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동방프로젝트의 설정, 배경, 인물을 가져온 2차 창작입니다.

*매일 10시 경 업로드 예정입니다.

 

 같은 시각, 오후 나절부터 할 일 없는 인간과 즐기러 온 요괴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카기야마 술도가에서 코마치도 명분은 ‘인간 마을의 이상 현상 탐지’, 실상은 ‘피안에서 있기에는 시키 님의 눈치가 엄청 보이고 설교를 들을까봐 시간 떼우기’를 하려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우 아파라.. 어짜피 자기도 휴정이라 차 마시고 있을 거면서..’


 

 술을 쭈욱 들이켰다. 약간 따스한 온도는 술의 누룩 냄새를 더욱 돋우었다. 걸쭉한 액체의 감촉은 입맛을 다시게 해 안주를 집어먹거나, 아니면 술을 더 마시던가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몇 잔 마시자 목에서부터 시작된 몸 안의 열기가 온 몸으로 퍼져 올라가는 게 마치 목욕물에 몸을 담는 기분이라서 표정이 확 풀렸다.

 


 그래도 그녀의 뺨 털을 세우게 하고 있는 이상한 기운은 술기운에 젖어 들어가는 코마치의 정신을 깨우고 있었다. 분명 원한이 많은 생령들은 인간 마을에서 망령이 되어 복수해야 할 인간에게 들어붙기는 한다만, 이건 또 색다른 기운이었다. 불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될 것 같은 그런 감각. 전에 망령으로 변하던 생령을 베어버린 죄책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생령을 베어버리는 건 나한텐 너무 버거운 일이란 말이지..”


 

 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까지 그 묵직한 낫을 쥐던 감촉이 남아있었다. 기분이 복잡해졌다. 남은 방울 머리끈 하나로 만든 짧은 말총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술을 따르는 그때, 술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꼬마 아이가 문을 열었다. 신경 쓰지 않아 이리저리 웃긴 모양의 단발머리, 새까맣게 탄 얼굴, 흙이 온 데 묻은 꾀죄죄한 복장. 그리고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깨달음으로 반짝이고 있는 눈이 인상적이었다.

 

‘오, 유레카라도 외치려나?’

 

문 열리는 소리에 모두가 그 곳을 집중적으로 바라보았다. 요괴도, 사람도, 술에 절어 사람과 요괴 사이에 무언가가 되려고 식탁을 비비는 사람까지도. 코마치는 턱을 괴고 그 꼬마아이를 보았다. 히나의 엄마는 술을 나르다 그녀를 보았다.

 

  “어머, 유우다치. 히나 만나러 왔니?”

 

  “안녕하세요, 히나 어머니. 히나는 위에 있나요?”


 

  “응. 아직 몸이 덜 나은 것 같더구나. 혹시 아는 거...”

 

  “가지조림 좀 접시에 담아주실 수 있나요?”

 


 코마치는 이게 무슨 시트콤인가 바라보고 있었다. 당돌하게 와서는 자기가 생각한 일 그대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복잡함을 지우려고 마시려 했던 술잔은 재미있는 볼거리를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한 술잔으로 변했다. 히나의 엄마는 당황하긴 했지만 조용히 주방에 들어가 작은 접시에 가지 조림을 담아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조심히 그걸 흘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흥미롭게 보던 코마치는 계단 소리까지 듣고 나서 히나의 엄마를 불러 물어보았다.

 

  “이모, 저 산도깨비 같은 꼬마 아이는 누구야? 되게 당돌하네.”

 

  “아아, 유우다치라고. 저 사토 씨네 맏딸이에요. 우리 애랑 정말 친해서 병문안 온 것 같아요,”

 

  “흐응.. 그렇구나. 여기 술 한 병 더.”

 


 그녀는 혹시나 위에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눈을 감고 귀에 집중했다. 그럴수록 취기가 더 빠르게 올라오고 옆에서 자기 친구를 욕하는 인간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신경이 쓰였지만 말이다. 집중할수록 이쪽의 소리가 난잡하고 추잡해서 듣는 걸 포기하기에는 정말 짧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고, 인간사는 마을답네.”

 


 그녀는 짧게 웃으면서 나직였다. 술 맛이 달았다. 가장 궁금한 건 위층의 이야기였지만 옆 사람의 험담이 점점 선을 넘어가고 있어서 살짝 몸을 옆으로 숙였다.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탁상도 연달아 치면서 상대의 행적을 낱낱이 자신의 입장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게 참 재미가 있었다. 


 어차피, 정파리 거울 한 번에 꿀 먹은 벙어리로 두 손만 싹싹 빌 거면서.

 


 아마, 히나는 유우다치가 여기까지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평소엔 듣지 못했던 발소리가 나기 전 까지는 말이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멍하니 누워 시간을 죽이고 소리도 가라앉길 기다리던 히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문 열리는 소리는 발소리에 비해 얌전했다. 문 사이로 비치는 유우다치를 보니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히나!”

 

  “아.. 응?”

 


 반대로 비치는 불빛은 유우다치의 눈빛을 더 밝게 보이게 만들었다. 히나는 별명도 부르지않고 한 손엔 반찬을 들고 있는 기묘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갑작스러워서 유우다치를 보기만 해도 올라오던 미안함이 안 올라올 정도였다. 같은 자세로 있던 그녀는 자세를 풀더니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아... 아! 맞다. 할 말이 있었어.”

 

  “있었..어? 응, 그래.”

 


 그녀는 유우다치를 방 안으로 데려왔다. 방 안에 들어오니 밖의 소리가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굉장히 신기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일단은 마주 앉았다. 그 사이에는 가지조림이 담긴 작은 접시가 있었다. 기묘한 상황이었다.

 

  “잠깐만, 말할 준비를 할 시간을 줘.. 뛰어오느라 까먹었어.”


 

 히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답답한 기분을 최대한 죽이려고 하면서 지금 상황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위험한 시간, 가정 방문이 있는 날에 자기 집으로 뛰어 온 유우다치, 하고 싶은 말, 가지 조림, 그리고 아마 자기가 처음으로 하고 되돌리지도 못한 거짓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미안하단 마음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미안하고, 잘못했고... 사과의 말은 모두 하고 싶었는데 쉬이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말하는 순간 관계가 무너져 버릴까봐.

 


 매듭 혹은 실타래에 가깝게 생각들이 얽혀 고개를 숙여가는 히나였고, 생각들을 풀어버릴까 아니면 매듭을 단번에 잘라버릴까 고민하며 고개를 위로 세운 유우다치였다. 서로 사이에 불편하지 않은 침묵을 지키던 중, 먼저 말을 한 건 유우다치였다.

