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고 gop근무는 엄청 빡시게 돌아갔습니다.

계속 되는 증가초소 근무와 언제 또 포격 도발을 할지 몰라 자유로 지하통로 쪽에서 잠을 청해 모두들 꼴이 많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전역자 만큼 인원이 보충되지 않아 모두 힘들었죠.

4월 쯤 제 무릎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 였죠.

제가 막내였기 때문에 순찰조를 계속 나가 (순찰조가 제일 많이 걸음 하루 2~30키로 정도) 어느 정도 통증은 있었지만 갑작스런 통증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름 최전방이라 대대에 보고를 올리면 의무관이 일주일 혹은 이주일 내에 소초에 방문합니다.

제 무릎을 보시곤 오스굿슐레이터 병이라는 소견을 받고 휴가를 잘라 (일병 정기) 외진을 받고 더이상 경계근무에 못들어간다는 의사소견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단 한명이던 비번이 사라지고 다음달 전역하는 선임들 때문에 근무에 투입되는 인원이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저는 철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원이 없는 관계로 대대장은 잔류를 원했고 초병 근무 대신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삼성테크윈이라는 군기업체에서 만든 tod 장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cctv병이죠.

저도 일병이라 맡게 되었습니다. 동기들과 헤어지는 것도 싫었고요.

Cctv병을 하고 제 근무 시간은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그리고 9시 기상하여 tod장비 교육 밑 작전에 맞게 브리핑 준비하기를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선임들은 이유 없이 갈구기 시작했고 저에게 빨래 등을 맡겼습니다. 뭐...일단 안에서 근무를 한다는게 편해서 그려려니 했지만 더욱 심해졌습니다.

빨래하기, 라면 끓여놓기, 잡다한 작업 등등 제 잘 시간은 줄어들었고 전반야 철수 시간이 되면 제가 자고있어도 깨우며 점점 더 힘들게 했습니다.

몸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니 안좋은 생각도 가졌습니다.

최전방에선 수류탄과 총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라는 유혹이 정말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해병2사단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습니다(바로 옆부대) .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사건사고가 많아 1년이었던 최전방 생활을 3개월 가량 더 했습니다. 그래도... 철수 하면 좀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주둔지 생활은 더 참담했습니다. 후임은 더 이상 제 말을 듣지 않고 남아있던 선임들도 아주 무시하거나 때리거나....

포상휴가? 반납했습니다

'니가 지금 병사들이랑 사이가 좋지 않으니 포상을 받았어도 얘들 주는게 그림이 좋지 않겠냐?' <-실제 간부가 말함

.......더 쓸 얘기는 많은데 참.....

오늘 병신연맹 사건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나 적어봐요.

왕따는 진짜..... 당하면 .....죽을거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