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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pk - 파죽.


3원칙. 1원칙을 좀 바꿨습니다.


1. 문화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있는경우 지적하고 넘어간다.

2. 태클, 지적은 감사하나, 논리에 맞게 해주십시오.

3. 편의상 반말을 쓰겠습니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l=212186

1화 서남아시아의 진실 보기. △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정성스레 작성한 제 4시간작분의 글이 캐시 읽기 오류로 인하여 마감 막바지에 증발해 버렸고, 솟구치는 자살충동을 느껴 빠르게 마포대교행 버스를 끊을까 생각했었지만, 여러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기대해주셔서 감동받았습니다. 또, 김성모 화백의 럭키짱을 보면서 강건마의 근성력에 감동을 받아 근성으로 작성하려 그럽니다.


이게 지금 서문인데 혹여나 마지막에 날아간다면 정말 안쓸지도 모릅니다 휴ㅡㅎ흐ㅡㅎ흐휴ㅠㅜ

물론 만일 여러분들이 이 글을 보고있다면 날아가지 않았겠죠. 그리고 전편들 링크는 안하고 다음편 링크만 할게요. 1화보기는 넣을게요.


아 제대로 기억도 안남...


그리고 전에 썼던 곳에는 잡다한 고대중국사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지금 것은 최대한 본편만 쓰려고 합니다. 진시황제에 관해서만 다룰게요. 중국사는 따로 서술할 예정입니다.



전란의 소용돌이. 전국시대.


중국 고대사는 실상, 상(商)이라는 국가로부터 시작해. 신화시대 이후 우임금이 세운 하나라가 그 전에 존재했다고 하나, 이는 근거가 발견되지 않은 구전이고, 정확히 인정받는 것은 상나라지.


이 상나라는 흔히들 은(殷)나라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잘못된 명칭이야. 청조 말엽에 상 왕조의 직접적인 유물과 유적들이 발굴되었고, 이로써 중국의 고대사 중, 찬란한 문명을 가졌던 상나라가 케케묵은 먼지층을 뚫고 나오게 돼.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국력을 가졌던 일본은 질투심이 생겨. 그래서 일본 사학자들이 옛사람들이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의 이름을 따 부르던, 은나라라는 속칭으로 전락시켜. 현대 역사계에서는 상나라를 인정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은나라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다고해.


이렇듯 은나라는 잘못된 명칭이니까 사용하지 않길 바래.


어쩄든 상나라가 몰락하고, 주(周)라는 고대국가가 왕조를 개막해. 이 주나라는 봉건제를 택했는데, 이는 서양의 영주제와 비슷해. 단지 큰 차이점이라면 주나라는 자기 친척이나 후손등의 얼라들한테 땅을 떼어줘서 적어도 5백여년은 정통왕조로써 어느정도 목소리를 냈다면, 서방의 영주제는 영주들에게 너무도 거대한 권력이 생겨버린 나머지(이들은 왕의 친인척이 아닌 공신들후손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이미 그 공신이 죽은 시점부터 내가 충성할 이유는 인섹된거지.) 왕권이 약화되고 중세시대의 영주각축전이 벌어지는 원인이 되지.


하지만 이 주나라도 잘 가는듯 싶다가, 춘추시대에 돌입하면서 왕권이 크게 약화돼. 왕권 약화의 이유는 서주가 침공을 받아 망하고 도읍을 낙양으로 천도해 동주를 세운 사건 때문이야. (이건 나중에 중국고대사에서 설명할게 ㅇㅇ) 춘추시대는 공자의 역사서인 '춘추' 로부터 이름을 따왔고, 힘있는 제후들이 주나라 왕실을 지키기 위해 남쪽의 초나라와 전쟁을 하는 정도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그리고 이 시점에서 왕권이 약해지고, 제후들이 충성보다는 자신이 힘을 길러 실질적인 패자가 되기를 원하지.


하지만 춘추시대까지만 해도, 아직까지 주 왕실의 신하라는 개념이 강했어. 힘이 아무리 강한 제후이고, 중원의 실질적 지배자라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주 왕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는 거야. 


예를 들자면, 아무리 힘이 강한 학생이라도 교실에서 선생님을 이길 수는 없잖아? (물론 요즘에는 시대가 많이 안좋아져 이런 사례들이 보이긴하지만, 대체적으로 말이야 ㅇㅇ) 선생님이 비쩍 마르고 약골에 골골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일진들이 대놓고 선생님을 폭행하거나 조롱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그저 실질적으로 반에 권력을 행사할 뿐이잖아. (많이 안좋은 일이지 ㅡㅡ) 


이 예와 같이, 춘추시대에는 아직까지 주 왕실에 충성하고 그 밑에서 누가 센가를 겨루는 시합이었다면, 전국시대에 돌입하면서는 얘기가 많이 달라져.


전국시대에 돌입하면서 부터는 선생이고 교장이고 나발이고 다없이, 학생들간에 거대한 싸움, 분탕질이 시작된거야. 주 왕실은 그냥 찐1따 약소국으로 축소되어버리고, 거대한 국가가 작은 국가를 삼키는 타이틀 매치가 시작되지. 이 매치의 주제는 이러했어.


[약육강식]


말 그대로 약하면 멸망해 병합당하고, 강하면 흡수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거지. 이로 인해서 중국은 약 2백여년간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천하강토가 피폐해지고, 피비린내와 타는내가 진동을 하는 생지옥으로 변해. 