 

  “히나. 내 앞에서 가지조림을 먹어줘.”

 


 뜬금없고 이게 이렇게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둘 사이에는 친해진 계기였다. 히나에겐 임기응변이었고, 거짓말이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생각들을 참으며 그녀는 말했다.

 

 

  “미안... 잘못했어.”

 

  “응? 미안할 건 없는데. 자.”


 

 손가락으로 접시를 그 쪽으로 밀었다. 얇게 깔린 간장이 찰랑거렸다. 정성스럽게 젓가락도 히나의 방향으로 돌려 준 그녀였다. 망설이고 답답해하는 그녀에게 편안한 표정으로 유우다치는 말했다.

 

  “나는 히나가 좋아하는 걸 알고 싶어.”

 

 

 그 말에 아래에는 마치 저 그릇에 찰랑이는 간장처럼 믿음이 깔려있었다. 자기 자신이 믿고 있던 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찰랑였다. 그 말을 듣자 그녀의 마음속의 소리들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늘 거짓말을 듣고 자라온 공간 속에서 유우다치의 목소리만큼은 밝고 따뜻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손에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유우다치의 얼굴이 밝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같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는 게 기쁘다는 감정으로 새어나왔다. 얼굴을 보자 히나는 자기가 저 따뜻한 웃음이 정말 좋았다. 늘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불안감도 강력하게 돌아왔다. 젓가락으로 들어 최대한 간장을 털어낸 후 그녀는 말했다.

 

  “다찌..”

 

  “응. 히나나.”

 

  “...”

 


 저 웃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는 욕구는 젓가락으로 집은 그걸 입 안으로 바로 넣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평소 먹지 않는 걸 지금 먹는다고 바로 먹어지는 건 없는 법. 입 안에 들어오자마자 혀끝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가지조림의 엑기스들은 마치 귀신이 등을 긁듯 혀에 조금씩, 조금씩 맛을 새기면서 목을 타고 내려왔다. 역겨웠다. 지금이라도 뱉고 싶었다. 아니면 혀끝에 계속 두고 싶었다. 그리고 향이 그녀의 입안을 채우더니 간장의 짠 냄새와 가지의 향기가 불편하게 뒤섞였다. 아마 한 입 씹으면 그 향은 더 강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지금이라도 뱉어내고 사과를 한다면 유우다치와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닐 거라 생각했다. 혀로 살금살금 어금니로 옮기는 과정도 가지의 매끈한 껍질의 촉감과 이상한 속살의 느낌이 혀를 만지고 지나갔다. 정말 싫었다. 정말. 조심스럽게 어금니 사이에 가지조림을 올리고 크게 씹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속에 있던 눅진한 물기가 터져 나와서 몇 배로 향과 맛이 입 안을 채웠다. 간장의 짠 맛, 가지의 단 맛과 야채 특유의 물맛이 서로 조화가 되지 않고 멋대로 날뛰는 데에 마무리로 그녀를 괴롭힌 건 식감이었다. 식감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껍질과 속살이 따로 놀았다. 물컹물컹한 식감과 씹을 때 마다 터져서 삼키지 못하고 입 안을 가득 채워가는 역겨운 맛. 마무리로 씹어도 씹어도 사라지지 않는 질긴 질감의 가지 껍질의 미친 느낌.

먹기 싫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삼켜야 했다.

 


 그런 복잡한 마음이 섞인 채 목과 배에 최대한 힘을 줘 입 안에 있는 것들을 삼키려고 했다.

 


 솔직했던 몸은 그 맛과 향, 질감을 ‘나쁜 것’으로 인식했었나 보다.

 



 모든 걸 게워냈다.

 


 

 기대에 넘쳐서 동굴 속 횃불 같이 밝고 따듯한 웃음을 짓던 유우다치의 얼굴이 그 상태로 굳어있었다. 본능대로 쏟아내고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자 눈 아래에 보이는 내용물과 숨을 쉴 때마다 입 안에서 피어오르는 역한 냄새, 그리고 고개를 들지 못하겠는 마음이 뒤섞여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절규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굳어있던 유우다치는 그 목소리를 듣자 눈을 깜빡였다. 굳었던 자세가 풀렸다. 눈을 돌려가며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서로 ‘좋아할 수도’ 있었던 걸 먹으며 이제껏 자기가 좋아하는 걸 히나도 좋아했으니, 이제는 이걸로 바통을 터치하듯 히나가 좋아하는 걸 함께해 보고 싶었다. 떠오르는 생각이 그거 하나였지만 말이다. 


 히나의 성격으로 상상해보면 책 읽기나 그림 그리기 같이 얌전한 거였으면 몸에 좀이 쑤셔 힘들 것 같았지만 충분히 참으려고 했다. 비슷하게 얌전한 취미라도 십자수같이 손이 섬세한 쪽은 자기가 잘 해서 히나를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 모든 생각이 바닥에 퍼질러져 역한 냄새를 풍기는 내용물처럼 있었다.

 

  “미.. 미안해.”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저 많은 생각들을 이리저리 잘 포개어 전달하기에 앞서 숨을 고르질 못하며 힘들어하는 히나가 먼저 보였고 그 원인이 자기였단 걸 생각하니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숨을 고르다가 몸속에서 올라오는 역한 기운과 입 안을 끈적하게 만드는 잔여물의 고통이 헛구역질을 일으켜 눈물을 흘리던 히나도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의심하기 시작한 것일까. 이대로 풀어지고 끊어진 매듭처럼 앞에서부터, 혹은 뒤에서부터 둘이 묶여왔던 매듭은 풀리고 말까? 유우다치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까? 언제나 솔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은 유우다치의 순수함이 지금은 너무나 아프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아팠다.

 

  

 히나는 말했다.

 

  “... 꼭 이렇게 해야 알았겠어! 내가 거짓말 한 걸?”

 


 고개를 올리고 유우다치를 보았다. 자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은 많았겠지만 이런 추태 앞에선 어떤 말도 못하겠지.’ 속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모든 걸 게워낸 후폭풍과 만나게 된 계기가 무너진 뒤 지금 서 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알량하게 솟아오르는, 유우다치에 대한 분노가 뒤섞였다. 당황한 유우다치가 말했다.

 

  “지금. 히나가 하는 말을 잘 모르겠어..”

 

  “미워...”

