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현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룬 글이기 때문에 매우 긴 편입니다. 현 의료시스템의 파악을 원하시는 분이시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잘 쓴 글이거든요.)




1부인 본 게시글은 기존 한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으로 인해 다가온 한국 의료시스템의 위기를 다룹니다.
2부는 문재인 케어가 어떻게 이 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I. 한국 건강보험 시스템의 역사와 시스템적인 문제점 

1. 처음부터 잘못된 시작(저부담-저보장-저수가)

한국에 건강보험을 도입한 것은 박정희 정권입니다. 확대한 것은 전두환 정권입니다. 국민들을 탄압하던 독재정권이 아이러니하게 복지정책을 왜 도입했을까요? 뭔가 속셈이 있겠죠.

그들이 건강보험을 시작한 이유는 국민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특히 현대의학은 첨단과학기술의 산물이기에, 의료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본래라면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복지제도 중에서

건강보험제도는 국가에서 공공병원을 확충하면서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더불어서 민간병원들의 보험체계 가입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합니다. 

영국처럼 국가보건서비스 방식이라면, 애초에 공공병원이 대부분이어야하고요. 

하지만 독재정권은 돈을 써서 공공병원을 확충할 생각이 없었고,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싶어했습니다.

따라서 독재권력을 휘둘러서 건강보험에 민간병원들을 모두 강제가입시켰습니다. 이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라고 합니다.

독재정권 지지도를 위한 건강보험이다보니 당연히 보험료도 낮게 유지할 수 밖에 없었고, 게다가 공적자금을 쓰지도 않으려했기에 재정이 부족하니 보장성도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건강보험을 유지하려하니 의료수가도 원가 이하의 수가라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건강보험은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계로 운영되게 되었습니다.

* 의료수가는 병원이 건강보험 급여항목 상의 의료행위를 하여 받는 돈이며, 쉽게 이야기해서 의료비 본인부담금 + 의료비 건강보험공단부담금입니다.

이 가격은 병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합니다.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부담금의 비율도 정부가 결정합니다.그리고 이 돈을 병원에게 줄지 말지도 정부가 결정합니다. 어떤 의료행위나 재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말지도 정부가 결정합니다.



* 건강보험 급여에 대해서는 이걸 먼저 알아두셔야합니다.
- 모든 급여 항목의 검사나 치료는 급여 기준이 충족될 때만 가능하다
- 급여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의 비급여 검사나 치료는 경우에 따라 임의비급여에 해당되어 불법이 될 수 있다
- 그러므로 환자가 원해도 급여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검사나 치료를 아예 못하게 될 수 있다

* 급여기준은 정부가 정한 기준을 따릅니다. 이 기준은 의료계 입장에서 보면, 의학적인 기준이 아니라 재정절감을 위한 기준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망이 유력한 환자에게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하게 해주는 ECMO라는 기계가 있습니다.

급여기준은 ECMO를 사용하여 환자가 소생하면 급여인정, 환자가 사망하면 불인정 입니다.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게 그 사망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인데, 환자가 상하면 불인정입니다. 병원은 손해를 감수하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이 기계를 써야합니다.



2. 상황의 악화 (저수가의 악화)

저부담-저보장-저수가라는 시스템은 독재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수가를 정상화하고 보장성을 늘리려면 재정이 확보되어야하고, 그러러면 건강보험료를 올리거나 정부지원을 늘려야합니다. 하지만 건강보험료나 인상으로 인한 국민들의 지지도 하락은 독재정권이건 민주정권이건 감수하기 싫었죠. 의료에 돈을 쓰기도 싫었습니다.

반면에 저수가로 인한 문제는 국민들이 실감하기 힘듭니다.

더군다나 초기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 적으므로 문제가 크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한국은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를 병원이 대신하는 구조입니다. 국가에서 그렇게 정해놓았습니다. 정부가 법적으로 환자와 공단의 접촉을 차단해놓았어요. 따라서 국민들은 직접 접촉하지 않는 건강보험의 문제점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역대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도를 위해 저부담은 유지하면서(그리고 정부돈은 안 쓰면서), 보장성은 늘리려 했었습니다. 재정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러기 위해서는 수가를 계속 낮게 유지해야합니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이 처음부터 제도를 잘못 시작한 이래

전두환 정권이 건강보험 대상을 확대하였고

김대중 정권이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점점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었고, 결국 2001년 건강보험 재정 위기라는 역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정부가 선택한 해결책은 그렇지 않아도 낮은 수가를 더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죠.

