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가 평소에 메모할 수첩과 펜을 산 뒤에도 그레고리의 설명을 적기 바빴고, 영화의 윤곽이 어떤지 대충 감을 잡았을때는 이미 하루가 많이 저문 뒤였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레고리 씨."
"헉헉... 네... 저도 이런 시간 가질줄은 몰랐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길 바랍니다."

 기자로서의 능력은 나쁘지 않은 그의 실력으로 정확하고 요점만 골라서 메모하는데 큰 도움을 받은것도 사실이고, 하나하나 말해가면서 설명해주느라 그의 입에 침이 말라버리것도 사실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엘리스도 그냥 헤어지기엔 좀 마음에 걸렸나본지 저녁식사비까지 내주면서 같이 밥을 먹었다.


"내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네에?! 아니, 좋습니다."

 이성이 그의 머리를 작동시키지않았다면 그는 지금 솔직한 답변을 했을테지만 아슬아슬한 차이로 정반대의 말을 해버렸다. 엘리스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내도 나쁠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일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해놓은 뒤 리신의 수도원으로 갔다.


"내가 오늘 뭘한거지..."

 그녀와 반나절을 같이 보낸 그레고리로선 오늘 하루가 그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금전적인 지출은 단 하나도없었지만 취재나 인터뷰에 도움이 될법한 건덕지는 거의 못건졌으니 뭐, 그의 무력함은 정당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게 다행이군."
 

 그녀에게 다시 내일 아침 6시까지 일어나야하는 과제가 주어졌고 엘리스는 그에 상응하는 수면시간을 가져야만했다. 밤잠을 설치게끔 만드는 모기를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가능한 일.

 그녀가 마법을 쓰는데 연습한 이유는 장기적인 시각으로볼땐 전투력향상을 목적으로 하고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적재적소로 쓸만한 실력을 키우는데에 의미를 두었다.

 모기를 잡아먹는다는 거미, 그리고 그 캐릭터를 자신과 결합시켜서 얻은 '거미 여왕'이라는 호칭을 가진 여자가 모기때문에 밤잠을 못이룬다는것 자체가 자기자신에게 모욕적이다. 누가 주는 모욕인지는 상관없다.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기위해서라면 자기자신이 스스로 모욕을 줄 수도 있다.

'이겨내보이겠어.'

 녹서스에서도 그랬고 리신과 싸웠을때도 그랬다. 거미로 변하는 스킬 하나만 제대로 쓸 수 있고 나머지 스킬들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상태. 그런 상태에있는 그녀에게 오늘 수련이 특별한 의미가 없었음에도 힘하나 들어가있지않던 까만 눈동자와 안면근육에 힘이 들어간이유는 다른 동기가 있어서다.

'언젠가, 너를 말로든, 싸움으로든 이기고말겠어.'

 그 각오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맺은 새로운 결심이었다. 그 결심은 지금당장이 아닌 내일아침 6시부터 시작되기에 일단은 모기를 최우선시로 몸을 놀려야한다. 하지만 새끼거미 한마리도 불러내지못하고, 신경독을 시전했을 때 느껴지는 기운의 출처도 모르는 그녀가 거미줄 하나를 뽑아낼리도 없다. 이런 그녀가 방해요소를 극복한채 오늘밤에 편한 잠자리를 이룰 만한 가능성이...

... 있다.


 

 7월 29일의 6시에 리신은 평소와는 다른 엘리스를 느꼈다.

'세번째 날밖에 되지않았지만 그동안 보인 2일동안과는 다르군. 터무늬없이 느리던 호흡이 방금전까지 운동하고온 사람마냥 빠르오. 잔디가 밟히는 소리도 묵직하고, 그리고...'

 리신의 독백이 잠시 멈췄다. 결의에 가득찬 목소리로 '왔어, 리신.'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아침인사도 한 이유였지만 그조차도 간과할법한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좋은 자세요. 무언가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그 모습."
"그래, 좋은 아침이야. 시작할까."
 그 요소는 독백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기에 그것에 대한 생각을 빨리 접고 아침수련으로 넘어갈 마음이 생겼다.

 

 오늘도 엘리스는 팔굽혀펴기 30개를 힘겹게 해냈고, 그 모습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본 리신은 이런 상황에 가장 적합한 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마음만으로 모든게 되지는 않소. 그렇지않소?"


 

 어제부터 오전수련은 마오카이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쓰는데 연습하기로 변경되었다. 정령이 쓰는 마법과 인간이 쓰는 마법, 나무가 쓰는 마법과 거미인간이 쓰는 마법은 달랐지만 마오카이는 자기가 알려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엘리스에게 알려줬다. 그렇게 활동하고있는 떡갈나무 챔피언도 그녀의 미묘한 변화에 그의 감을 세웠다.

'뭔가 다르군 엘리스... 필트오버에서느꼈던 그것과 똑같지만 믿기지않을정도로 미묘한 수준이야. 너는 알고있는거냐. 너 자신의 변화를.'

<계속>


<글쓴이의 말>


엘리스가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데 느낀 감정은 무엇에 가장 가까울것같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