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은 쓰러져 가는 세이렌을 부축한 채 앞으로 걷고 있었다. 소린은 완전히 눈물 범벅이 되서는 아직도 어깨를 떨며 히끅히끅 거리고 있었고, 세이렌은 배를 부여 잡은 채 소린에게 거의 업혀 있다 시피 부축을 받으며 앞으로 걷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세이렌... 나 때문에... 미안해..."

"괜찮으니까... 미안해 하지마..."

 

세이렌은 거의 정신을 잃기 전이었다.

 

출혈.

치명적인 상처.

 

덕분에 기사들의 특수 기술인 자연회복능력과 소린의 힐이 전혀 통하지 않아 세이렌의 몸에서는 점점 힘만 빠지고만 있었다. 어콜라이트인 소린이 세이렌의 이 모든 상태이상들을 치료할 수 없었다. 소린은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글레스트헤임으로 오기 전으로.

 

 

 

 

 

 

글레스트헤임.

흔히들 고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옛 성터는 과거 무슨 일로 인해 각종 원혼들이 떠도는 죽어버린 성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프론테라의 성당과 성기사단이 힘을 내어 이곳을 정화 하고 있었는데, 정화작업은 매우 성공적이라서 상당수의 공간을 프론테라에서 차지한 상태였다.

 

'어째서지.'

 

입구로 오는 길 내내 몬스터라고는 볼 수 없어서 상당히 안전하다는 느낌은 났지만 막상 글레스트헤임에 오니 싸늘한 기운이 넘쳐 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히 입구에서부터 성기사단들과 프리스트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소린은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전투의 흔적 같아....'

 

싸움이 있었던 걸까. 칼이라던지 부숴진 방패 조각등 여러가지 전투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전투흔적과는 다르게 시체는 하나도 없어서 오래된 전투 흔적인지 최근에 일어난건지 소린은 알 수 없었다.

 

"이상하군."

 

소린보다 앞에 있는 에레메스와 렌달은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여기에 있는 흔적들은 최근에 벌여졌던 전투의 흔적들이었다. 하지만 시체도 하나도 없고, 주변에 풍기는 죽음의 향기는 에레메스와 렌달에게는 익숙한 기운들이었다. 때문에 여기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왜 시체가 하나도 없는지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소린은 수도원 쪽으로 향하면 되는거야. 그 쪽까지 길을 뚫지."

 

렌달의 말에 에레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원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뭔가가 있는게 분명해."

 

수도원 입구에 다다른 에레메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온 몸에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 이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안 쪽의 정체모를 대상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난 소린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고 오지. 들어가지 말고 있어."

 

렌달은 에레메스에게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말 것을 권유했다. 렌달 역시 안쪽에서 상당히 강한 누군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에레메스 역시 렌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으며, 렌달은 에레메스의 경계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되돌아 왔던 길로 몸을 움직였다.

 

쿠르르르.

 

그리고 그 때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작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소린이었고, 렌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후다닥 소리가 난 쪽으로 뛰었다.

 

"젠장!"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구덩이 반대편에는 소린이 메고 왔던 가방이 걸쳐져 있었다. 아래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이 구멍은 그냥 아무 장비 없이 내려갔다간 크게 다칠 것만 같았다. 소린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렌달은 선뜻 바로 내려갈 수 없었다. 도저히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인데다가, 안은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여 있어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챙!

 

그리고 그 순간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렌달은 아래를 보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수도원이 있는 쪽이었다.

 

"아.. 이런."

 

수많은 가고일들과 말을 탄 기사들. 그리고 이제는 원령이 되어버린 칼리츠의 기사단들이 렌달을 포위하고 있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분명 에레메스의 것일게 틀림 없었다. 이렇게 떨어지자마자 나타나는 이들을 보니 분명히 누군가가 정확하게, 그리고 아주 제대로 통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너희같은 것들을 상대하는 법을 배운게 바로 우리 프론테라 성기사단들이다. 얼마든지 덤벼."

 

렌달은 창과 방패를 들었다.

 

 

 

 

 

소린은 온 몸이 부숴지는 듯한 고통에 제대로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온 몸의 마디마디가 다 쑤시는게 진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으으으으..."

 

소린은 그래도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 몸은 완전히 젖어 있었는데, 그나마 운 좋게 물 위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상당히 얕았기에 피해를 크게 감소시켜주진 못했다. 옷이 몸에 달라붙어 상당히 불편했지만 소린은 힐로 자신의 몸을 치유하고는 루아흐를 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수로 같은 건가...'

