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화

 

승계

 

 

 

(설정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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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어디지?」


 

처음 보는 풍경에 이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 적 없는 언덕에 짙은 안개가 깔려 있고, 온갖 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 한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뻔 했고, 엄습하는 꽃향기에 정신마저 몽롱해졌다.

 

어떻게 해도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이스는 가까스로 다잡을 수 있었다.


 

「호오, 이걸 견뎌내다니...대단한 정신력이야」

 

「누...누구...시죠?」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와 이스는 소리가 난 곳을 주시했고, 곧 한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실루엣은 천천히 이스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넌 지금, 시험을 받고 있단다. 후계가 될 아이야」

 

「시...시험이라고요?」

 

「네가 좀 전까지 있던 상황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이스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티타니아 여왕의 유해에서 쪽지를 읽고, 반지를 끼웠지. 그리고...

 

기억이 나자, 자꾸만 다잡으려고 해도 흐려졌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당신이, 티타니아 여왕님?」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내 손녀, 에스프리야」

 

「에, 하...할머니? 분명 아까 본 유해는 엄청 젊어 보였는데요? 아니, 그것보다...할머니가 여왕님이셨다고요?」

 

「정확히는 외할머니겠지. 아까 본 건 내 몸이겠지? 우주 공간에서 죽었는데, 썩을 리 없지 않느냐」

 


엄마의 엄마? 하지만, 엄마는 할머니에 대한 건 하나도...

 

이스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티타니아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 트리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테지. 하지만 그 아이도 알고 있었을 거야. 네가 다음 승계자라는 걸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예요?」

 


티타니아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이 공간과 같이 현실 세계의 사람이 아닌 듯한 미모.

 

지금의 자신이 초라해질 정도의 미모를 보고 이스는 다시 한번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윽고 티타니아가 말을 이었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를.

 


「헤르미아에는, 고대부터 여왕이 한 명씩 존재했지. 행성 하나를 통째로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 생각해 본 적 있니?」

 

「...」

 


상상만 해도 아득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권력이잖아...그런 게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게 우리 고대의 일족이란다. 피가 아무리 섞여도, 그 정당성과 권력에 이의를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그런 게...있을 리가...」

 

「하지만 존재했어. 나는 좀 특별했지. 헤르미아 행성에 그치지 않고 이 항성계 전체를 먹어버렸으니까」

 

「그건...듣긴 했어요. 퍼크에게서」

 


반가운 이름이라도 들은 건지, 티타니아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퍼크...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구나. 오베이론은 건재하더냐?」

 

「네...이미 저를 여왕으로 인정했던데요? 절 위해 일해주고 있어요」

 

「그래, 벌써...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

 


이스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티타니아가 이어서 말했다.

 


「고대의 일족은 두 대에 걸쳐 한 명의 여성 후계자를 잇는다. 손녀가 많을 경우는 장녀에게 가게 되지」

 

「에...그럼, 두 대가 지났는데 아들에 손자만 있으면요?」

 

「그 아들들이 후에 딸을 낳는다면, 그 딸이 후계가 된다. 남성은 절대 후계가 되지 못해. 대가 끊어지면 그걸로 끝이고」

 


그리고 이젠 내가 후계가 될 차례라는 거지. 이스가 이해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드의 소망이었던, 전쟁의 종결을 내 손으로 이룰 수 있어!

 


「그럼, 이제 전 뭘 하면 되는거죠?」

 

「마음을 열고 내가 넣어주는 지식을 이해하고 융화시키면 된다. 매우 간단한 작업이지만, 좀 아플 게다」

 

「...아프다고요? 아픈 건 싫은데」

 

「너라면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시작하마」

 


티타니아가 한 손을 들어 검지손가락을 이스의 이마에 댔고, 동시에 이스의 머릿속에 방대한 양의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지식의 주입속도가 뇌의 처리속도를 한계까지 자극했는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스는 이를 악물고 참았고, 곧 두통이 가셨다. 티타니아가 말했다.

 


「대충 이 정도려나? 이젠 능력을 전해주마. 이건 아까보단 좀 더 아프지만, 금방 끝나니 조금만 참아라」

 

「네」

 


티타니아가 이스의 양 손목을 잡자, 이드의 외장갑이 움직일 때와 비슷한 느낌의,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이스의 전신을 휘감고, 곧 세찬 돌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스의 몸이 살짝 떠올랐고, 돌풍을 이기지 못한 옷이 하나 둘 찢어지며, 이스의 몸에도 상처가 생겼다.

 

이런 아픔 따위, 예전에 땅에서 굴렀을 때에 비하면...

 

이스는 다시한번 이를 악물었고, 까드득 소리와 함께 잇몸이 터져 피가 흘렀다.

 

이윽고 속옷마저 남김없이 찢어지고 티타니아가 손을 놓자, 이스의 몸이 공중에 뜬 상태로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돌풍이 잦아들었고, 돌풍에 찢긴 피부나 터진 잇몸이 하나 둘 회복되어 갔다.

 

곧 이스를 휘감았던 돌풍이 이스의 몸에 모두 흡수되었고, 이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도 사라졌다.

 

이스가 다시 땅에 두 다리를 대고 서자 티타니아가 감고 있던 망토를 벗어 이스에게 둘러주었다.

 


「잘 참아냈다, 에스프리...내 아가야. 승계는 완료되었다」

 

「...」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이 이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연되며,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대로 티타니아의 품에 안겨서 실컷 울고 싶었다. 티타니아도 그 마음을 아는지 이스를 꼬옥 안아주며 속삭였다.

 


「지금은, 실컷 울어도 된다. 앞으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때가 있을 것이니...」

 


이스는 커다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티타니아의 품에서, 마치 자신의 모든 눈물을 쏟아내겠다는 듯 서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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