 


 짧지만 강력하고, 모순적인 말이었다. 거짓말이나 괴성같이 ‘들리지만 보이지 않는 소리’들 속에서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갈려나가 껍데기만 남아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건 유우다치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었다. 유우다치가 좋았다. 멀리 있어도 늘 가까이 와서 혹시나 못 들을까봐 귀에 속삭여주던 별명은 유치해도 들으면 웃음이 나왔다. 밉다는 단어는 단지, 복잡하게 힘든 지금 상황을 타파하고 싶다는 다급한 마음속에 등장한 자신을 지키는 이기적인 방어수단이었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그 욕구가 앞서서 몰랐겠지만 입으로 뱉고 나니 그녀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단 걸 깨달았다. 히나의 목소리에 공명하는 ‘밉다’가 그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입으로 내뱉고 정신을 차린 그녀는 유우다치를 보았다. 충격을 먹었었다.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미안. 미안. 그러려는 게 아니고..”

 

  “아...”

 


 짧은 신음소리만 낸 유우다치는 그 표정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히나처럼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냥 궁금했던 걸 참고 지냈으면 이렇게 안 되었을까. 할 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자기는 왜 히나한테서 도망가고 있을까. 미안해서, 히나를 아프게 한 게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도망가고 있는 걸까. 균형을 위태롭게 유지하며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뒤에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오열하는 히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달리는 것만 아니면 히나처럼 귀를 막고 싶었다. 


 꾹 참고 뛰었다.

 


 급하게 문을 열고 도망가는 유우다치를 본 히나의 엄마는 갑자기 저 아이가 왜 저렇게 급하게 도망가는가 싶어서 잡고 묻고 싶었지만 윗층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올라갔다. 문 바로 앞에서 술기운에 오늘 베어버렸던 망령에 가까운 생령에 대한 죄책감을 짓누르려고 했지만 잘 안 되서 기분이 불쾌하던 코마치도 그 모습을 보았다.

 


 밤이 시작된 인간 마을은 낮과는 다른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보통 기운이 밤에 차오르는 요괴들이 밖에 나와 인간 마을의 음식이나 술을 여기저기서 마시며 웃어재꼈고, 인간은 같이 마시거나 시중을 들어주고, 잡담을 나누면서 어른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 사이를 유우다치는 냅다 달렸다. 복잡한 매듭을 단 칼에 끊어버린 어느 나라의 이야기처럼, 지금 생각을 끊어줄 것이 있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계속 달려도 아까의 일과 말하지 못한 말들이 지워지질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우악했다. 혹시나 요괴가 밤중에 혼자 다니는 아이를 잡아가서 먹는다는 케이네 선생님의 이야기가 진짜일까 싶어서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푸우 푸우거리는 숨소리에는 진한 술 냄새가 가득했다. 파들파들 몸이 떨렸다. 엄마가 보고 싶은 그녀였다.

 

  “밤인데 어린 아이 혼자 다니다간 망태 할아버지가 쟙아간다~.

   밤에 댜니고 싶다면, 팥죽을 들고 다니렴. 후우..”


 

 코마치였다. 눈빛만큼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조금씩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직 겁에 질린 유우다치는 물어보았다.

 

  “어.. 언니는 누구신가요?”

 

  “후우.. 취하네. 나, 사신. 코먀치. 거기서 술 마시고 있었어.”

 


 그리고 비틀거리더니 유우다치를 잡아서 겨우 균형을 차렸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더 빨리 큰 유우다치와 키는 비슷했지만 상반신에 쏠린 무게차이가 상당해서 그녀도 균형을 잃을 뻔 했다. 가까이 있으니 더 강한 술 냄새가 풍겼다.

 

  “으으, 저한테는 무슨 볼일이신가요?”

 

  “너 혼자. 친구와 싸운 너 혼자. 지금 마을 걸어 가댜간 집에도 못 가고 사라질 걸.”

 


 그 자세가 편했는지 양 팔로 그녀의 어깨에 확실히 기대는 코마치였다. 달라붙어있으니 그녀에게서 미약하게 망령이 되던 생령에게서 느꼈던 기운이 느껴졌다. 일단은 이 아이를 집까지 보내는 게 지금의 목적이었던 코마치는 그녀에게 길 안내를 하라고 하면서 온갖 요괴가 요사스런 기운을 풍기면서 술과 음식을 마시는 백귀야행의 인간 마을의 중심지를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동안 반 쯤 안겨있었던 코마치는 그녀의 몸이 요괴의 기운에 짓눌려 체온이 낮아지는 걸 느낄 때마다 본능적으로 더 강하게 안아서 온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카기야마 술집에서 마실 때 느낀 이질감은 마을의 외곽으로 오면서 낮아지고 유우다치에게서만 미약하게 느껴졌다.

 


 경쾌하고 난잡한 소음과 밝은 불빛이 밤과 달에 잡아먹히고 점점 조용해질 때 즈음, 아까 그녀가 말한 말이 신경 쓰이던 유우다치는 손으로 코마치의 팔짱을 풀어달라는 행동을 취한 후 물었다.

 

  “어떻게.. 제가 친구랑 싸운 걸 알았나요?”

 

  “그야, 들어올 때는 눈이 밝았지만, 냐갈 때는 눈이 탁했어. 눈은 솔직하거든.”

 


 인간 기준으로는 굉장히 지독하고, 요괴 기준으로는 마실만한 술기운이 어느 정도 가시고 있었다. 혀는 아직 조금 꼬여있었 지만, 망령이 되던 생령에게서 느낀 기운이 왜 현세에서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뺨털을 세우는 감각이 그녀의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숨길 수 없는 무언가를 숨기려다 들킨 표정으로 유우다치는 말했다.

 

  “사실은..”


 

 산도깨비 같은 모습은 어디가고 이렇게 풀이 죽어있는지 궁금한 찰나에 마음이 답답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그녀를 보았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조절’해서 이야기를 모두 듣고 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능력을 쓰는 건 관두고 이야기를 들을 자세를 취했다. 딱히 그런 자세는 없이 아까 풀렸던 팔짱을 다시 유우다치의 양 어깨 위에 끼고 몸을 숙여 걸어가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어서 마지막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고 히나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다급하게 앞의 이야기를 더듬으며 설명하는 부분은 생애 첫 발표를 하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입학식 후 자기 소개를 할 때, 좋아하는 음식이 가지 조림이었던 게 너무 기뻐서 빠르게 친해진 히나. 자기가 좋아했던 걸 같이 좋아해주던 히나. 이야기가 첫 계기를 의심하게 된 중반부가 다다르자 말은 점점 원래 유우다치의 호흡으로 돌아왔다. 


