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불쌍해. 꽃도 못 피어보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해보고…왜 저기 있어…."

24일 오후 안산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에 한 할머니의 통곡이 메아리쳤다. 손주가 세상을 뜬 지 일주일. 할머니는 아직도 손주가 너무 아깝고 아쉬워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았다. 

"우리 다운이가 너무 재능이 많아. 그 재능을 못 살리고 저기 있는 게 원통한 거야. 노래도 잘하지..노래 1등 되면 할머니 무릎 수술하고 허리 수술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맞벌이 부모를 둔 故이다운군(18)은 할머니 손에서 컸다. 5년 전 이군이 한참 예민한 사춘기 때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이군은 할머니의 헌신에 방황 한 번 안 하고 착하고 밝게 자랐다. 할머니 말씀이라면 말대답 없이 "네 걱정마세요" 했던 효자였다.

이군의 꿈은 가수였다. 어려서부터 노래하길 좋아해 자작곡도 여러 개 만들었다. 오디션프로그램에 나갔다 탈락했지만 다시 도전할 작정이었다.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칭찬이 자자했다. 할머니는 "이 노래 불러볼게 들어보세요" 했던 손자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이군은 이번 수학여행에 한껏 들떠 있었다. 이군의 한 살 아래 여동생(17)은 "오빠가 지갑 하나 사달라고 해서 제가 직접 지갑을 골라줬다"고 했다. 아버지는 큰맘먹고 이군 수학여행을 맞아 지갑과 가방, 신발을 사줬다. 이중 지갑만 이군 시신과 함께 돌아왔을 뿐 가방과 신발은 바다에 휩쓸려버렸다

지난 15일 수학여행 출발일, 이군은 밤 8시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이미 배가 떠났어야 할 시간, 이군은 '안개가 너무 끼었어요. 배가 뜰 지 안 뜰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안개가 너무 꼈음 가지 말고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일렀다. 결국 밤 9시쯤 배에 오른 이군은 신나서 아버지에게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날이 흐려서 잘 안 보인다. 사진도 많이 흔들렸네. 다운아 지갑 잘 챙겨."
"네." 

할머니는 그날 밤 꿈을 꿨다. "세탁기가 물속에 잠겨 있는데 세탁기에 다운이가 빠져있는 거야. 놀라서 내가 포데기에 막 업고 나왔어." 할머니는 놀라서 새벽 4시쯤 잠에서 깼다. 할머니의 꿈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불길한 마음에 애써 '그런 말씀 마시라'고 했다. 할머니가 본 세탁기는 '배'였다. 5시간 후 아버지는 아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배가 50도 기울었어요. 배가 가라앉아요." 이게 마지막이었다. 어떤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5분 뒤 뉴스속보가 나왔다. 가슴이 멎었다.

이군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평소 이군이 존경했던 故남윤철 선생님과 꼭 붙은 채였다. 사인은 저체온증. 당연히 살아올 것이라 굳게 믿었던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고 가슴이 무너졌다. "상처도 거의 없고 추워서 웅크린 채 자는 모습이었어요. 추워서 제대로 눈 감지도 못하고 얼어 죽은 거죠…."

이군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아버지가 사준 새 지갑이 깨끗한 채로 발견됐다. 이군의 신원을 밝혀준 지갑 속 주민등록증도 제주도로 떠나기 이틀 전에 발급된 '새것'이었다.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에, 주민등록증을 써보기도 전에, 이군은 하늘나라로 갔다.

"정말 곱게 기른 아이인데 너무 마음이 걸리고.. 내 가슴에서 언제 벗어날까 걱정이에요…"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사인이 저 체온증 그럼 어느정도 살아있었다는..

그 안에 공포와 구조 올거라는 희망과

오늘 아침도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