춘추와 전국의 분기점 설명은 고대사부문 할 때 할게.


전국 칠웅. 일곱 강대국의 천하를 건 도박.


전국시대 말엽에 이르러서는, 대륙전역은 총 7개의 강대국들에 의해 분할이 돼. 그 강대국들은 아래와 같아.



조. 위. 한. 제. 연. 초. 진.


위의 지도와 같이, 중원전토는 7개의 강대국들에 의해 분할이 되어버렸고, 이 깡패들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나날이 지속되지. 누가누가 더 쎈가, 누가누가 더 깡패인가를 가리는 페스티벌이 시작된거야. 


10년안에 7차례의 전면전이 펼쳐지기도 했다니, 얼마나 끔찍한 세상인가를 알 수 있어.


전면전이 뭐냐구? 전쟁 아니냐구? 10년에 7차례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고??


전면전이란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 힘vs힘으로 부딪히는 단순무식하고도 거대한 전쟁이야. 현대사에서 그 예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한국전쟁이있어. 어린얘부터 노인까지 죽창들고 징집해다가 서로서로 꼴아박는 그정도 스케일의 전쟁이었다는거야.


당시 중국 전토에 분포하던 인구가 약 3천만으로 추산이 된대.


그런데 국가들의 병력규모를 보면, 한번 전쟁할때마다, 약 20만에서 80만까지의 병력이 동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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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백성들이 어떻게 잘 살았겠어? 그냥 하루하루가 끔찍하고, 언제 죽나 두려워하며 살던 시대였지.


피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꽃이 피다.


그렇게 중원이 고통받으며 불바다, 피바다가 되어가던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사상의 진수라 불리는 고대철학들이 단체로 싹터. 어찌보면 대체 이런 혼란기에 어떻게 그리 많은 철학이 싹틀까 싶었겠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


각국의 왕과 백성들은 저마다 고민이 있었지. 백성들은 전란을 어떻게 해야 끝내고 평화가 도래할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국왕들은 어떻게 하면, 더욱 강해지고, 더욱 효과적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했어. 그러다 보니 국왕들은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고, 인재를 갈망하게 되지.


제대로 된 통치술을 원하니, 그 당시 생각있던 사람들은 죄다 각국의 왕들 앞으로 모여들었지. 게다가 혼란한 시기이니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런 고민을 사상으로 발전시킨 이들이 있었고 말이야.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제자백가야.


이 제자백가는 많이들 어려워하는 부분일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간단히 설명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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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 흠... 지금 세상이 많이 어지럽다해. 이런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꽁쨔(공자)님의 맛있는 짜장면... 아니! 유교가 필요하다해. 우리 유교는 세상의 질서를 원한다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신하가 국왕께 충성하며, 마누라가 지아비를 내조하면, 그 누가 다툼을 일으키고, 싸우겠냐해. 그러니 우리 유꾜!는 사람들의 사상이 도덕적으로, 인덕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해.


(후일 이 유교철학은 무제때의 학자 동중서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2천년 중국사를 지배하게됨.)


묵가 : 아니올세. 저 꽁쨔빠놈들은 오늘도 팬클럽끼리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쳐대는구먼. 우리 묵가파에서는 (막가파아님)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를 주장한다네 허허. 유교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만 사랑을 베푼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일세. 왕이 거지를 사랑하며, 거지도 왕을 사랑해야, 제대로 된 평화가 오지 않겠나. 허허... 그런 의미에서 우리 묵가파는 군사적 지원으로 균형과 사랑을 전파한다네.


1533- 묵가묵가 1533- 묵가묵가 많은신청바랍니다!


(묵가는 모두에게 차별없는 박애를 주장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약한 나라에, 군사적 지원을 해 주었음. 지금의 UN비스무레한 존재.)


법가 : 하... X랄, 개X까는 소리들하고 자빠졌네; 그따구로 행복하고 도덕적으로 사람들이 살 수 있으면, 진작에 다 살아부렀지 와 지금까지 혼란이 계속된당가? 이건 느그들 생각이 100퍼센트 틀렸음을 반증하는것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 법가는 강력한 법치를 주장혀! 그냥 죄다 법제화해서! 잘하면 상을 주믄되구! 못하면 벌을 주믄 되는것이재! 대체 와 그리 자명한 진리를 모른당가? 법대로 허면, 나라도 강해지는디; 이것을 몰라부러야. 앙? 법대로혀! 법대로! 법원으로 가봐 임마!


저희 법가 법인에서는 민사, 형사 가리지 않고 승소하게 만들어드립니다. 1588- 법가법가.


도가 : 육시럴, 지럴 육갑떨고들있네. 그냥 자연이 모든것을 결정하고 우리는 우주의 순리에 맞게 평안하게 살면 되는것이야.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가 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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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러했어.


진 제국의 기틀을 세운 자. 상앙.


이러한 사상들이 전국에 전파되어 네가옳네 내가옳네 하고 디스전을 하는 형국에, 위나라에서 심상치 않은 재상감이 하나 태어나.


바로 상앙이었지. 이 상앙은 상ANG?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를거야. 하지만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구!


상앙은 어릴적 순자(법가가 아닌 유가였다고 하네요. 다만, 조금 과격한 강경파였고 그래서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유교의 이단자로 평가받았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시정했습니다.) 에게서 교육을받고, 법가사상이 진정한 사상이라고 믿게돼. 그 이후에는 자신의 꿈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 (레드불을. 미안)진나라를 찾아가지.