 코마치도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듣기 좋았다. 보기와는 달리 자기 수준에 맞는 쉬운 단어들 위주였지만 자기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고 있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순간에는 앞의 상황이 다 이해가 되어서 좀 더 몰입이 가능했다. 주저리주저리 자기 기준으로 곡해해서 이야기하는 생령들보다 몇 배는 재미있는 어린 유우다치의 이야기였다.

 

  “.. 이렇게 되었어요. 제가 히나나를 울린 걸 사과하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게 가슴이 답답해요. 진짜 친구가 되고 싶거든요. 어떻게 하면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나요?”

 


 코마치가 거리 조절을 하지 않아도 둘의 걸음걸이는 상당히 느려졌다. 둘 다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던 코마치는 떠오르는 말을 최대한 유우다치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다듬고 있었다.

  

 

  “뭐, 너도 참 피곤한 친구를 지금까지 같이 지내왔구나.”

 


 나온 말은 꽤 냉소적이었다. 히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잠깐 감정이 들어가버렸다. 부정적이고 마음 한 곳에선 공감을 했지만 히나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에 그녀는 꼬투리를 잡았다.

 

  “히나는 피곤하지 않아요!”

 

  “그래. 마치 히나는 인형같이 다니니 피곤할리는 없겠지. 내가 너 같이 도깨비 같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야.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듣고, 보고 지내서 그래. 그러다 보면 마음 속에 있는 그릇이 점점 커지고 단단해지거든. 많은 이야기를 담기 아주 좋게. 그런데 그 아이는 어떨까?”

 

  “히나는... 정말 잘 듣는다고 해요. 그래서, 자주 귀를 막고 쉬어요.”

 


 코마치는 꽤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응, 아주 잘 듣지. 보지 못하는 것들까지 들어버려. 그럼 유우다치는, 보이지는 않는데 소리만 들리는 게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니?”

 


 냉소적인 말투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마음 그릇 안에 싹트고 있던 연민의 향이 자꾸만 히나를 언급하고 히나를 먼저 생각하는 그 말들에서 새어나와 감화되는 것 같았다. 유우다치는 말했다. 이질적인 기운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공기 중에 사라져서 더 이상 코마치는 뺨이 가렵지 않았다.

 

  “으으, 엄청 무서울 거 같아요.”

 

  “무섭지. 무섭고, 두려우면 몸을 수그리는 듯이 마음 속 그릇도 작아지고 얇아져. 조금만 건드려도 와장창창! 부서지고 말거야.”


 

 와장창창의 소리가 너무 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서 유우다치는 다급하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오던 길은 어느새 바구니 등불이 은은하게 밤길을 밝히는 자기 집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 자연스럽게 집 앞 의자에 앉았다.

 

  “으아, 아! 아. 히나 그럼 그릇 어떡해요. 아프잖아요.”

 

  “아하하하. 너무 그릇에 집중하지 마. 그릇된 생각이야. 엄청 아프긴 해. 그래도 마음의 그릇 모양을 기억해두고 있어서 깨질 때 마다 시간은 걸리지만 다시 같은 그릇을 만들어. 단지 그 시간 동안에는 많이 예민해지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 조심해야지.”

 


 위트 있어 보이기 위해 농담을 약간 섞었는데 단어를 몰랐는지 반응이 없어 괜히 가렵지도 않은 뒷덜미를 긁었다. 유우다치는 아직 비유라는 게 익숙하지 않아 생각 화선지에 계속 이야기를 그려보고 있었다.

 

  “그 깨진 그릇이란 게.. 저는 못 만들어주나요?”

 

  “사신인 나도 그건 못해. 만약 돕고 싶다면, 잘 안되더라도 히나의 옆에서 활짝 웃어줘. 하고 싶은 말은 잠시 담아두고. 막 싸우고 나서 내일 만나면 어색하겠지만 사과는 짧게! 웃음은 길게! 해주렴. 평소대로 네가 좋아하는 걸 보여주고, 들으면. 그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거야.”

 


 의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써 가짜 웃음을 지어보는 유우다치였다. 겨우 웃는 게 그녀한테 도움이 될까 궁금증이 들었다. 코마치는 마주보고 활짝 웃었다. 달빛에 겨우 비친 모습은 빨간 머리와 눈빛 때문에 섬뜩했지만 긍정적인 의미가 가득한 웃음은 그 느낌을 크게 줄여주었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문이 열리더니 유우다치의 아버지가 보였다.

 

  “다찌!”

 

  “아빠. 다녀왔어.”

 


 유우다치는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꼭 안겨있는 그녀를 토닥이며 문밖에서 기지개를 펴는 코마치에게 우선 말을 걸었다.

 

  “이 위험한 밤중에 여기까지 데리고 와주신건가요?”

 

  “응. 술도 취했었고. 그런 아이들은 자연 그대로 살라고 설교를 하다보니.”

 

  “정말 감사합니다. 마실 거라도 좀 드릴까요?”



 코마치는 옆에 있던 사람을 닮아가는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친 후 곁눈질로 아빠에게 안긴 유우다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고 어두운 밤길 속을 걸어가며 말했다.

 

   “오늘은 그 아이나 껴안고 있어줘. 수고, 많이 했어.”

 


 그는 유우다치를 다시 바라보았다. 힘을 주고 안고 있는 유우다치의 몸은 점점 가볍게 떨리더니 오늘 하루 참아왔던 걸 천천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안했고, 성격이 급했지만 착하고 서툴러서 울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안겨 자기 이야기를 말 하지 않아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는 필요했다.

 

  “엄마...”


 

 그는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코마치에게 인사를 건넨 후 문을 닫았다.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 코마치는 지금 기분으로는 일자리와 잠자리가 기다리지만 시뿌연 대기와 불안함이 가득한 피안에 가기 싫어서 다른 목적지를 향해 술자리도 끝을 다하는 인간마을의 중심 쪽으로 걸어갔다.

 


 

*

 

 케이네는 탁상 옆 바닥에 이불을 폈다. 밤에도 지치지 않는 더위가 침대를 덥혀서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자고 싶었다. 잠에 들을 만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차가운 허브차를 가져와 옆에 두고 앉았다. 마루 밖으로 하나 둘 씩 꺼지는 등불과 이 시간이 아쉬워 거리를 돌며 꼬인 혀로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요괴와 인간들의 소리가 들렸다.

