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게시판에 1월 초에 쓴 글을 약간 다듬었습니다.







0.

이건 아주 원론적인 얘기.

하스스톤 CCG는 타겟 지정에 대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명치를 때리는게 기본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그런데 왜 필드 컨트롤을 하는가?
맞딜하면 지기 때문이다. 






1.

맞딜, 서로 필드정리 없이 명치 때리기, 영어로 race라고 하죠. 
아주 간단한건데, 현재 상황에서 서로 race 해서(맞딜해서) 내가 먼저 죽일 수 있으면, 명치를 안 때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 내가 먼저 죽으니까 필드를 정리해서 내가 먼저 죽일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드는 거고요.
어그로와 컨트롤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전자를 어그로 포지션, 후자를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컨트롤 포지션이라 칭하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어그로/컨트롤 포지션은 게임 시작과 동시에 정해지는게 아니라 필드/손패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요동칩니다. 그러므로 게임 내에서 이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초보들이ㅡ 자신이 초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해서 ㅡ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어그로 포지션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필드정리에만 집중하다가 게임이 길어지면서 역전당하는 것입니다. 
아주 대표적인 예로 드루이드 미러매치를 들 수 있겠네요. 내가 필드를 먹었으면 명치를 쳐야 하는데, 상대 올라오는 하수인 끊는데에만 집중하다가 어영부영 게임이 길어져서 결국 역전이 되는 경우 말이죠. 이런 게임은 굉장히 자주, 심지어 HCC에서도 자주 일어납니다. 

다만 컨트롤 포지션을 취해야 할 때 어그로 포지션을 취하는 실수는 (즉, 필드정리 해야하는 타이밍에 명치를 치게 되면) 그 결과가 즉시 드러나기 때문에 (영웅이 뻥!) 많은 사람들이 '아 실수했네'라고 인지를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명치쳐야 하는 타이밍에 필드정리 하는 것은) 결과가 즉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초보들이 더욱더 필드 컨트롤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죠. 단순하고, 당장의 오답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컨트롤(=필드정리)이라는 것은 자신이 어그로 포지션을 잡기 위해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돌냥 상대로 유리하다고 필드정리만 하다가 어처구니없는 명치딜에 결국 당해버린 경우가 분명 있을 겁니다. 필드정리만 계속 하다가 상대 패 다 떨어져서 이긴다? 이상(理想)일 뿐입니다. 하스스톤은 영웅 피를 0으로 만들어야 이기는 게임입니다. 언젠가는 명치를 쳐야 하고, 그 타이밍을 놓친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겁니다.


(물론 하스스톤은 그렇게까지 단순하지는 않으므로, race 해서 이긴다 해도 광역기 방지 등 변수 차단을 위해 필드정리를 하는게 좋은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명치쳐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원론적으로는 그렇다는거죠.)




(* 3/4 첨언: 예외적으로 몇몇 매치업에서는 필드정리를 통해 패 차이를 벌려 이기는, 즉 컨트롤 그 자체가 목적인 매치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술사 vs 전사에서 주술사의 전략이 바로 그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덱의 경우 윗 문단은 여전히 성립합니다.)








3.

상대방이 어그로/컨트롤을 오판하게 만들 수 있다면, 아주아주아주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작년 2월말, 나 혼자 리로이 쓰던 시절의 거인흑마가 있고, 최근(?)에는 새비즈의 2둠해머 김치폭발 술사를 들 수 있겠네요.
14년 7월에 열린 시스토리 컵에서, 새비즈는 누구나 술사는 컨트롤이라고 생각하는 헛점을 노려서 둠해머 끼고 상대보다 한 턴 먼저 달렸고, 결국 그 대회에서 술사 전승을 달성했습니다. 그게 그 유명한 2둠해머 술사에요.


당연한 얘기지만, 정형화된 덱, 연구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튜닝된 스탠다드 덱을 돌리면 덱 파워는 최고일지 몰라도 상대가 어그로/컨트롤을 오판하는 등의 치명적인 실수는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덱이 처음 등장하면, 조금 효율은 떨어져도 고승률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4.

덱간의 상성이 생기는 이유의 아주 많은 부분이 이 어그로/컨트롤 분류에서 기인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 턴 늦게 죽이는 덱은 한 턴 빨리 죽이는 덱을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쌍군야포드루는 9턴(9마나)에 킬이 나도록 디자인된 덱입니다. 덱의 모든 카드가 그걸 위해 있어요. 그런데 야수냥꾼은 그보다 조금 앞에, 7-8턴에 킬이 나도록 디자인된 덱이죠.

그렇기 대문에 일반적으로 드루이드는 어그로 플레이를 하도록 설계된 덱인데, 냥꾼 상대로는 반드시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서로 명치 때리면 1-2턴 차이로 지니까. 
냥꾼>>>>>드루이드의 상성은 많은 부분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애초에 쌍군야포 드루이드는 컨트롤에 특화된 덱이 아니에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비효율적으로 끌려다니다가 질 수밖에 없겠죠. 


(* 3/4 첨언: 그래서 최근 드루이드는 간좀과 정배맨, 5코 라인에 누더기골렘 등 컨트롤에 특화된 카드를 다수 투입하는 편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드루 = 닥치고 쌍군야포였던 작년과는 좀 다르네요.)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돌냥과 야냥의 상성. 모두가 알다시피 돌냥>>>>>>>>>>>야냥인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맞딜하면 돌냥이 한두턴 차이로 이기기 때문이죠.