진나라는 당시 효공이 다스리고 있었어. 효공은 많은 인재들을 등용하고 있었지. 그러한 소식을 들은 상앙은 관리 면접에 응시했고 효공과 대면하게 돼.


첫번째 면접에서 그는 삼황오제의 덕치를 설명하며,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성군의 전직트리를 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스티븐 잡스와 같은 PPT실력으로 강연하지.


그러나 이 효공은 "덕치따위는 계집애나 줘버려! 난 힘, 정력, 그리고 파워가 좋다." 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스티븐 상앙의 프리젠테이션을 자장가로 삼아 잘 자버려. 그리고 상앙은 1차 면접에서 떨어지지.


하지만 상앙은 컴퍼니 CHIN(주) 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다시금 면접을 보게 돼.


두번째 면접에서 그는 하, 상, 주 대의 명군들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군자트리를 타서 만렙군자가 되고, 백성을 평안히 할 수 있는지 설명했어.


하지만 효공은 힘성애자였고 두번째 강연에서도 역으로 취침학 강의를 하시게 돼. 그리고 상앙은 당연히 퇴짜를 맞게 되지. 그러나 상앙은 포기하지 않고, 세개의 지식주머니중 마지막 비책을 들고 다시금 찾아가지.


세번째 면접에서 그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러 갔어. 효공은 "뭐 저딴놈이 다있냐... 한번 떨어졌으면 좀 옆에 조나라주식회사같은데로나 꺼지지; ㅡㅡ" 하는 마음으로 그의 세번째 강의를 듣게되지. 그런데 이게 왠걸? 이번에는 X나 재밌는거야! 자기가 추구하던 바와 딱 맞아!


세번째 강의에서 스티븐 상앙은 더욱 발전한 프리젠테이션기술과 함께, 어떻게 하면 진나라가 부국강병해져, 함곡관을 넘어 중원의 패자가 될지, 어떻게 하면 정복킹이 되어 중국을 통일할지, 어떻게 하면 힘쎄고 아름다운 정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강연하고 효공은 '부왁지림' 


당장에 상앙은 진나라의 재상으로 스카웃돼. 캬... PPT한번 잘했다고 재상이 되버려. 인생역전을 위해 우리도 프리젠테이션을 배우자 헿헿


상앙은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거대한 국토의 정사를 효공빽으로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위치에 오르자,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하고, 국가 전체에 법치를 심으려 노력해.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기둥옮기기 퀘스트 - (feat.법치) 가 있어


상앙이 집권하고 얼마 후,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의 대로 한복판에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나무기둥이 하나 놓이게 돼. 그리고는 그 위에 황금 십금이 든 주머니가 올려져 있었지. 옆에서 진의 관리가, 이 기둥을 불과 몇백보 밖의 함양성 성문에 가져다 놓으면, 십금을 줄 것이라고 했어.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홱홱 지나치거나, 관심을 보여도, "에라이, 어떤 얼간이가 저딴 구라에 혹하냐; 돈버는게 그렇게 쉬우면 너나나나 부자되겠다. 나랏님이 뻥을치시네." 정도의 관심이었어. 대부분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


그러자 상앙은 이 기둥퀘의 보상을 상향해. 10->100으로


백금이 되자 사람들은 술렁였지만, 아직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어. 괜시리 힘만빼고 금은 못받을 것이라 생각했거든. 그리고 점점 시세는 올라가 마침내 천금에 다다랐어.


마이크로소프트 주식과 같이 폭등한 가치를 지니게된 이 기둥을 옮기는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어.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은거지. 대부분, 기둥하나 옮긴다고 천금주면, 금방 부자되겠네 ㅉㅉ...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와중 그들이 말하는 얼간이가 하나 나타났고, 그냥 밑지는셈치자 하고 기둥을 성문 앞으로 옮겨. 그러자 관리는 그 기둥 위의 천금을 그에게 하사했고, 그 장정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지리면서 와우계정을 연장하러 뛰어나갔다고 해.


이 일이 있고 난 후 상앙은 진나라 백성의 머릿속에 '국법은 지켜지지 않는 때가 없을 것이다.' 라는 메세지를 암묵적으로 심게 되고, 본격적으로 법치주의를 실행해.


그가 가장 처음한 것은 바로 당시 특권층이었던, 진나라의 중신들과, 귀족, 왕족들의 특권과 부정하게 얻은 토지를 싸그리 몰수하는 거였지. 하루아침에 진나라의 가장 정점에 서있던 자들은 진나라의 평민층으로 추락해버리고, 그 거지떼들은 상앙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지. (상앙은 부자들의 특권을 걷고 추가징세를 했건만, 지금 우리나라는 2200년전 중국보다 못하게 양반님네들 재산을 더욱늘려주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고 있지. 하지만 그런걸 신경쓰면 네낏놈! 소리듣잖아? 조용히 하자.)상앙은 효공의 빽으로 개혁을 착착 추진해 나가고, 부자들로부터 걷은 돈으로 국고를 채워. 그 다음 국민들에게도 상벌을 엄히 지키게 하여, 세금을 탈세하는 국민이 없고, 길거리에 지갑이 떨어져 있어도 주인 외에는 주워가지도 않는 일들이 일어나게 됬다고 해. 