 

  “난장판이야...”

 


 어서 빨리 자기가 가르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환상향에 인간과 요괴가 질서를 갖추었으면 싶었다. 요괴의 시간으로는 정말 짧겠지. 그런 잡념들을 차로 넘겼다. 진하게 타서 그런지 향이 유달리 진해 마치 찻물 속에서 목욕을 하는 기분이었다.

 

  “내일 소풍, 재미있으려나.. 히나와 유우다치는 어떻게 되었고.. 밥은 여유분을 더 챙겨야할까...”

 


 그때, 익숙한 그림자가 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는 고개를 이쪽으로 들더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선생.”

 

  “오노즈카 씨? 오밤중에 여긴 무슨 일인가요?”

 

  “재워줘.”


 

 거리를 조종하는 능력을 썼는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허브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닦는 코마치였다. 이미 허락은 따놓았다고 생각했는지 옷을 한 겹씩 벗어서 옆으로 휘휘 던져두고 있었다. 피곤한지 하품을 연신 하는 게 게으른 소 같았다.

 

  “무례해요!”

 


 말은 그러면서도 서로 같은 목적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쫓아내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침구들을 가져왔다. 나무냄새가 솔솔 피어오르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침이었다. 속옷 차림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던 코마치는 그걸 보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남편이 싫어서 억지로 밥 차려주는 마누라 같아.”

 

  “내일 소풍을 가야하니 저는 일찍 자야해요. 이만.”

 


 책상을 사이에 두고 등을 코마치 방향으로 돌린 채 누운 케이네였다. 슬금슬금 허브차를 자기 쪽으로 당겨 마시고 허브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며 벌러덩 누운 그녀는 천장을 보면서 케이네에게 들으라고 말을 크게 했다.

 

  “너 역사를 없애는 능력의 위력이 어느 정도 인거야?”

 


 케이네는 안 듣는 척을 하려고 했다가 이전의 일침도 떠올라서 무심코 대답을 해주었다.

 

  “말 그대로에요. 역사였던 기록을 지우는 것. 잊어버리게 하는 게 아니라 지우는 것뿐이에요.”

 

  “무서우면서도 솔직한 게 너한테 딱 맞는 능력이긴 하네. 역사에 없앴다고 해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마치는 술을 마셔도, 이야기를 나눠도 사라지지 않는 낫을 휘두른 손의 불편한 감각과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한 이질감에 눈을 예민하게 뜨고 그녀에게 말했다.

 

  “케이네." 


 "왜요.." 


 "한두 명의 인간 즈음은 역사에서 없어져도.. 그게 역사가가 원하던 역사의 흐름에 관계가 없다면... 없어져도 상관없을까?”

 

  “..그건 어떤 의미에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큰 역사에 비해서 작은 개개인의 가정사나 생활상은 묻혀가기도 했다. 하지만 시야에 따라선 그런 작은 것들도 의미가 있었기에, 지금 맥락상 의미심장한 말을 한 코마치에게 되물어보는 그녀였다.


  “아냐... 아무것도. 자자.”


 

 그리고 그녀는 돌아누워서 잠에 들었다. 이럴 때면 정답은 주지 않고 문제를, 그것도 구미가 당기는 문제만 내고 휭 가버리는 그녀가 미운 케이네였다. 곱씹고 자기의 경험과 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큐와 나누기도 했던 말들을 반추하다보니 그녀도 조금씩 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마 그녀는 거기서도 거대한 역사를 어떻게 보고, 어떤 걸 없애야 할 지 고민에 빠진 꿈을 꿨을 것 같다.

 


 그렇게 소풍날의 아침은 밝아왔다.

 

 


4.

 


 언제쯤 잠에 든 건지 히나는 알 수 없었다. 정신없이 지나간 저녁의 후폭풍은 미안한 마음이 메아리치는 걸로 돌아왔다. 유우다치가 자기에게 해준 게 그렇게 많은데, 그런 말을 해서 관계를 파탄 내버렸으니 이 쓸모없는 귀를 없애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전보다 덩치를 키운 ‘미안하다’는 말은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마음 속 그릇을 긁어내고 있었다. 이런 복잡한 마음속에도 몸은 기억한대로 옷을 입고, 머리를 감고, 아침을 입에 집어넣어 삼키고, 양치질을 하는 게 신기한 그녀였다.


 

 엄마가 특별히 준비한 도시락과 아빠가 무조건 소풍 날 입고 가라고 시장에서 사 온 붉은 드레스를 입고 거울을 보았다. 겉보기에는 참 조신하고 섬세하게 보일 것 같은 외형이었다. 속에는 고약한 타르 방울 같은 마음이 꿀렁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 바퀴 빙글 돌면서 전체적인 모양새를 본 후 책상에 있는 가방을 메려고 하는 그때, 작은 리본이 보였다. 유우다치가 만들어 준 리본이었다.

 


 망설여졌다.

 


 가방 안에 일단 넣어두고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팔짱을 끼고 서서 웃음을 지으려다 참고, 지으려다 참아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된 아빠와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을 유일하게 잔소리 할 수 있고 보살펴줄 수 있는 엄마가 서 있었다. 코에다 손을 가져다대고 표정을 감추려던 그는 말했다.

 

  “크흠. 어울리는구나. 저번에 시장에서 외래인들의 물건을 파는 요괴 놈이 보여준 건데. 크흠. 찢어진 곳을 덧댄 거 빼고는. 크흠. 히나에게 아주 잘 어울려.”

 

 유달리 헛기침이 잦아진 그였다.

 

  “어휴 이 이가.. 애한테 좀 활짝 웃어줘요. 찔끔찔끔 웃지말고요. 히나야, 오늘은 혼자 학교를 가는 거겠지만. 힘내렴. 다찌도 네 마음을 모르진 않을 거야.”

 


 히나에게 들어 전후상황은 자세히 몰랐지만, 히나에 대한 언제나 미안한 마음 때문에 히나를 가장 먼저 감싸려고 했던 그녀였다.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소풍길에 나섰다.

 

 

 

 

 

 언제쯤 잤는지 알 수가 없는 유우다치였다. 마치 몸 안에 얼음이 들어있는 듯 으스스한 기분이 지나쳐갔다. 대충 어제 아버지를 껴안고 울던 것까지만 기억이 났다. 그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이 쉬어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기지개를 펴면서 옆에 달린 작은 거울을 보니 동네 바보처럼 코가 허옇게 말라붙어 있었고 눈두덩이는 벌겋고 퉁퉁 부은게 참 가관이었다. 그 모습으로 싱긋 웃어보니 더욱 가관이어서 표정을 이내 감추고 화장실로 향했다.