그리고

현대의학이 발전하고 물가가 높아짐에 따라 의료행위를 시행하기 위한 비용은 증가하였으나, 수가인상률은 물가인상률에 비해 낮았습니다.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인한 추가재정은 수가인상보다는 보장성 확대에 투입되었죠.

그리고 그 낮은 수가마저도 불분명한 사유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 번외 : 한국 정부는 얼마나 의료에 돈을 쓰지 않으려 하는가?

한국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정부가 돈을 쓰지 않으려하는 시스템인지는 다음 자료를 참조해주십시오.

2015년 OECD 통계입니다. 건강관리재원 중에서 정부재원 비중 (Transfer from goverment, Goverment transfers)을 참조해주십시오. compulsory insurance는 건강보험, social insurance contributions은 건강보험료라고 해석하시면 됩니다.

한국이 OECD 국가중에서도 최하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OECD통계 건강관리재원

또한 한국은 공공병원 병상수가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입니다.






II. 건강보험 저수가의 및 삭감의 상황

저보장 문제는 이미 보장성 확대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일테니만큼, 여기서는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저수가의 문제점만 고찰하겠습니다.


1. 낮은 의료비와 높은 의료수준. 그 기적의 모순.


#그림-OECD통계 의료비지출 개인당



#그림-OECD통계 의료비지출 GDP



위 그림은 OECD 통계에서 한국의 의료비가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의료비가 매우 저렴합니다. 


#그림-OECD통계 개인당 의사진료횟수


심지어는 1인당 의사진료횟수가 OECD 국가 중 최고인데도, 의료비는 저 정도 수준밖에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의료수준은 세계최고수준입니다. 기대수명은 OECD평균 이상이며, 영아사망률 등 여러 건강지표가 우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사정을 생각해봅시다.

어떤 분야이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본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비록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지만, 비쌀수록 질이 좋고 쌀수록 질은 떨어집니다.

의학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대의학은 첨단과학기술의 집약체이며 고도의 전문화된 인력에 의해 서비스됩니다. 높은 수준의 의료의 질을 위해서는 그만큼 막대한 의료비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은 이렇게나 낮은 의료비로 높은 의료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기적이자 모순입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역대 정권이 독재정권이건 민주정권이건 가리지 않고, 의료계를 쥐어짜서 탄압해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의료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둥바둥 어떻게든 환자들을 치료하고자 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모순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국민들은 이제 한국의료의 화려한 겉모습 속에서, 정부가 그동안 감추어왔던 속사정을 깨닫게 될 겁니다.



2. 저수가 상황


(1) 현행 수가 원가보전율


위의 pdf파일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일산병원의 자료를 토대로 의료 원가 및 수가를 산출한 보고서입니다. 위 보고서를 토대로 하였을 시


#그림-일산병원 진료영역별 적용원가보전율

#그림-병원급 이상 요양기관의 지역별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1



#그림-병원급 이상 요양기관의 지역별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2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의료수가는 원가의 60~80%입니다.

의료수가가 원가 이하라는 겁니다. 의료행위를 하면 적자를 보는 구조라는 겁니다. 의료수가만으로는 사람들을 많이 치료할수록 병원이 손해보는 구조라는 겁니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일산병원 자료입니다. 민간병원이 의료수가 원가 이하라고, 그러니 돈을 더 달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자신들의 자료로 자신들의 연구로, 자신들이 책정한 의료수가가 원가 이하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번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주욱 인정해 왔습니다.

이런 전문적인 개념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니, 실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내시경 친숙하시죠? 건강검진 때 많이들 해보셨을 겁니다.

검진이야 비급여니 넘어가고... 급여항목 내시경 수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일산병원 자료입니다.


#그림- 내시경 수가


보시다시피 수가가 원가의 50% 정도밖에 안 되요. 심지어는 소독수가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 입에, 위장에, 항문에, 대장에 들어가는 내시경을 정부는 소독하지도 않고 사용하라고 규정했었던 겁니다.

물론 그런 정부와는 달리 양심이 존재하는 의사와 병원들은 환자들 감염을 막기 위해서 적자를 감수하면서 내시경을 소독해왔습니다.

내시경 소독수가는 2016년 말에야 생겼습니다. 



