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트럼프가 북미회담을 돌연 취소한 것에 대해 뜬금없다는 평이 많습니다. 뭐 사실이기도 하구요.

천성이 마이페이스인 트럼프가 정확히 무슨 계산 하에 이런 강수를 뒀는지는 일단 알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쓴 편지의 내용을 보면 취소의 '계기'는 어느정도 각이 나옵니다.


사실 이 편지의 70%가량은 그냥 듣기 좋은 외교적 수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실질적인 핵심은 위에 밑줄 쳐둔 문장들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최근 발언에서 보여지는 거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토대로 판단컨데'

'당신은 핵무장을 논하지만 우리의 핵무장은 쓸 일이 없기를 신께 기원할 정도로 강하고 거대합니다'

트럼프가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23일자 발언을 봐야합니다.



이게 북한 외무성이 미국을 대상으로 23일에 공개한 발언입니다.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

즉 트럼프의 편지는 북한 외무성의 발언에 대한 상당히 직접적인 '답장'인 셈입니다.

'니가 그 태도를 견지하는 한 나는 만날 생각이 없고, 핵은 우리가 훨씬 세니 쓸데없이 깝치지 마라.'

대충 이런 메시지로 볼 수 있지요.


앞서 말했듯이 트럼프의 정확한 의중은 알 수 없습니다. 미 국무장관이 모르는데 우리가 알 방법은 없겠죠.

다만 드러난 부분만으로 평가해보자면 트럼프는 북한의 이중적 스탠스를 문제삼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주적이고, 또라이라는 점도 잘 알기 떄문에 북한의 수사에 별 의문을 품지 않게 됩니다마는,

사실 북한은 외교에 있어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과격하고 난폭한 언행을 남발하는 국가입니다.

타국 정상이나 중요인물을 대상으로 한 비난과 모욕은 이미 결례 축에도 못들 지경이고,

심지어 분위기가 좋을때도 심심하면 벼락이니, 불바다니 하며 협박성 언사를 일삼았지요.

이는 국제적으로 굉장히 드문, 사실 IS와 같은 미승인 무장집단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태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우리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는 이미지를 주어 외교에서 우위를 가져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도 대선 시절부터 막말로 굉장히 유명한 인물입니다만,

그는 북한과 대화를 시작한 이후에는 적대적인 언어를 철저히 배제해왔습니다.

즉 이번 회담 취소는 '니들도 국가라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라'라는 북한에 대한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언제든 적대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채로는 협상에 임하지 않겠다,

너희도 미국과 확실히 우호적으로 지내겠다는 commitment를 보여라, 라는 이야기죠.


실제로 편지를 자세히 뜯어보면 트럼프가 문제삼는 것은 오직 저 발언 하나입니다.

말미에도 '생각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라'라고 대놓고 적어놓았고,

중간에도 ''당신과 나 사이에는 대화가 싹트고 있었고, 결국에 중요한 것은 그 대화'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후 나온 인터뷰 발언에서도 '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수도 있고, 다른 날짜에 진행될 수도 있다'고 했지요.

'나는 여전히 너와 협상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표현만큼은 확실히 해 둔 셈입니다.


트럼프가 왜 북한의 전통(?)이나 다름없는 이중적 수사를 이 시점에서 문제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협상을 한 상태에서 북한 패기부릴때 자국 내에서 일어날 반발을 우려하는 것일수도 있겠고,

북한과 확고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자신의 치적으로 삼을 생각일수도 있겠고,

북한의 뒷배가 되는 세력에게 얘네 이상하게 부추기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수도 있겠죠.

다만 미국 대통령이 이정도로 상세하고 직접적으로 '외교적 수사'를 문제삼은 이상,

북한이 이 부분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다면 북미간 대화는 한동안 지리멸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