 

  ‘웃으라고 빨간 언니가 말해줬는데..’

 


 세수를 하고나니 아버지가 간단히 먹을 소풍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먹는 욕구를 끝낸 아기를 안고 흔들어주면서 다른 손으로 주먹밥을 마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그에게 움직이는 유우다치였다. 아기옷을 건드리는 느낌에 그는 뒤돌아보고 말을 했다.

 

  “일어났구나. 기분은 좀 어떠니?”

 

  “조금은 시원해졌어요.”

 


 말할 때 마다 목이 따갑고 까끌까끌해서 말수를 줄였다. 기분은 조금 달랐지만 언제나 크게 소리 지르고 다니다가 이렇게 말수를 줄이니 입술이 간질간질한 유우다치였다. 그녀가 아기를 안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잠에 들게 하는 동안 그는 한 손으로 만들던 주먹밥을 두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자기 것도 만들던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거 뭐. 뭐야?”

 

 그는 웃으면서 만들던 주먹밥을 잠시 두고 손을 씻은 후 위로 올라갔다.

 


 그녀가 본 것은 연분홍빛 옷이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색이 진해지는 게 마치 연꽃의 색을 닮아있어서 정말로 예뻤다. 평소에는 흰 옷도 누렇게 입는 산도깨비 유우다치라 그런지 처음 보는 예쁜 옷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소풍날인데, 이런 건 입어줘야지. 키도 비슷하니까 맞을거야.”

 


 자기가 이런 걸 입어도 되는가 싶은 마음과 너무 예뻐서 당장이라도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흔들어주고 있는 동생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하자 그는 아기를 받아주고 등을 살짝 밀어서 그녀의 줄다리기를 끝내주었다.

 


 쭈뼛쭈뼛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즐거운 소풍길에 나섰다.

 

 

 히나는 잘 몰랐지만 자주 그녀를 데리러 다녔던 등굣길이니 만큼 유우다치는 최대한 큰 길을 피하고 작은 샛길로 걸어가며 서당으로 향했다. 평소 입던 바지보다 챙이 좁은 치마는 걷는 게 불편했으나 그 유우다치 어디 안 가니 재빠르게 걷는 방법을 찾아 걷고 있었다.

 


 히나는 가던 그대로 강둑을 건너 큰 길을 걸어갔다. 도중에 만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평소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사과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큰 길에 도착해도 그녀의 활기찬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끓는 기분이었다.

 


 케이네는 마치 대출을 하듯 내일의 에너지를 어제까지 술에 몰아 쓴 결과로 돌아온 숙취에 머리를 쥐어 싸고 괴로워하는 코마치의 이불을 덮어준 후 벌써부터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이는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다시 손으로 스윽 쓸며 단정한 선생님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전에 시키 씨도 오노즈카 씨랑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인간 마을의 음식과 술에 빠져 심심찮게 오는 코마치에게 구두로 아이들이 아픈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와 몇 번 이야기하면서 일에 대한 신뢰가 잘 안가 시키에게 서신으로도 보냈던 그녀였다. 혼령이 오밤중에 대충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편지를 가지러 오는 건 오싹했지만 그게 더 믿을만했기 때문이다.


 

 어제 온 답장에는 코마치가 한 말과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아마 피안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걸어가면서 보니 아이들 사이에 깡쫑한 키로 밝은 색의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히에다 가문의 당주, 아큐였다.

 

  “아큐?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아아~, 케이네. 기대 되서 잠을 설쳤거든. 아히히.”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녀들을 학생들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속어도 있듯이 방금까지 사근나긋하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자기들과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가, 늘 엄격하고 무서운 케이네 선생님과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다니. 질문 거리들이 많아져 앞 다투어 두 사람의 관계를 묻는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얘는 왜 선생님한테 반말해?”


  “얘라뇨.. 저~기 거대한 집 보이시죠? 저 히에다 집의 9대째 당주인 아큐에요. 그리고 선생님한테는 존댓말 쓰셔야죠.”

 

  “아하하, 케이네. 너무 그러지마. 실제 나이는 10살 정도니까.”


 

 그렇게 의기양양해져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큐에게 당황한 표정을 보인 케이네였다. 그녀가 익살맞게 윙크를 찡긋 하고는 다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 멀리서 빨간 옷과 연분홍색 옷이 걸어오는 모습이 케이네의 눈에 보였다. 쪼만한 아이들과 아큐 사이에서 늘씬하게 키가 커 멀리서도 보이겠지만 더 잘 보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둘은 정신없이 걷다가 손짓을 보았고, 서로를 보았다. 유우다치는 자꾸만 점잖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 부끄러운지 조금만 움직여도 나팔거리는 팔춤을 부여잡고 있었다. 히나는 그런 그녀가 생각보다 어울리는 게 귀엽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도 있었고 섣불리 다가가기가 미안했다. 그건 유우다치도 마찬가지였다. 충동적으로 행동한 걸 사과하고 싶었지만 코마치 언니의 말 대로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가까이 다가가 그녀에게 웃어줘야 하는데, 상황이 영 아니었다. 몸 안도 조금 추운 기분이고, 도저히 자기와 이 연분홍빛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거리를 유지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평소에도 떨어지지 않던 둘이 왜 저런 걸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의구심은 잠시 숨겨두고 이쁘게 차려 입고 온 그녀들을 반겼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얌전해진 유우다치와 강한 느낌의 빨간색에 드레스라는 보기 힘든 옷을 입은 히나에게 시선과 질문이 옮겨갔다. 아큐는 잠시 숨을 돌렸다. 허약한 몸에 무리를 했는지 책 한 권을 케이네에게 맡기고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자~ 여러분.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이에요. 저기 작은 숲에 가기로 케이네에게 들었어요. 그 전에,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있으니 교실로 따라와 주세요. 알겠죠?”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리자 케이네는 앞머리를 쓸어 올려 이마를 아이들에게 보여줘 위협을 했다. 그러자 키득키득 웃으며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이 먼저 뛰어 가더니 여자 아이들도 종종걸음으로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와중에도 귀를 막고 있는 히나와 연신 옷을 만지작거리는 유우다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밤기운이 곳곳에 스며들어 여름 아침이지만 스산한 기분이 드는 교실에 아이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다. 아큐는 케이네가 빌려준 의자 위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형형색색의 옷과 눈빛이 마치 작은 꽃밭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들떠 올랐다. 아이들 앞만 아니면 소리를 질러서 두근거림을 해소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옆에 서있던 케이네에게 눈짓을 한 후, ‘수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 제 자리에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책을 펼쳤다. 8대 당주 ‘히에다노 아야’의 <환상향 연기>였다. 아직까지 자신의 책은 내용이 아직 부족해서 들고 온 오래된 책이었다. 환상향에 들어오기 이전의 책이었지만 같은 요괴들이니 딱히 상관없겠지 하는 적당한 생각으로 소풍 전 짧은 수업을 시작했다.

