는 낚시하는데 필요한 낚싯대부터 미끼, 찌 등등 여러 가지를 알려주셨고 이내 나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낚싯대를 사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
그날 이후로 2달 정도 마을을 돌아다니며 빈병이란 빈병은 모두 모아 고물상에 팔았고 나에겐 2천원 이라는 돈 이 생겼다.
나는 곧장 낚시점으로 갔고 주인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제가 낚시를 정말 해보고 싶은데 2천원으로 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고, 주인아저씨는 2천원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하시자 가게 안에 있던 손님 두 분이 작은 낚싯대 하나를 사주셨고 이를 본 주인아저씨도 찌와 낚싯줄, 바늘을 매주 셨다.
단돈 2천원에 낚싯대를 샀다.

2천원에 낚시 장비가 생긴 나는 곧장 저수지로 갔지만 여전히 허탕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기를 3주쯤 찌가 물속으로 쭉 들어가자 낚싯대를 꼭 쥔 손에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그 느낌이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 낚아채야 한다는 생각에 낚싯대를 들었고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