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 2010년 MB때 4대강 사업을 격렬히 반대했던 분입니다.
이후 변듣보 일당들로부터 말도 안되는 걸로 능욕을 당했죠. 
아래글은 읽어볼 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천재가 나오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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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IUS

얼마 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메달 수상자들이 발표되는 걸 보고 "아, 세상에는 이런 천재들이 다 있구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더군요.
한때 공부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천재와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그들이 머나먼 화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수학계에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천재들이 널려 있는 것 같더군요.
그 중 특히 나의 관심을 끈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Princeton대학교의 Charles Fefferman 교수입니다.
그는 11살에 대학에 입학했고 15살에는 (그에게는 외국어인) 독일어로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해석학이 전공인 그는 20살에 Princeton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Chicago대학교에 교수로 가 22세에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답니다.
(그것이 미국 대학 전체를 통틀어 최연소 정교수 기록이라고 합니다.)
24살에 모교인 Princeton대학교에 정교수로 취임해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그는 공교롭게도 나와 소띠 동갑이었습니다.
그가 Princeton대학교 정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 육군 상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필즈메달을 수상할 때가 1978년인데, 그때 나는 Princeton 경제학과의 대학원생으로서 살아남느냐 아니면 쫓겨나느냐의 게임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의 인생이 이다지도 엄청나게 다를 수 있었던 겁니다.

내가 말하는 천재는 단지 학문적 업적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재능을 발휘한 사람을 뜻합니다.
천재는 아니라 하더라도 불굴의 노력으로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올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천재들의 얘기가 훨씬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경제학계에도 몇 사람의 천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신의 천재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노벨상급의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올린 사람도 없으려니와 Fefferman과 같은 천재의 길을 걸은 사람은 더욱 더 없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경제학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우리나라 출신의 천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슬픈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수학이든 물리학이든 화학이든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불행히도 나는 내 인생에서 재미있어 공부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엄한 아버님에게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 혹은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공부를 한 적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공놀이 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고, TV를 보는 게 더욱 재미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늘 지적하는 바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죽여버리는 교육입니다.
건강한 지적 호기심을 배양하는 게 아니라, 맹목적인 암기위주 반복학습으로 지적 호기심을 아예 말살해 버리는 거죠.
더군다나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선행학습이라는 것은 한 술 더 떠 아예 공부에 대한 염증을 유발하는 교육방식입니다.
이런 척박한 지적 풍토에서 천재가 배출된다면 그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보다 더한 기적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재교육이니 뭐니 하고 떠들어 대는 건 잘합니다.
최근 들은 얘기인데 고등학생이 논문을 쓰면 수시전형에서 유리한 조건이 된다며요?
난 그 얘기 듣고 하늘을 향해 가가대소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타락상이 너무나 가소로워서 말이지요.

예전에 고등학생이 경제학원론 교과서 집필했다고 감수를 부탁하더군요.
나는 그 친구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학문적으로 대성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스펙용으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그런 책을 썼을 뿐 지적 호기심 때문에 그런 건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여건에서 고등학생이 논문을 쓴다는 건 더욱 가소로운 일이지요.
앞에서 말한 Fefferman이라든가 그 밖의 다른 천재들이 어린 나이에 쓴 논문을 생각하고 그런 입시제도를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그런 쓰레기 논문 쓸 시간에 아예 운동장에 나가 공차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학문의 장래를 위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교육정책임에 한 점 의문이 없습니다.

듣자하니 고등학생의 논문 작성이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듯 어린 나이부터 남을 속이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는 셈이지요.
그렇게 해서 일류라는 대학 가면 그 사람 인생에 대박이라도 터집니까?

소위 천재를 키운다는 영재교육이 실제로는 사기술을 가르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발 천재는커녕 정직한 사람만이라도 만들어내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성은 제쳐둔 채 스펙쌓기에 골몰하게 만드는 우리의 교육이 언제나 되어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최근 경기도 교육청에서 아침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춘 것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정책의 최대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조차 그만큼 공부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정말로 그 학생들이 공부가 재미있어 그런 생각을 할까요?

8시에 등교하느냐 아니면 9시에 등교하느냐의 문제도 역시 "용의자의 딜레마게임" (prisoner's dilemma game)의 기본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은 모두가 잠을 푹 자고 여유 있게 9시에 등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9시에 등교하는데 남은 8시에 등교해 더 많은 공부를 할까봐 두려워서 모두가 8시에 등교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게 되는 겁니다.

경기도 교육청의 결정은 이 바보 같은 균형상태를 깨고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줄 만한 결단입니다.
이런 현명한 결단이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학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슬프기 짝이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아침의 한 시간을 더 공부함으로써 학생들이 과연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걸 배울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무식한 반복학습에 매달려 스스로의 머리를 바보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게 되겠지요.

이 모든 것이 어리석은 기성세대의 탓입니다.
나는 어린 학생들을 맹목적인 공부의 덫에서 풀어주는 것이 우리 교육의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방정식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느라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공부로 지친 그들을 어루만져 건강한 몸과 마음의 소유자로 거듭 태어나게 만들어 주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바보가 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여유가 주어져야만 비로소 천재도 나올 수 있는 법입니다.
새벽에 집을 떠나 등교하고 하교 후에는 과외를 다섯 개, 열 개씩 돌아야 하는 분위기에서 천재는커녕 인생 그 자체를 염오하는 불행한 사람들만 만들어질 뿐입니다.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joonkoo-lee/story_b_5727414.html?utm_hp_ref=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