기계법사와 위니흑마의 상성도 마찬가지. 위니흑마는 현존하는 모든 덱들 중에 가장 프리딜시 킬각이 빠른 덱입니다. 프리딜로 명치를 때리면 어지간하면 4-5턴만에 킬이 나니까. 그러므로 위니흑마를 상대하는 대부분의 덱들은(심지어 냥꾼마저도)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계법사는 평균코스트가 꽤 높음에도 불구하고 어그로 플레이에 특화된 덱이지 컨트롤을 잘 해내는 덱이 아닌데, 위니흑마를 상대할 때에는 컨트롤이 강요되니까, 기본적으로 불리한 상성입니다.

(원 글이 1월 초에 쓰여졌기 때문에 이 부분은 현재에 와서는 약간의 오류가 있습니다. 기법의 첫패가 좋아서 위니흑마를 상대로 어그로 포지션을 잡을 수만 있다면, 상성은 완전히 뒤집혀서 기법이 질 수가 없는 매치가 되겠죠)



한 턴 늦게 죽이는 덱은 한 턴 빨리 죽이는 덱을 이길 수 없다.


다만 이 원칙은 어그로에 속하는 덱들에 한해 유의미하고, 전사/주술사/성기사/사제/거흑 등의 컨트롤 덱에는 별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이들간의 상성은 주로 어드밴티지(패) 차이 때문에 생깁니다.
얘들은 애초에 어그로 포지션을 일부러 내주고 컨트롤로 어드밴티지 버는 데에 특화되어 있으니까요.
무조건 빠른게 좋다면 돌냥이 최강이겠죠(....) 한두턴 차이, 이게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작년 4월에 쓴 글입니다)






5. 

어그로/컨트롤에 대한 이해가 왜 중요할까요?
상성을 이해하면, 메타를 카운터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쌍군야포 드루이드가 유행하면 그보다 킬각이 약간 빠른 죽메냥을 돌리면 됩니다. 사자도 넣고.
사자 넣은 죽메냥이 유행하면 그보다 킬각이 약간 빠른 돌냥을 돌리면 됩니다. 사자 빼고. 아주 효과적으로 카운터칠 수 있죠.
돌냥이 유행하면....... 전사 돌리죠.




덱 선택 뿐만이 아니라, 튜닝을 하는 데도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래의 두 덱을 봐주세요. 아래 것은 최근 드루이드의 정석이 된 새비즈 덱이고, 위의 것은 한창 드루이드가 좋을 때 제가 랭크에서 굴렸던 덱입니다.








둘 다 일반적인 쌍군야포 드루이드에 기반을 둔 덱이지만, 둘의 지향점은 완전히 다릅니다.



먼저 요새 메타에 안 맞다고 버려진 부대장을 2장이나 쓰는 제 덱은, 지난 1월 초 드루이드가 유일신이던 시절, 드루이드를 카운터치기 위해서 튜닝되었습니다.

드루이드 미러전을 이기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첫패에 정자급성 잡기도 있습니다만.....
정답은 어그로 플레이입니다. 먼저 어그로 포지션을 잡은 쪽이 거의 무조건 이깁니다.
같은 어그로덱인 드루이드 미러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덱의 어그로성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것이죠.


바로 그걸 위한 돌진이고 그걸 위한 부대장이에요. 
빈 필드에 나가기 싫은, 상황적 카드(대표적으로 해리슨과 흑기사가 있죠)는 전부 없애고 최대한 깡스탯 위주로, 템포를 끌어올린 형태입니다. 드루이드 직업카드라고 해도 좋을 망령 대신 3코 엉뚱이를 넣은 것도, 최대한 빨리 필드에 묵직이를 올려서 명치를 한대라도 먼저 치기 위함이지요.







반면 새비즈의 덱은 기계법사/냥꾼/도적의 3대장, 바로 드루이드보다 더 빠른 어그로덱들을 상대하기 위한 구성입니다.

먼저 언급했듯이, 어그로덱간의 대결에서는 더 빠른 쪽, 더 가벼운 쪽이 유리합니다.
그래서 새비즈는 드루이드의 어그로성을 반쯤 포기하고, 컨트롤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죠.


그걸 위한 간좀, 누더기골렘, 그리고 다수의 상황적 카드(나이사, 정배맨, 해리슨)에요.
특정 상황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는 상황적 카드는 게임이 늘어질수록 사용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서로가 서로의 명치를 노리는 race 상황에서, 이들 카드는 코스트 대비 스탯이 낮은 바닐라 카드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효율적이라는거죠.
하지만 약간 느린 컨트롤 게임에서, 상황에 맞게 사용된 이들은 엄청난 이득을 벌어다 주죠.


내 킬각이 한 턴 늦어지더라도, 어짜피 기법 상대로 어그로 포지션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컨트롤 하기에 용이한 카드를 넣어 튜닝한 겁니다.






무작정 전사 유행하면 수액괴물 넣고, 냥꾼 유행하면 도발 넣고 하는 식의 튜닝은 굉장히 일차적입니다.

웬만하면 좋겠지만, 때로는 그런 단순한 생각은 오히려 덱의 밸런스를 망칠 수도 있어요. 가령 전사가 랭에 많다고 돌냥에 수액괴물 넣었다가, 무기가 안나와서 4-5턴까지 패에서 놀았다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한 튜닝인 거죠.



주문도적이 한창 유행할 작년 5~6월쯤, 왜 주술사들이 둠해머를 필수적으로 넣었는지 이해하신다면 글을 제대로 이해하신 겁니다.






6.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그래도 돌냥 돌리지 마세요.(진지)


돌냥 out!! 난 냥꾼이 정말 싫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