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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비노기 영웅전 노래입니다.

 

노래들이 한결같이 멋있고 좋네요. 근데 게임은 왜... 재호성님이... 하.... 넥슨의 전설이라죠. 게임의 에너지를 순식간에 소모시키도 도주하시는.

 

 

conqueror. 정복자.

 

아주 먼 옛날.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부터,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발달시켜, 21세기의 과학문명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왔어.

 

인류 문명사 3천년중. 150여년이 평화기간. 남은 기간은 전쟁이 천하를 휩쓴 시대였어.

 

무엇이 인간을 이토록 미치게 했을까?

 

과연 전쟁은 미친 짓일까? 우선 그 전에 한 가지를 생각해보자.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뭐지?

 

'물, 불, 음식, 거주지' 등 많을꺼야. 그렇다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찾지? 바로 지구야. 매우 먼 옛날에는 광합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식물성 플랑크톤들만 살았어. 그러다가 어느 영특한 플랑크톤이 생각을 해 보니까, 식물성 플랑크톤을 잡아먹으면 더 수월하게 살 수 있네? 대충 이러한 이유로 동물성 플랑크톤이 나타나. 

 

그러자 식물성 플랑크톤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덩치를 키우거나 무리를 이루고, 동물성 플랑크톤은 그놈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발전하지.

 

이게 인류가 출현하기 전까지 지구의 보편적인 역사야.

 

풀먹는 놈들은 무리를 이루거나 덩치를 키워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고, 포식자들은 그놈들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햇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환경과 여러 조건들에 더 적합하게 변하는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 바로 진화였고.

 

위에서 왜 조건들을 질문했냐고? 이러한 조건들은 생명의 궁극적 목적인 번식과 생존을 하기 위해서 유리함을 더해주거든. 모든 생명은 번식과 생존을 위해 진화해왔다고 봐도 무방해. 강한놈 위에는 더 강한놈이 있으니 그놈을 이기기 위해 계속 진화해 나가는 거지. 

 

그러나 인류라는 괴이하게 생긴 원숭이비스무레한 잡것들이 나타나면서 기존의 법칙이 크게 뒤바뀌어.

 

기존까지는, 무리를 이루거나, 뿔을 달거나, 갑피를 입거나, 덩치를 키우면 그만이었지만, 이녀석들은 이런 모든 조건들을 엿먹이고 사냥을 하는 영리한 녀석들이었으니까. 이녀석들에 대해 마땅한 진화를 하기도 전에, 이 영특한 종족은 거의 모든 개체를 말살시키고,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도록 노선을 변경시켰어. 물론 이러한 진화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 종들도 많고, 그러한 점들은 생존에 매우 불리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이것을 '보호' 라는 선에서 대충 해결했어.

 

도도새를 알고 있을꺼야. 이 도도새는 적합히 진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든 사람들이 쳐들어오니 당연히 멸종해버린 케이스였지. 진화는 굉장히 중요했어. 그리고 이것은 역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 

 

처음 말했던 조건들은, 인류에게도 필요했지. 살고 '번식'해야 했으니까 (그런면에서 누군가는 생명이 아닌지도 몰라. 몇몇 뜨끔하는 사람이 있을꺼야. (뜨끔)) 그래서 인류는 더 강한 힘과 기술을 원하게 돼. 그러다 보니 네땅 내땅의 기준이 생겼고, 내 땅을 더 넓히고 싶다면, 네 땅을 뺏는 것이 방도였지. 이래서 원시적인 형태의 정복전쟁이 생겨났어. 

 

더 많은 힘과, 더 많은 기술, 더 많은 인구, 더 많은 땅은 모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요소였지. 

 

인간들이 벌인 최초의 전쟁에 대한 기록은, 이집트의 정복킹 투트모스 3세의 통치기에 쓰여. 대략 3400여년 전,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의 제위를 투트모스 3세가 이어받으면서, 그는 신왕국 제 18왕조의 파라오가 되었고, 막강한 이집트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나일강 유역과 그 주변을 통합해나가. 고대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투트모스 3세는 굉장한 영토를 이룩했고 전쟁왕이라 불렸지.

 

이러한 전쟁들은 점점 더 고차원으로 변해가. 

