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땅: 듀랑고의 사이드 스토리 "동행"_스압주의


"이봐요! 같이 좀 가요!"

 

앞서가던 중년의 남자가 흘긋 뒤를 돌아봤다. 여자는 말한 것과 달리 그의 뒤를 제법 잘 쫓아오고 있었다. 우거진 수풀을 대충 베어 넘기며 그가 말했다.

 

"멋대로 따라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가 덧붙였다.

 

"이제 다 왔어."

 

울창하게 자란 정글소철 뒤편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터가 보였다. 공터에는 허름한 간이천막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꺼진 모닥불의 잔해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그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들이 빠르게 지워졌다.

 

"뭐야. 쉬지도 않을 거면 이제 다 왔단 말은 왜 해요?"

 

그녀가 투덜거리자 그는 짧게 타박했다.

 

"난 분명히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혼자 삐죽거렸다. 묵묵히 할 일을 마친 그는 다시 정글 어딘가로 향했다. 빈틈없이 자리 잡은 우거진 수풀과 울창한 나무들 속에서 그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신기하게도 그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머물렀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때론 간이천막과 꺼진 모닥불이었고, 동물이 먹다 간 작은 먹이통이었으며, 망가진 바구니나 쓰지 않는 통발 같은 것이었다. 모두 수명이 다해 쓸모없어지고 버려진 물건들이었다. 그는 불안정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런 쓰레기들을 청소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도대체 왜 하는 거에요?"

 

"그건..."

 

그는 대답하려다 말을 흐렸다. 어느새 그의 발걸음도 멈춰있었다. 그는 다시 걸음을 떼며 말했다.

 

"말해줘도 넌 못 알아들을 거다."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죠."

 

"지금은 그럴 시간 없어. 서둘러야 해."

 

그녀는 작게 툴툴거리면서도 재빨리 그를 쫓아갔다. 드문드문 땅이 흔들리는 것을 그녀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있는 섬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야."

 

그가 꺼진 모닥불의 타다 남은 나무와 재를 모래로 덮으며 말했다. 깨끗해진 바닷가에 우르릉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땅에서 나는 것인지 하늘에서 나는 것인지 모를 커다란 소리였다. 그것은 마치 섬이 내지르는 비명 같았다.

 

"으왓!"

 

정글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스테고사우르스들에 놀란 그녀가 소리 질렀다. 그러나 스테고사우르스들은 그녀를 무시하고 바다에 뛰어들어갔다. 그 뒤로 밀림에서 온갖 공룡과 짐승들이 뛰쳐나와 살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졌다. 완전히 아비규환이었다.

 

"서둘러야겠군."

 

"내가 그만 가자고 할 땐 듣지도 않더니!"

 

둘은 곧바로 그들이 왔던 항구로 내달렸다. 모래톱을 달리는 게 정글보단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오는 공룡들이 거듭 길을 막았다. 한 번은 그 거대한 덩치에 깔릴 뻔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들은 항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엔 선착장도 뗏목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부서진 통나무와 밧줄들만 해변에 흩어져있었다.

 

"이럴 수가..."

 

그녀가 짧게 탄식했다. 그들이 타고 온 배는 이제 부서지고 없었다. 그나마 먼바다에 뗏목을 타고 섬을 떠나는 이들이 간신히 보였다.

 

"이봐─!"

 

그가 큰 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뗏목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 그들에게 들렸을지도 의문이었다.

 

"저건 포기해야겠군."

 

"이젠 어쩔 거에요?"

 

그녀가 날 선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섬은 이제 한계였다. 여기저기 땅이 갈라지고 지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까운 워프홀에서 이상한 무전들이 마구 뒤섞여 기괴한 소리를 냈다. 더 이상 피난을 가는 짐승들도 보이지 않았다. 늘 침착하던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문득 그가 말했다.

 

"여기 올 때 버려진 선박을 지나왔었지."

 

"하지만 그런 다 부서진 배가 물에 뜰 리 없잖아요."

 

"모든 배에는 구명보트가 있어. 어쩌면 아직 남아있을지도 몰라.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정말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쓰러지는 야자나무를 피해 구르거나 갈라진 대지의 틈을 뛰어넘는 건 예사였다. 워프홀에서는 이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뒤죽박죽 흘러나왔다.

 

그들은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반파된 선박이 바닷물에 조금 잠겨있었다. 섬이 흔들릴 때마다 배가 부르르 요동쳤다. 그들은 첨벙첨벙 바닷물을 밟으며 배에 다가갔다. 배는 워프로 날아온 것 같았다. 기울어진 갑판에 지저분해진 하얀 원통들이 일렬로 설치된 것이 보였다.

 

"용케도 아직 남아있군. 상태가 괜찮다면 쓸 수 있을 거야. 따라와라."