그리고 그 채운 국고로, 병력을 증원하고, 진나라는 일개 변방의 오랑캐정도에서 짱쎈 오랑캐의 위치로 군림하게 되지. 이미 이 당시부터 진나라는 전국 7웅 GDP의 5할 가량, 군사력의 50퍼 가량을 차지했어. 하지만 이 상앙의 절대권력도 결국, 효공이라는 뺵이 죽으면서 붕괴하게 되고 아까 칼갈던 거지들이 칼들고 쫓아오는 사태가 발생하게 돼.


하지만 상앙에게는 다른 나라로 탈출할 기회가 생겼고 틈을 타 빠르게 말타고 도망치지. 그렇게 달리길 수일, 진나라의 국경에 이르렀고,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한 주막집에서 쉬려고 들어가. 그런데 주막집 주인 曰


주막주인 : 손님 못 재웁니다.

상앙 : 왜요?

주막주인 : 재상이신 상군(상앙을 높여 부르는 말)께서, 신분증이 없는 자는 주막에 재우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법을 어기면 감옥에 끌려가 치도곤이 나게 되니 손님은 속히 꺼져주세요.



상앙 : 거 내가 누군지 알아요? 나 재상입니다. 재상 김상앙이에요! 거 주막주인 관등성명이 뭐요?


△이러한 말을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상앙은 결국 주막에서 할말없이 쫓겨나게 되고 처량히 걸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고 해.


"내 꾀에 내가 걸려버렸구나"


이후 상앙은 돚주하다가 잡혀서 거열형에 쳐해지고 말아.


하지만 상앙의 활약으로 진나라는 7웅중 가장 강대한 위치에 서게 되지.


소진과 장의의 천하를 건 한판승부.


이걸보면 이해가 2배빠를거야


이후, 진나라는 너무도 강대해져, 6국은 벌벌 떨게되지. 남은 6국은 서둘러 대비책을 강구했고, 이러던 와중에 혀놀림(당신들이 생각하는 그거 아니니까 조심)이 환상인 사내가 나타났지. 그는 바로 귀곡선생이 세운 귀곡대(전국시대의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2기 졸업생 소진이었어. 사실 이전에 여러 왕들로부터 빅엿을 먹지만, 그러한 과정이나 설득하는 과정등의 우화는 생략하도록 한다.


소진은 합종책이란 것을 주장했는데, 이는 무엇이었냐 하면,


진vs6국 의 형세를 취함이었고, 6국끼리 동맹을 맺어 진나라를 견제하려는 심산이었지. 이에 제후들은 동의했고, 소진은 6국의 재상(거의 UN사무총장급)의 위치를 차지하게 돼.


그러나 그 혀놀림환상이던 소진도 결국 후일, 6국의 동맹이 깨지면서 몰락하게 되고 결국은 반대파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지.


그리고 그와는 동문이자 같은 귀곡대출신인 장의는 진나라로 가 재상이 되었고, 소진이 죽은 이후에는

연횡책이란 것을 주장해.


이는


진-제

진-위

진-한

진-초

진-연

진-조 


이러한 형식으로 진나라와 6국이 각자 동맹을 맺고, 6국끼리 내분시켜 세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이었지. 역시나 이도 훌륭하게 성공을 거두나, 통일은 이루지 못했고, (소진의 합종책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진은 그 막강한 국력을 가지고도 이길 수 없었어.) 결국 장의도 죽으면서 전국시대는 정말 끝자락에 이르게 돼.


매의 눈을 가진 상인. 여불위.


한편 조나라에서는 매의 눈을 가졌다고 불렸고, 상업적 수완이 뛰어난 한 남자가 있었어. 그의 이름은 바로 여불위. 당대의 빌게이츠인 이 여게이츠는 뛰어난 상업수완과, 상품의 질을 귀신같이 알아맞추는 매의 눈으로(사륜안이었단 설이있어.) 막대한 부를 긁어모으게 되지. 그러나 사람은 부에만 만족하지는 못하나봐. 여불위도 마찬가지로 부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했고, 권력, 야망의 실현등을 이루고 싶어했어.


그러던 와중 이 매의 눈의 레이더망에 누군가가 포착돼. 바로 떨거지오브떨거지인 무쓸모킹 자초였지. 이 자초는 어떤 인물인지 간략히 설명할게.


전국시대의 외교방식중에는 인질교환이라는 것이 있었어. 하도 전란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인질들을 걸고서 전쟁을 방지하자는 일종의 외교책이었지. 그런데 강대국들은 약소국에 인질로 떨거지중의 떨거지인 하나쯤 죽어도 상관없는, 왕의 사돈의 팔촌의 이모의 고모할머니의 2대손의 옆집사는 사람의 앞집사는 사람의 누나의 남자친구 정도의 지위를 가진 사람을 보냈고, 그와는 반대로 약소국은 강대국에, 태자와 같은 거물들을 인질로 보냈지. 


당대의 진나라는 가장 막강한 왕국이었어. 그러니 어땠겠어? 자초는 그냥 죽든말든 상관없는 잡초와 같은 존재였던거지. 


