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하루 종일 빗줄기가 이어졌다. 그곳을 향해 사람들이 모였다. 아장아장 어린아이 손을 잡고 걷는 젊은 부부, 지팡이에 의지해 힘겨운 발걸음을 이어가는 할머니, 그들은 그렇게 그곳을 향했다.

2010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이 열린 바로 그날의 풍경이다. 기나긴 행렬의 끝, 봉하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은 노란 풍선과 바람개비였다.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줄 알겠습니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를 위해 시민들이 보내준 글은 안타까움과 아픔, 슬픔이 어우러진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보며 누군가는 이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 30대 여성은 목놓아 눈물을 흘렸다. 곁에 있는 아이는 엄마가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는지 몰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왜 봉하마을에 모인 것일까. 모두 노사모 회원이기에 그런 것일까. 경남 김해와 부산에서 온 이들이 많았지만, 어느 단체나 조직의 회원이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대부분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추도식장 바닥이 진흙탕이 되어도 아랑곳않고 추모객들의 발길은 이어졌고 봉화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많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들에게 물었다. 왜 이곳을 찾았느냐고. 이 빗줄기를 맞으며 먼 길을 왔느냐고. 그들은 말했다. “아이와 함께 이날을 기억하고 싶었다.” “살아있을 때 욕만 했는데 이렇게 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려 결국 서거했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 1년여 만에 정치검찰의 표적수사 논란 속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그날의 ‘속보’를 접한 이들은 망치에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현대사 최초의, 아마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비극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접했기 때문이다. 고향 집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겠다는 전직 대통령을 결국 죽음으로 내몬 이들은 누구일까. 여론재판을 통한 ‘인격살인’을 즐기며 최후의 선택을 강요한 이들은 누구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수백만 명의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은 것은 그들 모두가 정치적 지지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정말 이것은 아니다”라는 분노와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봉하마을을 향한 그날의 행렬을 이끌어낸 원인 아니겠는가. 오후 2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그곳에서 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아침부터 계속된 빗줄기는 그 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노란색 우의를 입고 그 자리에 모여들었다.

   
지난 2010년 5월 23일 김제동 씨가 비를 맞으며 추도식 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노란 우의 물결 속에 양복 차림의 누군가가 추도식장 연단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의 등장에 잠시 환호성을 보내는 등 술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의 앙다문 입술, 착잡한 표정 때문이다. 그는 조용하면서도 찬찬히 말을 꺼냈다.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꼭 하늘에서만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가득가득 메워주시고 비를 피할 곳이 없음에도 비가 내리는데도 비를 피할 마음조차 없으신 여러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하고자 합니다.”

그는 이날 추도식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이었다. 남다른 의미의 인사말을 건넨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은 집중됐다. 검정색 양복 위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김제동은 그 비를 다 맞으며 거기에 있었다.

“이곳에서 여러분들 편안하게 다 모시지 못했음을 그러나 여러분이 계신 그 자리에 지금 맞고 있는 이 비가 여러분의 마음을 모두 다 모두다 씻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그대 어디에 있나요’ 시작하겠습니다.”

김제동의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 사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최근 불법 민간인 사찰의 실태가 드러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이 다시 언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당시 행한 행동 때문이다. 김제동이 사회 보는 것을 막고자 국가정보원 직원이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담당 직원은 ‘위에서 걱정이 많다. 앞으로 방송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웬만하면 (1주기 추도식에) 안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해 사회를 보는 게 그렇게 못마땅했는가. 김제동은 국정원의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5월 23일 봉하마을에서 그 비를 다 맞아가며 끝까지 함께 했다. 

감히 이명박 정부의 말을 듣지 않아서이기 때문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이 끝난 뒤 몇 개월 후 김제동은 KBS <스타골든벨> MC 자리에서 하차했다. 권력의 ‘괘씸죄’ 적용 논란이 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모든 게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방송인의 입을 틀어막고, 발을 묶고자 하는 그들, 국가정보원까지 나서게 한 그들의 몸통은 누구인가. 한겨레는 4월 3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전했다.

“청와대 민정수수석실이 2009년 9월 경찰에 '특정 연예인 명단'을 제시하며 내사를 지시했고 여기엔 방송인 김제동씨도 포함됐다고 한다.…김제동씨 등을 '좌파 연예인'으로 낙인찍은 것도 그렇거니와 청와대가 직접 표적수사를 지시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10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 아래 한 추모객이 탁주 한 사발과 담배 한 개비를 올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줌의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동하면 착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김제동을 누군가는 ‘좌파’라 한다. 그가 좌파인가.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좌파’인가. 김제동은 방송가에서 손꼽히는 위트 넘치는 말솜씨를 자랑하는 방송인이다. 김제동은 그저 ‘상식’을 말할 뿐이다. 상식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할 뿐이다.

김제동은 2010년 5월 23일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꼭 하늘에서만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도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김제동이 그날 그 비를 다 맞아가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이유이다. 김제동의 행동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된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마음을 울린 ‘진심’을 권력을 앞세워 찍어 누르려 했는가. 그것이 가능하리라 보는가. 김제동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김제동은 국민이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