(2) 병원 진료수익 적자

그럼 의료행위를 통해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해서 초래되는 병원의 적자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마찬가지로 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일산병원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사에 나왔다시피 일산병원은 만성적으로 적자였습니다.


2014년부터는 일산병원 상황이 좀 나아졌습니다. 그동안 계속 적자보다가 2014년은 전체적으로 흑자라는군요.

그런데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2014년 기준 의료수익 1698억원, 의료비용 1909억원으로 진료에서 211억원 손실입니다.

의료행위만으로는 병원이 적자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211억원 적자에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흑자죠. 왜 그럴까요?

사업외에서 211억 5천만원(장례식장 수익 94억원, 연구사업수익 74억원 포함) 이익으로, 전체적으로는 흑자입니다.

결국 저수가로 인해 병원은 의료행위만으로는 적자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장례식장 같은 부대 사업으로 적자를 메꾸고 순이익을 얻는 겁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일산병원조차 이렇습니다. 다른 병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3) 저수가로 인한 적자. 구체적인 사례

위와 같은 수치만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으실 겁니다.

최근 유명해진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님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이국종 교수님은 병원에 연간 10억의 적자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님이 중증외상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병원은 적자를 봅니다.


그래서 이국종 교수님은 본인의 심정을 담은 위와 같은 글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엔 최근에 이국종 교수님이 수술한, 2017년 12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귀순한 북한군 병사 사레를 봅시다.


일반수가를 적용한 귀순병사 치료비는 1억원입니다. 이게 본래라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병원이 받아야하는 돈입니다.

그런데 급여적용을 하는 순간 (이 경우는 건강보험이 아닌 의료급여이긴 합니다만), 병원이 받을 수 있는 돈은 6500만원으로 줄어듭니다.

본래 제대로된 건강보험이라면 치료비 1억원 중 일부를 본인부담, 일부를 공단부담 (의료급여의 경우엔 정부와 지자체 조세)으로 하여 병원이 받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치료에 들어간 비용은 그대로인데, 급여적용을 하고 안하고가 금액 차이가 엄청날까요?

아주대병원이 돈독이 올라서 치료비를 비싸게 받은 걸까요?

천만에요. 수가가 원가 이하로 책정되어서 그렇습니다.

결국 아주대병원은 본래받아야하는 치료비 중 4천만원 가량을 못 받을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건강보험 적용이 되든 의료급여 적용이 되든 나머지 치료비도 제대로 못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급여비를 병원에 주는 것이 연체되는 게 일반적인데다가, 삭감이라는 무시무시한 게 기다리고 있거든요.



(4) 저수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삭감에 대하여

한국 건강보험시스템은 병원이 일단 진료 및 치료 등 의료행위를 한 후, 치료비의 일부를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으로 받고, 나머지 금액은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를 해서 받아야 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는 돈을 줄 수 없다고 삭감처분을 내리면, 그 돈을 못 받거나 토해내야 합니다.

물론 이미 의료행위가 끝났기 때문에, 해당 의료행위에 소모된 금액은 고스란히 병원의 손해가 됩니다.

이러한 삭감은 의학적인 기준이 아닌,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합니다. 

그렇다고해서 환자를 치료 안할 수도 없죠. 치료해야합니다.


그 결과는 앞서 언급했던 이국종 교수님의 글에서 나타납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국종 교수님은 연간 10억의 적자를 병원에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렇지 않아도 서류상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를 실제적으로는 훨씬 더 낮추고 있습니다.



III. 저수가 및 삭감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


1. 의료행위 단가 절약 - 적은 의료인력, 과잉업무

급여항목은 의료행위를 할수록 적자를 봅니다.

그럼 의료행위에 소모되는 돈을 줄여야 적자를 줄일 수 있겠죠.

따라서 인건비를 줄여야 합니다. 인력을 적게 고용해야 합니다.

적게 인력을 고용하는만큼, 1인당 노동량은 늘어납니다.

이는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영상기사 등등... 병원에 존재하는 모든 인력에 해당됩니다.

일단 대표적인 의료인력인 의사의 경우가 어떠한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림-OECD통계 의사 1인당 진료횟수


의사 1인당 진료횟수가 OECD 국가 중 최고입니다. OECD 평균의 3배 이상입니다.


