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씨(39)의 아버지는 또다시 작은 등산배낭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다. 배낭 안에는 우엉차가 담긴 보온병과 말린사과, OO일보가 차곡차곡 담겼다. 배낭에는 어머니가 직접 실로 꿰매준 태극기 패치 2개가 붙어 있다. 



아버지는 그것도 모자라 태극기 깃발 2개를 구해왔다. 김씨는 10개월된 아이를 돌보는 척하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딸이 들으란 듯이 큰 목소리를 냈다. “어디 감히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자기네 마음대로 쫓아내! 문재인도 대화합을 위해 지금이라도 물러나고….” 어머니가 다급하게 말리신다. 어머니 배모씨(67)는 “내가 당신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뭐라고 한 적이 있냐”며 “제발 집안에서는 큰소리 안 나게 얼른 나가라”고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태극기 부대원’이다. 그것도 열성당원이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집에서 하루종일 텔레비전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휴대전화 동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가짜뉴스를 보고’ 계신다. 김씨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했다는 가짜뉴스를 보며 흥분하고, 중국에 의해 강제북송된 탈북여성들이 북한당국에 의해 공개처형됐다는 가짜뉴스를 보며 “빨갱이들은 북한에 가야 한다”고 외쳤다. 주말이면 태극기 집회에 참가했다. 아버지는 지난 3월 1일에도, 3월 10일에도 광화문광장 등 집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녔다. 


김씨는 “아버지에게 태극기 집회는 일종의 신념인 것 같다”고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툭하면 “네가 아무리 철이 없다고 문재인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모든 대화가 기-승-전-박근혜 무죄석방이었다. 김씨가 “차라리 종편을 보시라”고 해도 그의 아버지는 “종편도 자기 살 길 찾는다고 정권에 아부나 하고 거짓뉴스만 내보낸다”며 보지 않았다.



김씨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너무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김씨에게 아버지는 가장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주말이면 항상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몸이 약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살림도 맡아하실 정도로 가정적인 분이셨다. 그러나 김씨의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움직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경상도 출신인 아버지와는 원래부터 정치성향이 맞지 않았지만 갈등을 빚을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이후 자꾸 밖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들어와 진실인 것처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맞불집회로 시작된 태극기 집회가 매주 광화문광장 등지에서 벌어진 지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부모와 이를 말리는 자식이 공존하는 가정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41)은 “결혼 후 독립해 살면서 부모님과 왕래가 많지는 않았다”면서 “지난 설 명절 때 고향을 찾았다가 방안에 ‘탄핵 무효’가 붙은 아버지의 모자를 보고 아버지가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사나흘에 한 번씩 이상한 동영상을 보내는 것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문자에는 박근혜 대통령 무죄사면 및 문재인 대통령 파면 주장부터 19대 대선 부정선거 등 각종 가짜뉴스들이 들어 있었다.



http://v.media.daum.net/v/2018031715443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