 

소린은 주변을 걸으며 어떤 곳인지 살폈다. 예전부터 만들어져 있었던 탓인지 상당히 노후화된 느낌이 나고 있었다. 아직 프론테라 성기사단들과 성당의 프리스트들이 당도하지 못한 곳 같은 느낌도 났다. 불이 제대로 켜진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서걱.

"아?"

 

두리번 거리면서 걷던 소린은 왼쪽 종아리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뭐...야..."

 

천천히 뒤를 돌아봤을 때는 초록색의 피부를 가진 십여마리의 아놀리안이 소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보는 괴 생명체.

 

소린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고, 뒤로 몸을 내 빼려고 했지만 왼쪽 다리가 베여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놀리안은 그들만의 대화로 뭔가 의사소통을 하였고, 두 녀석이 다가와 소린의 양쪽 팔을 잡았다. 완전히 겁을 먹은 소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룬미드가르츠 왕국 주변에는 수 많은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 동안 소린이 상대했던 몬스터들은 이렇게 인간에게 적대를 느끼고 죽이려고 드는 몬스터는 없었다. 의사가 없는 언데드형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아놀리안들은 다들 부상을 당했었는데 소린은 그 부상들을 보고 어떻게 생긴 부상인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이 창에 의한 상처들이었는데, 이 아놀리안들은 모두 프론테라 성기사단들로부터 겨우 살아남은 잔존 세력이었다.

 

퍽.

"꺄악!"

 

아놀리안들은 소린의 머리를 때렸다. 소린은 단말마를 지르며 머리를 떨구었는데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기절까진 하지 않았다. 아놀리안들은 소린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 하는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부 짖고 있었다.

 

"아.. 안돼..."

 

즐거워 보이는 듯한 아놀리안들은 양팔이 들린 소린을 보며 비웃다가 어디선가 들고 온 막대기로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소린은 그저 마가레타 수녀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상당히 들떠 있었다. 자신의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자신을 특별히 아끼는 마가레타 수녀님에게 인정바다 프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도 너무나도 가벼웠었다. 소린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거의 반 특례로 프리스트가 되는 것쯤은.

 

하지만 프리스트가 되면 더욱더 많은 힘들이 생기니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이 이렇게 특례로 전직했다고 말이 안 나오도록 노력하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인간에게 분노한 몬스터들 때문에 말이다.

 

"도와줘..."

 

새하얀 어콜라이트 의복은 소린의 피로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아놀리안들의 발 아래 놓여 소린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 소린을 가지고 노는데 질린 것일까. 한 아놀리안이 울부짖으며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소린의 얼굴을 향해 칼을 들고 내려찍으려 자세를 잡았다.

 

"미안해...."

 

오기전에 세이렌으로부터 세이프티링을 받은 소린이었다. 상당한 고가의 아이템으로 구하기도 힘든 아이템인데 자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넘겨 주었던건 세이렌 역시 자신의 전직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믿어준 모두들에게 미안..."

"당장 칼 내려놔."

 

소린이 왔던 길에서 들리는 목소리. 소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아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소린이 항상 위험할때나, 힘들 때마다 나타났던 남자가 이곳에 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이렌..."

 

검을 들고 있는 세이렌의 모습 때문일까. 소린을 공격하려던 아놀리안들은 일제히 세이렌을 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소린처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상대보다 세이렌 같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검을 든 이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놀리안들은 훈련이라도 받은 것 마냥 일제히 세이렌에게 뛰어들었다. 지능이 딸려 인질이라는 개념이 없는 아놀리안들이기에 이런 멍청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괜찮아?"

 

순식간에 아놀리안들을 제압한 세이렌은 쓰러져 있는 소린에게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응..."

"이 개자식들."

 

세이렌은 아직 다 죽이지 못한 아놀리안들에게 뛰어가려 했다.

 

"난. 괜찮으니까."

"다 죽여버리겠어. 이 자식들!"

"괜찮아. 진짜루..."

 

소린은 제대로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세이렌의 건틀렛을 잡은 채 애원하는 듯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아놀리안들을 죽이지 말라는 모습이었다.

 

"아니. 어째서! 이 녀석들은 먼저 널 공격!"

"아니. 아니야. 우리가 먼저 공격한거야. 다들 피해자란 말야. 그러니까 죽이지 말아줘."

