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TT부터 모든 시리즈를 거쳐서 지금까지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플레이해온 아케이드 유저입니다.

네, 여러분들이 흔히 말하는 고인물이죠. 그것도 십수년이 된.

기존 유저들을 상대로 승률은 35~40% 정도밖에 거두질 못하는 잉여지만...


이번 철7 PC로 입문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 경험을 기초로 철린이에서 철권 유저가 되는 과정을 한번 써보고자 합니다.

1. 스토리 모드를 하시는건 자유입니다만, 철권의 핵심은 대전에 있죠. 하지만, 온라인 대전에 들어가시기 전에 일단 트레이닝부터 들어갑니다.

2. 하고 싶은 캐릭터를 추천받거나 내맘대로 고르셨다면, 한 일주일 동안은 다른 캐릭터는 포기한다고 생각하시는게 좋습니다. 일단 움직임이나 자세, 기술 등이 햇갈릴 소지가 많습니다. 캐릭터 하나에 손이 익어서 철권의 움직임이 이해가 된다면, 다른 캐릭터들도 적응이 쉽습니다.

3. 캐릭터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들을 일단 다 한번씩 써보세요. 이 때 중요한건, 커맨드 입력을 확실히 하고, 자기가 원하는 기술을 정확히 실행하는 겁니다.
캐릭터 별로 중립 왼손(LP), 래버 전진 왼손(6LP), 대시 왼손(66LP) 등 비슷한 조작의 기술이 있어서 조작이 어설프면 다른 기술이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명 삑사리라고 하죠. 이걸 줄여나가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

4. 근데 기술 숫자가 엄청 많아서 다 외울 수 없죠? 그럼 일단 공중 콤보에 들어가는 기술부터 손에 익혀보세요. 텍센(철권 커뮤니티입니다. 모르시면 네이버 검색)에 들어가시면 각 캐릭터별 게시판에 기존 유저 분들이 작성한 메뉴얼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술 설명이 되어 있고, 추천하는 공중 콤보도 있습니다. 기술 설명이 엄청 많을 텐데, 일단 아래쪽으로 주욱 내려서 공중 콤보 부분만 먼저 봅시다. 콤보 기술 설명이 이해가 안되시면 유튜브에서 최근에 자주 올라오는 캐릭터 소개 및 가이드 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5. 콤보를 알게 되었으니 한번 때려봐야죠? 트레이닝에서 시도해봅시다. 언제까지? 10번 시도해서 8번은 성공할 때까지 해보세요. 아마 처음으로 콤보가 성공하면 기분이 꽤 상쾌할 겁니다.

6. 콤보를 안정적으로 때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일단 대전의 맛을 느끼러 가봅시다.
근데 트레이닝 더미 때릴 때하곤 완전히 다를 거에요. 공중 콤보를 시작하는 기술을 써도 상대방이 언제 어떻게 맞아줄 지 모르니 긴장하다가 공중에 뜬 상대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한 거에요. 저도 새 캐릭터 연습할 땐 20번을 싸울 동안 공콤 한번도 끝까지 다 못 넣었어요.

7. 근데 대전을 하면서 공콤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거에요. 상대방이 내미는 잽이랑 발차기는 내가 뭔짓을 해도 뚫리고, 내가 내민 어퍼는 당연하다는 듯이 막히고...
다들 이 타이밍에서 고인물 드립을 연발하시면서 패드를 냅다 던지는 게 눈에 선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치 않은 철권 유저는 거의 없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8. 지금 샌드백처럼 맞고 있는 자기 캐릭터는 철권의 기본기가 부족해서 그런겁니다. 공중 콤보가 철권의 꽃이라면, 서 있을 때 내미는 원투, 발차기, 각종 콤비네이션 블로우들과 이걸 쓰는 타이밍, 거리 재기 등이 철권의 뿌리죠. 이건 트레이닝 더미로는 익힐 수가 없어요. 상대방과의 공방에서 자기가 유리한 기술을 쓰는 방법이기 때문에, 멍하니 서있는 마네킹은 도움이 되질 않죠.

