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젠 프로세서를 소개하는 AMD의 구원투수 리사 수

올해 초 부터 컴퓨터 시장에서는 라이젠이 화제다.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절치부심했던 AMD의 야심작이기도 하고, 출시된 이후에는 뛰어난 성능을 실제로 입증하면서 미심쩍었던 시장의 반응을 단번에 반전시켰다. 덕분에 출시 이후 라이젠의 점유율은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AMD는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을 겪어왔다. 2000년대 초 애슬론의 활약에 힘입어 CPU 시장 점유율 40%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화려했던 비상도 잠시, 이후 인텔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라이젠이 출시되기 전인 2016년의 글로벌 점유율은 10% 미만에 불과했다.

차세대 CPU '라이젠(RYZEN)'은 올해 초 출시된 이래, 지난 10여년간 인텔이 사실상 독점해 온 CPU 시장에 균열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공개된 '라이젠 7' 시리즈는 30만원대에 8코어 16스레드를 장착하고 강력한 멀티코어 성능으로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출시된 '라이젠 5' 시리즈는 인텔 카비레이크 i7-7700(4코어 8스레드)보다 저렴한 가격에 6코어 12스레드, 4코어 8스레드의 멀티 코어 성능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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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videocardz]

지난 7월 AMD는 라이젠의 마지막 시리즈 '스레드리퍼(16코어 32스레드)' 를 공개하면서 비로소 라이젠의 전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라이젠(RYZEN)'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에 높은 성능으로 CPU 시장에서 돌풍의 핵이 되었다. 라이젠이라는 강펀치에 놀란 인텔은 8세대 프로세서 '커피레이크'를 예상보다 이른시기에 출격시키며 방어에 나섰고, 결국 10년만에 다시 CPU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인텔과 AMD의 CPU 경쟁은 하루 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약 25년 전부터 시작된 CPU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인텔 과 AMD CPU 전쟁의 역사!

▲ 경쟁 상대인 듯 아닌 듯.. 경쟁상대 같은 너!

AMD와 인텔이 맞붙은 CPU 전쟁의 역사는 199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MD는 인텔의 원천 기술을 빌려 호환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알려졌으며 PC 시장의 초기에는 인텔과 정식 계약을 맺고 2차 공급 업체 역할을 해왔다.

초창기의 AMD는 인텔과 거의 동일한 구조에 인텔보다 빠른 클럭의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내세웠고 우수한 호환성을 무기로 당시의 PC 시장에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 시기의 AMD는 인텔의 기술력을 완벽하게 따라잡기에는 역시 일정 부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IT업계에서는 언제든 반전이 벌어진다. 2000년, 후발 주자였던 AMD가 인텔을 앞서나가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 최초로 1초당 10억 번의 명령어 처리가 가능한 1GHz 속도의 CPU인 K7 애슬론(Athlon)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AMD는 1996년 K5 출시 이후 K~라는 제품명을 사용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업계에 널리 알려진 바에 따르면 K라는 알파벳은 절대 강자인 인텔을 물리칠 것이라는 AMD의 희망이 담긴 제품명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강력한 슈퍼맨을 약하게 만들어 줄 가공의 광석 크립토나이트처럼,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인텔이 AMD의 크립토나이트(K) 앞에서 작아지길 바라는 AMD의 희망을 키워드에 담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절대적으로 강력한 슈퍼맨이도 크립톤 광석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해지는...
[자료출처 : screenrant]


■ 그리 길지 않았던 AMD의 봄...

▲인텔은 넷버스트 아키텍쳐로 고전.. 반면 AMD는 애슬론 64x2 연달아 성공

인텔이 넷버스트 아키텍처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을 즈음 AMD는 K7아키텍처 제품군의 애슬론 XP, 애슬론 64시리즈, 듀얼코어 CPU인 애슬론 64×2를 연달아 출시하며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가는데 성공했다.

당시 인텔은 근본적인 아키텍처의 개선없이 펜티엄 4의 코어 2개를 하나의 칩으로 만들었고, 이는 AMD의 애슬론 64에 비하면 성능이 좋지 않았다. 또한 인텔 펜티엄4의 단점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전력 소모나 발열 면에서도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인텔의 고전과 함께 시장의 관심은 AMD에 몰렸고, 이런 기세를 몰아 AMD는 CPU 시장에서 2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확고한 강자였던 인텔을 일부나마 따라잡았고, 조금만 더 성장하면 양강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인텔도 AMD의 공세에 무작정 두드려 맞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실패는 한번이면 충분하다는 각오일까? 인텔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면서 AMD의 성장세가 멈추기 시작했다. 2006년 출시된 인텔의 코어 2 듀오인 콘로(ConRoe)가 애슬론의 기세를 막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 AMD의 봄.. 그러나 2006년 애슬론 64 시리즈 후속 모델 개발에 난항을 겪으며.. 날개 없는 추락
[자료출처 : WCCFTECH]