 

애초에 땅뺏어서 거기서 농사짓고 사람 많이 늘려서 더 쎄지려는 목적이었던 전쟁은, 역사가 흐르면서 복수전, 명분상의 전쟁, 국력 과시를 위한 전쟁, 국가 시장 확대를 위한 전쟁등으로 발전하였고, 수십, 수백, 수만가지의 이해관계가 뒤얽혀서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 돼.

 

예전에 전쟁을 결정하고, 생각하며, 주도하는 것이 국왕이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범위는 점점 넓어져 결국에 가서는, 상인, 종교인등까지도 전쟁에 끼어들게 되지.

 

그래서 나는 인류역사의 9할을 채우다시피 한 이 전쟁과 정복에 대해 다뤄볼까 해. 

 

어떤 나라에게는 공포이자 악마였으나, 또 어떤 나라에서는 성군이자 정복왕으로 불리는 그들의 진실을 알아보자.

 

-투트모스 3세. 최초의 전쟁을 벌인자.

 

위에서도 말했듯이, 투트모스 3세는 세계 최초로 기록된 전쟁을 벌인 인물이며, 신왕국시대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아. 그가 이룩한 이집트의 거대한 강역은 이집트를 초강대국으로 만들어주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훗날 람세스 2세와 같은 이집트사 최고의 영웅들이 등장하지.

 

그는 북으로는 레반트(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지대라 불리는.) 서부지역에서부터, 남으로는 누비아까지 정벌했어. 

 

기원전 1400년에 그가 정복한 강역이야.

 

 

별로 넓지 않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이때는 기원전 1400년이었고, 철기가 보급되기 훨씬 전의 일이야. 이 시대에 이정도의 거대한 영토를 이룩했고, 통치했다는 건 정말 경악할만한 일이지. 


3400년전, 청동기가 완전보급되지도 않은 시대에 석기와 청동기만으로 저 넓은 강역을 이룩한 사람이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 바빌로니아의 건설자.

 

기원전 604년. 바빌로니아는 새로운 왕을 맞이하게 돼. 바로 네부카드네자르 2세였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그는 바로, 성경에 출현하는, 광인이 된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야.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로니아의 정복왕으로써, 바빌로니아의 황금기를 이룩했고, 유다왕국을 정복했고 이집트와, 메디아, 앗시리아 사이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어. (이집트와 전쟁을 벌여 이겼지.) 심지어 공중정원을 건설한 이이기도 하지. 

 

(플라잉 가든은 사학자들의 추측으로는, 실질적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높아서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일 거래. 바빌로니아인들이 자기부상기술력을 개발해서 정원을 드높게 띄우기라도 했겠어?)

 

이 공중정원은 메디아 출신의 자기 왕비를 위해 지어졌는데, 여기엔 이야기가 있어. 메디아의 수도는 서늘한 지역이야. (중동에서는) 그리고 왕비는 더위를 많이 탔지.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자신의 왕비가 덥다고 말하자 왕비를 위해 공중정원을 축조하라 명해. 정원을 드높게 지어, 높은 곳의 추운 공기를 맞을 수 있게 하라는 명이었지. (덥다라는게 그의미가 아니었다면..? 네부카드네자르 멍청이...) 

 

문헌들에 의하면 공중정원에는 분수와, 수로들이 있어 뜨거운 열기를 식힌다 하였는데, 이 높은 공중정원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 정도의 관개시설을 가진 나라였다는 거야. 바빌로니아는. 어쨌든 이 거대한 제국 바빌로니아는, 이후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가장 강대한 세력을 떨쳤어.

 

그 유명한 바벨탑도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세워졌을 정도니까.

 

이것은 전성기의 모습이 아니야. 지금의 이라크 등지에 세력을 가졌던 바빌로니아는 초록색. 이집트는 말 안해도 알테고, 파란색은 리디아 왕국, 노란색은 메디아 왕국이야. (죄송합니다. 이 부분의 사진은 유실되었습니다. 유의해주시고, 혹시 지도를 보고 싶으신 분은 블로그에 들려주세용~)

 

당시 문명의 집합이자, 산물의 중심이었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펼쳐진 도시국가들을 정복했고 서로는 지중해부터 동으로는 페르시아 만까지 다다른 영토를 지녔지.

