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ports.news.naver.com/esports/news/read.nhn?oid=236&aid=0000163924

영상인터뷰 중 나오는 말이다. 38초 즈음.


Q. 3세트 끝나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A. 간절함이 부족했기 때문에 질 때가 됐나 생각을 했는데...뭐 그래도 다행히 조금 차이로 이겨서...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포모스 영상인터뷰 극혐이라 어지간하면 안 봤다. 뷰 수 올리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요약을 절대 안 써주더라고.

그런데 엊그제 미스핏츠 경기 보고 나서는 뽕이 안 찰래야 안 찰 수가 없어서 페이커 인터뷰 떴길래 영상을 봤다.

인터뷰 볼 때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저 말이 왜 그렇게 자꾸 마음에 밟히는지 모르겠더라.

며칠 지나도 자꾸 생각이 나서 또 보고...이렇게 글을 쓴다.


페이커가 데뷔한게 2013년이다. 벌써 5년째다.

어지간한 우승컵은 거의 다 들어올렸고, 어지간한 타이틀은 이미 다 땄다.

이미 정상이다. 더 올라갈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해서 동기부여를 하면서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달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간절함을 잃지 않는 게 가능은 할까.


어느 스포츠건, 어느 분야건, 상정한 목표를 이루고 나서 무너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많은 선수들이 우승을 하고, 목표를 이루고, 정상에 오른 뒤...급격히 무너진다. 슬럼프에 빠지고, 다시는 그 절정의 폼을 찾지 못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롤판 안에서만 해도 이런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측면에서 나는 뱅울을 이해한다.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

몇 년이나 최정상의 폼을 유지하며 SKT의 승리를 함께 견인했다. 몇 년이나. 어느 순간 다리가 느려지고 숨이 차서 휘청거리는 게 당연하다.

마라톤에서 한 번 달리는 걸 멈추면,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 나는 뱅울이 이 지점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페이커는 정상에 오른 뒤, 한 번 찾아온 슬럼프를 이겨내고 또 다시 정상에 서서,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

페이커 자신의 입으로 '간절함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력은 줄지 않았다, 도리어 계속해서 최고의 상태다.

그 간절함이 부족해진 만큼 얼마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걸까.


이스포츠판은 다른 스포츠판보다 선수들의 수명이 짧다.

길게는 30대까지, 커리어가 쌓일수록 원숙해지는 일반 스포츠와는 달리, 이스포츠에서의 메카닉은 나이가 들수록 깎여나가는 정도가 크다. 20대 중반을 넘으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런 곳에서 5년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페이커는 이미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증명하고도 한참 더 증명했다. 더 이상 증명할 것도 없다. 

그러나 오늘도 페이커는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다. 지친 팀원들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게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는 페이커 본인만이 알 것이다.

다만 나는 팬으로서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




Long Live the King.

왕이시여 영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