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문

이전에 카밀 스토리가 정말 최악이라고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의 맥락과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음.(그 때 내가 주장했던 대로 라이엇이 챔피언 배경의 첫문단을 챔피언 요약문으로 전부 변경한 상황인데. 솔직히 조금 흥미롭군.)

온갖 챔피언 스토리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생긴 논란.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바루스 스토리에 대한 문제. 롤 챔피언 스토리에 관심이 많고, 라이엇 게임즈를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롤 팬 중 하나로써, 그리고 이번 스토리 변경에 대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한 명의 사람으로써 좀 얘기를 해보고 싶음.

사실 본인은 롤 챔피언의 스토리를 바꾸는 그 명분 자체는 적극적으로 옹호함. 기존 챔피언을 완전 리메이크해서 이전 챔피언을 삭제하고 신 챔피언을 추가하는 걸 옹호하듯이 말이야.

하지만 변경해서 이전보다 스토리가 나빠지는 건 도저히 옹호 못하겠다. 아니면 인게임하고 괴리가 생기거나, 그 부분도 얘기를 하겠지만 일단 이것부터 얘기하자. 도대체 왜 스토리를 바꾸는가?


2. 스토리 변경의 이유

아주 오래 전부터 예고했었지. 5년 가까이 됐음. 롤의 초창기 스토리 핵심이었던 소환사 설정 지워버리고 스토리 개편할 거라고. 지금 그 작업을 거치고 있고, 그런 관점에서 "소환사는 뭐냐?"등의 비판을 하는 건 아주 이상함. 굳이 말하자면 "스토리 개편 속도가 왜 이렇게 느려 터졌냐?"라고 비판해야지.

대규모 스토리 개편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게 프렐요드. 그 이후로 순서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슈리마, 그림자 군도, 빌지워터, 자운, 필트오버, 타곤, 바스타야(지역 아니라 종족이지만) 등등 지역과 지역별 챔피언 스토리를 대거 갈아엎으면서 데마시아와 녹서스도 좀 건드리고 전반적으로 스토리 자체를 개편하고 통합하기 시작했음. 지금 대형 스토리 개편으로 남은 건 녹서스와 아이오니아 정도? 그 외엔 거의 다 했고, 4~5년 넘게 이어온 작업이 내년 쯤에는 끝마칠 것으로 보임.

라이엇이 생각하는 것처럼, 난 이 스토리 통합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함. 왜냐면 기존 롤 설정은 진짜 개판이었거든. 롤 챔피언 제작 메커니즘이 옛날에 어땠는지 알아? "한국에 롤이 정식 서비스 하네? 한국 챔피언 만들어야겠다. 아리 등장!" "300이라는 영화 봤는데 스파르타 멋있더라. 판테온 등장!" "기병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네. 헤카림 등장!" "곰이 갑옷 입고 나오면 멋있을 것 같다. 볼리베어 등장!"

등등. 정말 밑도 끝도 없음. 원래 근본이 없는 게임이긴 했지만 챔피언이든 스토리든 걍 지들 꼴리는 대로 만들고 나머지는 그 이후에 대충 끼워넣었단 말이야. 애초에 스토리 보고 하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너무 심했어.

챔피언 출시 순서를 볼 때 2013년에 나온 113번째 챔피언인 아트록스까지 근본이 없었음(얜 여기서도 문제냐?). 그 이후론 스토리를 기존 스토리에 맥락이 맞도록 끼워넣고 통합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쳤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 챔피언이 나올 때마다 그 지역 스토리를 수정하거나, 혹은 지역 스토리를 수정할 때마다 신 챔피언을 내놓았음.

논리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렇다면 이후에 이렐리아를 리메이크하면서(예고함) 아이오니아 개편을 하고, 스웨인 리메이크를 하면서 녹서스 스토리를 정립하겠군.

그리고 기존 챔피언의 스토리도 큰 맥락을 변경하지 않는 선에서 디테일을 더하는 것도 분명 있지. 이게 너무 심해서 챔피언 배경문에 상관도 없는 고유명사나 설정이 덕지덕지 붙어있어서 중학생이 쓴 자작판타지소설 느낌 나지만 그건 개편을 요구하기엔 라이엇 측의 집착이 너무 심하고......

오히려 이 부분에 주목하고 싶은데. 캐릭터에게 인격적인 단점을 더하고 있음. 요컨대 가렌은 데마시아의 참군인이었는데, 개편 이후 마법을 증오하게 되었고 여동생이 마법사가 아닐까, 마법사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번민하고 회의를 느끼고 있는 점이 추가됐고. 그냥 선하고 유능한 발명가인 제이스는 너무 천재라 오만하다는 설정이 추가됐음.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성을 느끼려는 건 보이지만,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모가 거기서 거기라는 점은 좀 그렇네. 사실 나쁜 놈이지만 좋은 점도 있음, 좋은 놈 같지만 좀 인격적인 결점도 있음. 좋은 놈인데 좀 이상함. 이전에 나쁜놈이었지만 지금은 좋은 놈임 등등...... 보면 좀 실소가 나오지. 다른 건 다 몰라도 미스 포츈 타락은 대체 왜 넣은 거냐? 그냥 스테레오 타입 여캐로 만들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면 다양성을 위해 성소수자도 넣어야 겠다~해서 굳이 롤 챔피언 중에서 몇 안 되는 명백하게 이성애자라고 설정된 챔피언을 성소수자로 만든다던가. 이건 좀 뒤에서 얘기할 거임.

