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저번 뚜벅이 칼럼(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971&my=post&l=29666)에서 돌격형 전사(뚜벅이)혹은 전사들이 후반에도 탱커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었음. 거기에서 예로 든 것이 체력비례댐을 가진 탱커들과, 딜링능력도 떨어지고 유틸능력이 부족한 가렌이었는데 가렌의 경우 최근의 패치로 심판(E)에 방어력 감소 효과가 생겨서 유틸능력과 후반에 탱커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음. 내가 제대로 분석한 것 같아서 기쁘네.

그리고, 난 사실 카밀을 만난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음. 하지만 내 칼럼은 '주관적'인 분석이나 인상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지 않으므로, 그리고 이 칼럼이 '카밀이 세다' 혹은 '카밀이 나쁘다' 같은 이야기와는 사실 조금 떨어진 이야기이므로 카밀을 전혀 하지 않은 나라도 얘기할 수 있다고 봄.


2. 카밀은 최악의 챔피언이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이전부터 주장했듯이 라이엇의 밸런싱 능력은 갈수록 향상되고 있음.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음. 밸런싱 능력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음. 하지만 라이엇에서 신챔피언을 만드는 부서와 밸런싱하는 부서는 다르고. 신챔피언을 만들거나 챔피언 배경 짜는 팀의 능력은 3년 전보다도 못함.

그리고 그 최악의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카밀임. 카밀은 역대 최악임. 성능 문제가 아니야. 밸런싱 문제도 아니지. 외모에 관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야.

그것과 상관없이 카밀은 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 제작 팀에 있는 문제점이 겹쳐지고 겹쳐져서 만든 희대의 똥이고. 난 카밀이라는 챔피언이 나온 것에 엄청난 분노를 느낌.

카밀의 문제가 뭔지 말해보겠음. 일단. 실제 게임 플레이와는 상관없는 부분에서 시작하자.


3. 챔피언 배경 설정과 스토리텔링

끔찍함. 역대 최악이야. 이것보다 더 후질 수 있나? 다음 챔피언은 이것보다 더 후질 수도 있겠군. 내가 글로 밥벌어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취미가 소설 쓰고 읽고 비평하는 거임. 그 기준에서 볼 때 카밀 배경과,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은 가히 최악에 가까움.

사실 이 문제는 시즌 3였나 4때 프렐요드 대격변 때부터 말하든가, 아니면 지난 슈리마, 타곤, 빌지워터, 그림자군도....... 아무튼 그런 대규모 스토리 개편 때 말해야 했었던 것 같긴 함.

허나 앞으로 데마시아 녹서스 자운 아이오니아 등등 다른 지역도 이렇게 대규모 패치나 스토리 개편을 할 테니까 이 비판은 해야한다고 봄.

말이 좀 샜다. 카밀 배경 설정과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후진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음. 그리고, 카밀과 더불어 요즘 개편되고 있는 챔피언들의 설정과 스토리가 얼마나 후진지도 말해봄.


3.1. 쓸데없이 길 뿐더러 무의미한 스토리.

이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들은 사실 스토리가 상당히 빈약했음. 그리고 별로 재미도 없었고 공감도 이해도 잘 안 갔지. 뭐 요즘도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단 나아졌음.

프렐요드 개편까지는 그랬다는 거야.

프렐요드 당시 트런들 스토리 개편 싫어하는 사람들 되게 많았음. 하지만 난 당시 트런들 스토리 개편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함. [트런들은 배경 스토리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스토리가 필요했다]라는 설명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니까.

소환사 설정과 리그 설정을 없앤 것도 난 괜찮다고 생각함. 그리고 온갖 다른 세계에서 온 챔피언들이 그냥 룬테라 출신으로 바뀐 것도 괜찮아. 그게 더 깔끔하고, 깊이있고, 이야기가 풍성해지거든.

라이엇 게임즈가 스토리의 분량에 집착하기 전까진 그랬다는 거임.

요즘 챔피언 스토리, 혹은 개편된 챔피언 스토리를 좀 봐봐. 얼마나 두꺼움? 구체적으로 말하면 카밀 스토리는 정확히 4740자임. A4용지로 한 3~4페이지 들어가는 셈이지. 분량이 많아서 읽기 힘들다는 얘기가 아니야. 분량이 많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음. 그 많은 분량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임.

3.2. 요약문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요약문.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챔피언 스토리는 첫문단에 요약을 하고 이후에 부연설명을 하는 식인데 이 부연 설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황하고 불필요하고 김. 그리고 요약이 되어야 할 첫문단은 요약문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음.(12/16 추가된 내용) 일단 보자.

카밀은 무법자를 처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무기화한 우아한 엘리트 첩보원으로, 그녀의 임무는 고도화된 필트오버와 그 하층부의 자운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뛰어난 적응력과 더불어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살피는 주의력을 갖추었으며 너저분한 기술은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예법과 재력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난 카밀은 페로스 가문의 최고 정보 요원으로서, 마치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의사처럼 가문의 어두운 문제들을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마법공학 증강을 통해 최고가 되기를 추구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품고 있는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카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여자라기보다는 기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게 첫문단임. 본인의 칼럼은 가능한 조곤조곤 얘기하는 음습체로 쓰고 있지만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음. 존나 후져. 저게 요약문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면 다른 챔피언들의 첫문단을 보여드리겠음. 카밀 이전 신챔인 아이번임.