하지만 여게이츠는 이 잡초가 이용가치가 있음을 간파했고, 잡초에게 돈과 비단옷등을 선물하며 환심을 산뒤, 당시 진나라의 가장 막강한 실권자였던 화양부인이라는 여성에게 선물공세를 해. 그리고는 잡초를 난초로 마케팅을 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마케팅전략이라 볼 수도 있는 여게이츠의 마케팅은 확실하게 성공하고 결국 잡초는 진의 왕위를 계승하게 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 게이츠가 자기와 관계를 맺었던 조희라는 첩을 잡초에게 한번도 손대지 않은 신품이라 속이고 정실로 들이게 해. 얼간이 잡초는 좋다구나하고 결혼을 떡 하게되지. 그리고 그녀는 잡초에게 주어진 날보다 살짝 전이었던 것 같은 때부터 임신을 하게 되지만, 잡초는 개의치 않아.


그리고 그 조희의 몸에서 태자인 정이 태어나지. (여기에 관해서는 설들이 분분하나 최근 사학계는 정이 여게이츠의 아들이라는 설이 유력해.)


진왕 정(政) 제위에 등극하다.


그리고 13살의 나이로 (초 6이야... 예나 지금이나 초딩은 무서워) 태자였던 정은 진나라의 국왕이 되지. 그러나 정은 어린나이에 집권한 만큼 실권을 거의 전부 여불위가 가져가버렸고, 장성할때까지 참정을 한다는 형식으로 권력을 좌지우지해. 이를 정은 못마땅하게 여기고.


하지만 이 매의눈을 가진 여게이츠는 매가 아닌 용의 새끼를 낳아놨었고, 정은 권력을 쟁탈한 뒤 여불위를 좌천시키고 귀양보내. 여불위는 자신의 세도가 끝났음을 직감하고 자살을 하지. 


그러나 이 진왕 정의 초기 치세는 매우 암울했어. 친아버지라는 소리가 나오는 자를 죽음에 몰아간 것도 모자라 어머니가 바람이 나면서 정말 빡치게 되지. 


당시 조희라 불렸던 왕의 어머니 '태후'는 색기가 강한 색종이같은 여자였어. 굉장히 색을 밝혀, 자초가 죽은뒤 여불위와도 다시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로. 그러던 도중에 여불위는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노대라는 이름의 (원래 노애가 본명인데 커서 노'大' 라네) 화류계 제왕을 불러다가 자기 대용으로 조희에게 던져줘. (이 노대는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존슨에 끼워 돌렸다고 하니 그 위엄이 가히 어느정도인지 짐작하기 힘들지.)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오래가면서 정신이 똘아버렸는지 노대와 조태후는 자신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게 보위를 주겠다는 당돌하고도 어이없는 역모계획을 꾸며.


그리고 들켜서 노대는 X짤리고 거열당하고, 황후는 서민으로 강등되게 돼.


그러자 진나라의 중신들은 발칵 뒤집혔지. 아무리 음탕한 일과 역모에 관련되어 있다고는 하나, 태후마마신데 말이야. 그래서 늙고도 늙은 노신들이 정에게 간언을 하지.


태후를 복위시키라고 말이야. 그러나 진왕이 노신들에게 선사한 것은 알겠소 라는 수긍이 아닌 죽임이었고, 그도 진왕 정 자신이 칼을 들고 죽였다고 해. 그렇게 노쇠한 대신들이 스무명쯤 계속 간언을 하다 죽어, 어전 뒤뜰의 계단에 쌓여 썩어갔어. 


그러던 와중 정은 한 노인에게서 충언을 듣게 돼. 이건 이때까지와 조금 달랐고, 정에게 크나큰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말이었지.


"백성은, 어미를 죽인자를 따르지 않습니다."


당장에 깨달은 정은 태후를 복위시키고, 중신들을 예로써 장례지내줬어. 그리고는 드디어 본격적인 통일 사업에 들어가게 되지.


진시황제. 역사를 가로지른 이름.


통일 과정은 생략할게. 진왕 정은 몽염,왕전,이사 등과 같은 인재들의 활약과, 진의 막강한 국력으로 통일을 이루어 나가기 시작하고, B.C 221년 드디어 마지막 제후국인 제나라가 자진 항복을 함으로써, 중국천하를 통일하고 천지에 진(秦)이라는 깃발만이 휘날리게 만들지. 

B.C 215년경 진나라의 강역이야.

(잘못된 지도여서 수정했습니다.

어마어마하지? 당시 있던 모든 국가들을 합병했다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야(물론 고조선은 버텨냄 ㅎㅎ 뻐큐머겅) 남으로는 남월부터 북으로는 흉노세력권까지 정복함으로써 천하를 통일했지.


진시황제는 후일 제나라의 태산지역을 순행하다가 죽고, 그 2세황제 호해와 조고가 권력을 잡으면서 나라가 무너지고, 제국이 무너지지.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업적.


진시황제는, 그저 폭군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아. 진시황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끔찍한 탄압과, 노역으로 백성들을 괴롭게 했으며 좋은점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같지? 그러나 그렇지 않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시황제의 모습이지. 폭군오브 폭군. 개새끼 오브 개새끼. 그러나 실상은 중국의 2천년 역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야.


그의 업적은 재평가되고 있고 대강 이러한 것들이 있지.


황제 칭호 제정과 중앙집권제의 정비, 법제화의 실현.


시황제가 국토를 통일하고 나서 가장 처음 명령한 것은 바로, 왕보다 위대한 칭호를 만들라는 것이었어. 그래서 학자들은 삼황오제를 짬뽕한 것보다 짱짱맨이다 해서 황제라는 칭호를 올리지. 그런데 이게 왜 업적이냐고? 


