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세계는 넓고 사람은 많습니다. 길어봐야 100년을 넘길까 말까하는 인간이 이 땅에서 처음 문명이라는 것을 세우고 사회를 만들며 소통하고 갈등하고 섞이고 분리된지가 반만년이 넘은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의 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단위겠죠.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일부의 얘기만을 끌어와 역사를 논하는건 일종의 영웅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으니, 이에 이문열 평역 삼국지의 서장을 조금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티끌 자윽한 이 땅 일을 한바탕 긴 봄꿈이라 이를 수 있다면, 그 한바탕 꿈을 꾸미고 보태 얘기함 또한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때의 흐름은 다만 나아갈 뿐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새삼 지나간 날 스러진 삶을 돌이켜 길게 적어 나감도 마찬가지로 헛되이 값진 종이를 버려 남의 눈만 어지럽히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하되 꿈속에 있으면서 그게 꿈인 줄 어떻게 알며, 흐름 속에 함께 흐르며 어떻게 그 흐름을 느끼겠는가.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고, 흐름이 흐름인 줄 알려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 땅끝에 미치는 큰 앎과 하늘가에 이르는 높은 깨달음이 있어 더러 깨어나고 또 벗어나되, 그 같은 일이 어찌 여느 우리에게까지도 한결같을 수가 있으랴. 놀이에 빠져 해가 져야 돌아갈 집을 생각하는 어린아이 처럼, 티끌과 먼지 속을 어지러이 헤매다가 때가 와서야 놀람과 슬픔 속에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인 것을. 



1. 당신은 누구입니까?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때 여러분은 자신에 어떤 것을 먼저 소개하겠습니까? 십중팔구는 이름이겠죠. "저는 테무진입니다." "저는 이도입니다." 와 같이 말이죠. 이름은 남과 자신을 구분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동명이인을 만나면 신기해하는 이유도 이름이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이 이름을 가지게 된건 그다지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이름은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지칭하는 사람과 별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와는 이름과 지금 미국 대통령 사이에는 자연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 버락이라고 써있나요? 아니면 버락이라는 이름이 그의 외모를 나타내는 형용사인가요? 둘 다 아니죠.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름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생겨난, 완전히 인공적인 산물입니다.


학자들은 보통 80명에서 100명이 이름 없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로 봅니다. 이 규모가 보통 사람의 외모나 사회 내의 역할 등으로 모두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최대 규모라는 것이죠. 이것보다 더 크거나 작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학생이시라면 초중고를 같이 나온 친구를, 직장인이시라면 3년 이상 같이 근무한 동료를 데리고 한번 실험해봅시다. 스피드 퀴즈처럼 그 사람에 대해 설명해보고 몇명까지나 공감할 수 있나 보면 됩니다. 단, 현대인은 고대인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므로 기억하는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걸 감안해야 합니다.


각설하고, 이 규모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외모나 목소리같은 자연적 요소로 다른 사람과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러면 이제 서로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 시작하죠. 처음엔 행동이나 외모, 아니면 이뤄낸 업적에서 이름을 따 줍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름이 이런 식이죠.


▲ 아메리카 원주민 "웅크린 홯소".

이 "웅크린 황소"라는 이름은 이 사람이 암소의 귀를 두 손으로 잡고 쓰러뜨려서 얻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위와 같은 이름은 아직 사회가 작거나, 그 인물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특출난 점이 있다면 상당히 유효한 작명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출난 점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사회가 커지면 비슷한 이름이 양산되죠. 위와 같은 사례가 많았다면 "웅크린 황소" "드러누운 황소" "주저앉은 황소" 같은 이름이라고 할까요. 그렇기에 대안으로 점점 사회가 복잡해져 서로 하는 일이 달라지면 직업으로 이름을 붙여 주기 시작합니다. 독일인의 이름에 이게 가장 잘 남아있는데, 슈마허(신발공), 바우어(농부), 뮐러(풍차장인) 등등이 있겠네요.



▲ 레이서 슈마허는 옛날이었으면 신발 만드는 사람 이름이었죠


문제는 이 이름도 사회가 너무 커져 동종업계가 발생하면 구분이 안된다는거죠. 동네에 신발공이 일곱 있는데 일곱 명 다 이름이 슈마허에요. 이러면 구분이 되겠습니까? 이래서 나온게 어떤 뜻이 있는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쓰이는 건데, 멀리 갈 것도 없이 표의문자인 한자 문화권은 이름이 대부분 뜻을 따라 지어진 것이죠. 이 글을 보시는 여려분의 이름도 부모님이 좋은 뜻을 담은 이름을 지어주셨을 겁니다.