 

그러나 곧 이 거대한 제국들의 판도를 뒤집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해.

 

-키루스 대제. 종교적 관용의 창시자.

 

이 분은 서남아시아 편에서 서술했듯이, 페르시아 제국의 창시자야. 세계 최초로 종교적 관용을 선포했고, 이분에 얽힌 비운의 이야기는 1편에도 나와있지. 페르샤의 내용처럼 아버지는 평민이었고, 아들은 왕의 자식이어서 결국 키루스가 메디아의 왕자로 인정될때, 그를 친자식처럼 키워준 아버지는 죽임을 당해. 역모죄로. 비련한 운명의 소유자인 키루스 대제는, 그 울분의 폭발인지는 모르지만 포풍저그! 키루스가 간닷! 처럼 거대했던 메디아 제국을 쓰러뜨리고, 바빌로니아라는 거인을 무너뜨렸으며, 서로는 리디아의 영토였던 터키 서부지방과 이집트로부터 동으로는 인더스강에 이르기까지의 제국을 창시하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남부의 섬들까지도 페르시아의 식민지가 되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중의 하나를 세워. 이 키루스 대제는 앞에도 말했듯이 세계 최초의 종교적 관용을 선포했는데, 이는 다른 종교를 믿고있던 피정복민들을 융합하기 위한 시도였고, 보기 좋게 성공했어. 피정복민들은 정복국가인 페르시아에 적대감을 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이는 페르시아가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그러나 키루스 대제 사후 그 후계자들이 그리스 뺨따구를 못쳐서 안달하게 되고 결국 그리스와의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쇠한 국력은 마케도니아의 새로운 출현자의 서막을 알렸지.

 

-소아시아를 정복한 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서양의 전설적인 인물로써 통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 당시 가장 강대했었던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그 영토를 모조리 흡수함으로써, 서로는 마케도니아와 이집트, 동으로는 인더스 유역까지 정복했지. 그의 유명한 고디우스의 매듭 일화나 부케팔루스 잠재우기 일화는 알고 있을꺼야.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었고, 굉장히 두뇌가 영리한 사람이었지. 

 

다리우스 대왕을 무너뜨릴때 생각한 것이 바로, 이후 서양의 2천년 전쟁사에 영향을 끼친 우회전술이었어. 알렉산더는 송곳모양의 진을 짜 곧바로 다리우스를 향해 돌격했고, 이 전술은 이후 수십번의 전설적인 회전들에서 등장하게 되지. 

 

다리우스를 잡자, 그 거대한 거인 페르시아는 정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어. 이는 페르시아가 절대군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기 때문에 그래. 마치 애플과 같다고 보면 되는데, 절대적인 능력자인 스티븐 잡스대왕께서 통치할때는 잘 굴러가던 국가가 왜 그 이후 로는 삐걱거리는지를 생각해보면 될거야.

 

통치자가 없어지면 믿고 의지할 구심점이 사라지고, 이는 곧 제국의 쾌속붕괴를 야기하게 돼. 이를 잘 알았던 알렉산더는 대장부터 잡았고, 페르시아제국은 그대로 알렉산더의 주식으로 인수인계됬지.

 

알렉산더는 말년에 가서 과도한 정복욕으로 인도를 침공하다가 우리의 코끼리카레성님들에게 요가를 맞고 실패하게되지만, 미친듯이 넓은 강역을 이룩했고, 전쟁에 있어서는 동양의 한신, 제갈량과 필적하는 지략가였어.

 

 

그가 이룩한 강역이야. 

 

그러나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탄탄한 통치기반을. 알렉산더가 죽으며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자, 당장에 유력한 장군들은 내분을 일으키고 결국 그 탄탄했던 제국은 수십갈래로 쪼개져버려. 그리고 이 기회를 노린 그들이 존재했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수십 수백번은 들은,

 

(참고하시라면, 중간의 진시황제는 따로 편을 만들었었으므로 생략하고, 한신은 중국강토를 통일하는데 그쳤기에 생략합니다.)