 

아놀리안들은 한마리도 죽지 않은 상태였다. 세이렌은 언제라도 죽일 수 있도록 공격을 한 뒤 소린의 상태부터 살피러 왔었다. 그리고 소린의 이런 부탁에 세이렌은 공격하려다 말고 칼을 다시 검집에 집어 넣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소린은 자신의 마법으로 몸을 모두 고친 상태였고, 세이렌이 제압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아놀리안들을 모두 치유해주고 있었다. 세이렌이 옆에 있으니 아놀리안들은 아무 행동도 못하고 소린의 치유 마법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미안해. 우리들이 너무 했지. 내가 대표해서 사과 할께. 죽어간 너희 동족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 줄수는 없지만.. 그리고 이런 상황으로 치닫게 한 것에 대해 어떤 사과를 해도 용서가 안되겠지만 미안해. 정말로."

 

소린은 치료하는 내내 아놀리안 하나하나에게 말을 건냈다.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아놀리안들일텐데 소린의 마음이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아놀리안들은 소린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려 하지 않았다. 세이렌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살짝 붉힌 상태였다. 자신이 소린에게 반한 이유는 바로 이런 착한 심성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세이렌 역시 그녀를 왈가닥이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웃고 다니고 장난끼도 많은 소린이기에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이렌은 소린과 점점 엮이면서 그녀가 너무나도 여리고 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세이렌은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았어?"

"구덩이에 가방이 걸려 있더라고."

"아..."

 

소린은 갑자기 땅이 꺼지는 바람에 이 쪽으로 떨어졌는데, 그 때 여행가방을 흘린 모양이었다.

 

"내 가방인거 어떻게 알았어? 여기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 많은데."

"아 가방 뒤져봤지. 저번에 입었던 속옷 있잖아. 왜. 내가 우연치 않게 네가 목욕 다 끝나고 옷갈아입는 거 봤을 때."

 

세이렌은 아무렇지않게 이야기했지만 소린은 살짝 짜증이 났는지 이마에 힘줄이 튀어 나왔다.

 

"뭐라고. 세이렌?"

 

싱긋 웃으면서 되묻는 소린의 말에 세이렌은 아차 싶었는지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내가 그 때 그 기억 지우라고 했었지? 너 덕분에 내가 면도날의 소린이라고 불렸던거 알아?"

 

소린은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지만 살기가 어마어마했다. 이 살기면 아놀리안들도 겁을 먹고 도망갔을게 분명했다.

 

"아... 그... 그게.. 아하하하하하하."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

 

소린의 말에 세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소린은 그 모습을 보더니 치마를 살짝 걷어 올렸다.

 

"한 대 맞으면 기억이 지워질거야."

"때...릴려고?"

"당연하지. 기억을 잊게 하는데 가장 좋은 건 충격 요법 아니야?"

"누구의 주장인데?"

"응. 마가레타 수녀님."

 

소린은 그리고 있는 힘껏 발로 세이렌의 정강이를 허벅지를 걷어 찼다. 기습적인 공격에 세이렌은 미처 피하지 못했고, 그대로 허벅지를 소린의 정강이에 노출시키고 말았다.

 

"히이이이이잉."

 

하지만 소린은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정강이를 부여잡고 울먹이기 시작했고, 세이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천천히 뜨며 자신의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갑옷이 세이렌의 허벅지를 완전하게 지켜낸 것이었다.

 

"이 나쁜놈!!!"

 

소린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소린 / 세이렌 / 랜달 / 에레메스 편은 서서히 끝나갑니다.

 

댓글 남겨주시는 페닌님, 아가륜님, 꿈을걷는자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두 편이면 이번 이야기는 막을 내릴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카트린느와 에레메스의 이야기

세이렌과 소린의 이야기

거티위와 랜달의 이야기

하워드와 셰실의 이야기

트렌티니와 아르바치오의 이야기

플라멜 / 첸리우 / 실리아 알데의 이야기

 

세이렌을 필두로 한 1차 직업들. 세이렌 윈저, 마가레타 소린, 하워드 알트아이젠, 셰실 디먼, 에레메스 가일, 카트린느 케이론의 생체실험실에서의 이야기.

랜달 로렌스를 필두로한 2차 직업들. 랜달 로렌스, 거티위, 트렌티니, 아르바치오 바실, 플라멜 이뮬, 첸 리우, 실리아 알데의 생체실험실의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순수 창작이며, 좀 설정과 다를 수도 있으니 이해 부탁드리며, 세이프티링은 생던 진보 하이프리스트 마가레타가 세이프티링을 드랍하길래 세이렌이 줬다라는 설정으로 한번 넣어봤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당. 재미있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