첫번째로 이 황제라는 단어는 중국의 2천년사에 한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며, 중국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해도 봤다고 될 만큼의 역사문화적 가치야.


두번째로는 이 황제라는 칭호가 황권을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황제라는 칭호아래 전중국이 규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지. 규합의 명분같은거야.


예를 들면 조국에 대한 애국심같은것을 추상적으로나마 구성한거지.


세번째는 걍 멋지잖아.


그리고 중앙집권제의 정비와 법제화는 정말 이루 말할데 없이 위대한 업적이야. 향후 중국의 2000년이 가능하게 한 일이니까.


중앙집권제를 정비하고 군현제를 실시함으로써 (군현제란 국가의 영토를 군, 현으로 쪼개서 지방관을 파견해 다스리는 통치제도를 말해. 우리나라도 현제 군현제야. Ex) 후쿠시마 현, 장흥군 ㅇㅇ) 국가가 효율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어. 향후 2천년의 역사동안 시황제의 군현제와 중앙집권제를 택하지 않은 국가는 없을정도니까. 가장 잘 마련된 정치 제도였거든. 그 거대한 강토를 다스리기에 최적이었고.


그리고 법제화도, 이후 중국국가들은 죄다 진시황대의 법전을 참고해 법을 만들었을정도의 체계화와 구체화가 이루어져있었어. 법치주의국가였다 보니까 말이지. 심지어 이때 진시황제가 만든 국가의 제도는 지금의 세계 여러국가들과 거의 흡사해. 가장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가있지.


군현제를 채택했으며, 법에 기반하여 국가가 돌아가. 얼마나 시황제가 대단했는지 알겠어?


장강 이남과 남월의 정복.


시황제가 통일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장강 남쪽과 남월은 아예 중국권이 아닌 다른 국가들이었고, 문화도 상대적으로 낙후되어있었어. 그러나 시황제가 저 아래쪽 강토까지 휩쓸어 통일하면서, 장강 남쪽이 발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고, 남월(지금의 베트남)을 중화권에 속하게 했지. 


중국의 무대가 화북에서 강남까지 확장된거야 ㅇㅇ.


이 정도로, 현 중국의 성들 강역과 거의 흡사하지. 내몽고와 동북 3성, 위구르, 티벳, 청해구를 제외하면 진시황대의 강역도가 나와. 한번 가서 봐봐. 자치구라고 써있는거 다 빼고, 청해구 빼고, 동북 3성 빼면 진시황대의 영토와 거의 똑같을거야. 지금의 중국을 정의하고 만든 사람이라 볼 수 있는거야.


도량형, 화폐, 문자, 수레바퀴 폭의 통일. 그리고 통일.


만일 니가 여자 친구와 해외여행을 갔는데, 한국돈을 들고왔어. 그럼 당장에 차이겠지? 또는, 베트남 여행을 왔는데, 베트남어가 깜깜이야.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다시 오는 비행기 타고 왔어. 그럼 역시나 차이겠지? (이렇게나마 여자친구가 있을수있으니 다행이야.) 


이와 같이 문자와 화폐의 다름은 중국을 하나의 중국이 아닌 여러개의 중국으로 분할시키는 가장 큰 요소였어. 중국은 주나라의 강역이었지만 그것은 허울뿐이었고, 실제로는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들의 집합이었던 거지. 그런데 이를 진시황제가 타파하고 하나로 통일해. 도량형부터 화폐까지. ㅇㅇ


수레바퀴 폭은 왜 통일하냐고? 각국의 수레폭이 달라서, 넓은 길을 가진나라에서는 좁은 길을 가진나라를 못달리니까 큰 불편들이 있었거든. 그래서 통일했어.


이와 같은 통일사업들은 영토의 통일뿐만아닌 문화적 통일을 이루어주었고, 비록 정치적 미숙함으로 진제국이 패망한 뒤에도 전한(漢)이 중국강토를 분열없이 통치하는데 큰 몫을 할 뿐만 아니라, 이후 2천년동안 통일제국들이 나타날 수 있는 원동력이었지. 문화가 다르면 합병이 힘들어. 쪽바리새끼들도 우리나라좀 어떻게 먹어볼려다가 홍범도 장군에게 호되게 싸맞았잖아. (누군간 이 대목에서 부들부들) 


그리고 통일이 있지. 수백년간 전란에 떨던 국민들에게서 죽음의 공포를 없애준 장본인이야.


중국을 최초로 서방에 알린 자.


이전까지 강대한 국력을 지니지 못해서, 서방에는 중국의 인식이 미비했으나, 진제국이 중원을 통일해 포쓰를 풍김으로써 저 멀리 서역오랑캐들까지도 중화의 위엄에 감명받고 CHINA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어원이 되지.


토목공사로 중국의 인프라를 다지다.


진시황제 = 무리한 토목공사 = 노역 = 백성의 고충 이렇게 표현이 될 정도로 진시황제는 토목공사 도착증이있었어. 하지만 이중 많은 공사들은 쓸모가 있었어. 그것도 2천년동안이나 두고두고 말이지.


1. 제국도로망.


이전까지는 황해의 산물이 함양에 도달하려면 몇십일, 몇백일이 걸렸어. 그래서 소금에 푹 절여 담근 젓갈이 아니면 운반이 불가했지. 그러나 진시황제가 제국을 통일한 이후 도로망을 정비하고, 국도라는 거대한 길을 함양 주위 동서남북 100리씩 내서 중국의 운송역사는 크게 변화했어. 