2. 당신의 주변 인물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 이제 각종 뜻 있는 이름 - 그러니까 서양으로 치자면 헤수스, 요한, 마리아, 잭, 마이클 등등등 - 을 쓰는걸로 분위기가 정착됐습니다. 문제는 이러면 또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디 사람인지, 누구와 가까운 사람인지 이름으로 전혀 구분이 안된다는거죠. 그래서 등장한게 성(姓)입니다.


자 그럼 이제 성은 뭐로 붙일까요? 하나는 내가 과거의 유명한 인물의 자손임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내 조상은 이렇게 위대하니 나도 그 혈통을 잇는 자로써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라는 주장이죠. 이 작명, 그러니까 작성법의 흔적은 러시아에 흔하게 남아있습니다. 러시아인들 이름을 보면 이반 이바노비치, 표트르 이사코비치처럼 ~비치라는 성이 많은데, 이는 ~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반같은 이름은 엄청 흔하니 이바노비치라고 다 같은 집안은 아니겠죠?



▲ 영화 <반지의 제왕> 중에서 갈라드리엘이 "스란두일의 아들" 레골라스라고 부르죠


하지만 이 방식은 내가 A의 자손이다라고 주장하는걸 상대가 인정해야한 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A라는 사람을 상대방이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위의 레골라스같은 예만 하더라도 레골라스의 아버지는 어둠숲의 왕이기에 그의 아들이라는건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이유이고, 이렇기 때문에 갈라드리엘이 "스란두일의 아들"임을 굳이 언급하면서 레골라스를 맞이하는 거죠. 현실의 예를 들자면 알프 아르슬란 셀주크 같은 11세기의 인물을 현대 대한민국에 끌어왔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이 셀주크의 후손이니 나를 존중해라! 라고 말하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셀주크가 누군데? 하는 말이 먼저 나오겠죠.


농업 기반의 고대~근대 사회에서는 평민들이 자신의 출신 지역을 떠날 일이 드물었기 떄문에 애초에 성이 필요 없었고, 외부와 접촉이 많은 지배층들이 성을 가지게 됩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누구의 후손 누구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기에는 다른 민족끼리 서로 공유하는 지식이 적으니 나온 방법이 지역의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브리엔느.

스스로를 Brienne of Tarth, 그러니까 "타스 사람 브리엔느"라고 소개하죠.


이런 성은 봉건제가 장기간 유지되어 특정 지역과 가문 간의 연관성이 높았던 서유럽권에서 흔하고, 상대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일찍 진행된 인도나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지역의 세력가라는 개념은 있어도 그 땅의 주인이라는 개념은 왕 혹은 천자에게만 있었으므로 매우 드물게 나타납니다. 외지에서 온 사람을 "부산댁" "대구댁" 등으로 칭하는 것도 이런 관습의 흔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 다음이 이름을 만들떄와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뜻을 가진 단어를 끌어다 이름으로 쓰는겁니다. 한국인의 성인 한자 이름은 표의 문자니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도 합스(거주인) + 부르크(성) = 성에 사는 사람 = 귀족 이라는 뜻이죠. 이렇게 성과 이름 모두는 그사람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에서 자연적인 연관은 전혀 없는 사회적인 것으로 변해 왔습니다.



3. 현대와 근대 이전의 가문


현대에는 가문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애초에 귀족이란게 없는 나라가 대다수니까 딱히 가문을 따질 이유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귀족들이 극히 소수인데다가 현실적으로는 평민들 위에 군림하는 입장이 아니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죠. 족보라는게 아직도 남아있는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도 딱히 우리 8대 조상이 어디에서 뭐하던 사람인지, 같은 본관의 6촌 친척 누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신경쓰지 않잖아요?



▲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남은 족보


하지만 혈통이 곧 세습의 이유를 뜻했던 근대까지는 가문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었습니다. 내가 왕의 아들이니까 다음 왕이다! 라는건 너무 흔하니까 넘어가더라도 나는 전전왕의 사촌의 아들이므로 왕이 될 자격이 있다 같은 수준의 주장이 실제 서양사에서 적당한 클레임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 건 현대 사회에선 전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혈통이 곧 정통성인 근대에는 당연한 일이었죠.


그러므로 근대까지의 중앙집권국가들의 역사는 통치자였던 가문의 역사일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명문가들의 역사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 부터는 역사 속의 명문가를 동서고금 가리지 않고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은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로 친숙한 분들이 많은 아일랜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