 

-Roman Empire. 천년의 영광

 

로마제국이지. '만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서진을 했다면 어떻게 됬을까? 지금의 세계사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라는 말이 있는것처럼.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서쪽의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고, 이는 로마가 야금야금 성장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 로마는 로마 특유의 관용정책과 공화정으로써, 시민권만을 가지고 피정복민을 동화시키는 것이 가능했으며, 문화와 기술력이 대단했던 제국이지. 

 

초창기의 로마가 어느정도 성장하자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쓰리썸(?)(쓰리쌈 ㅇㅇ) 이 벌어지게돼. 로마, 카르타고, 그리스의 삼자전이었지. 

 

당시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무역을 손에 넣음으로써 로마의 경제활동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은 카르타고였어. 카르타고의 해군은 지중해 최강이었고, 니미츠급 원자력 항모까지도 소유하고 있었거든. (스텔스 전폭기를 띄웠다고 하면 믿을려나??) 하지만 로마는 지중해 장악을 위해 파이팅 할 필요성잉 이썼고 이는 곧 포에니 전쟁이라는 역사로까지 번지게 되지. 


-한니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자.

 

해상권을 두고 싸웠던 제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군들이 고안한 까마귀라는 (비둘기야 먹자 구구구구구구구 처럼 적함에 대가리를 꽂은 다음 그 위로 건너가서 카르타고인들을 죽이는 장치야.) 이름의 장치 덕분에 지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했던 카르타고는 암울해졌어. 마치 세계 1차대전 이후의 독일이라고나 할까? 그러던 와중, 카르타고에게 거대한 빛이 나타나게 되지.

 

전설적인 명장 한니발. 전략의 천재이자, 인간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낸자. 

 

그는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키고, 조국의 원수를 갚겠노라 다짐했고, 그 결정을 시행에 옮기고자, 카르타고군 10만을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가지.

 

그리고 로마는 여기서 거대한 충격을 받게돼. 한니발이 피레네 산맥의 남쪽으로 돌아 프랑스를 침공할 것이라 예상했던 공화정은, 군을 피레네 남쪽에 집결시켰으나, 한니발은 이들에게 큰엿을 날려주면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버렸어. 

 

지금의 등산 산악가가 가서 풀장비 풀옵션으로 헬기도움 받아가면서도 산맥을 넘기는 힘든일이야. 그런데 그 당시에 그는 세상사람들의 눈에 미친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미친짓을 감행하지.

 

그건 그냥 자진해서 가장 오래된 미라

 

외치가 되려는 시도였어. 

 

그러나 그는 로마인들을 비웃듯이 피레네를 넘어 갈리아를 침공했고, 알프스 산맥 근처까지 이르게 되지. 당시 알프스 산맥을 넘는 길은 없었고, 그 길을 돌아가려면 마르세유라는 (잘 알겠지만)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를 거쳐야 했기에, 공화정은 모든 군인을 그곳으로 올인했어.

 

그러나 한니발은

 

ㅇㅇ 엿을 다시한번 먹였고,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이라 평가받는, 알프스산맥 횡단을 결심하지.

 

이는 정말 미친짓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인류역사상 그정도의 대군을 이끌고 (코끼리까지 데리구) 알프스 산맥을 (그것도 겨울에) 넘는 사건이었으니까. 

 

로마 공화정은 당연히 그들이 산속에서 외치가 될거라 믿고, 븅신들 ㅉㅉ 하게 되지.

 

이게 어떤 의미를 갖냐면, 큰 예로 나폴레옹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라고 한니발 표절하면서 알프스 넘을때는 심지어 여름이었어. 2000년정도 후에 기술력을 갖춘 프랑스군도 알프스 앞에서 여름에 머뭇거렸는데 한니발은 이걸 겨울에 넘어버리지. 

 

게다가 로마니안은 라틴계라서 추위를 시러했고 고대 전쟁의 전통인 겨울휴전에 따라, 군을 휴식시키고 있었어 (옛날엔 겨울에 얼어죽으니까 걍 전쟁안하고 잠잤어) 

 

그러나 기원전 217년 늦겨울 (그니까 1, 2월) 알프스 후방의 북이탈리아에서는 코끼리의 울음소리와 군대의 행군소리가 울렸고, 이는 죽은줄로만 알았던 얼음귀신들의 생환을 알렸어. 이 군화소리는 로마가, 얼음귀신들에 의해 끔찍한 전장으로 변모한다는 뜻이자, 한니발이라는 독종의 강림을 나타내는 징표였지. 

