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블랑은 손으로 입을 막지도 않고 호탕하게 웃었다. 엘리스는 쓸데없이 그 웃음을 두번이나 들었기에 얼굴이 이미 일그러져 있었다. 아마 그 표정에는 '그렇게 놀릴 바에 차라리 입 닥쳐'라는 무언의 메세지가 담겨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르블랑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웃음을 멈춘 그 때, 그녀가 서있는 바닥에서 연기가 솟아나왔다. 그 연기가 르블랑을 덮었다. 잠시 뒤에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엘리스 챔피언님의 얘기는 다들었으니,"
 연기가 사라진 그곳에는 집주인이 서 있었다. 엘리스는 집주인을 목격하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있었다.

"이제는 제가 얘기를 할 차럐군요."
"왜, 당신은 나를 만나려고 한거죠?"
 집주인이 르블랑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없는데도 엘리스는 집주인의 모습을 보고 무위식적으로 존댓말을 썼다.

"당신? 누구를..."

 집주인은, 아니 르블랑은 그런 엘리스를 조롱하려는듯 집주인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바꾸면서까지 말을 이었다.
"...말하는거니? 나를?"

 물론 엘리스의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의 정체를 알아차린이상 자기가 꺼낼 수 있는 말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집주인은 단지 네 위장'배역'이었다는건가, 르블랑?"
"말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넌..."
 르블랑은 또다시 집주인으로 모습을 바꿨다.

"이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이라고 믿은것 같은데?"
 엘리스는 흔들리는 눈빛을 고개를 가로저음으로써 감췄다. 자기가 처음으로 마음을 놓고 대화를 한 상대가 과거에 만났던 챔피언이었다니.

"그래. 네가 이겼다고 쳐주지. 본래 챔피언인 네 모습으로 돌아가줄래? 그 모습으로 있으니 말이 편히 나오지 않아서 말이야."
"그러지. 나도 마음을 놓고 이야기해야 하니까."
 집주인의 모습이 르블랑으로 바꿔졌다. 이로서 챔피언 대 챔피언의 대면이 성사되었다.

 

 처음부터 침묵이 이어졌다. 엘리스는 자기를 위한 침묵이라고 생각해 먼저 말을 건넸다.

"왜 녹서스 주민들이 날 잡아서 블라디미르에게 데려가려 하는거지?"
"지금으로부터 몇년 전 사건때문이잖아. 몰라서 묻는거야?"

 갑자기 엘리스는 눈에 힘을 잔뜩 준채 르블랑에게 물었다.

"그게 몇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

"6년 전밖에 안됐는데 모를수가... 아 맞다. 너, 전장에 입문하기 전의 기억이 없다고했지..."
 엘리스가 집주인 상태의 르블랑에게 말한 것은 챔피언으로서 자기를 간략하게 소개한 것과 청문회로부터 몇 일 전부터의 이야기만 들려줬지만 그 사이에는 자신의 기억상실과 신에 대한 언급도 있었기에 르블랑은 큰 반문없이 그녀의 물음에 공감해줬다.

"그래, 그럼 내가 알고있는 너에 대한 기억을 모두 얘기해줘야겠군."

 어쩔 수 없다는듯이 르블랑은 입꼬리를 올린 다음 말을 꺼냈다.

 

"'인류의 재구성'에 대해 알고있니?"

"들어는 봤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이전의 인류가 소환사에 의해 재창조된 날이라고 했던것 같아."

"그래 맞아. 그 날은 리그력으로는 CLE 19년 2월 21일이고, 그레고리력으로 따지자면 2009년 2월 21일이었지. 나는 '인류의 재구성'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인류에 속하며, 동시에 '인류의 재구성'으로부터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이야."