인텔은 기존의 넷버스트 아키텍처 대신 새로 개발된 코어(Core) 아키텍처를 도입하였고 전력소비와 발열 등 종전의 단점을 개선했다. 반면 AMD는 애슬론 64시리즈의 후속 모델 개발에 난항을 겪으면서 인텔 코어2 듀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AMD에서 K10 아키텍처를 적용한 신형 CPU 페넘을 출시했지만 기대 만큼의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인텔의 시장 지배력이 한층 더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후 한때 20% 이상으로 올라갔던 AMD의 시장 점유율이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성급한 도전은 날개없는 추락으로 이어졌다. 인텔의 공세에 맞서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AMD에서는 페넘2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뒤집어 보려 했으나 아쉬운 결과만을 남겼다. 2011년 야심차게 공개한 불도저 역시 다시 한번 시장에 충격을 안기면서 AMD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작년까지, AMD는 흑역사라고 칭해질 정도로 부진한 10년을 보냈다. 한때는 인텔의 유일한 경쟁 상대로 기대를 받았던 AMD가 보급형 제품으로 인식될 만큼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이후 인텔은 개인용 C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인텔을 밀어내려 만든 불도저가 자사의 점유율을 싹 밀어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 9년여 만에 다시 시작된.. 왕좌의 게임

▲ 지난 3월 다시 한번.. AMD의 부활을 알린 '라이젠'

그러나 지난 3월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AMD는 인텔의 코어 프로세서와 동급 성능을 내는 ZEN 마이크로아키텍처 기반의 '라이젠' CPU를 새롭게 선보였다. 침묵해온 수년간 기술 개발에 매진해 온 AMD는 26나노 공정에서 인텔과 동일한 14나노 공정으로 전환했다.

또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경쟁력 있는 가격과 성능을 들고 나왔다. 신뢰도는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았지만 발표한 성능을 입증하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인텔 천하였던 CPU 시장의 판을 흔들어 놓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라이젠의 출시 이후는 그야말로 파죽지세. 5% 미만이었던 CPU 시장 점유율이 출시 후 30%에 가깝게 회복되면서 AMD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초기에는 메인보드 라인업 등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발빠르게 대처하며 거칠 것이 없는 행보를 보였다.

'4코어(7세대 인텔 i7의 경우 4코어)를 넘어 6코어, 8코어로 무장한 라이젠(RYZEN)'의 등장으로, 줄곧 4코어 제품만 선보이던 인텔의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년 주기로 제품을 출시하던 인텔이 7세대 프로세서 '카비레이크' 출시 9개월 만인 10월 초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커피레이크'를 내 놓은 것도 AMD의 상승세에 대한 견제로 볼 수 밖에 없다.

▲ 라이젠의 등장으로.. 예상 보다 빠르게 출시한 인텔 8세대 프로세서 '커피레이크'

지난 10월 초 인텔이 출시한 8세대 프로세서 '커피레이크'는 7세대 카비레이크와 동일한 14nm 공정으로, 제품군 별로 제공되는 코어 수가 2개씩 더 늘어나 최대 30% 이상 성능이 향상된 제품이다. 또한, 인텔은 16코어를 달성한 라이젠의 스레드리퍼에 맞서 코어 X 시리즈 라인업을 선보이며 '스레드 리퍼' 출시로 잠시 빼앗겼던 세계 최고 코어수를 다시 되찾아 왔다.

CPU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AMD의 공세에 놀란 인텔도 부랴부랴 반격을 시작했다. AMD는 솜방망이 펀치를 예상하며 방심한 인텔에게 라이젠이라는 강펀치를 날렸고,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은 인텔은 화들짝 놀라 코어X시리즈와 8세대 '커피레이크'로 막아서는 모양새다.

AMD '라이젠'의 등장은 한동안 발전없이 머물러 있던 CPU 시장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당장 AMD는 12나노 공정의 피나클 시리즈를 예고했고, 인텔도 커피레이크로 방어를 준비하고 있으나 경쟁이 치열해진다면 10나노 공정의 캐논레이크가 예상보다 일찍 공개될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어쨌거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한층 성능이 향상된 프로세서가 출시되고 있고, 점유율 전쟁이 가속화될 내년에는 더욱 향상된 제품이 공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인텔과 AMD의 CPU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개인용 PC CPU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두 경쟁사의 불꽃 튀는 대결은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질 것이 분명하다.

▲ 9년여 만에.. 왕좌를 두고 경쟁중인 인텔과 AMD!