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엘리스는 이러저러한 생각에 갇혀버린채 수련 첫째날의 오후와 밤을 지냈다. 7월 27일에 있을 수련을 생각하며 그녀는 수도원 주변에서 대나무잎들을 이불과 배게삼아 잠을 취했고, 자기도 알지못하는 자신에대한 의문을 곱씹으면서.


"오늘은 늦었소."
"미안해."
 인생 최초의 대나무밭취침과 모기때문에 날을 꼬박새는것도 하루이틀이었기에 엘리스는 작정하고 취침을 결심했고, 그 결과는 지각이라는 사건으로 끝맺음되었다. 어제아침에 했던 팔굽혀펴기의 영향으로 가슴이 땡기고 양팔에 힘이들어가지않았으나 그녀에게 주어진 팔굽혀펴기의 양은 전과같았고, 리신과 같은 밥상에서 먹는 아침식사또한 변함없는 영양식위주였다.


 그런 그녀가 오늘을 어제와는 다른 특별한 날로 여긴 동기는 오전수련에 일어났다. 개인수련에 들어가기에앞서 이때만큼은 자신의 복장을 바꾸기로 결심해서 수도원에 있는 여분의 도복을 입기로했다. 물론 리신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했다.

 챔피언 복장을 벗으면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갈수록 작아지고 수수해져갔다. 장갑과 일체화된 팔목보호대와 팔의 대부분을 덮고있던 장비를 풀어내자 그동안 보았던 외양보다 더 가느다란 팔이 드러났고, 양 어깨에 달려있는 장신구를 풀어내자 그녀의 머리뒤에서 후광역할을 해준 검붉은 세개의 거미다리가 제거되었고, 독특한 힐과 일체형으로 이루어진 타이츠를 벗으니 그녀의 신장이 대략 10cm 이상 작아졌다. 노출도가 매우 높은 상의를 벗자...



 

팟-

 

 

 뜻밖의 인물이, 의외의 장소에, 기막힌 타이밍에 등장했다.


 

 ...라고는 했지만 등장한 인물은 누군지 세세히 설명하지않아도 알법한 사람이었다. 문을 굳게 닫아놓아 폐쇄된 공간임에도불구하고 간단하게 해당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존재는 현재 아이오니아에있는 몇 안되는 챔피언이니까.

"..."
"꺄아아악!"

 감정을 잃은 여자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의 빠른 비명을지르고선 엘리스는 서둘러 도복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뭐...뭐야, 여긴 왜 온거야!!"
 당황해하는 그녀에비해 카사딘의 대답은 차분했다.

"네 수련일정이 어제와는 달라졌다. 오전에 마오카이와같이 마법을 다루는 연습을하는걸로 변경된다고했는데, 네가 그걸 알리가 없기에 리신에게 물어본뒤 이곳으로 온거지.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그의 대답과는 다른 모습을 보고 엘리스는 흥분을 금치못했다.

"아니 그말을 어떻게 실오라기 하나걸친거없는 여자를 보면서 무덤덤하게 얘기할수 있는거야! 여자를 좀 생각하면서 행동하거나 말해줄래?"
 엘리스는 자기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카사딘에게 소리쳤지만, 그 영향이 자신에게 어떤말을할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카사딘과 제대로된 이야기 한번 나누어본적도없기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자잘한 가능성까지도 은연중에 고려할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카사딘은 발자국소리 하나내지않고 미끄러지듯이 엘리스를 향해 다가갔다.

"네가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자격이 있는가."
 그녀가 무어라 대답을하기 이전에 카사딘의 물음이 또 튀어나왔다.

"네가 '여자'로서 대우받길 원한가."

 그의 물음은 정해진 답이 있는가 판가름하기 이전에, 답을 할 시간도 주어지지않는 고약한 듣기평가와 같았다.

"네가 너의 알몸을 보고 흥분하거나, 당황하거나, 사죄하기를 바라는가."
 둘 사이에 공기입자만 존재할정도만큼의 간격 남길정도로 서로간의 거리가 좁아지자, 주저앉은채 도복으로 알몸을 가렸던 엘리스는 뒤로 물러났다. 더이상 벽에 부딪혀 뒤로 뺄 곳이없고, 천천히 일어나 그의 얼굴을 마주봤을 때,


 

쿵-


 

"커억!!!"
 카사딘의 손이 그녀의 목을 잡았다.

"넌, 그럴 자격이 없다."
"으... 으윽..."
고통에 몸부림을치면서 힘이 빠져나가자,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렸던 도복마저도 흘려버렸다. 카사딘의 시야에  나체의 여자가 들어왔지만, 그 여자의 목을 붙잡은 그의 몸동작과 떨림으로보아 성적인 흥분은 커녕 다른 '증오'외에는 다른 감정은 느끼지않는듯했다.

"넌 그럴 수 있었다. 부끄러움마저도 너의 매력으로 여기는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네 알몸을 보고 흥분을 금치못하거나 죽을죄를 졌다고 말할 존재로 여길 수 있었다. 네가 한 사람의 여자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같이 잠자리를 가지고싶어할만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한 가정을 꾸릴만한 자격을 가진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않아도 악평가를 받지 않는 여자일 수 있었다! 네가 '그 짓'만 하지않았더라면!!!"

 그의 얼굴은 가면과 마스크로 가려져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사이에 하나의 막이 있음에도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니, 점점 축 쳐저가는 엘리스도 수많은 침을 내뱉으며 독설하는 가면속 그의 본래 얼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모진말을 들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을 붙잡고있는 손의 악력이 느슨해졌다. 카사딘이 그녀의 목을 놓았다. 앞으로 쓰러지듯 무릎을 꿇은 채 켁켁거리는 그녀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는 말했다.

"네녀석의 곁에 있어야한다는것 자체가 짜증난다. 마오카이만 아니었더라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을텐데..."
 그의 치맛자락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때까지였다. 엘리스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을때 이미 그는 어딘가로 가고없었다.


 

 그녀는 리신의 개인수련장에 늦지않게 도착했다. 마오카이는 이 시간대에 그녀가 해야할 새로운 연습내용을 알려주면서도 어딘가모르게 가라앉은 엘리스의 모습을 지켜봤다.

"무슨 일 있었나."
 엘리스는 자기에게 있을 수 없는 가련한 눈길로 마오카이를 바라봤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컨디션이 안좋은것뿐이야."
'거짓말.'

 이라고 마오카이는 말할 수 있었지만

"그렇군."

 이라 말했다.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는걸 알고있는 그가 할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내가 한 짓이 얼마나 무거운 죄인걸까.'

<계속>

 

<글쓴이의 말>

이번주에 한편밖에 올리지못한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