#그림- 각국 전공의 근무시간 변화 추이


전공의 근무시간도 다른 국가들보다 엄청납니다. 주당 40시간 근무의 근로기준법 같은건 의사에겐 해당하지 않습니다. 최근에야 주당80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전공의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그 정도 근무해서는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의료인력이 혹사당하다보니, 소모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못 버티고 사직하거나, 버티고 몸이 망가집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의료인력이 소모되면, 남은 의료인력은 그 빈 자리만큼 더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지원자는 더 줄어들고, 소모되는 의료인력도 더 많아집니다. 악순환이죠.

현재 한국에서 의료인력은 OECD국가들의 1/3 수준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님의 사례를 들어보죠.

외상센터 후배 의사 중 한 명은 1년에 네 번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 했다고 합니다. 이국종 교수님은 왼쪽 눈 시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간호사 사직률은 연간 35%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의 질적 저하는 필연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의료의 질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해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이분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2. 적은 진료시간, 긴 대기시간 - 박리다매식 진료

의료인력이 적다, 과잉업무다 해도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국민들이 문제를 실감하긴 힘들겠죠.

국민들이 실감하기 쉬운 분야는 바로 이 박리다매식 진료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교과서적으로 의사 1인당 적절한 외래진료환자수는 20~30명입니다. 다른 OECD 국가는 대부분 이 정도

하지만 한국은 75명 이상, 100명 이상 진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은 매우 짧아야합니다. 이게 바로 많이들 불평하는 1분 진료입니다.

흔히들 병원의 1분 진료에 대해 많이들 불평하셨을 겁니다. 제대로 진료 안 한다고 욕하죠.

그런데 이 문제는 바로 수가 때문입니다. 그렇게라도 진료해야 적자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바로 앞에 과잉노동 문제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나마 이 박리다매식 진료로라도 적자를 메꿀 수 있는 내과 등의 전공과목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이것조차 할 수 없는 과도 있어요.

그리고 이 박리다매식 진료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3. 의료행위 단가 절약 - 저가 의료재 사용 등 

인건비를 줄여도, 박리다매를 할 수 있을지라도 적자는 그대로입니다. 그럼 인건비 외에 다른 분야에서 절감해야 합니다.

의료설비, 장비, 재료, 소모품, 약품 등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야 적자를 좀 더 줄일 수 있겠죠.

분야가 너무 방대하니, 그냥 실사례만 들어보죠.

최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터졌습니다. 정황상 혈관에 연결해 들어가는 수액이나 영양액 오염이 유력시됩니다. 이전에도 벌레수액사건 등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액은 아예 별도 수가조차 산정되어있지 않습니다. 수술이나 주사 행위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싼 수액은 살 수가 없습니다. 제조업체의 수액 제품 마진은 개당 1~2원입니다. 쉽게 말해 싸구려입니다. 불량제품이 발생하기 쉽겠죠.

안과에서는 백내장수술이 포괄수가제라는 것으로 묶여있습니다. 포괄수가제 같은 경우는 의사나 환자가 좋은 의료재를 쓰고 싶어도 불법이라 쓰지 못 합니다.


따라서 백내장 수술 받는 환자들은 비싸더라도 성능이 좋은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아니라, 저렴한 단초점 인공수정체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 외에도 처치 횟수를 줄이고, 적은 양의 의료재를 사용하는 등 해야겠죠.

이게 심해지면 의료의 질은 떨어지게 됩니다.



4. 고가 의료재의 소실

그럼 단가를 낮출 수도 없는 의료재는 어떻게 될까요?

사라집니다.

제조회사에서 적자를 감수하고 생산하지 않습니다. 유통회사에서 적자를 감수하고 유통하지 않습니다.

한국정부의 강제력도 소용없습니다. 현대의학은 첨단과학기술의 집약체이고, 따라서 의료재 상당수는 연구투자를 많이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에서 만들어내며, 한국에서 사용하려면 그것을 외국에서 유통해와야 합니다. 

한국정부가 한국 의료계에게 하는 것마냥 뭔가를 강제하는 것은 외국의 세계적 규모의 회사에겐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되면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도 사용가능한 의료재가 없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 환자는 치료받고 싶어도 사용가능한 의료재가 없으니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실사례를 들겠습니다.

소아심장수술용 인조혈관은 낮은 수가로 인해 제조사가 사업철수를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한국에서 인조혈관이 필요한 소아심장수술은 불가능합니다.