아무튼. 이 불만이 있긴 하지만 목적 자체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고 스토리와 세계관의 완성도를 높이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함. 그저 속도가 너무 느릴 뿐이야. 라이엇의 꾸준함과 추진력을 볼 때 언젠가는 다 완성될 거고, 진정한 평가는 그 때 시작임.

근데 이 얘기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스토리가 변경되서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이해함. 그리고 나도 그 비판을 할 거야. 근데 그 부분에서 라이엇과, 대부분의 유저들과, 나의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고, 일단 스토리의 변경의 문제점을 지목할 때 거기에 주목하고 싶음.


3. 대부분의 유저들은 싫어하지만 변경하는 게 옳았음

트런들, 제라스, 그라가스. 정도. 뭐 사람마다 불만을 느끼는 점은 다르겠지만 내 기억엔 저 셋의 논란이 가장 컸음. 근데 셋 다 불만의 이유가 다름.

트런들의 경우 스토리 자체에 완성도는 있었는데, 그 자체로 챔피언의 서사가 끝나버리는 문제가 있었음. 그리고 트런들이 다른 챔피언에 비해 중요한 인물도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부족을 위해 희생한 트롤에서 교활한 트롤 왕으로 설정을 변경함. 비판이 많았지만 프렐요드 3여왕 중 리산드라 진영에 동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했음.

제라스의 경우 슈리마에 악역다운 악역이 없다는 이유로 설정이 변경됨. 이전 설정에 비해 인품이 밴댕이 소갈딱지로 변하고 신분도 떨어졌지만, 사실 능력적인 면이나, 스토리의 중요성이나, 캐릭터성의 부각 등 어느 관점에서 봐도 이전보다 낫다고 여겨짐. 롤의 악역들 중에서 유독 찌질해지긴 했는데, 찌질한 악역이 하나쯤은 있어도 뭐...... 명분 없는 찌질함도 아니니 그럭저럭 괜찮음.

그라가스의 경우 정말 뜬금없이 녹서스에서 프렐요드로 소속을 옮겼는데, 녹서스의 진중함과 그라가스의 유쾌함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음. 그라가스 스토리는 괴상하긴 한데 문제는 없음. 애초에 그라가스라는 챔피언이 "술주정뱅이 뚱보 챔피언 있으면 쩔 것 같지 않냐 ㅋㅋㅋ"정도의 발상에서 나온 건데, 그나마 챔피언을 세계관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 


4. 나쁜 스토리를 써재낌

바루스와 카밀. 카밀은 내가 칼럼 세 편을 쓰면서 엄청나게 깠고, 바루스는 지금도 까이고 있는데 얘들은 진짜 극렬 라이엇 빠인 나도 옹호가 절대 안 됨.

카밀은 충분히 말했으니 넘어가고, 바루스의 문제는 나무위키에 상세히 적혀 있지만 그래도 또 언급하자면, 게이 챔피언이 나오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음. 그냥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는 호모포비아들은 무시하면 돼. 근데 바루스의 스토리 변경에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 변경의 명분이 게이 챔피언을 넣기 위해서 외에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가 안 된다는 거임.

트런들처럼 서사가 그 자체로 끝났나? 아니. 제라스처럼 캐릭터성이 적었나? 아니. 그라가스처럼 스토리 자체에 완성도가 떨어졌나? 아니. 수많은 챔피언들처럼 세계관과 잘 맞지 않았나? 그냥 구덩이에 봉인된 것이 다르킨이라는 설정만 상세하게 추가하면 됐음. 그렇다면 기존에 성적 정체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나? 아니. 롤 챔피언 중에서 몇 안 되는 완벽한 이성애자였음. 챔피언 컨셉과 스토리가 잘 안 맞았나? 아니. 심지어 그것도 아니야! 오히려 앞서 말한 것들이 스토리를 개편하면서 죄다 문제가 생겼어! 서사는 단조롭고, 캐릭터성은 시궁창으로 떨어졌으며, 스토리 완성도는 카밀보다도 나빠. 챔피언이 멋있어지기는커녕 병신이 됐고 인게임하고 괴리도 끔찍하게 심해졌음.

게이는 솔직히 그렇게 커다란 문제가 아님. 바루스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남녀 커플이었습니다~ 라고 설정해도 스토리는 개쓰레기거든. 그런데 스토리 작가라는 새끼가 이 부분에 대해서 스토리를 망치더라도 세계를 위해 성소수자를 넣어야함웅얼웅얼 지껄이고 있는데. 이 새끼는 당장 이 업계에서 추방해야함. 자신의 일에 대한 프로의식이 전혀 없잖아.

