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2014-12-23 05:26
조회: 2,412
추천: 0
새벽에 산책을 좀 다녀왔습니다.사랑했던 그녀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잊고 지내자며 마음을 다 잡고 살아왔는데. 그간에 있었던 미련 때문이었을까? 쉽사리 축하의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처음 메신저를 통해 그녀의 최근 소식을 접했다. 밥은 잘 먹고 사는지, 몸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너무 뻔한 물음에 뻔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건만. 왜 불길한 예감은 꼭 잘들어 맞는지 모르겠다. '나 내년에 결혼해 ㅎㅎ' 나 내년에 결혼해..내년에 결혼해..결혼해.. 머리에 망치로 가격을 당한듯 멍하니 있었다. 분명 메신저 상태는 수신 상태인데,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왜..그때 축하한다고, 결혼식날 가겠다고,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을까 생각을 해보니. 그건 아마도 내가 너를 많이 사랑했었나 보다. 세상 어느 이유를 갖다 대어도 그만한 이유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랬다.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와 사랑을 했는데, 그 여자와 이별을 겪고서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을 하면 제자리로 가는 척 했다. 사실 이별이라는건 짧은 섬광처럼 한순간에 잊혀지지 않는 그런 기억들이 모여 있는 유리조각 같다. 분명 그날의 기억은 아름다운데 심장을 찌르는. 정말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나보다. 그 흔한 축의금 농담도 할 수가 없었고. 바보같이 그저 스마트폰 메신저 창만 들여다 보았고. 머리속은 시간이 갈수록 더 새하얘졌다. 분명 지금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도.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편지지처럼 아련해지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새로운 장을 꺼내, 새로운 펜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앞으로 계속 써내려 가야 한다는 것을. 끝에 빈 공간이 없이 이미 빼곡히 적혀진 공책에 마치 억지로 이야기를 채워넣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난 3년간 나같은 놈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웠고. 생각보다 좋은 놈이 아니라서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한때는 이 세상에서 너를 누구보다 사랑했었다. 결혼 축하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빈다. 축의금 꼭 낼께' 새벽공기가 차다. 간만에 쉬는 날이니 좀 더 산책을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