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와 말자하에게 재판이 치뤄진다는 소식은 자운시 의장에 의해 알려진 날로부터 3일 뒤였다. 너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챔피언이 참석하는 재판은 변호사를 고용하는데 엄격한 제한이 걸려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전장 안에서의 인식과 사회에서의 인식이 다른 엘리스에게는 남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

 

 자운에서 싸움이 일어난지 하루가 지났고, 종교사제로서 할 일은 모두 끝난 밤이 되었다. 자운에 머물면서 쉬고 싶었지만, 어제의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아서 생각을 바꿨다.

'그림자 군도에서 쉬는 수밖에 없겠군.'

 그곳에 있으면 자신의 동료들에게 격려정도는 받을수 있을 것 같았다.

 활력을 잃은 초록색 기운이 퍼지는 이곳, 그림자 군도. 이곳에 설치되어있는 포탈에 푸른 빛이 땅에 내려왔고, 목적지에 온걸 확인한 엘리스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갔다.

 

 엘리스의 집은 그림자 군도의 해변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에 있었다. 될 수 있는한 많은 신도들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군도에 내려와서 영혼을 뺏기는 사람이 없어야하는것이 주 이유였다.

 동굴 속에 들어가니 두갈래길이 나타났다. 당연히 엘리스의 집으로 이어지는 방은 왼쪽이었다. 그럼 오른쪽 동굴에는 뭐가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경배를 올리는 신도들을 잡아먹은 커다란 거미의 안식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성인 남성의 덩치를 자랑하는 거미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엘리스가 전투용이나 스킬용으로 사용할 때 쓰이는 새끼거미들도 있다. 여왕의 거미는 달랐다. 새끼거미를 낳는데 짧은 주기를 갖고 있어서 엘리스는 그렇게 많은 새끼거미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혹시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제의 사건으로 오른쪽 동굴의 수많은 새끼거미들이 떼죽음당한 것이다. 물론 그들은 엘리스를 따르기 때문에 백병전용 병사로 쓰이든, 생체 폭발물질로 쓰이든 반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큰 전력상실을 겪었기 때문에 아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 죽어주었으니,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복이라도 받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나 말자하의 스킬에 의해 몰살당한 수백마리의 새끼거미들에게 엘리스는 딱 그말만 하고 더이상의 생각이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간단한 마무리였고 종속관계를 초월한 냉정한 태도였다.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고목위에 만들어진 왕좌였다. 거미줄도 얼기절기 얽혀있었고, 무엇보다 왕좌 뒤에 보이는 8개의 다리는 엘리스의 자리임을 부각시켰다. 그녀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그 의자에 앚아서,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손잡이의 끝을 잡으면서 누군가를 노려본다고 하면 그야말로 영락업는 여왕의 모습이요, 의자는 왕좌로 거듭난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니까, 저기에 앉아서 잘 수는 없겠지."
 6월 28일, 밤중이었다. 탐험가가 잠깐 발을 들여오는것 이외에는 보통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만큼 망령만 가득한, 적막한 군도였다. 하지만 그러기에 지금 심리상태의 엘리스가 안정을 취하기 최적의 장소로 선택되었다.

 6월 29일, 다음날. 아침에 늘상 모여왔던 궁전으로 향한 엘리스는 평소보다 적은 수의 챔피언을 보고 놀랐다. 예상대로라면 7명의 챔피언들이 있어야 했는데 4명의 챔피언밖에 없었다.

"뭐야, 언제 왔었나?"
"오 엘리스. 어제 일어났던 사건은 잘 들었다."
"그건 엊그저께 일이라고 카서스."
 "재판을 앞두고 여기에 온 이유가 좀 궁금한데."
 얼핏 들어봐도 놀람을 표현하거나 다소 엇나간듯한 느낌의 안부를 묻는 동료들이었다. 엘리스는 그들 한명한명에게 대답했다.

"어제 밤에 주말일정을 다 끝내고 왔어 모데카이저. 어... 언데드여서 시간개념이 잘 느껴질 수도 있지 카서스. 아니 칼리스타, 너에게 말한건 아니야. 그리고..."

 헤카림의 물음에는 빠른 대답을 요구하는듯한 목소리가 들어있었다. 잠시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 끊겼다.

"내일 재판이 나에겐 너무 중요하잖아?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이곳에 잠깐 왔어... 그런데 쓰레쉬는? 이블린과 요릭은...?"

"네가 자운으로 떠나기 직전에 전쟁 학회로 호출된거 기억나나. 거기에서 처벌을 받았는데, 최하위 랭크 C로 강등당했고, 3개월동안 소환사의 지배하에 심부름꾼이 되어서 여기에 있을 처지가 아니게 되었다."

"이블린은 전장활동을 몇일째 계속하고 있다. 뭐, 원래 그런 녀석이었으니."
"요릭은..."
"우리도 모른다."
 모데카이저, 칼리스타, 카서스, 헤카림 순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응, 그래..."
 엘리스는 가볍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엘리스는 살짝 기분이 상한 채로 자신의 집으로 왔다.

'왜 아무도 나를 걱정해주거나 신경쓰지 않는거지?'

 형식적인 말투라도 좋으니까 그런 말을 누구 하나에게 듣고싶었는데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예상 밖의 무관심이었다. 그렇다고 궁전에서 조용히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계속 화제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씁쓸함은 남았다.

'누구 하나라도 좀 물어보면 될걸...'

 그래도 그들 나름의 배려를 한거라고 생각하면서 합리화를 해버렸다.

"아, 그러고보니 신이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충고정도는 해주시겠지."

 여차저차해서 마침내 자신의 신 앞에 서있는 엘리스.

"신이시여, 내일 제게 있어서 중요한 재판이 달려있습니다. 종교를 위해, 그리고 변함없이 섬길 저를 위해, 그리고 저를 지켜봐주시는 당신을 위해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까..."
''4년동안 나에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여준 네게 못도와줄것은 없다. 엘리스. 하지만 소환사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일히 내가 나서서 도와줄수는 없지.''

"그렇습니까."
''하지만 짧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내가 도움을 주겠다. 그리고 지금은 네게 적합한 어드바이스를 해주지.''

 엘리스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은 기쁨으로 가득찬 얼굴을 지었다.

"무엇입니까?"

''잘 들어라.''

 신은 말했다.

 

''거짓된 행동없이 솔직히 대하라. 말자하의 주장과 논리에 흔들리지 말라. 그리고 생각하지 말라. 저들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없는 기억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다. 네 종교는 나를 섬기기 위한 표면적 성과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소환사들도 너를 알고있다.''

<계속>

 

<글쓴이의 말>

 

 어제 영화 '어쌔신 크리드'를 보고왔는데... 억ㅋㅋㅋ

게임속 명대사인 Requiescat in pace(평안 속에 잠드소서)라는 명대사를 탈론이 하면 어떤 느낌이 날까요ㅋㅋㅋ

웬지 파쿠르가 거기서 나온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