 

  “자 우선 자기 책상에 종이를 펴 주세요. 그리고, 자기가 본 요괴 중 하나를 그려주세요.”

 


 시작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 만들기 시간이었다. 이전에 매듭과 리본 만들기 시간도 그렇고, 이런 시간에는 말썽쟁이들도 그 에너지를 종이에 부어버리는 시간인지라 역사 시간보다 가르치기 쉬웠다. 열심히 그리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아큐가 말했다.

 

  “케이네, 저번에 아이들이 역사 수업을 싫어하고 어려워한다고 했지?”

 

  “어, 응,,”

 

  “내가 지금 쟤네랑 비슷한 나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재미있어 할 거 같으니 잘 봐.”

 


 다시 한쪽 눈을 싱긋 감은 아큐였다. 케이네는 자리를 학생들 뒤로 이동해 그녀와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뒤로 돌아오는 그녀에게 질문하고 키득거리는 아이들이 얼마 즈음 지나서 자기들이 본 요괴 중 하나를 다 그리고는 아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기는 힘든 편이어서 그녀는 학생을 한 명 씩 불러 흑판에 그림을 붙이고 아이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 요괴, 초록 모자에 초록 가방과 파란 옷과 파란 머리를 하고 있었어요. 처음 보는 이상한 것들을 막 팔고 있었어요. 그래서 길쭉하게 생긴 걸 하나 샀는데요. 안에 태양이 들어있는지 누르면은요. 밤에도 낮인 것처럼 엄청 밝아서요. 아빠가 엄청 좋아해요.”



 

  “아아, 캇파에요. 똑똑하지만 좀 영악한 요괴죠.”


 

 아큐는 설명을 들은 후 익숙하게 환상향연기를 넘기며 요괴의 설명을 찾아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요괴에 대한 대비책이 사뭇 진지하게 적혀있는 책이었지만 뭐든지 적당해져버린 환상향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만났다는 특성을 고려해 설명을 하자 아이들도 수업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한 차례의 설명이 끝나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를 들고와 자기가 본 요괴에 대해 설명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런 아이들의 질서를 갖춰주며 케이네도 수업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그림들과 이야기가 나왔다. 밤에 갑자기 동물로 변해 뛰어다니는 요괴, 개구리를 얼리는 게 신기해서 다가가려고 했지만 요정 주변의 한기가 너무 추워 도망갔었던 이야기,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생긴 우산을 펼치고 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졌던 이야기,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부모님이 잡으려고 뛰어다니다 마을 바닥을 굴러서 부끄러웠던 자시키와라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에 설명이 덧붙여지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하는 것도 피곤한지 점점 눈이 감기는 아큐를 걱정하던 케이네가 말했다.

  


  “자, 자. 이제 배고픈 점심시간이니 소풍 장소에 가서 먹도록 할까요?”

 

  “네에!”

 


 여기저기서 아쉽단 소리가 나왔지만 더 이상 하면 아큐가 하루의 에너지를 몽땅 써 버릴 것 같아 그녀는 아이들을 떠밀 듯이 보내고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한 케이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며 옆에 둔 차를 빠르게 들이마셨다. 그녀를 데리고 교실을 나가면서 흑판에 붙은 그림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아큐가 설명하지 못한 히나의 그림이 보였다. 그녀는 자기를 중앙에 그리고 주변을 ‘미안하다’, ‘잘못했다’, ‘화가 난다’ 등 단어들로 빼곡하게 적었었다.

 

 

 히에다 가문의 사람들이 혹시나 있을 요괴의 습격을 막기 위해 숲 주변에 숨어서 경계를 취한 작은 공터에 모인 아이들은 옆에 수북이 쌓인 꽃들을 보고 놀라고 요정들이 편하게 나무와 나무 사이, 꽃 사이를 넘나들며 노는 모습에 매료되어있었다. 여름의 새파란 나뭇잎에 비춰 내려오는 초록색 태양 빛은 정말 싱그러웠다. 길을 걸어가다 지친 아큐를 업고 온 케이네는 그녀를 자리 좋은 돌담에 앉혀놓고 말했다.


 

  “오늘 여기가 소풍 장소에요. 우선 밥 먹고 재미있는 것들을 하도록 해요. 멀리 가지 말고 주변에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도록 해요.”

 

  “네에!”

 


 다들 적당한 자리나 그냥 풀에 풀썩 앉아서 친구들과, 요정들과 밥을 나눠먹기 시작했다. 말을 제대로 하는 요정은 없었지만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입맛이 맞고 흥미도 아이들과 맞는 것 같았다. 유우다치도 풀을 이래저래 쓸어서 풀방석을 후 자리에 앉아서 도시락을 열었다. 가지조림과 주먹밥이었다. 그것이 보이자 그녀는 재빠르게 그걸 덮고 주변을 살펴 히나가 어디 있는 지 찾았다. 다행히 저 멀리서 나무에 기대어 요정에게 밥을 나눠주면서 먹고는 있었지만 신경 쓰여서 손이 가질 않았다. 물과 주먹밥으로 점심을 마무리 지었다.

 


 히나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눈치를 의식하고 있었다. 지금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숨기는 감정 없이 솔직한 게 그녀의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눌까 말까 고민하다보니 입맛이 크게 떨어져 가져온 음식의 대부분을 요정에게 나눠주곤 달콤한 꿀물만으로 점심을 마무리 지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점심을 다 먹고 모인 아이들에게 아큐를 돌보던 케이네는 인원수를 파악한 후,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옹기종기 모여 날개를 파닥이는 요정들과 함께 꽃 매듭 만들기 놀이를 시작했다. 이전에 배운 내용도 있고 이 장소가 마음에 든 아이들이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꽃 매듭을 길에 달아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도 그 점에 쉽게 동의했고 요정들과 함께 매듭으로 긴 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아이들이니 만큼 하나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손목에 팔찌로도 만들어보고 작은 꽃은 반지로 만들기도 했으며 여러 개를 이어 꽃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목표와는 달라도 아이들이 요정과 놀면서 요정감기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고 자연친화적으로 자라는 게 좋으니 최소한의 지도만 하면서 아큐를 재웠다.

