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비르가 등장한 3경기와 5경기 위주로만 서술합니다.
* op.gg에도 같은 내용으로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불펌글 아니고 본인이 두 군데 다 올렸습니다!
 
원딜로서, 시비르가 가지는 장점은 대강 아래의 몇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1. 튕기는 부메랑(W)의 효과에서 얻어지는 후반 캐리력

2. 이속 증가 효과(소소하긴 하다만)와 주문 방어막(E)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존력

3. 독보적인 라인 클리어/푸쉬 능력으로 라인전 주도권을 가지기 쉬움

4. 사냥 개시(R) 스킬을 통해 팀의 기습적인 이니시에이팅을 지원. 즉, 돌진 조합에 힘을 실어주기 좋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 아래와 같은 단점도 지니고 있다.

1. 짧은 사거리, 뚜벅이의 환장할 시너지로 한타에서 딜 포지션을 잡기가 어렵다.

2. 제한적인 공속 증가 효과 외에는 딜링을 증가시켜주는 효과가 없어서 아이템 의존도가 굉장히 높음. 즉, 성장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3. 1, 2와 연결되는 점으로, 생각 외로 처참한 교전 능력 때문에 라인 푸쉬 이외에는 마땅히 주도권을 가져올 방법이 없다. 즉, 팀이 말려서 적극적으로 라인을 밀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힘이 쭉 빠지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kt는 장점을 보고 시비르를 픽했으나, 단점(비단 시비르 뿐만 아니라 시비르를 쓴 kt 조합 자체의 단점)을 잘 파고든 SKT가 이긴 게임이었다.

kt가 시비르를 사용한 경기에서 kt의 조합은 다음과 같았다.

3경기: 자르반 / 엘리스 / 르블랑 / 시비르 / 쓰레쉬

5경기: 쉔 / 자크 / 카사딘 / 시비르 / 알리스타

챔피언의 차이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성향은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기습적인 이니시를 걸고, 그 위에 CC기와 딜을 끼얹어 한타를 마무리 짓는, 극 돌진형 조합이라는 점이다. 돌진 조합은 우리쪽에서 먼저 우르르 달려 들어, 미처 대비되어있지 않은 상대방을 먼저 패죽이는 형태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편의 딜러(특히 원딜)를 지켜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형태를 지닌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돌진 조합에는 루시안, 이즈리얼, 베인 같은 팀원과 함께 파고들기 좋으면서도 자체적인 생존 능력이 우수한 원딜 챔피언이 애용되었으나, 현재 이들이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서 가지는 위상을 생각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kt는 생존 능력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는데다 궁극기를 통해 돌진에 힘을 실어주기 좋은 시비르를 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SKT는 이미 너희들의 생각은 모두 읽었다는 듯이 밴픽에서부터, 그리고 인게임 플레이에서도 적절한 대처를 보이며 kt를 제압하였다.

1. 이니시에이터 봉쇄

시비르는 돌진 조합에 힘을 실어주는 픽일 뿐, 절대로 돌진 조합의 핵심 픽은 아니다. 돌진 조합의 핵심은 기습적인 이니시에이팅이므로 장거리에서 강제 이니시에이팅이 가능한 챔피언이 당연히 돌진 조합의 주축이 된다. kt는 그 역할을 3경기에서는 스멥의 자르반에게, 5경기에서는 스코어의 자크와 추가로 이어지는 쉔 궁극기 끼얹기에 맡겼다. 이에 대해, SKT는 탑을 끝까지 후픽으로 감추면서 스멥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는데 힘을 줬다. 3경기에서는 운타라의 마오카이가 해당 역할을 적절하게 이행하였으며, 5경기에서는 블랭크의 자르반이 스코어의 동선을 귀신같이 예측하며 스코어 말리기에 힘을 씀과 동시에, 후픽으로 뽑은 운타라의 트런들이 쉔을 상대로 끝까지 주도권을 내주지 않아 쉔 궁극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 효과적으로 차단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역시나 기습적인 원거리 이니시에이팅이 가능한 칼리스타까지 3경기부터는 밴으로 꽁꽁 묶어두었다.

2. 생존성이 뛰어난 딜러

돌진 조합에게 이니시가 걸렸을 때, 가장 최악의 상황은 역시나 아군 딜러가 순삭당해 바로 한타를 패배하는 그림일 것이다. SKT는 그러한 상황에도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딜러진에 생존성이 뛰어난 챔피언을 배치하였다. 뱅은 3경기 트리스타나, 5경기는 자야를 선택했으며, 페이커는 3연 코르키를 선택하였다. 특히, 당연히 상대 라이너의 챔피언 성향에 따라간 것이긴 하겠지만, 페이커는 4경기에는 텔레포트를 든 반면에, 3경기와 5경기에는 각각 정화, 회복을 들어 생존에 좀 더 힘을 준 스펠 선택을 보여줬다.

3. 이니시? 우리도 CC기로 도배한다. 그리고 라칸

3경기 kt의 자르반과 쓰레쉬가 걸 수 있는 이니시에 대해, SKT는 이를 받아치기 좋은 CC기를 엄청나게 많이 들고 있었다. 마오카이의 궁극기, 그라가스의 궁극기, 트리스타나의 궁극기. 조금 억지를 부려보자면 코르키의 발퀄라이저까지. 거기다 생존기가 뛰어난 딜러들까지 있으니 kt가 이니시를 걸더라도 한번 저지시키고 올바른 진영을 갖추기가 수월했다. 5경기에서는 SKT의 대응 방식이 살짝 달랐다. kt가 이니시를 거는 것 까지는 똑같았으나 5경기의 SKT는 자르반과 트런들이 역으로 파고들어 kt의 후방 딜러진이 한타에 호응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5경기 마지막 바텀 억제기 앞 한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크가 잘 파고들어 뱅의 피를 순간적으로 절반 이하로 깎는데까지 성공했음에도, 파고든 자르반 때문에 kt의 딜러진이 호응을 할 수 없었고, 거기다가 성장 차이까지 이미 벌어진 상태였으므로 딜이 부족한 kt가 결국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게임을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라칸. kt의 돌진 조합못지 않게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습 이니시에이팅의 달인인 라칸은 kt의 후방을 현란하게 교란했다. 시비르의 주문 방어막이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 한들, 결국 막아낼 수 있는 스킬은 한 번 뿐이며, 저런 CC기 지옥 앞에서의 시비르는 사거리 500의 무기력한 뚜벅이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팀원들과 같이 적 근처까지 근접해야하는 시비르의 특성에, 딜러를 지키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돌진 조합의 특성까지 더해져서 kt는 이니시 조합을 들고 오히려 라칸의 기습적인 이니시를 걱정해야하는 안습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1, 2경기의 kt는 분명 이번에는 SKT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엄청난 준비를 해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글이 탑을 풀어주고, 바텀이 라인전을 알아서 이긴 뒤, 탑과 서폿의 로밍으로 미드를 풀고 스노우볼을 빨리 굴린다는 kt의 대전제는 절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SKT에게 간파당한 이후로는, 밴픽에서부터 플레이까지 SKT의 의도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또 다시 승승패패패, 17시즌 대 SKT전 전패라는 굴욕적인 성적표였다. 그래도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눈이 호강하는 풀세트 접전을 펼쳐준 두 팀에게 정말 감사하고, 이제는 롤드컵 직행을 위한 운명 공동체가 된 만큼 같이 노력하여 좋은 결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