정 게이 캐릭터를 넣고 싶었으면 개연성 있게 넣을 수 있는 다른 챔피언도 많잖아. 타릭, 블라디미르. 아니면 그레이브즈와 트페라던가, 제이스와 빅토르 스토리를 살짝 수정해서 해리포터의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 느낌 나도록 하던가. 아이오니아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설정을 넣고 싶다면(이건 또 인종차별이지만) 쉔과 제드를 써도 됐음. 근데 왜 하필 그나마 개연성을 챙기고 기존 스토리와 융화될 수 있는 모든 챔피언을 다 포기하고 처자식 있던 바루스를 동성애자로 만드냐고. 이건 역차별이야.


5. 인게임하고 괴리가 심함

위에서 말한 바루스. 바루스는 지금 스킬은 둘째치고 대사가 단 하나도 바뀐 설정과 매치가 안 됨. 그리고 설정 변경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챔피언은 가렌인데.

가렌의 경우 카타리나 쪽을 제외하면 데마시아의 참군인이라는 설정만 있었음. 근데 데마시아를 좀 보수적이고 편협한 국가로 바꾸는 과정에서 가렌도 그런 성향이 생겼는데, 다른 데마시아인들처럼 가렌도 마법을 극도로 증오하고, 마법사들이랑 싸우며, 입고 있는 갑옷은 갈리오와 같은 재질인 패트리사이트 갑옷으로 마법 저항력이 강한 소재이며 사악한 마법사들과 싸운다는 설정이 추가됐음. 그리고 핵심은, 자기 여동생인 럭스가 마법사인 것 같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번민하고 있다는 점. 뭐 디테일해지고 입체적이 됐는데. 그 부분은 아무 문제 없어.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가렌 궁은 허공에 마법검을 소환해서 마법 대미지를 입히는 스킬임.

뭐냐고 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야. 스토리 작가가 챔피언 스킬도 모르냐? 아니 마법혐오자로 만들 거면 궁을 수정하던가 궁에 대한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아니야. 모션을 바꾸던가 아니면 스토리적으로 설명을 하던가. 7년동안 마법검을 쓰던 가렌이 하루아침에 마법혐오자가 됨.

뭐, 혹시 이런 건가? "가렌 대장의 힘은 마법이 아니라 대장의 데마시아에 대한 고결함과 애국심이 외적으로 발현한 겁니다!(인지부조화)" 이 정도라도 있었으면 위선자 같아도 그나마 이해는 됐겠다. 근데 이런 설정도 없음.

아니면 여동생인 럭스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기가 그토록 부정하던 마법의 힘이 폭주한다던가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좀 안 됐나? 다른 부분은 문제가 없음. 가렌은 상대 마법사가 스킬을 못 쓰게 하는 침묵을 지니고 있고, 자체적으로 마법 저항력이 오르며(마법 저항력만 오르는 건 아니지만) 누킹에 강한 탱킹기를 지니고 있음. 근데 궁 혼자 지랄을 하고 있음.


6. 그 외

사실 전반적으로 다른 챔피언들의 스토리 변경은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음. (내가 빼먹은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단문 설정만 변경된 애들의 경우 아직 장문 배경이 안 나오기도 했고, 불분명했던 챔피언의 기원과 룬테라에서의 입지를 자세히 설명하려는 노력이 보이거든. 요들이 하플링 같은 인외종족이 아니라 환상으로만 전해지는 종족이 된 건 좀 당혹스럽지만. 사실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음. 현재 롤의 모든 챔피언들이 기원이 확실해졌고, 기존의 설정을 삭제하거나 개편하거나 아니면 추가함으로써 전부 세계관 내로 편입되고 디자인 등에서 정당성을 갖춤.이것만으로도 스토리 부분에선 큰 진전을 보인 거임.

몇 가지 의문이 있다면.

가렌은 결국 리메이크 되나? 설정에 챔피언을 맞추는 라이엇 게임즈 성향상 그럴 것 같긴 한데 마법사들에게 강한 딜탱으로 바꿀까?

가렌과 카타리나의 연애 노선이 가렌 스토리에서 삭제된 건 둘의 연애 노선을 삭제하려는 생각인가, 아니면 가렌이 아니라 카타리나 쪽에서 가렌에게 흥미를 가지고 쫓아다니도록 만들려는 생각인건가.

녹서스와 아이오니아 쪽은 스웨인 이렐리아 리메이크가 확정적이니 아무 걱정이 없지만, 요들이 환상의 종족으로 변함으로써 붕 떠버린 밴들 시티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이렇게 배경 스토리를 다 정립한 다음 도대체 무엇을 할 건가? 스토리를 진전시키는 어떤 계획이 있는 건가?

아마 내년 말쯤에는 다 정리되고 윤곽이 드러날 것 같은데. 그 때 만약 여력이 된다면 다시 칼럼을 써서 평을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