 

그들은 부서진 곳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갔다. 기울어진 선체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섬과 마찬가지로 배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들은 최대한 빠르고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갑판에 도달하지 못했다. 도중에 지반이 가라앉으며 배가 침수되었기 때문이다. 섬은 완전히 조각나버렸다. 그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했지만 그 이상 도망갈 곳은 없었다. 가라앉는 섬 주변으로 거칠게 요동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이제 희망이 없다고 큰 소리로 절규했다.

 

"아직 있어."

 

그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흔들림 없는 얼굴이었다. 그의 또렷한 눈동자에서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 눈동자는 그녀에게 묘한 믿음을 줬다. 하지만 구명보트가 있던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물에 잠겨 창백해진 배는 서서히 더 깊은 곳으로 침몰했다. 그들도 언제 물귀신이 될지 몰랐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도대체 뭐가 있는데요? 구세주? 신? 그런 건 없어요. 여긴 듀랑고라고요!"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라앉는 배를 노려봤다. 무언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배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그녀를 이끌었다. 

 

"가자."

 

잠시 후 무언가가 물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그녀가 말한 구세주나 신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구명보트였다. 그들은 그것을 타고 사라지는 불안정섬의 위험한 해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심지어 구명보트에는 딱 2개의 노가 준비되어 있었다.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그는 불안정섬을 바라봤다. 멀리서 봐도 섬이 무너지는 광경은 여전히 아찔했다. 섬은 조금씩 바다에 삼켜졌다. 이내 푸른 수평선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불안정섬은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서 이 배가 솟아난 건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목적은 처음부터 이걸 구하는 거였어."

 

그는 그녀에게 자동팽창식 구명보트를 설명했다. 많은 선박이 이 구명보트를 구비해놓으며 물속에 가라앉으면 자동이탈장치가 작동해 자연스럽게 물 위로 떠오른다고. 그는 이 정도는 상식이라며 혀를 찼다. 그녀가 항변했다.

 

"전 당신처럼 지구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고요!"

 

그 후 그들은 적당히 대화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제집처럼 구명보트를 뒤적이더니 비상식량을 꺼내 보였다. 아직 상태가 괜찮다며 그는 그녀에게도 몇 개 건넸다. 그녀는 이게 무슨 헛고생이냐며 뒤늦게 신세를 한탄했다.

 

"뭐, 그래도 건진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놀랍게도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는 가방 안에서 술병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라벨이 붙은 올리브색 유리병이었다. 그녀가 그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언제 챙긴 거예요? 이게 어떻게 아직까지 안 깨졌지?"

 

그러면서 그녀는 술병을 휙 낚아채 갔다.

 

"살아있을 때 베풀어야죠!"

 

"잠깐, 그건..."

 

그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가 코르크 마개를 감싼 철사를 제거했다. 갑자기 펑 하는 경쾌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녀는 아래턱에 얼얼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녀가 아픔에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는 또 짧게 혀를 찼다. 그녀가 간신히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

 

"뭐, 뭐에요?"

 

"뭐긴 뭐야. 멍청하게 샴페인 뚜껑에 처맞은 거지. 원래 갑자기 열면 날아간다. 게다가 오면서 많이 흔들렸으니까. 으음, 김이 다 빠졌군."

 

어느새 샴페인을 가져간 그가 한 모금 마시면서 아쉬워했다.

 

"앗! 먼저 마시는 게 어딨어요!"

 

"내가 가져온 술이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뚜껑은 제가 열어줬잖아요. 한 대 맞기까지 했는데 치사하게."

 

그러면서 그녀는 술병을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그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그렇게 억울할 일인가?"

 

그녀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당연하죠! 죽을 뻔했는데!"

 

"그건 말 안 듣고 따라온 네 잘못이지. 난 위험하다고 했다."

 

"'죽을 정도'라는 말을 빼먹었잖아요!"

 

"평상시엔 이 정도는 아니야."

 

"하! 잘도 그러겠네요."

 

둘은 티격태격하며 기반섬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그녀는 종종 그를 따라 불안정섬에 갔다. 그는 여전히 쓰레기를 청소했다. 일이 끝나면 둘은 배를 타고 멀리서 섬이 가라앉는 것을 지켜봤다. 그 자리엔 워프에 시달린 다디단 술 한 병이 꼭 함께였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서 이유를 듣지 못했다. 그는 듀랑고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예고 없이 삶에서 떠났다.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그의 인생이 마치 불안정섬 같다고. 그녀는 어쩌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언젠가 사라질 불안정섬의 쓰레기들은 굳이 청소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치우는 일이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끝-

 

 

P.S
개인적으로 공룡이 헤엄을 칠 줄 아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지난번에 올렸던 게시글에 나오는 정화원의 이야기 입니다. 픽션이니 가볍게 넘어가주세요.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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