이 도로망은 고대사에서 거대한 의미를 가져. 로마제국이 그토록 신속히 지중해 정복을 이루고, 갈리아 정복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길' 덕분이야. 그 길들로 몇십일도 안되서 거대한 공성기와 투석기들이 갈리아의 요새들 앞에 등장해버리니 갈리아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빡치고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지. 물자의 운송, 군사적 목적, 경제적 활성화, 문화적 교류등에 도로망은 없어선 안될 필수 사업이었고, 로마도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는 아피아 가도를 이용해 그정도의 융성을 이뤘지.


도로는 필수였고 시황제는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어. 


2. 병마용갱.


이는 당시로써는 업적이라고 보기 힘들어. 자기 무덤만든거였으니까.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짱깨들에게 달러를 퍼주는 관광명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기열전의 기록대로 조형이 되어있다면, 진시황릉과 병마용갱이 드러나는 순간, 이집트의 대피라미드는 껌으로 치부할만한 문화유산이 인류의 역사를 재조명할것이라는거야. 심지어 진시황은 죽으면서 수십만개의 기록자료와 수만개의 부장품까지 들고 들어갔기 때문에 진시황릉을 제대로 발굴하면 2천년 전 중국을 손바닥 보듯 훤히 볼 수 있다는거지.


3. 만리장성 축조.


(사진은 서울사람들은 모른다는 남한산성... 미안합니다 ㅠ)


만리장성에서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아. 왜냐면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은 사람들 끌어가다가 끄앙쥭금 하게 한 끔찍한 무덤이고, 또한 쓸모도 없이 거대하기만한 짱깨 중국집 트레이드마크같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리장성을 그저 중국집 이름에 쓸 소재나 만들어주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고 중국을 지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하지만 만리장성에 대해 여러분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두가지 있어.


3-1. 만리장성은 만리를 다 쌓은것이 아닌 성벽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만리장성은 진시황대에 전부다 축조한 게 아냐. 그 전까지 지금 만리장성의 절반은 존재했던 연, 조, 진나라의 북방장성을 다시금 이은 사업일 뿐이야. 이미 있었던 성들을 잇는 작업이었지, 처음부터 끝까지 짓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어.


3-2. 만리장성은 2천년간 중국 최후의 보루이자, 가장 위대한 방어선이었다.


만리장성은 쓸모가 없다? (X) 만리장성은 중국을 지켰다! (O)

 

만리장성은 중국 최대의 국경방어시설로써, 북방민족이 중원에 쳐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던 최고의 방책이자, 중원이 북방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야.


그 사례들을 들어볼까?


1) 전한 시기, 흉노족의 세력이 강성해져 중원으로 남하하려 했으나, 만리장성이라는 효과적인 방어책에 부딪혀, 그저 소규모 약탈과 국지전을 하고, 조공을 받는것으로 흉노가 중원 침입을 포기함.


2)위진남북조시대중 서진(晉)은, 북에서 수많은 유목 강대국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만리장성덕에 안전했으나, 만리장성이 어쩌다 돌파된 이후로는 화북을 뺏기고 중국 남부에 찌그러져 동진을 세움. 그리고 유목민족들은 5호 16국 시대를 개막.


3)수, 당나라 시기에 돌궐이 강대해져, 중원을 넘보고 당나라, 수나라와 수십번 교전했으나, 결국 만리장성덕에 중원을 효과적으로 정벌하지 못했던 돌궐은 내분으로 당나라에 의해 패망.


4)북송(宋)시기, 송나라는 거란의 제국 요나라와 대치했으나, 만리장성이라는 효과적인 방어책은 또다시 중원을 지켜줬고, 평화책으로 일관이 가능했음.


5)북송(宋)시기, 송나라는 여진족의 금나라와 만리장성을 두고 대치했으나 결국 여진이 만리장성이남의 땅을 얻고 돌파해옴으로써, 또다시 중원을 여진족에게 빼앗기고 남송(宋)이 되어 중국 남부에 짜짐.


6)금(金)나라 시기, 몽고족이 미친듯 강성해져 금을 침략하는 것을, 만리장성을 통해 방어했고, 만리장성에 가로막혀 칭기즈칸은 진군을 멈춤.


그러나 칭기즈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어 ㅇㅇ 존나 천재였지 그래서 이때까지 북방민족들이 잘 생각 못했던걸 생각해냄 ㅇㅇ



걍 돌았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X발 존나 똑똑함 진짜


천잰데?


어쨌든 이렇게 무방비하게 쳐맞긴 했으나 산해관(만리장성 최고의 요새)과 만리장성은 칭기즈칸에게도 뚫기 불가능는 것을 알 수있어.


7) 명.청교체기, 명나라가 멸망한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산해관을 지키던 장수 오삼계가 투항하여, 산해관이 열렸고 청나라의 청글링들이 미친듯이 러쉬헀기 때문이었어.


자그마치 2천년 가까이 중국의 국토를 방위한 세계 최대의 국경방어시설 만리장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 중국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아까 만리성에 짜장면시켜먹었는뎋ㅎ)


물론 그렇다고 역사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진시황이 착한 천사로 돌변할 수는 없어, 많은 정치적 실책 (분서갱유, 아방궁 축조, 무리한 토목공사 등)과 무리한 정책들로 인해서 진제국의 분열을 가져오는 원인을 창출해냈지만, 그럼에도 업적이 빛난다는 것이지. 


