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숙종 9(1104)에 평장사(平章事) 임간(林幹)을 따라 동여진(東女眞)을 정벌하였는데,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부탁해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얻은 다음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되찾았다. 그런 뒤 교위(校尉) 준민(俊旻)·덕린(德麟)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한 명씩을 거꾸러뜨리자 적들이 약간 물러났다. 척준경이퇴각하는데 적 1백기()가추격해오자 또 다시 대상(大相) 인점(仁占)과 함께 적장 두 명을 사살했다. 적들이 전진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2.
여진군의 완강한 저항을 뚫지는 못했다. 공격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윤관은 용감하기로 이름난 장수 척준경(拓俊京, ?~1144)을 불렀다.
적진으로 들어간 척준경이 적장 여러 명을 죽이는 활약을 펼치자 덩달아 기세가 오른 고려군은 여진군을순식간에 궤멸시켜 버렸다.

 


3.
윤관과 오연총이 여진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목숨마저 위태로운지경에 이이른 적도 있었다. 이를 본 척준경은 아우 준신(俊臣)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결사대를 이끌고 수만의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군 10여명을 격살하고 윤관을 구출한다.

 


4.
적의 보병과 기병 2만명이 영주(英州)남쪽에 나타나 크게 외치며 도전하니 윤관과임언(林彦)이 상의하기를"적병은 다수이고 아군은 소수이니 대적할 길이 없다. 그저 방어만 하는 것이 상책이다" 라고 하니 척준경(拓俊京) "만일 출전하지 않고 있다가 적병은 날마다 증가되고 성안의 양식은 점점 없어지며 외부의 원조도 오지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하고 결사전에 지원하는 용사들을 인솔하고성 밖으로 나가 적들과 싸워 19명을 죽이니 적들이 패하여 북방으로 도망쳤다.

 


5.
왕자지(王字之) 부대를인솔하고 공험성(公嶮城)으로부터 도독부로 오는 도중에 적의추장 사현(史現)의 군대를 만나 싸우다가 패전하고 그가 타고있던 말까지 적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척준경(拓俊京)이 즉시 힘 센 군사를 데리고 구원하러 가서 적을 격파하고 적에게 빼앗겼던 말까지 탈환하여 가지고돌아왔다.

 


6.
어느성에 있을때 성주가"오랫동안 성을 지키느라고 군량은 거의 다 소비되어 가고 외부의 원조는 오지 않으니 장군께서 만약 성 밖으로 나가서 군사들을수집하여 가지고 돌아와서 구원하여 주지 않으면 성중의 군사들은 아마도 살아 남을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척준경(拓俊京)이병사의 헌 옷을 입고 밤 중에 줄에 매달려 성을 넘어 정주(定州)로돌아가서 대오를 정돈하고 통태진(通泰鎭), 자야등포(自也等浦)를 거쳐 길주(吉州)에 이르러 적과 만나 싸워서 크게 격파하니 성 안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었다.


[고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