 

한니발 특유의 지도력과 리더쉽, 포용력으로 북이탈리아에 도착했을때 2만 6천이 되어있던 군대는 충당되었고, 수차례의 전투를 승리해. 하지만 북이탈리아의 한계를 느낀 한니발은 더 넓고 확실한 전장을 원했고, 로마군의 본거지인 중부 이탈리아로 재행군을 개시하지.

 

그리고 벌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늪지대 행군. 알프스에 가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니발은 수백km의 진창을 군을 이끌고서 건넜고, 숙영도 못하며 몇날 며칠을 건넜어. 이 때 얻은 눈병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게 돼.

 

도착까지 몇십일은 걸릴것이라 예상했던 로마로써는, 아피아가도에 다시금 귀신들의 군화소리가 울려퍼지자, 현실부정을 하며 악몽세뇌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 

 

로마 시민은 드디어 위험성을 직면하게 되었고, 로마를 지키기 위해 8만 7천의 군단병을 바로에게 주어 그를 저지하라고 해.

 

217년. 칸나에 벌판에서는 8만 7천의 로마군이 궤멸당해.

 

한니발은 정말 희대의 명장이었고, 초승달(크로와상 먹고싶다.) 전법을 구사해, 로마군 7만을 궤멸시켜. 이 결과로 눈치를 보던 몇몇 속주들은 카르타고에 붙게 돼. 

 

그렇게 역사적인 승리를 거듭하던 한니발에게는 한가지 비보가 날아와. (삐뽀삐뽀)

 

로마의 언덕을 눈앞에 내다보는 상황에서, 본국인 카르타고가 스키피오 장군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비보였지.

 

한니발은, 하나뿐인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로마를 뒤로하고 본국으로 귀환하게 돼.

 

그리고는 역사적인 자마 벌판에서, 大스키피오 장군에게 격파당하고, 

 

"눈물을 흘릴 눈이 하나뿐이라는것이 원통하구나." 라는 말을 남겨.

 

그는 정말 리더쉽이 뛰어났고, 천년의 제국을 사라지게 할뻔 했던 장본인으로, 많은 명언들을 남겼어.

 

"불굴의 의지 앞에서는 산도 몸을 낮춘다." (알프스를 넘어 병사들에게.)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만들 것이다." (알프스를 넘기 직전 병사들에게.)

 

"대부분의 일은 그 자체로써 불가능히 보인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러한 명언들을 남겼으나, 로마의 헬리혜성과도 같은 스키피오장군에게 패하고,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이로써 로마 제국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3차 포에니 전쟁이후 카르타고를 완전히 없애, 북아프리카의 주도권까지 얻게돼.

 

-율리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갈리아의 정복자이자, 모든것에 능했던 자. 

 

로마제국이 어느정도 기틀을 갖췄으나, 북방의 갈리아족은 크나큰 골칫거리였어. 자꾸자꾸 침범하니 나는 어떡해! 공화정은 지도력있는 이가 갈리아를 평정해주기를 바랬고, 율리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의 총사령관으로 발탁되었지. 


 

B.C 58년. 카이사르와 그 휘하의 부대는, 전설이 되는 정복을 하러 떠나.

 

B.C 51년까지 7년동안 계속된 정복전쟁으로 로마의 강역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프랑스와 영국) 까지도 속주로 포함하게 되지. 이때, 라인강을 경계선으로 게르만족을 견제했어. 갈리아 정복기를 읽어보면 잘 알겠지만 그는 정말로 전략의 천재였고, 갈리아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게 하지.

 

이후 카이사르는 정치계로 진입했고, 엄청난 관용과 지도력을 보여줬어.

 

유명한 일화들 몇개만 소개하고, 그에 대해서는 따로 또 하나를 쓸게.

 

첫번째 일화는 그가 해적에게 붙잡혔을때의 이야기야.

 

해적들은 그에게 몸값으로 20탈란톤 (어마어마한 거금이야.) 을 요구해. 하지만 그는 "내 몸값이 20탈란톤밖에 안된단 말이냐! 적어도 50탈란톤은 받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서 50탈란톤을 보내 달라고 어머니께 편지를 써. 그러나 이는 굉장히 큰 돈이었고, 그의 어머니가 돈을 꾸고 꾸어 보낼때까지 그는 해적들과 생활했지.