 르블랑은 인류의 재구성을 친절하게 정의해주자마자 자신의 충격적인 정체를 밝혔다. 당연히 이말을 듣고있는 엘리스는 후반부의 충격적인 자기소개에 입을 떡 벌리면서까지 경악을 해버렸다. 르블랑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듯이 잠시의 텀만 주고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인류의 재구성'이 일어나기 전 세상에서, 나는 '블랙브라이어'라는 비밀 조직에서 활동했어. 초창기부터 가진 놀라운 정보력을 활용해 전 세계의 인재들과 고위 관직층이 소속된 이 단체는 국가정책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활동들을 해왔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조직의 성과는 점점 줄어들기만 했지. 왜였을까. 우리들이 원하는 공공의 목표가 없어서였어. 서로 다른 이상을 품고 여기까지 들어오는데 성공했지만 조직활동을 하는데 모아야할 의견을 조율하지 못했단 말이지. 결국 조직은 해체되고 거리의 방랑자가 되고있을 무렵에 중요한 사건이 터졌지."
"'인류의 재구성.'"
 르블랑의 말하려는 사건을 엘리스는 정확히 맞췄고 르블랑은 자신의 입을 조금 편해지게 해준 엘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진짜로 소환사라는 이름의 창조주인지, 사이비교도들의 사기극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세계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거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난 결심했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저들에게서 살아남자고. 인류의 재구성이 일어날 당시 하늘은 백색으로 가득찼고 사람들은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의 위를 바라보곤 어떤 질문에 대한 응답을 했는데,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포탈로 빨려가서 강제적인 죽음을 맞이한듯 해. 나는 운좋게도 그들의 기대하는 답안을 꺼내는데 성공했고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무감각 상태로 지냈어. 그러다 내 오감이 돌아오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이 여러 존재들로 채워지는 순간을 목격한날, 비로소 나는 새로운 세계로 이동해왔음을 알아차렸어."

"..."
"믿기지 않겠지만 이것은 모두 내가 경험한 사건이야. '인류의 재구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0.01%도 되지 않았다고 해. 나중에 전쟁학회 도서관에서 알게된 정보였지.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은 과학과 마법이 양립하고 있는 세계로 바뀌어져 있었고, 정말이지 그 당시에는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고 믿었어. 나는 '검은 장미단'이라는 마법사 집단에 들어가서 지금까지 쓰고있는 분야의 마법을  배웠어. 참고로 이 조직엔 '인류의 재구성' 이전의 인류인 블라디미르와 스웨인이 속해있지. 그러던 어느날, 전쟁이 일어났어. 데마시아와 녹서스가 광산개발을 앞두고 벌인 전쟁이었는데... 알고보니 '검은 장미단'은 지금의 군사정권으로 돌아가는 녹서스 이전의 실질적인 집권층이었던거야. 나는 녹서스의 편에서 싸웠고 혁혁한 공을 세웠어. 그 때, 전쟁을 강제로 종식시킨 세력이 있었지. 바로 '전쟁 학회'야. 이 세계의 창조주인 '소환사'들이 이 세계의 지상으로 직접 내려와서 전쟁을 멈췄는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위해 제한된 조건의 전쟁을 치르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하더군. 그것이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이름의 전장과 '챔피언'이라는 직업의 등장이라 한다나."

"..."
"'전쟁 학회'가 등장해 전쟁을 중단시켰지만 이미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버렸고, 나는 이 세상이 다시 한 번 모순된 사이클을 돌고 있다고 생각했어. '소환사'라고 불리는 창조주들이 세계를 다시 만들었는데도 우리들은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해온 것에 실망한 나는 다시금 '인류의 재구성' 이전의 활동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었어. 때마침 나는 선대 '검은 장미단'의 수호자의 직책을 물려받았고, 그 누구도 싸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기로 마음먹은 나는 검은 장미단의 활동중 금기된 마법을 발굴하는것에 주력했지."


"...대체 내 얘기는 언제하니, 르블랑?"
 상당한 분량의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슬슬 자기얘기가 나오지 않아 엘리스는 슬슬 갈증이 나던 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리고... 휴우, 이제야 네 얘기를 하는군 엘리스."
 그녀가 목놓아 원하는 답을 들려주는 시간이 다가왔다.
"끊임없이 운영되는 조직의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검은 장미단'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멤버를 잃어갔고 우리 세대를 이어갈 후임자도 찾지 못했어.  그래서 수많은 정보를 토대로 우수한 인재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들 중에 엘리스, 네가 그 무리에 속했어."
 

 엘리스는 평소보다 눈에 힘을 주고서 르블랑을 보았다. 르블랑은 엘리스의 그런 눈이 너무 낮설어서, 그녀가 있는 이 공간속에서 미묘하게 춤추고있는 촛불을 인식하기 전까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눈 꽤나 부담스럽군."
"미안."

 엘리스는 르블랑의 피드백을 받고나서야 자신의 눈에 담긴 힘을 풀었다.