자연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아이번 브램블풋은 룬테라 전역의 숲을 돌아다니며 생명을 가꾼다.(1) 

반은 인간, 반은 나무의 형상을 한 그는-(2) 

-자연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땅에서 자라고, 하늘을 날고, 초원을 달리는 모든 것과 깊은 친분을 맺고 있다.(3) 

아이번은 자연 속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자신만의 지혜를 나누어 주고, 숲을 풍성하게 가꾸며, 때로는 입이 가벼운 나비들에게 비밀을 맡기기도 한다.(4,5)

자 보셈. 원래는 그냥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나누고 괄호를 쳤음. 아이번 배경의 첫문단을 보면

1) 이 챔피언이 무엇으로 불리나.
2) 어떻게 생겼나?
3)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나?
4)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가?

라는 내용이 전부 들어가 있음. 성격이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안 나와있지만 챔피언의 코멘트나 이후 배경 스토리에서 아이번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성격인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굳이 구체적인 설정을 보지 않아도 유추가 가능하며 게임을 시작해서 아이번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이해됨.(아이번도 배경 설명에 있어서 썩 훌륭한 편은 아니지만)

그런데 카밀 배경에 괄호를 추가해서 정리해보겠음.

카밀은 무법자를 처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무기화한 우아한 엘리트 첩보원으로, (1) 

그녀의 임무는 고도화된 필트오버와 그 하층부의 자운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2) 

그녀는 뛰어난 적응력과 더불어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살피는 주의력을 갖추었으며 너저분한 기술은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3) 

예법과 재력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난 카밀은 페로스 가문의 최고 정보 요원으로서, 마치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의사처럼 가문의 어두운 문제들을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4)

마법공학 증강을 통해 최고가 되기를 추구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품고 있는 칼만큼이나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카밀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여자라기보다는 기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5)

1) 이 챔피언이 누구인가.
2) 이 챔피언이 무슨 일을 하는가.
3) 이 챔피언이 무슨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4) 이 챔피언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
5) 이 챔피언이 어떤 인상이고 무슨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이들이 이 챔피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왜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거지?

명백히 불필요함. 아니, 그것보다 이 챔피언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도 안 나왔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고 특징이 어떻고는 왜 죄다 빼는 거임? 카밀의 가장 큰 특징인 마법공학 칼날의족에 대한 설명도 없고 챔피언에 대한 인상도 두루뭉실하고 필요한 부분이 다 없잖아.

이게 뭔 느낌이냐면....... 아마추어 라이트 노벨 작가가 캐릭터 만들다가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몰입해버린 것 같음. 요약문이면 그 챔피언이 누구인지를 설명해야 할 것 아니야. 왜 중요한 부분을 죄다 두루뭉실하게 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카밀 성격에 대한 설명만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 심지어 잘 하지도 못했음.

3.3. 설정 자체의 문제.

그렇게 빨아주는 설정이 멋지거나 개성적이면 말도 안 함. 카밀의 설정은 명백히 기존 챔피언 설정과 겹침. 성격 및 챔피언의 위치는 필트오버의 엄격한 보안관인 케이틀린하고도 겹치는 점이 있고(앞과 뒤라는 점에서 구별되지만). 국가의 어둠을 잘라내는 귀족&뒷세계에서 일하는&킬러 라는 건 녹서스의 개편된 카시오페아 설정과 거의 겹치잖아. 어정쩡하지만 동시에 오리아나 스토리가 개편되면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어정쩡한 존재라는 영역도 일부 겹쳐져버렸음.

게다가, 게임 시작해서 목소리를 들으면 그냥 냉혹하고 잔인한 인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듬.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사도 없고 목소리 톤에선 우아함과 날카로운 지성은커녕 그림자 군도의 요부 엘리스나 녹서스의 카시오페아 같은 사악함밖에 안 드러남.

그럼 왜 이후 단편이나 장문 배경에선 아직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던가, 책임감이라던가, 그런 부분을 부각한 거지? 이거 혹시 스토리 개발진들 사이에 소통이 잘 안 되나?


번외. 하나의 칼럼을 몇 부로 나누는 이유.

스토리, 설정, 장문 배경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많음. 너무 할 말이 많은데 스토리도 너무 많아서 1부 내에서 설명했다간 끔찍하게 길어질거야. 그러니까 2부로 넘기는데...... 사실 카밀의 문제는 스토리와 배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챔피언 디자인 그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카밀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롤 신챔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기 때문에 이번 칼럼은 4부 이상의 분량이 될지도 모르겠음.

2부에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카밀 설정이나 배경 스토리는 중2병 걸린 아마추어 작가의 라이트 노벨 내지 망상노트 수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