게다가 한가지 더 말해보자면, 이집트의 파라오는 수십만의 국민을 동원해다가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키루스대제는 페르시아를 건국하기 위해 수십만의 생명을 죽였어. 위대한 황제라 추앙받는 아우구스투스도 제정을 위해서 수만의 생명을 죽였고.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은 성군이고 진시황은 폭군이라 생각하지. 이는 진시황의 잘못이 크지만, 진시황이 평가절하된 부분도 굉장히 커. 그 이유는 지금 설명해줄게.


서구 중심의 사관과, 유교의 2천년 사상지배.


『알렉산더 대왕은 영웅중의 영웅이지?


진시황은 폭군중의 폭군이구...


그렇다면 한번 둘을 비교해 보는게 어때??


 

 알렉산더 대왕

 진시황제

 전쟁으로 인한 죽음

엄청남.

엄청남. 

 문화적 통일

하다보니 얼떨결에 헬레니즘. 

중국의 통일. 

 사회기반시설

파괴함. 

건설함. 

 폭정

있다는 설도 제기 됨.

있음. 

 전쟁.

일으킴 

종식시킴 

 정치신념

없음. 그냥 정복광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법치로써 천하에 평안을 가져오는 것. 



이 표를 누가봐도 오른쪽의 업적이 더 엄청나지.


알렉산더대왕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정복, 전쟁광이었고


시황제는 전쟁을 종식시켰으며, 국가를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릴지 궁리했어. (물론 법치의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말이야.)


그런데 왜 우리는 알렉산더는 영웅으로 모시면서 진시황은 그냥 폭군취급일까? 이는, 서구중심의 사관에서도 어느정도 기여했다고 보고』(『』이 표시로 둘러쌓인 단락은 단순히 제가 생각하는 제 의견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통치' 가 아닌 '정복'에 우선을 기헀고, 진시황제는 '통치'에 우선을 기했다. 라고 생각하는 제 의견이 베이스이니 이 글은 의견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시황을 부각시키기위해 상대적으로 알렉산더 대왕을 저평가했습니다. 유의해 주세요.)



,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유가의 역사가들때문이라고 생각해.


진시황이 법치를 위해 유가를 탄압했고, 사상을 법가로 단일화하려 했어. 그러다보니 향후 2천년간 중국정권을 장악한 유가들 입장에서는 진시황이 굉장히 개새끼였겠지. 


그러다 보니 유가들의 개인감정이 들어가 진시황의 업적이 가려지고, 극도의 폭군으로 묘사됬다는 이야기가 제기되고들 있어.


게다가 또한가지가 있는데, 바로 왕조의 정당성을 위해 그 전 왕조의 왕을 폭군으로 격하시키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야. 의자왕도 요즘 재조명받고 있잖아? 그와 비슷한 원리일꺼라 추측하는거지.


아무튼 진시황은 요즘들어서 재조명되는 추세이고, 단지 폭군이 아닌, 중국의 통일과 여러 위업들을 이룩하고 2천년 중국사의 기틀과, 중국민족을 만든 장본인이라 볼 수 있어.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은 이유도 우리는 흔히들, 그의 개인적인 영생욕심에서 비롯됬다고 알고 있으나, 그는 사실 자신의 이상인 진제국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서 죽기가 싫었다고해. 개인적인 불사의 욕심이 아닌, 자신의 정치상을 국가에 반영하기 위해서.(물론 오래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리고 이후 호해라는 개망나니차반이 정권을 잡고 조고에게 권력을 위임한 뒤 개망나니짓을 해서 그렇지, 정작 진시황의 유언에 따라 황제 0순위였던 그의 첫째이자 태자였던 부소는, 진시황이 닦아놓은 국가의 기틀을 바탕으로 성군이 될 수도 있었다고 평가하는, 정말 민생을 사랑했던 사람이야. 성품도 곱구. 시황제에게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가혹한 법을 철폐하고 융통성 있이 정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했다가 변방으로 귀양까지 간 사람일 정도로.

만일 시황제의 유언대로 부소에게 제위가 물려졌다면, 조선왕조의 태종-> 세종대와 같이 선왕이 만든 국기기틀을 바탕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덕치를 펼쳐 천하에 안정을 가져 올 수도 있었다고 봐. 그러나 우리의 조고와 이사는 그러한 기대는 바나나킥으로 날려버리고 나라를 말아먹게되지.


만일 부소에게 제위가 물려졌다면 어땠을까?


한(漢)족, 한(漢)문이 아닌


진(秦)족, 진(秦)문이 생길수도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만일이란 없다지만, 그래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할 것 같아.



글쓰느라 힘들었으니 하스스톤 일일퀘깨러 가야겠다. 


봐줘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유익한 글로 또 찾아올게. 


P.S 힘내라고 해준 여러분 고마워요. (지도가 잘못되서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백기를 왕전으로 수정했습니다.)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query=view&p=1&my=&category=&sort=PID&orderby=&where=&name=&subject=&content=&keyword=&sterm=&iskin=lol&mskin=&l=214641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 이야기 5 (특별편-1) 링크




http://blog.naver.com/kimcs4675862


블로그인데 전부 저장해놨으니 스크랩하실분 들리세요 ㅎㅎ


퍼가는건 맘대로. 출처만 남겨줘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