"그당시 마주친 너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있었어. 새하얀 피부에 고혹적인 몸매를 지닌 미인이 아닌 연녹색 피부를 가진 반인반수에 가까웠지. 아직도 기억나. 네가 들고있던 분홍색 우산과 괴리감이 물씬 풍기는 보라색 드레스, 그리고 인간이 가질법한 두다리가 아닌 거미를 연상케하는 6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지."

 엘리스는 르블랑이 떠올리는 신체부위를 조각조각 떠올려서 머리속에서 맞춰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의 자신과는 딴판인 형태의 모습을 가진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반인반수라... 얼굴도 미형은 아니었을게 분명하고...'
"너를 비롯해서 10명의 멤버가 새로운 단원이 되었고 동시에 나는 '검은 장미단'의 수호자, 즉 우두머리라는 자리를 맡게 되었지. 우리들은 이 단체에 대해 철저한 비밀보장을 하는 대가로 흑마법을 연구하는걸 허용했어. 처음에는 모두 내 말을 따라서 열심히 활동했고 우리들은 이전 검은 장미단이 해내지 못한 업적을 달성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어.."
"그런면에서 보면 꽤나 성공했군."
"그렇지. 문제는 그 이후였어. 물론 신입멤버들의 힘이 없었으면 이룰수 없는 성과였지만 검은 장미단의 주축인 선임들과의 호흡으로 이루어낸 결과라는걸 망각한 나머지 새로 들어온 단원들이 이전세대인 우리들에게 어설픈 협상을 걸어왔지. 자기들에게 더욱 강한 흑마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검은 장미단의 기밀을 모두 누설하겠다고. 겁이 없더라고. 그렇게 개죽음 당하기 직전까지 말이지."

"잠깐, 나도 새로운 멤버 중 한명이었다며?"

"그래. 넌 다른 뉴비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었어. 바로 넌 그들중에서 유일하게 '챔피언이 되지 못해 이곳으로 온 사람'이었다고."

 엘리스는 '검은 장미단'에서 활동할 당시의 자신의 모습을 추상해보며 한가지 중요한 기억의 퍼즐을 조립해냈다.

'그럼 내가 본 기억은 검은 장미단으로 들어오라고 회유당하는 장면이었군.'

"그래서 그런지 너는 줄곧 흑마법연구에 빠졌기에 그 애송이들처럼 자기 수명을 단축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당시의 넌 아직도 챔피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 너를 제외한 신입멤버들이 죽은지 한달쯤이 지난뒤 너는 '검은 장미단'에서 빠져나오려 했어. 하지만 그당시의 나에게 걸렸지."
 

 엘리스는 그 당시의 자신이 르블랑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대사를 지어보았다. 그 당시부터 챔피언이었던 그들을 힘으로 겨뤄서 이겼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처럼 인생이 파탄나지 않았기를 희망할 수 있기에 가능할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

<작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원작vs팬픽 설정 비교>

르블랑



원작 : 그녀의 풀네임은 '에밀리아 르블랑'. 하지만 이 이름은 '검은 장미단'에서 부여받은 이름이며, 그녀의 진짜이름은 '이베인'이라고만 합니다. 녹서스의 일인자인 스웨인과 협력관계에 있으며, 리그의 챔피언들중 블라디미르와 스웨인과 같이 '검은 장미단'의 일원입니다. 하지만 르블랑은 '검은 장미단'의 수호자라는 계급을 가지고있는걸 감안하면 '검은 장미단'이라는 집단에서의 서열은 정반대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검은 장미단'이 비밀리에 활동하는 조직인만큼, 그녀는 끊임없이 이곳에서 금지된 마법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르블랑에 대한 설정이나 배경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팬픽(현 작품) : '인류의 재구성'이전 세대의 인류에 속하는 인간이며, 동시에 '인류의 재구성'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인간입니다. '인류의 재구성'으로부터 살아남은 그녀는 녹서스에서 살아가며 '검은 장미단'의 일원으로 활동, '전쟁 학회'가 생겨나고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전장이 생길쯤 선대 르블랑으로부터 수호자의 자리를 물려받아 '검은 장미단'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글쓴이의 말>

이번화는 여러 설정들이 공개되는 편이라 대대적인 보완과 수정이 필요했네요. 글쓰는 내내 키보드로 가지치기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