9. 아까 공중 콤보를 위해 뒤져보신 텍센 게시판의 메뉴얼에 쓰여있는 자질구레한 각종 기술 설명이 전부 이 기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그만큼 중요해요.
제 개인적으로는 한번 날 잡아서 스킬 설명을 주욱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만, 여기에서까지 공부하기 싫다는 분들에게는 어쩔 수 없죠.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시는 수밖에...

10. 자, 지금부터 면벽수련을 하는 스님의 기분으로 수련동, 아니 온라인 대전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0승 100패의 각오를 다지고, 한손에 메뉴얼, 한손에 래버를 들고 기존 유저들을 상대로 주구장창 지기만 하는 기본기 싸움을 하시게 될 겁니다.
어쩌다 한번 들어간 어퍼로 상대방이 떴는데 놀라서 손이 굳어버리는 바람에 콤보가 끊겨서 분노하실 때도 많으실 거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른 큰 기술이 덜컥 얻어걸려서 한판을 따낼 때도 있겠죠. 대체 어떤 기술을 써야 이 상황이 풀리는지 궁금해서 매뉴얼을 다시 파는 때도 많을거고, 특정 캐릭터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육두문자를 내벹을 때도 있겠죠.


11. 이 기본기 싸움에 필요한 게 상중하 판정, 점프와 앉기 판정, 잡기, 프레임 싸움 등의 이론입니다.
(이 내용은 이미 다른 분이 자세한 설명을 해 놓은 게 있을 테니 그쪽을 참조하시라 말씀 드리고 싶네요. 글이 더 길어길 저 같아서...)
아마 별로 재미가 없을 테고, 공부하는 것보다 더 짜증날 겁니다. 공부를 한 때는 어느정도 머리만 따라주면 되는데, 이놈의 철권은 머리 뿐만이 아니라 손도 따라줘야 하니까요. 알고 있는 데 손이 안 따라주니 되려 더 열받고, 화면에 뜨는 YOU LOSE가 더 짜증이 나고요...
여기서 그 높은 진입 장벽을 제대로 체감하실 겁니다..

12. 그래도 조금씩을 발전하고 계실 거에요. 처음 들어가는 깔끔한 공중 콤보에 [우와 시X 이 콤보가 드디어 들어가 보는구나] 하는 짜릿함을 느끼고, 가뭄에 콩 나듯이 뜨는 YOU WIN의 기쁨을 맛보면서요.
그렇게 한창 면벽 수련을 하시다 보면, 점점 사용하는 기술의 숫자가 늘어나고, 점점 기본기 공방에서 우위를 점하는 때가 생길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상대방의 움직임이 보이고, 자기 캐릭터의 움직임이 '보이는' 때가 올 겁니다. 기본기로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한번씩 들어가는 어퍼를 쫓아가서 공중 콤보를 넣는, 여러분들이 철린이 때 보았던 기존 유저들의 움직임이 말이죠.

이 때가 드디어 철린이를 벗어나 일인분의 철권 유저가 되는 순간일 겁니다.


다른 경험을 하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적어도 저는 저것과 거의 같은 경험을 하면서 철권에 입문을 했습니다.
아케이드만 플레이할 수 있었던 저는 트레이닝 모드도 없이, 맨땅헤 헤딩하는 기분으로 동전을 쏟아부으며 기본기 공방의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이번작 철권7은 기존 작품에 비해서 난이도가 진짜 대~폭 내려간 작품입니다. (바로 전작인 철권 TT2가 조작 난이도 면에서 정점을 찍었죠)
처음으로 PC판이 발매되어서 많은 유저가 접하고 있는 지금, 진입 장벽 걱정에 기존 유저분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철린이들을 위한 영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것도 이 이유가 한 몫 하고 있죠. 조금이라도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유저들을 붙들기 위해서.
저도 이 글을 읽고 철권에 대한 작은 흥미나마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쓴 두서 없는 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