 


 유우다치는 여기저기서 활약하고 있었다. 기분은 아직 찝찝하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니 기분이 풀리고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몸이 조금 안 좋았지만 집중해서 이 매듭에 빠져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친구의 목에 목걸이를 달아주고, 요정의 머리에 작은 화환을 만들어주면서 이동을 했다.

 

  “내가 뭐 만들어줄까? 나 이거 엄청 잘 만드는데... 아.”

 


 정신없이 자리를 옮기며 이동하다보니 히나가 눈앞에 있는 줄 몰랐다. 친했지만 그래서 그만큼 어색한 만남이었다. 히나는 시들은 꽃을 들고 그 꽃과 비슷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동공이 점점 커지더니 놀라서 풀 더미 뒤로 기었다.

 

  “아.. 다ㅉ.. 유우다치..”


 

 히나는 꾹 누르고 있던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갑자기 커져서 귀를 막고 말했다. 어제부터 밖에서 들리는 보이지 않는 소리보다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더 커서 소용없는 행동이었지만 습관마냥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이름을 부르는 데에서 거리감을 느낀 그녀였지만 꾹 참고 코마치 언니가 말한 대로 힘을 내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히나나. 꽃 왕관 만들어줄까?”


 

 열심히 짓는 웃음은 자연스럽게 짓는 웃음과 달리 마치 부풀린 풍선마냥 비어있고 불안한기분이 들어 많이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로 히나랑 더 친해질 수 있는 발판을 다진다면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눈치 좋은 히나가 그 불안한 웃음을 몰랐으면 싶었다. 히나는 느리게 뒤로 가다가 그 표정과 목소리를 듣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먼저 다가와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기분이 좋아진 유우다치는 소풍이라서 깻잎 모양으로 쪽찐 머리가 풀릴 정도로 뛰어가 꽃을 안고 돌아왔다. 잠시 히나의 옷을 보더니 그 중에서 빨간 색 계통의 꽃만 골라 매듭을 잇기 시작했다. 흥분했는지 자꾸만 손이 미끄러져서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자 히나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자기 동생과 행동이 비슷한 거 같았다. 우물쭈물하던 히나가 말했다.

 

  “...도와줄게.”

 


 그녀는 만들던 걸 잠시 그만두고 히나를 보았다. 히나가 집어드는 빨간 꽃 마다 영 상태가 안 좋아보이긴 했지만 둔한 손으로 집중하며 꽃을 하나씩 하나씩 묶으니 어두운 기분이 깔려있던 표정이 점차 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꽃줄기 매듭은 손과 함께 꼬였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꽃 왕관을 만들어서 씌워주고 싶어 손이 간지러웠다. 그 시선을 알아챘는지 히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찌푸려서 어거지로 매듭을 묶으려 하고 있었다. 더 꼬이기 시작해서 그녀는 히나의 두 손을 잡았다. 


 그러자 히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

 

  “음...”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히나의 뒤로 돌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히나의 두 손을 손으로 잡았다. 차갑고 거친 그녀의 손에 비해 따뜻하고 여린 손이었다. 그렇게 잡아서 천천히. 마치 인형을 다루는 인형사 처럼 꽃줄기 매듭을 묶어나가기 시작했다

.

 손이 생각보다 차가워서 히나는 깜짝 놀랐지만 점점 자기의 온기를 가져가서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마치 아침의 이불 같은 미온과 만들어가지는 꽃 왕관을 보니 기뻐졌다. 그만큼 울리던 소리들이 잦아진 기분이었다.

 

  “저기.. 다찌.”

 

  “응?”


 

  검지와 엄지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고리를 만드는 동안 히나가 말했다. 말하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안. 화내서 미안.”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며칠 간 자기를 괴롭히던 소리를 닮아있었다. 목구멍에서 꽉 들어차 내뱉기엔 괴롭고 삼키기에는 역한 그런 소리. 뒷말 때문에 어제 일에 대한 사과뿐으로 들렸겠지만 히나는 처음에 한 거짓말부터 모든 걸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다. 잠시 손가락의 움직임이 뚝하고 멈췄다. 지금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히나를 감싸고 있어 얼굴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돌머리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는 너무 알고 싶었어. 그게, 히나나랑 했던 건 다 내가 좋아한 것들 뿐 이었잖아? 히나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랬어.. 미안해.”

 


 만들던 꽃 왕관의 일부를 들고 만들어 둔 것과 이어붙이는 그녀였다. 능숙하게 꼭꼭 빨간 꽃 왕관을 완성한 그녀는 히나의 새까만 검은 머리 위에 그걸 올려주었다. 인형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만족한 그녀는 두 손으로 꽃 왕관의 감촉을 느끼는 히나에게 말했다.

 

  “히나나, 나는 이렇게 웃고 있을 테니까, 언젠가 히나나가 좋아하는 걸 가르쳐줄 수 있을까?”

 


 코마치 언니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해버렸다. 바로 입을 막았지만 새어나온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히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두 손으로 꽃 왕관을 들고 보던 히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고 말했다.

 

  “고마워. 다찌.”


 

 

  “쟤네 둘, 마치 엄마와 딸 같네.”

 

 저 멀리서 바위마루에 누워 온 몸으로 태양빛을 쬐며 오늘 수업하느라 지친 피로를 풀던 아큐가 옆에서 부채질을 하는 케이네에게 말했다. 다른 한 손으로 옷을 잡고 펄럭이며 땀을 식히던 케이네는 말했다.

 

  “으, 화해했으니 다행이야. 저 둘이 떨어지는 건 나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어색해 했을걸..”

 

  “아히히. 나도 케이네가 가르치는 서당에서 공부하고 싶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부채로 가볍게 짓누르자 꺄르륵하는 웃음소리가 났다.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리면서 점점 더위와 피로에 움직임이 느려지고 공터로 모이는 아이들을 보았다. 여기저기 요정이 머리를 당기거나 간지럽히는 장난을 하면서 어울려 노는 모습들이 마치 작은 환상향 같았다.

 

  ‘네가 히에다 가문이 아니었다면 다신 못 만났을 거야..’

 

 부채를 누워있는 아큐에게 쥐어주고 소풍 마무리를 위해 일어선 케이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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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분량이 평소보다 두 배로 많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턴 평소처럼 10페이지 분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