그 외에도 이미 사라진 의료재들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보다도 더요. 특히 특정 전공과에서만 쓰는 의료재들(수요는 적고 비싼)이 그런 경우가 심합니다.

좀 경우는 다르지만, 요즘 예방접종 백신 물량 부족 사태가 자주 일어납니다. 백신 종류를 가리지 않고요. 이 현상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5. 비급여 진료 확대

결국은 병원이 의료행위를 통해서 적자를 줄이고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급여항목 진료를 줄이고, 환자에게 돈을 모두 받는 비급여항목 진료를 늘려야 합니다.

대형병원들은 검진센터를 지어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차병원-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내과병원 같은 경우는 검진이 주가 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1차병원-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최근 들어 미용주사 등의 처방이 늘어났습니다. 박근혜도 맞아서 유명해졌죠.

1차병원-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미용, 성형 등을 주 진료과목으로 내세우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관련 과목 전공(피부과, 성형외과 등)이 아닌 의사들이 진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전공분야에서 환자 진료 및 치료에 힘써야할 의사들이, 미용 성형 등의 분야로 엄청나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긴 합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과도하게 심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재정이 그런 곳에 투자되는 만큼, 급여항목 분야에 투자되는 금액은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급여항목 분야는 대부분 환자의 생명, 중증환자치료에 깊숙히 연관된 분야입니다. 이 분야 투자가 줄어들게 되겠죠.

그리고 급여항목 진료 과목의 의사들이 미용 성형 분야로 이동하는만큼, 급여항목 진료 과목의 인력난과 과잉노동은 더 심해지게 됩니다.




* 비급여에 관하여

비급여는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비급여가 단순히 병원 수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학적인 필요에 의한 비급여 의료행위가 더 많습니다.

비급여 항목을 구분하기 국가가 인정하느냐 마느냐 기준으로 인정비급여와 비인정 비급여 (임의비급여)로 나뉩니다.

비인정 비급여는 설령 의학적인 필요에 의해 환자 치료에 요구되어 사용되었어도, 환자에게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설령 돈을 받았어도, 환자가 돈을 돌려달라하면 돌려줘야 합니다.

따라서 비인정 비급여는 병원에서 하기를 꺼려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인정 비급여는 국가에서 환자에게 100% 돈을 받아도 된다고 인정해주는 항목입니다. 이걸로는 적자를 메꾸고, 더 나아가 수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단 이것조차 '의학적인 필요와는 별개의' 심평원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서, 환자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합니다.

그리고 인정비급여 항목이 늘어나면 병원평가시 낮은 점수를 받게 되어 마음대로 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병원은 특정 분야의 비급여를 늘리려 합니다.

쉽게 일단 다음 네가지로 나누어보겠습니다.


-선택 비급여 : 미용, 성형, 비만진료, 라식 수술과 같이 생명과 크게 상관없이 개인의 선호로 진료를 보았을 때에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일반인들이 가장 흔하게 이해하고 있는 비급여의 개념.

-기준 비급여 : 급여로 결정이 되어 있으나,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정규적으로 시행하는 MRI검사나 초음파검사 등 급여항목으로 검사 횟수의 제한이 있어 추가적으로 검사, 혹은 시술을 시행할 때에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들.

-등재 비급여 : 상대적으로 비싼 항암요법 등 안전성과 유효성은 입증이 되었지만, 비싼 비용 때문에 급여처리되지 않고 비급여 처리되는 항목.

-그 밖의 비급여 : 특진료, 특실 이용, 간병인 이용 등

기준 비급여나 등재 비급여는 의학적인 필요에 의해 수행되는 의료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인정 비급여로 분류되어 돈을 못 받게될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로, 성모병원 백혈병 임의비급여 사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은 의학적인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할 뿐이지, 되도록이면 이런 분야 비급여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병원이 수익을 위해 확대하는 비급여는 선택비급여나 그밖의 비급여 분야 입니다.



6. 급여항목 진료 소실

1차병원-의원급 의료기관들은 아예 급여항목 진료를 하지 않기도 합니다.

찢어진 상처 입었을 때 근처 의원급 의료기관에 가보았자 봉합해주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병원급 응급실 가서 꿰매게 되는 경우가 많죠.

단순히 진료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그러기 위한 시설을 갖추어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치료비 받아봐야 봉합에 쓰인 소모품 값도 안 나오거든요.