 

그러면서 그는 클라스가 다른 인질이 되었어. 20탈란톤들은 죽어도 20탈란톤이니 관리를 덜 해주는데 반해, 카이사르는 50탈란톤 짜리이니 특별 대우를 해줬고, 그는 해적들과 농담, 도박을 즐기는 등 여유로운 지중해 투어를 했다고 해.

 

그렇게 50 탈란톤이 모일 즈음 카이사르는 그들에게 농담투로 "내가 이 배에서 나가면 너희를 모두 십자가에 매달아 주길꺼야 ㅎㅎ" 라고 말하고 해적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였지.

 

하지만 그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자, 그는 휘하에 해군을 재편성하고 곧바로 해적들의 본거지로 내달려, 그 해적들을 전부 잡아다 십자가형에 처하고, 50탈란톤을 돌려받아 다시금 갚지.

 

그리고 두번째로는, 바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들어가면 죽는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군대를 이끌고 들어가면 로마에 대한 반역이다. 그는 쿠데타이냐 죽음이냐를 놓고 고뇌를 했고,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루비콘 강 도하. 그는 그로써 전설이 되었고 로마 정계를 장악하여 독자적인 권력을 구축해.

 

그의 정적이었던 공화파와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까지 도망가게 되고, 결국에는 그의 심복에 의해 사살당하지. 그의 목을 본 카이사르는 격노하여, 주인을 버린 개를 죽이라 명하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해. 그리고는 폼페이우스의 두상을 세워 그를 기리지. 물론 여기에는 그가 진정으로 슬퍼한 것도 있었겠지만, 이것으로인해서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카이사르를 적이 아닌 우방으로 두게 돼.

 

세번째로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가 중동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로마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단답의 시촌가?

 

넷째로는 브루투스! 너마저! 가 있어. 여기의 브르투스는 데키우스 브르투스냐 아니면 그의 양자 브르투스냐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그는 결국 공화파였던 여러 열혈청년들에 의해 폼페이우스의 두상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게돼. 자신들이 지지받을거라고 착각했던 암살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로마 시민들은,

 

머뭇거리며 술렁이고 있었어. 그리고 이때 뛰쳐나온것이 바로 안토니우스 

 

"카이사르가 주겄는데 님들 머함!" 하고 그들을 선동 (선동이 나쁜말이 아니야;; 나쁜 의미로 사용되더라... 여기서는 좋은 의미 ^^) 하였고, 격분한 시민들은 사태를 알아차리고 암살단을 추격해서 신전까지 몰아붙여.

 

결국 그들은 으앙 좆망 ㅎ

 

그는 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발판을 마련했고, 국민들을 위해 여러 법률을 제정했으며, 여자꼬시기와 독서, 문장, 시 등 

 

전쟁부터 예술까지 능했던 인물이었어.


-광개토대왕. 동아시아의 정복자.

 

사실 좀 진지 빨자면, 비석에 새겨진 원문으로는 영락태왕이 맞대.

 

기원후 386년 담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구려의 사나이는 태자로 책봉돼. 어렸을적부터 호랑이를 때려잡고... 그러한 자잘한 위업들 이후에 그는 왕으로 즉위하지.

 

그리고는 남으로는 백제와 왜구를 쳐 정벌하고, 북으로는 만주의 거란을 정벌하고, 서로는 후연을 치고 동으로는 동부여를 멸해. 

 

이정도의 강역을 정복하지

 

물론 남으로 간건 나와있듯이 장수왕이야.

 

 

왜를 정벌하는 영락Z.jpg

 

당대에 왜구들이 찍은 사진이래. 얼마나 위엄넘쳤는지 알 수 있어. 

 

게다가 그는 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였고, 중국마저 함부로 넘볼 수 없을 국력을 구축하고 죽게되지.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다음에 시간이 나면 더 쓸게

 

미안하고 고마워

 

P.S 지적은 언제나 환영!

P.S2 죄송합니다. 사진 전부 수정했으며, 블로그에 가시면 더 많은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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