수술부위 드레싱 같은 경우도, 위험부담에 비해 수가가 낮아서 수술 병원이 아닌 이상 하지 않습니다. (이건 의학적으로도 맞는 것이긴 합니다)

분야가 좀 다르긴 하지만, 치과의 사랑니 발치도 마찬가지입니다.


* 드레싱 이야기가 나온 김에 참고로...


2013년 당시 의료진 4명이 투입되어 30분간 진행된 수가 7570원의 드레싱 영상




7. 응급실, 중환자실 축소, 


앞서 말했듯이 병원이 의료행위를 통해서 적자를 줄이고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급여항목 진료를 줄이고, 환자에게 돈을 모두 받는 비급여항목 진료를 늘려야 합니다.

특히 중증환자일수록 급여항목 진료시 적자가 심합니다.

중증환자는 치료비가 비싸므로, 정부에서 그만큼 돈을 주기 싫어서 수가를 더 낮게 측정해놓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것입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에서도 응급실을 운영하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응급실은 대형병원 급에서나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만큼 응급환자들은 줄어든 응급실로 몰려서, 응급실은 더욱 혼잡해졌고 대기시간이 길어졌으며 의료의 질은 떨어졌습니다. 


(7) 의료 전달체계 붕괴

본래 의료시스템에는 의료전달체계라는 것이 있어서, 경증환자는 작은 병원에서 중증환자는 큰 병원에서 진료하는게 이상적입니다.

작은 병원은 경증환자를 진료하다가, 중증환자를 발견하면 선별해서 큰 병원으로 보내서 치료받게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중증환자 진료 및 치료는 경증환자의 경우보다 적자를 많이 보게 됩니다. 

큰 병원은 경증환자를 많이 보려 하게 되었지요.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병원은 더욱 혼잡해지고, 환자들의 대기시간은 더 길어졌습니다.

또한 이는 앞서 이야기한 의료인력의 과잉노동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의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아둥바둥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8. 건강보험 급여항목 진료과의 몰락

이 글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은 이미 몰락이 시작되었습니다.

흉부외과는 현재 수련하는 전공의나 배출되는 전문의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비뇨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언급하려니 너무 번잡해지네요. 그냥 한번에 가겠습니다.


죄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빅5나 수도권 병원조차 이 정도입니다. 지방은 훨씬 더 상황이 열악합니다.

의료계 종사자 입장에서는 이 전공의 숫자가 해당 과목의 몰락을 반영하는 결정적인 지표입니다만, 의료계 종사자 아닌 분들에게는 실감이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아래 뉴스를 보아주십시오.


지방에서 산부인과가 없어서 산모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실감이 가시나요?

앞으로는 지방에서 해당 과의 중증 환자가 발생하게되면

병원에 그것을 전공한 의사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 죽는 경우가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수술하는 과만이 아니라, 내과 등도 몰락이 시작될 겁니다.

내과는 그동안 박리다매식 진료와 건강검진으로 적자를 버티다가, 결국 못 견디고 얼마 전에 전공의 수련기간을 기존 4년에서 3년으로 바꾸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일시소생했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이기에, 결국 또 몰락하게 되겠죠.

내과까지 몰락이 시작되면, 문제는 훨씬 커집니다. 내과는 가장 많은 수의 환자를, 가장 다양한 분야의 환자를 진료하는 과이거든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이 항목의 상황은 단 한 마디면 끝나죠.

환자들이 치료 못 받아서 죽을 것입니다.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싶어도, 치료를 못 받아서 죽을 것입니다.




III. 결론

이 문제들은 그간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 하고 점차 누적되어 왔습니다. 

정부도 자신들의 지지도를 위해, 개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점점 문제는 커져서 이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급여항목 진료과가 몰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국 의료시스템이 붕괴할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기회는 이미 지났습니다. 의료시스템을 어떻게 고쳐볼 수 있는 이미 지났습니다. 

고치려하는 도중에 이미 붕괴는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붕괴는 현 정부의 의료정책으로 인해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모두 대비하여야 합니다.


* 다음 게시글은 한국 의료시스템의 붕괴가 어떻게 가속화될 것인지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펌 -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medical&no=20315&s_no=20315&page=1

(가독성을 위해 일정 부분은 볼드체를 했습니다만, 본문과의 차이점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